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 파트1, 장동건과 맞서는 천부인의 정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6회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을 마무리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총 18부작으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 파트2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 파트3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1,2는 연이어 방영되고, 파트3는 9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파트1을 끝낸 <아스달 연대기>의 성취는 어떨까. 만족스럽다고 얘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것은 어떤 프레임으로 이 드라마를 바라보느냐에 따른 극과 극의 반응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7%(닐슨 코리아) 정도에 머물러 있는 시청률은 이런 상황을 잘 말해준다. 즉 최근 여건을 감안할 때 어떤 드라마가 6회에 7% 시청률이라면 실패했다 말하긴 어렵지만, <아스달 연대기>처럼 애초 기대감이 컸던 드라마로서 7%는 또 아쉬운 수치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반응도 마찬가지다. 시작 전부터 한껏 높았던 기대감은 시작과 동시에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왕좌의 게임>과의 비교로 인해 지나친 ‘베끼기’가 아니냐는 얘기들이 쏟아졌고 실제로 의상과 미술은 그런 비판이 근거 없다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아스달 연대기>는 ‘나라의 탄생’을 문명 발달사의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과는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드라마로서는 너무 낯설고, 특히 그 판타지적 상상력의 세계가 갖는 ‘탈국적성’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달 연대기>가 아무런 성취나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집중해서 이 세계에 몰입해 보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와한족을 구출해내기 위해 은섬(송중기)이 아스달에 들어가, 타곤(장동건)과 대결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밀고 당기는 구도가 충분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타곤이 아버지인 산웅(김의성)을 죽이고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은섬에게 뒤집어씌운 후 아스달을 장악하려는 이야기나, 그 결투 과정에서 타곤이 이크트(사람과 뇌안탈의 혼혈)라는 걸 알게 된 은섬이 이를 이용해 와한족을 구해내려 머리를 쓰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결국 아스달족들 앞에서 스스로 ‘신’이라 칭하고 또 그렇게 취급받는 타곤의 정체는, 그의 실체가 이그트라는 걸 쥐고 있는 은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신화와 인류사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건 더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예를 들어 파트1 부제에 담긴 ‘예언의 아이들’은 “세상을 끝장 낼” 천부인을 뜻하는, 칼 은섬과 방울 탄야 그리고 거울을 의미하는 은섬의 쌍둥이 사야라는 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이 환인에게 받았다고 하는 3개의 신표를 캐릭터화한 부분이다. 결국 파트1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복 전쟁과 권력 투쟁으로 상징되는 타곤이라는 인물과, 이를 견제하고 대결하는 천부인(칼, 방울, 거울로 상징되는 힘, 종교, 부 같은)을 상징하는 은섬, 탄야(김지원) 그리고 사야(송중기)의 대결구도를 담아냈다.

 

중요한 건 이 낯선 세계를 계속 들여다 볼만큼 몰입한 시청자들과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며 낯설게 바라보는 시청자들 사이의 괴리감이다. 파트1에 충분히 몰입해서 그 세계를 조금 익숙하게 받아들인 시청자들이라면 시즌2가 기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청자들이라면 그 낯선 세계에 발을 딛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아스달 연대기>는 역사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사극과 달리 상상력을 더해 신화와 인류사를 드라마적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더 중요하고, 그 이야기가 환기시키는 신화와 인류사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들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보통의 드라마를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낯설어도 그 이야기 자체를 즐길까 아니면 너무 낯선 이야기의 진입장벽을 느낄까. 파트2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사진:tvN)

‘아스달 연대기’가 담으려는 자연과 문명의 대결

 

tvN 주말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와한족은 어떻게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쓸까. 대흑벽을 넘어와 이아르크 정복을 시작한 아스달족의 대칸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노예로 포획한 와한족이 자신들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간파하지 못한 채, 다만 말을 쓴다면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을 것이란 사실만 생각한다.

 

그런데 와한족이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이들이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문명의 전파가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대흑벽이 아스달과 이아리크를 자연적으로 격리시켜놓은 상황, 와한족의 씨족할머니인 늑대할머니가 바로 그 문명을 전파한 인물. 그는 언어를 주었지만 다만 아스달족이 걸어간 문명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 했다. ‘씨앗의 지혜를 배우되 기르지 말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되 길들이지 말라’는 경고가 그것이다. 그건 아스달족이 만들어가는 문명이 가진 파괴적인 폭력성을 말하는 대목이다.

 

대흑벽이 아스달족에 의해 거대한 사다리로 연결되었다는 건 그래서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아르크에 본격적인 문명의 파괴가 시작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 사다리를 보고 한없이 놀라던 은섬(송중기)은 아스달의 저잣거리에서 닭장 가득 닭들이 들어 있는 사실을 보고는 끔찍해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동물들의 일만이 아니라 그 곳에 잡혀온 전쟁 노예들의 일이라는 사실과, 어른 아이 상관없이 착취된 그들의 노동력에 의해 그 거대한 대흑벽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아르크가 자연이라면 아스달은 문명을 의미하고, 그래서 아스달의 노동력을 빼앗기 위한 정복전쟁으로 와한족이 겪는 고통은 문명의 침탈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이미 아스달의 계책에 의해 멸종되어 버린 뇌안탈이라는 종족은 이 문명 정복 전쟁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인 이그트로서의 은섬은 그래서 이 문명과 자연의 양자를 한 몸에 갖고 있는 존재다. 그는 아스달족처럼 말을 타려 하고, 곡식을 심으려 하지만 와한족의 어머니는 그걸 금기시한다. 하지만 그는 파괴적인 문명에 대한 욕망보다는 자유가 주어지는 자연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반면 아스달의 대칸부대 수장인 타곤(장동건)은 문명과 야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아리크 정복전쟁의 선봉장이고, 아스달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인물. 하지만 그의 섬뜩한 야망의 크기는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산웅마저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산웅은 심지어 타곤을 제거하려하고, 타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산웅과 대립한다. 문명의 끔찍함은 아스달에서는 이처럼 가족 간에도 서로를 이용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결국 <아스달 연대기>가 은섬과 타곤이라는 인물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자연적인 삶을 침탈해 들어오는 문명과의 마찰음이다. 소유 개념이 생긴 저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자연적 삶을 살아가던 이들을 노예로 삼고, 이들을 노동력으로 확보해 점점 문명을 키워나간다. <아스달 연대기>는 문화인류학이 연구해왔던 어째서 누군가는 국가로 나아갔고 누군가는 소수 종족으로 머물렀는가를 은섬과 타곤의 대결구도를 통해 담아내려 하고 있다.

 

물론 판타지적인 설정들이 등장하고, 역사 이전의 상상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스달 연대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태곳적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국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실상 그 힘으로 파괴하고 착취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