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카페 차단에 대한 이중 잣대, 그 기준은 뭘까

 

<아빠 어디가>의 윤후 안티카페는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자체가 충격이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해당 포털은 카페에 대해 접근 차단 조치를 내렸고 운영자도 카페를 폐쇄했고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례적인 것은 대중들이 나서서 ‘윤후야 사랑해’를 실시간 검색어로 채워 안티카페의 흔적마저 지우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윤후 안티카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티카페는 윤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싸이 열풍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리틀 싸이 황민우군의 피해사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반응은 윤후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그는 <한밤> 인터뷰를 통해 “악플을 봤는데 베트남 엄마 꺼지라는 내용”이었다고 그 상처받은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SBS <한밤의 TV연예>에 이 문제로 출연한 박찬민 아나운서는 자신의 딸 박민하에게도 안티카페가 생겨 폐쇄신청을 문의했지만 “카페를 만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에 없앨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째서 윤후 안티카페는 포털이 나서서 접근 차단 조치를 내리면서 박민하 안티카페에는 그러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 이중 잣대는 어디서 나온 걸까.

 

윤후 안티카페의 차단 조치 이유에 대해 해당 포털은 “윤후는 연예인(공인)보다는 일반인에 더 가깝다고 판단해 카페에 대한 접근 차단을 결정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민하는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차단 결정이 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이 기준도 애매하다. 일반인 안티카페는 허용 안 되고 연예인 안티카페는 허용된다는 건 과연 상식적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릴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

 

놀라운 건 윤후 안티카페에 대해 모두가 공분했던 것과, 박민하 안티카페에 대한 반응이 사뭇 다르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박민하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반응들이다.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의 순수함을 잃었다는 식의 비판도 들어있다.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인피니트의 엘에게 박민하가 볼 뽀뽀를 한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윤후의 경우와 달리 갖가지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안티카페의 존폐는 아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인기와 호감에 비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안티카페’라고 치면 무수히 많은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는 이제 청소년인 연예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김유정 안티카페는 대표적이다. 김유정은 작년 <강심장>에 출연해 자신의 안티카페에 들어갔던 경험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 겨우 열 다섯 살. 그녀는 “어린 나이에 관심을 받아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윤후나 김민국, 황민우 같은 아이들의 안티카페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안티카페는 넘쳐나고 그 대상을 아이 어른 따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빠 어디가>로 급부상한 윤후의 안티카페도 생겼던 셈이다. 따라서 윤후 한 명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아이들마저 대상으로 삼는 안티카페의 문제를 해결했다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문제의 근원은 아이들까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방송 문턱을 드나들게 된 작금의 달라진 세태에서 비롯한다. 그 아이들은 천사 같고 예쁘기 그지없지만 방송은 똑같이 이들을 소비하기 마련이다. 인기를 얻게 된 그들은 그만한 팬들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빛과 함께 그림자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팬클럽은 언제든 방향만 바뀌면 안티로 돌아설 수 있다. 팬과 안티 팬의 차이는 그 방향성의 차이일 뿐이다.

 

기왕에 아이들이 방송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상, 이 흐름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겪는 남모를 고통을 방송에 들어왔다고 해서 아이들도 똑같이 치러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방송사든 포털이든 적어도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빠 어디가>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아빠 어디가>를 우리는 힐링 예능이라 부른다. 거기 출연한 천사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순수해지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가 가진 딜레마 역시 바로 아이들에 있다. 이들이 대중들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은 값진 것이지만, 결국 아이들이기 때문에 방송 출연은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실제로 아이들에게마저 날아드는 악플은 당사자나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또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보통 아이로서의 생활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걱정거리는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본래 갖고 있는 가치(즉 아빠와 아이의 관계 회복 같은)가 희석되고 자칫 시청률 같은 양적 가치로만 평가되거나 광고 수익 같은 상업적 가치로 바라보게 될 때 생겨날 결과다.

