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이준기 아니었다면 이런 멜로 스릴러 가능했을까

 

이준기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멜로와 스릴러를 순식간에 오가는 게 가능했을까.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은 독특한 멜로이자 스릴러다. 그런데 어찌 보면 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두 장르의 결합이 한 작품 속에서 이준기의 표정연기 하나로 바뀔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는 마치 '변검'을 하듯 순식간에 얼굴 표정을 바꿔 드라마를 멜로에서 스릴러로, 스릴러에서 멜로로 바꿔낼 줄 아는 배우다.

 

<악의 꽃>에서 이런 두 가지 이질적인 장르를 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된 건 차지원(문채원)과 사실은 도현수인 백희성(이준기)이라는 특이한 조합의 부부가 작품의 중심에 서 있어서다. 연쇄살인범이라 의심받고 추적당하는 도현수는 자신의 신분을 세탁해 백희성이라는 인물로 살아가고, 그와 결혼한 차지원은 바로 그 도현수를 수사하는 형사다. 그러니 도현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이를 추적하는 차지원과 추격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어린 시절 친구로 도현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김무진(서현우)을 공방 지하실에 감금하고 그를 추궁하는 도현수는 살벌한 연쇄살인마의 느낌을 풀풀 풍기지만, 지하실에서 나와 귀가한 차지원과 딸 백은하(정서연)와 윗층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도현수는 달달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드라마는 도현수가 연쇄살인마일 거라는 정황이나 추측을 하게 만들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가 진짜 연쇄살인마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바로 이 지점은 시청자들이 도현수라는 인물에 대해 갖게 되는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연쇄살인마라는 추측에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이상하게도 차지원의 추격에 그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 그것은 도현수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도현수와 그를 백희성으로 알며 부부로 살아온 차지원이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맞닥뜨릴 파국 때문이다.

 

그래서 김무진의 집에서 도현수가 베란다 바깥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 집을 수사하는 차지원으로부터 숨어 있는 장면이나, 도현수의 옛 사진을 갖고 있다고 제보한 이의 집에서 그 사진을 훔쳐 달아나다 벌이게 되는 두 사람의 추격전은 훨씬 더 쫄깃해진다. 또한 정체를 밝히려는 차지원과 이를 숨기려는 도현수 사이의 육탄전이 벌어질 때도 필사적으로 막던 도현수가 차지원이 다칠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이 몸을 던져 그걸 막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도현수와 차지원의 정체를 두고 벌이는 진실게임 때문에 <악의 꽃>의 멜로나 스릴러 두 장르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던 이야기 그 이상의 재미요소들이 채워진다. 함께 육탄전을 벌이면서 떨어뜨린 도현수의 시계를 차지원이 알아보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과연 차지원은 도현수에 대한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진실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커지지만 거기에 다가가는 일은 자신과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결정을 할 지가 궁금해지는 것.

 

그러면서 과연 도현수는 과거 연주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도민석(최병모)과의 공범일지 아니면 피해자일지가 궁금해진다. 도현수가 과거 중국집에서 함께 일했던 남순길(이규복)을 살해한 건 도현수가 아니라 과거 도민석의 연쇄살인을 당했지만 사체를 끝내 발견하지 못했던 택시기사(윤병희)였다. 즉 드라마는 마치 도현수가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하는 떡밥을 던지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이라면 도현수는 연쇄살인범 아버지 때문에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인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가 신분을 세탁한 진짜 백희성(김지훈)과 그의 부모인 양 행동하는 공미자(남기애)와 백만우(손종학)라는 인물과 어떻게 얽혀있는가는 궁금한 지점이다. 이들은 과연 무슨 이유로 이런 거짓 가족을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건 이 모든 멜로의 달달한 지점들과 스릴러의 살벌한 요소들이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며 달달함을 절절함으로 증폭시키고, 살벌함을 비극적인 두려움으로 확장시키는 그 중심에 도현수라는 문제적 인물이 서 있다는 점이다. 결국 도현수의 이런 두 얼굴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설 기반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준기라는 배우의 진가가 새삼 확인된다. 멜로도 스릴러도 다 되는 이준기가 그걸 하나로 묶어서 변검하듯 표정 하나로 장르를 오가는 그 과정 속에서 드라마의 몰입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많은 좋은 작품들과 연기들을 선보여온 이준기지만 <악의 꽃>은 그의 연기 스펙트럼에 또 하나의 굵직한 선을 그어줄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악의 꽃', 지하에 숨겨진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믿기 힘든 진실 앞에 우리는 과연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tvN 새 수목드라마 <악의 꽃>의 시작은 양 손이 묶인 채 물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백희성(이준기)에게 차지원(문채원)이 다가와 그를 깨우고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짧은 장면이지만 은유적으로 표현된 이 오프닝은 앞으로 <악의 꽃>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수면 아래 감춰진 백희성의 진실 앞에 서게 되는 차지원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 앞에서는 그토록 자상한 꿀미소를 뚝뚝 떨어뜨리던 백희성이 뒤돌아서자 얼굴빛이 살벌하게 굳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섬뜩함을 안긴다. 그건 이 문제적 인물의 앞면과 뒷면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그의 생일에 초대된 그의 부모 백만우(손종학)와 공미자(남기애)를 통해 금세 드러난다.

