임상춘 작가의 고단한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국내외 반응이 뜨겁다. 또한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쌈마이웨이>부터 <동백꽃 필 무렵>을 거쳐 <폭싹 속았수다>로 이어지는 임상춘의 세계는 일관되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폭싹 속았수다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아이유)은 제주 해녀의 딸로 자라났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엄마는 새아버지와 살면서 애순을 시댁에서 살게 했다. 그나마 그 집이 먹고 살기 때문이었는데, 그 곳에 얹혀 살던 애순은 어린 나이에도 사실상 식모 역할을 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엄마가 애순을 다시 데려가지만 그 엄마도 스물 아홉의 나이에 생을 등졌다. 결국 열 살 먹은 애순은 새아버지의 아이들을 돌보며 소처럼 밭을 일궈 양배추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본래 지긋지긋한 섬을 떠나 육지로 가서 대학도 가고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고단한 삶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을 계속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늘 애순 옆에 딱 달라붙어 그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관식(박보검) 같은 따뜻한 인물이 있어서다. 섬놈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애순은 관식과 결혼하고 드디어 행복을 느낀다. 시인이 되는 꿈은 접었지만 너무나 예쁜 아이들을 보며 애순은 후회하지 않는다. 관식 또한 마찬가지다. 운동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 무쇠 같은 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물론 아이가 사고로 죽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서로를 의지해가며 살아간다.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이런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흙수저 인생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애순과 관식 같은 인물은 사실상 6,70년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들의 쉽지만은 않았던 삶을 대변한다. 물론 제주라는 환경이 다르지만, 그 격동의 세월에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세대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것 없어 살 집 하나 얻는 것조차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야 가능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어 그 난관들을 뚫고 나왔던 그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지나고 나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고 나아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재가 그들의 고군분투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을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대단한 입지전적인 인물의 성공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범한 이들의 출세담도 아닌 평범한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가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인생 모험담으로 그려진다. 때론 쨍쨍 내리쬐는 햇볕처럼 아팠지만 때론 따뜻한 봄날의 행복도 겹쳐져 있던 인생 모험담.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임상춘 작가의 따뜻한 시선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이라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임상춘 작가의 일관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초다. <쌈마이웨이>에서 그 시선은 스펙이 없어 변방으로 밀려난 채 살아가는 흙수저 청춘들을 들여다 봤다. 아버지가 흙수저면 그 삶이 대물림되는 청춘들이 마주한 세상의 벽은 결코 넘기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변방에서 이들은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로 나서고, 뉴스데스크 앵커를 꿈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 데스크에서 일하는 최애라(김지원)는 방송국 대신 지방행사를 뛰고 격투기 전문 아나운서가 된다. 즉 <쌈마이웨이>는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쌈마이’ 취급 하는 세상 속에서 이 건강한 청춘들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마이웨이’를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외된 이들이 살아내고 버텨내는 생활 생존서사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늘 중심이 아닌 변방이 배경이다. <쌈마이웨이>가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을 그렸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그 곳에 어린 아들과 함께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공효진)의 삶을 그렸다. 외지인인데다, 예쁜 얼굴에 술집 운영을 하는 미혼모라는 동백의 배경은 편견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촌므파탈 용식(강하늘)의 동백에 대한 순애보는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 동백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용식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어진다.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등장으로 동네는 흉흉해지지만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의 연대는 이 위기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가장 힘겨운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꽃이 피어난다고 하던가.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 같은 편견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들에게 그 힘겨움이 ‘꽃이 피어나기 위한’ 고난이라고 위로해주는 드라마다. 