 

만일 이렇게 가치의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에게 힐링을 선사했던 아이들은 자칫 상업주의에 의해 소비되는 존재가 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아직까지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출연할 경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아빠 어디가>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며 <일밤>을 구원해냈다는 팡파르가 울려 퍼질 때(이 때가 가치가 전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다)가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시점에 김성주가 광고 출연료 전액을 사회공동복지모금회와 소년소녀가장돕기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실로 <아빠 어디가>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짜빠구리로 광고까지 출연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다시 사회에 기부함으로써 가치를 돈이 아닌 나눔으로 되돌렸다는 것이 이 김성주의 선택이 가진 큰 의미다.

 

아마도 김성주의 선택으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아빠 어디가>의 맏형 민국이가 될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만큼 큰 선물이 있을까. 또한 이 ‘좋은 아빠’라는 선례는 <아빠 어디가>에도 중요한 선물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출연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그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니까.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 PD는 필자에게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 20%를 넘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빠 어디가>는 시청률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따뜻함과 순수함을 잔잔하게 시청자들과 나누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김유곤 PD의 이 말은 <아빠 어디가>가 추구하는 가치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실로 아이들의 예능인 <아빠 어디가>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빠 어디가>가 계속 해서 우리를 힐링시켜주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남으려면 그 가치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과도한 장치를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아빠 어디가>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아빠와 아이라는 그 관계의 진정성과 순수성이 유지될 때, 그래서 그 가족의 따스함이 가치로서 전달될 때 <아빠 어디가>는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주의 선택은 박수 받을 만하다.

<아빠 어디가>, 아이들의 트루먼쇼 되지 않으려면

 

최근 예능 프로그램 중에 아마도 가장 뜨거운 걸 꼽으라면 단연 <아빠 어디가>가 될 것이다. 민국이, 후, 준, 지아, 준수. 이 다섯 귀요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여운지, 하는 일거수일투족마다 화제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민국이가 ‘나쁜 집’에 걸려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더니, 두 번째 여행과 설날 특집에서는 후가 그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아빠 어디가>의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에서는 담력 체험을 통해 준이의 리더십이 또 화제가 되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말과 행동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힐링 예능’이라고 불린다. 특히 자식을 가진 아빠들이라면 웃음이 절로 나고 누구나 마음이 푸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게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부모들은 <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아빠들에 빙의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아이들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나 보람 혹은 후회가 고스란히 그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전해지는 이 프로그램은 확실히 어른들에게는 비타민 같은 예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좋은 예능에 한 가지 드는 걱정이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어른들을 힐링시켜주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어찌 됐건 여기 출연하는 아이들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재미는 아이들의 사적인 생활들이나 성격 같은 것이 가감 없이 보여질 때 생겨난다. 후가 지아 앞에서 “어휴 귀염둥이!”라고 말할 때, 준이 폐가 앞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린 총사잖아!”하고 외칠 때 우리는 아이들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며 웃음 짓는다.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리얼 버라이어티, 아니 방송의 생리다. 만일 어른들이었다면 이러한 사적인 내용의 공개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사적인 것들이 공개되는 것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자칫 아이들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최근 이 아이들에게조차 달리는 비판적인 댓글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사적인 행동이 공개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물론 말했다시피 이 사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방송의 생리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과 의도적으로 뽑아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빠 어디가>에서 두 차례 시도되었던 몰카 설정은 그래서 불편한 면들이 존재한다. 꿀단지를 놓고 지키게 하고는 아이들의 반응을 훔쳐보는 것이나, 한밤 중 어른들도 가기 힘든 폐가로 아이들을 보내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은 그래서 몰취미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아이를 시험에 빠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시험대에서 나온 행동들이 방송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진다는 것은 그래서 아직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가혹한 일일 수 있다. <아빠 어디가> 같은 아빠와 아이 간의 추억 만들기라는 좋은 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 왜 굳이 이런 몰카 실험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어른들의 재미가 아이들에게는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빠 어디가>만큼 괜찮은 기획의 예능 프로그램은 최근 <일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괜찮은 기획이 지속적인 공감과 힐링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거기 서 있는 아이들에 대한 극도의 조심스런 배려가 필요하다. 제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일 아이들의 <트루먼쇼>가 된다면 그만한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몰카 설정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아빠>, <일밤> 두 자릿수 시청률 잡은 이유

 