 

백희성의 딸 백은하(정서연)가 조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손주 앞에서도 시종일관 굳은 표정만 짓고 있는 백만우와 공미자는 상식적인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며느리 차지원에게 대놓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꺼내고,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 백희성이 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자 백희성은 차지원이 "쉬운 여자"라며 그는 보는 것만 믿고, 자신은 그래서 그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건 차지원이 강력계 형사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 아이가 아빠가 계단 위에서 밀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진술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섬세한 관찰력의 소유자라는 걸 드러낸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 아이가 다친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왔다는 걸 식당 슬리퍼를 끌고 온 것과 그의 한쪽 양말만 더럽혀진 것을 통해 추리해낸다.

 

차지원과 같은 팀의 베테랑 형사 최재섭(최영준)은 그 아빠를 의심하고 추적한 결과 불륜 정황을 찾아냄으로써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마침 이웃 아이가 자신의 반려견 때문에 사고가 생겼다고 증언함으로써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아이의 자작극이었다. 아빠의 불륜을 목격하고 무언가 약을 건네는 걸 본 아이는 그걸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하려고 약통에 벌레를 넣고, 그렇게 쏟은 약이 비타민이 아니라는 걸 차지원은 알아내고는 아이의 아빠를 체포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건은 차지원이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일들에 대한 암시를 던진다. 즉 아이 엄마는 이미 남편이 비타민이 아닌 다른 약을 준 것을 알면서도 그냥 먹었을 거라는 것이다. 진실 앞에서 그걸 드러내면 모든 게 무너질 걸 두려워하는 인간은 이를 유예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 차지원은 그 엄마의 입장을 공감함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남편 백희성의 진실 앞에서 겪을 갈등을 예고한다.

 

백희성이 분명 과거 연쇄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김무진(서현우) 기자가 그의 공방을 찾아오면서 밝혀진다. 그는 신분을 바꾸기 전 백희성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다. 과거 고향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 이후 사라진 그에 대한 의심을 하는 김무진을 백희성은 기절시켜 자신의 집이자 공방 지하실에 감금해 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간에 대한 은유를 연출해내는 김철규 PD는 백희성이 사는 집을 이 드라마가 하려는 진실과 비밀의 공간으로 형상화해낸다. 1층에 공방이 있고 2층으로 백희성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으며 공방 바닥에 숨겨진 문을 통해 내려가면 음침한 지하실이 있다. 지상에서는 멀쩡한 금속공예가이자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가지만 지하에는 갇혀있는 김무진 같은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과연 백희성은 진짜 살인범일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 때문인지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신분을 바꿔 살고 있지만 그것이 그가 살인범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 예를 들면 부모들 같은 인물들 때문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과연 차지원은 사랑하는 백희성에 대한 의심 앞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갈까. 그것이 파국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얼마나 갈등하게 될까.

 

<악의 꽃>은 그래서 이 진실을 찾아가는 스릴러 장르의 짜릿하고 섬뜩한 이야기 속에 진실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숭고함 같은 걸 다루려 하고 있다. 그저 누군가를 죽고 죽이고 범인을 찾는 단순한 스릴러 장르들과는 다른 어떤 걸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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