 

전 세계가 주목할 독보적인 임상춘 작가의 세계

<폭싹 속았수다>는 이러한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훨씬 깊어졌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제주 해녀의 삶을 토속적이면서도 거친 제주 방언의 특색을 더해 그 삶의 신산함을 드러내는 대목은 ‘문학적인’ 느낌마저 준다. 대사의 표현에서도 이런 면모들이 드러난다. “그러게 복어를 왜 건드려? 독으로 버티고 사는 걸.” 같은 대사로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낸다거나 “명치에 든 가시 같은 년” 같은 대사로 광례가 애순을 얼마나 애닳게 생각하는가를 표현해내는 점들이 그렇다. 

 

시인을 꿈꿨던 애순이 쓴 시들도 예사롭지 않다. ‘점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같은 기막힌 구절이 돋보이는 어린 애순의 시 ‘개점복’이나, 나이 들어 이제 시인의 꿈을 버린 지 오래지만, 백일장에 장사하러 나왔다가 애순이 쓴 ‘추풍’이라는 시도 그렇다. ‘춘풍에 울던 바람/ 여적 소리내 우는 걸,/ 가만히 가심 눌러/ 점잖아라 달래봐도/ 변하느니 달이요./ 마음이야 늙겠는가’ 나이 들어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애순이 봄날의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걸 담아낸 이 시에서는 어쩌면 임상춘 작가도 한때 꿈꿨을지 모르는 문학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번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는 점에서도 임상춘 작가에게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임상춘 작가는 줄곧 KBS에서 작품을 공개해왔다. 즉 어찌 보면 가장 로컬의 색채가 묻어나는 방송국에서 작품을 해왔던 셈이다. 임상춘 작가 특유의 끈끈한 가족 서사의 매력이 KBS라는 플랫폼과 어울려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은 최고 시청률 23.8%(닐슨 코리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를 통해 공개되는 <폭싹 속았수다>는 어떨까. 가장 로컬적인 콘텐츠가 글로벌할 수 있다는 걸 지금껏 증명해온 넷플릭스에 임상춘의 세계는 확실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공개 2주차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 비영어 부문에서 2위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칠레, 멕시코, 터키,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총 41개국에서 톱10 리스트에 랭크된 것. 제주를 비롯한 한국의 현대사 같은 낯설 수 있는 로컬 색깔들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 같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서사가 담겨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다. 

 

특히 소외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깊이있게 천착함으로써 그 삶을 위대한 모험담처럼 그려내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틀에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한바탕 씻김굿 같은 눈물을 통한 거대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세계가 주목할만한 작가의 탄생이다. (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변방에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김지원의 페르소나

눈물의 여왕

“좋아한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오? 좋아한다고? 아, 진짜? 아... 나는 아닌데.. 나는... 사랑하는데...”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백현우(김수현)는 꺾은 가지에서 잎 하나씩을 떼어내며 홍해인(김지원)을 두고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점쳐본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 하나에 ‘사랑한다’는 잎 하나를 발견하자 수줍은 듯 속내를 꺼내놓는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는 속마음을. 

 

결혼해 어느 정도 세월을 겪어낸 부부들이라면 이 짧은 장면에 담긴 이들의 사랑표현에 공감할 게다. 사랑이라는 말은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말로 그 애증(?)의 속내를 꺼내놓기 마련인 부부들. 사랑한다는 말은 술에 잔뜩 취하거나, 꺾은 가지로 잎 하나씩을 떼내며 점을 치는 식의 장난을 더해서야 비로소 슬쩍 꺼내놓는 그런 부부들의 마음이 그 장면에 담겨있다. 그런데 그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딘가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문득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김지원)이 구씨(손석구)에게 갑자기 다가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구씨가 혼자 사전으로 찾아본 ‘추앙’의 뜻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고 익숙해져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에, 미정은 ‘추앙’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가져온다. 낯설지만 어딘가 사랑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진심이 느껴지는 단어다.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가 결코 쉽지 않은 마음으로 진짜 사랑을 표현하는 홍해인이라는 인물이나, ‘나의 해방일지’에서 사랑으로는 부족하다며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하는 미정이라는 인물이나 모두 김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빛이 난다. 그건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듯한 도도한 이방인의 이미지다. 그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그 곳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더더욱 도드라진 아우라를 드러내는 배우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 어디쯤의 가상소도시인 산포시에 거주하는 미정은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가 다 가서 퇴근 후 여가도 없는 ‘변방’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처럼 벼랑 끝에 서 있어서인지 오히려 진짜 행복을 직시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감한 인물이다. 도시의 삶이 점심에 무엇을 먹고,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고, 다달이 받는 월급으로 ‘행복하다’ 여기는 그저 그런 시시한 삶에 무감각해져 있다면, 미정은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사랑 대신 추앙을 이야기할 정도로 진짜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한 가락 했지만 사람들에 염증을 느끼고 이 변방으로 칩거해 술에 빠져 살아가는 구씨조차 미정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네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 같아서 짜증 나. 짜증 나는데 자꾸 기다려.” 구씨가 한 이 고백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미정의 아우라면서 그걸 연기한 김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아우라이기도 하다. 변방에 서 있지만 어딘가 그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사람 같지 않은 도도한 이방인의 면면이 그것이다. 