<아빠 어디가>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의 1년 넘게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던 <일밤>으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가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물론 아이들에게 있다. 아이들이 갖는 본연의 순수함이 있기 마련이지만, 특히 여기 출연하고 있는 윤후, 성준, 지아, 준수, 민국 다섯 아이들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다섯 아이들이 주는 다섯 가지 즐거움. 이제 주말에 <아빠 어디가>를 기다리게 되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허당 아빠를 둔 덕에 매 번 ‘나쁜 데서 자는’ 시련을 겪는 김성주의 아들 민국이는 아빠 김성주의 말대로 안 되는 것을 좀체 경험해보지 않았던 아이다. 그래서 첫 여행에서 ‘나쁜 집(?)’이 뽑혔을 때도 눈물을 흘리며 떼를 썼다. 그렇게 하면 집에서는 모든 걸 다시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국이는 <아빠 어디가>를 통해 세상에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연거푸 겪으며 성장하고 있다.

 

민국이의 눈물은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들면서도 그간 일에 바빠 아이를 챙겨주지 못한 아빠들에게는 마음 한 구석에 짠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남들이 심지어 침대까지 마련되어 있는 좋은 텐트를 칠 때, 바람 불면 훅 날아갈 것 같은 작은 텐트를 보고는 눈물 흘리는 민국이는 많은 아빠들의 마음을 김성주의 마음으로 만들었을 게다. 그럼에도 민국이가 맏형이라고 아이들을 동생처럼 챙기는 모습은 아빠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준다. 민국이가 보여주는 건 성장드라마의 묘미다.

 

윤민수의 아들 윤후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본능(?)으로 어른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송종국의 딸 지아를 “지아씨!”라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고 송종국이 텐트를 치기 위해 망치질을 하자 조심하라고 지아를 챙기는 모습은 어른들이라면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순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먹는 것을 밝혀 음식 앞에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도 또 형과 동생을 위해 참으려 애쓰는 모습도 윤후만의 순수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본능적인 속내를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윤후는 리얼 버라이어티적인 재미를 가장 잘 뽑아내는 아이다.

 

반면 성동일의 아들 성준은 조금은 내성적이면서 속 깊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가 조금 어렵기도 하지만 차츰 그 선을 넘어오며 아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성준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첫 여행 낯선 시골에서 아빠와 함께 잠을 청하며 “아빠 좋아”라고 속을 털어놓는 아이의 말에 성동일 만큼 보는 이들의 마음도 푸근해질 수밖에 없었을 게다. 성준은 <아빠 어디가>에서 훈훈한 가족드라마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준수는 아빠라기보다는 삼촌 같은 이종혁과 친구 같은 부자관계의 묘미를 선사하는 아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매력을 가진 준수는 호기심 많고 아빠를 닮아 귀차니스트의 면모도 갖고 있다. 장난꾸러기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배시시 웃거나, 아빠의 발을 붙잡고 또 눈썰매를 타고 아빠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준수는 그래서 삼촌 같고 친구 같은 아빠 이종혁의 성장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아이다.

 

유일한 홍일점인 송중국의 딸 지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의 관계의 재미를 부가시키는아이다. 도도하고 시크한(?) 지아의 매력에 첫 날부터 푹 빠져버린 윤후가 캠핑장의 얼음 위에 쌓인 눈 위에서 <러브스토리>를 연출할 수 있는 건 지아 덕분이다. 늘 ‘나쁜 데’서 자게 돼 속상해하는 가장 맏형인 민국이를 챙기는 지아의 모습은 여자아이로서 갖기 마련인 따뜻한 배려를 느끼게 만든다. 비록 아이들이지만 남녀 관계의 알콩달콩함을 만들어내는 지아는 <아빠 어디가>만의 순수한 멜로(?)를 그려낸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그저 아이들이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거기 나온 아이들의 특별한 면면이 저마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 어디가>를 보다보면 민국이의 성장드라마에 흐뭇해지고, 윤후의 리얼 버라이어티에 빵 터지다가, 성준이의 가족드라마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준수의 때 묻지 않은 엉뚱함 앞에 아빠의 성장드라마를 보는 재미와 지아의 도도한 매력이 만들어내는 알콩달콩한 순수한 아이들의 관계를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다섯 아이가 만들어내는 다섯 가지 즐거움. 이것이 <아빠 어디가>의 진정한 성공 요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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