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최지우, 할배들의 며느리감, 짐꾼의 썸녀

 

제 아무리 최지우 때문에 할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지우가 아니었다면 이번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의 이런 밝은 에너지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삶의 경륜이 묻어나는 어르신들의 무게감이 있다면 최지우라는 경쾌함과 발랄함이 더해져 이번 <꽃보다 할배>가 더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할배들에게 어떤 활력을 주는 존재이면서 짐꾼 이서진에게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를 짓게 하는 존재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모두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여정이 설날을 전후에 잡힌 어르신들은 괜찮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 같은 게 있었다.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조금은 쓸쓸했던 것. 그런 마음을 챙기고 채워준 건 다름 아닌 최지우가 아침으로 준비한 떡국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밝혔듯 잘 하는 요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주는 훈훈함은 할배들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최지우는 요리든 영어든 아니면 가이드 역할이든 뭐든 척척 잘 해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정성을 다해 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을 흡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떡국을 만들면서 지단 하나를 제대로 얹으려 노력하는 모습이나, 필요한 영어회화를 노트에 적어서 준비하고 다니는 자세나, 또 홀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선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마음 졸이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그렇다. 그런 노력 속에는 어르신들에 대한 그녀의 살가운 마음이 묻어난다.

 

올림픽경기장을 찾아간 어르신들이 한번 뛸까요?”라는 최지우의 제안에 때 아닌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장면은 아마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다. 그녀의 가벼운 제안이 순간적으로 어르신들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은 것. 그렇게 한번 그 역사적인 올림픽경기장에서 뛰면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편 최지우가 짐꾼으로 투입되면서 생겨난 이서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저 대화만 나눠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 보조개를 만들어내는 이서진. 물론 경비 때문에 소소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말 한 마디면 먼저 몸이 움직이는 이서진이다. 떡국을 만들면서 보조역할을 하는 이서진은 대충대충 하려고 하지만 최지우의 시어머니 잔소리를 그래도 다 들어준다.

 

무엇보다 이서진과 최지우가 그려내는 알콩달콩한 그림은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들을 가이드 해주고 챙겨주는 일이 짐꾼의 역할이지만 그렇게 힘들 수 있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 건 최지우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다. 이런 썸 타는 분위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지우가 어르신들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기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없이 훈훈해진다면, 이서진과의 미묘한 감정 교류에서 어떤 설렘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흡족한 마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니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할배들의 며느리감이자 짐꾼의 썸녀인 최지우라는 존재가 <꽃보다 할배>에서 빛나는 이유다.

 

삼포세대에게 멜로보다 강력한 <미생>의 판타지

 

최근 들어 드라마 속 멜로는 왜 그렇게 시들해져버렸을까. 여전히 멜로가 들어가야 시청률을 담보한다는 방송사 드라마 기획자들의 진단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수치로서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순한 양적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멜로는 외면받기도 한다. 각기 다른 계층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 계층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적어도 이 시대에는 너무나 공허해진 이야기가 되었다.

 

'미생(사진출처:tvN)'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이미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시대에 통상적인 멜로는 마치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가 되거나, 때로는 전혀 효과가 없는 엉뚱한 처방약처럼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현실이 아닌 TV 프로그램으로 대리 경험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마녀사냥>이 그렇고 <우리 결혼했어요>가 그러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이 그렇다. 이를 다루는 멜로는 <밀회>처럼 그나마 사회적 의미를 덧붙였을 때만 잠깐 주목되는 어떤 것일 뿐, 이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함만 남았다.

 

<미생>이라는 대박 리메이크가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방영되게 된 이유가 멜로를 굳이 넣지 않으려는 윤태호 작가의 의지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윤태호 작가는 드라마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멜로가 <미생>이 그리는 세계를 변질시킬 것을 저어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사라는 살벌한 전쟁터에서의 삶에 멜로의 달콤함을 덧붙인다는 건 어딘지 맞지 않을뿐더러,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생>에는 그래서 멜로가 없다.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의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감정의 공기는 있지만 그건 멜로라고 말하기 어렵다. 선차장(신은정)이라는 워킹맘에서 결혼과 출산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은 멜로가 그리는 결혼과 출산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비애가 그 인물이 그려내려는 결혼과 출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것은 삼포세대와 동일한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축복해주기는커녕 또냐?”고 인상을 찡그리는 게 우리네 직장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멜로를 대치하는 더 강력한 관계가 <미생>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남녀 관계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관계의 이라고 할만하다. 장그래라는 사회 초년생이 어찌 어찌해 들어와 살게 되는 영업 3팀의 오과장(이성민)과 김대리(김대명)는 직장이라는 조직이 갖는 어쩔 수 없는 갈등들을 보여주면서도 마치 때론 형 같고 때론 삼촌 같은 훈훈한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오과장은 이 스펙 없는 장그래라는 청춘을 겉으로는 신뢰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장그래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그 사실을 오과장이 알아주는 딱풀에피소드는 두 사람 사이의 밀당처럼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