 

‘눈물의 여왕’에서도 홍해인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김지원의 이런 아우라는 빛을 발한다. 퀸즈 백화점의 대표로서 그 화려하고 빛나는 세계 속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인물은, 자꾸만 그 세계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뇌종양 시한부 판정을 받고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한 처지로 미끌어지고, 백현우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용두리로 내려왔던 ‘여왕’의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쫄닥 망해 이혼한 전 남편 시댁에 얹혀 사는 처지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소박한 삶 속에서도, 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처지임에도 이 인물은 여전히 꽂꽂하고 도도하다. 그래서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그 곳과 유리된 이방인으로서 자꾸만 시선이 머물게 만드는 아우라를 드러낸다. 

 

일찍이 ‘상속자들’에서 유라헬이라는 악역으로 김은숙 작가의 눈도장을 찍고는, ‘태양의 후예’에서 육사 출신 군의장교 윤명주 중위로 서대영(진구)과의 커플 연기를 보여줬을 때도, 김지원이 가진 이러한 아우라는 그 세계 바깥에 나와 있어 오히려 추앙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들을 빚어내곤 했다. 임상춘 작가의 ‘쌈,마이웨이’에서 연기한, 아나운서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데스크에서 일하는 최애라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스펙 때문에 ‘쌈마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변방의 세계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 이방인 같은 존재는 결국 ‘마이웨이’를 선택하는 당당함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고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쓴 선사시대의 인류사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탄야라는 신적인 아우라를 가진 존재를 연기하기도 했다.

 

김지원은 어딘가 추앙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다. 그것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세계 속에서 그 안에 스며들기보다는 자신의 진짜를 꼿꼿하게 유지하며 그 정체성을 지켜내는데서 나오는 아우라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삶을 그저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조금은 관조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복되는 삶이 답답하거나 시시하게 느껴질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라. 그건 스스로를 추앙함으로써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을테니.(글:국방일보, 사진:tvN)

박서준과 지창욱, 멜로가 발견한 대세 현실 직진남

KBS <쌈마이웨이>도 가고 SBS <수상한 파트너>도 끝나고... 특별했던 두 멜로드라마가 나란히 종영했다. 다른 드라마지만 어딘지 닮은 느낌을 가진 두 드라마. 그것은 굉장한 재벌이나 심지어 외계인, 도깨비, 신으로까지 판타지가 확장되던 남자주인공들과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통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웠던 <쌈마이웨이>와 <수상한 파트너>. 이들 드라마가 괜찮은 호응을 얻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다. 태권도 유망주였으나 가난이 죄가 되어 조작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영구 제명당한다. 그래서 모든 꿈을 접은 채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단 한 시도 꿈을 잊은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초상이지만 이 인물은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은 검사였지만 살해용의자 누명을 쓴 은봉희(남지현)의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된다. 물론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남자지만 드라마는 그런 점들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 부모가 모두 화재로 죽음을 맞은 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지욱이 은봉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재력 같은 현실적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그 점이다. 은봉희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누명 또한 끝까지 벗겨주려는 노력에 담긴 진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당대의 판타지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판타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외계인이어서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세워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여자주인공을 보호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다면, 신드롬을 만들었던 <도깨비>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여자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주는 판타지를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판타지가 초현실적인 차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생겨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신까지 등장한 마당에 도대체 그 이상의 어떤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더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담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남자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허공에 붕 띄워져 있던 남자주인공들의 발을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중요한 건 남자주인공들이 이렇게 현실로 내려오면서 여자주인공들의 능동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들로 하여금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쌈마이웨이>의 최애라(김지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존재였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 역시 변호사로서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쌈마이웨이>의 박서준과 <수상한 파트너>의 지창욱은 이러한 현실 남자친구의 매력을 200%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연기장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뭐든 해줄 수 있는 굉장한 능력보다는 남다른 직진 사랑의 면면으로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남사친와 남자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보이던 그들이 더 이상 친구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직진할 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남사친 여사친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 친구 관계를 넘어서는 일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적정한 거리에서 남사친 여사친을 주장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으로 건드리고 있는 건 어쩌면 이 우정의 차원을 훅 넘어 들어오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박서준과 지창욱의 그 직진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흙수저도 메이저, ‘쌈마이웨이’의 든든한 위로

“네가 있는 곳이 메이저야!”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회로부터 마이너 취급을 받는 청춘들. 본래 하고 싶었던 일과 갈수록 멀어져 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드라마는 그런 사회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화려한 삶은 항상 저편에 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치르고 꿈이었던 태권도를 접게 된 고동만(박서준)은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렇게 영영 무도의 길을 떠나 잊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의 시간은 김탁수(김건우)에게 경기를 일부러 져주던 그 날에 멈춰 있었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꿈이었지만 그 꿈이 꺾어진 자리에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격투기가 있었다. 그는 결국 그걸 선택했고 그 안에서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본래 꿈이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였지만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최애라(김지원)에게 아나운서 박혜란(이엘리야)의 삶은 메이저였다. 그래서 결국 백화점을 그만 두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다니던 그녀는 의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발견한다. 격투기장에서 선수들을 소개하는 아나운서. 그녀는 그 곳을 자신의 메이저로 삼겠다 마음 먹는다. 

백설희(송하윤)는 꿈이 엄마다. 그래서 6년째 사실혼 관계로 사귀고 있는 김주만(안재홍)을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돌본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할 즈음, 의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자신이 담근 매실액을 블로그로 본 사람들이 주문을 시작한 것. 그녀의 엄마라는 꿈은 그래서 그 마음을 담은 음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된다. 물론 그렇게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김주만과의 관계 또한 회복된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처럼 본래 하려던 꿈을 그대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들은 꿈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서 또 다른 꿈을 이어간다. 그것이 세상에서 보기엔 메이저가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바로 메이저라는 걸 알게 된다. 

드라마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모두 해피엔딩을 보여주지만 아마도 현실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쪼대로 살아보는 거야”라고 외치는 고동만의 목소리는 적어도 흙수저라고 꿈마저 흙수저일 수는 없다고 믿는 많은 청춘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사고를 쳐야 청춘”이라고 말하는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보는 내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현실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난공불락의 저들만의 세상에서 그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이 던지는 발차기와 외침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의 옥상에 마련된 남일바의 정경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한 풍경으로 담아낸다. 어딘지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그 곳 평상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던 곳. 달동네의 빽빽한 집들이 밤이면 아름다운 불빛들을 배경으로 제공해주는 그 곳은 어두워도 그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작은 드라마였지만 그 어떤 블록버스터 드라마보다 더 울림을 준 <쌈마이웨이>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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