 

<미생>이 직장을 꿈꾸는 이들이나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은 것은 회사라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노동(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시스템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 덕분이다. 이 작품은 아예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스템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시스템이 가진 부조리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지만 영업 3팀이라는 작은 공동체는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작은 저항과 다독임을 통해 이 밥벌이로 치부되는 일터에 그만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과정을 만들어가는 건 다름 아닌 그 구성원들이다. 장그래와 오과장, 김대리가 엮어가는 회사생활 관계의 썸들은 그래서 그 어떤 비현실적인 멜로의 썸보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오과장 같은 상사가 있다면, 장그래 같은 부하직원이 있다면 또 김대리 같은 중간 책임자가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하면서 그들 간에 벌어지는 관계의 성장은 그저 판타지라기보다는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던지는 작은 대안이 아닐는지. 그런 점에서 장그래와 오과장은 요즘 드라마에서 가장 뜨거운 커플이다.

 

<비정상회담>,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그들

 

전현무는 <비정상회담>에서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을 패러디해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라고 부른다. 농담 같지만 이 노래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 그것은 아마도 실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문화적 차이와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일 게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왜 결혼을 주제로 하면서 굳이 홍석천을 게스트로 앉혔는가 하는 점이나,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동성 결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간 점은 <비정상회담>의 이야기 폭이 거칠 것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오히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지점에 놓여진 이야기 소재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특별한 토크쇼에서는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고부갈등을 얘기하면서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와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가 설전을 벌이는 대목은 흥미롭다. 에네스 카야가 무조건 어머니 편을 먼저 들어줘야 한다고 하는 반면, 알베르토는 아내를 지켜주는 게 남편의 의무라며 먼저 아내를 챙겨주고 나중에 엄마랑 얘기하면 된다는 입장으로 각을 세운다.

 

사실 고부갈등은 <사랑과 전쟁>의 단골소재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문제다. 최근 들어 조금씩 문화가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 편인지 아니면 아내 편인지 하는 문제를 두고 어느 게 정상적인가를 질문하는 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이 안건이 <비정상회담>에 오르자 흥미로운 관점이 생겨난다. 즉 그것이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인다는 것. 결국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것이 정답이라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해체시켜버린다.

 

동성결혼에 대한 안건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대중문화 등을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이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여전히 넘지 못하는 편견이 많다. 벨기에에서는 이미 결혼과 입양까지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동성결혼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벨기에 대표 줄리안의 이야기는 그래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럽이라면 상당히 개방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동성결혼이 캐나다에서는 합법이고,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으며, 또 벨기에는 국무총리가 동성애자이고 독일의 외무장관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낯선 외국의 문화차이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터키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에네스 카야의 증언은 우리보다 어쩌면 더 보수적인 터키의 문화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타르칸이라는 유명한 배우는 해변에서 남자와 손 잡은 장면이 사진에 찍혀 무려 3년 간이나 활동을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를 보이는 그들도 만일 내 자식이라면이라는 가정 앞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힘들겠지만 자식의 선택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 물론 그 와중에도 정말로 슬프지만 지지해줄 수 없다는 에네스 카야의 확고한 이야기는 넘어설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걸 말해주었다.

 

바로 이렇게 한 테이블 위에서 서로의 문화적 차이가 토론되고 때로는 격렬하게 설전을 벌이다가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입장을 반복하는 것. 이것이 <비정상회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서로가 자기 문화 안에서 정상이라고 우겼던 것들이 다른 문화에서는 비정상으로 바라보이는 것을 한 테이블 위에서 발견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은 결국 문화적 차이일 뿐, 실체적인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아니라는 것. 이 다양성의 관점을 마치 문화적 썸을 타듯이 외국인 대표들이 때론 지지하고 때론 반대하며 밀고 당기는 토크쇼. <비정상회담>이 다른 토크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흥미로움과 훈훈함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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