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은 어떻게 새 예능의 아이콘이 됐나

 

<스플래시> 촬영 중 벌어진 이봉원의 부상으로 예능 프로그램의 안전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샘 해밍턴, 클라라, 출연자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촬영이 중단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앞으로 계속 방영이 될 지 아니면 이대로 폐지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항간에는 이번 사태로 예능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안전 불감증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미 리얼을 추구하고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있는 한 안전 불감증을 이유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예능 프로그램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로 뛰어들었고, 극한의 훈련을 이겨내는 군대를 찾아갔으며, 최근에는 소방대원들이 뛰어드는 화재 현장 속으로도 들어갔다.

 

단지 자극의 문제를 떠나서 군대나 소방대 같은 곳에서 고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짓이나 가식적인 연출은 용납되기 어렵다. 그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이 훈련을 받거나 현장에서 구조를 벌이다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상황을 어찌 연예인이 투입된다고 해서 설렁설렁 대본에 맞춰 연출해낼 수 있을까.

 

이것은 크게 보면 <스플래시>가 다루는 다이빙 선수들의 세계나 한때 피겨 스케이팅을 다뤘던 <키스 앤 크라이> 혹은 현재 스포츠 예능의 정점을 찍고 있는 <우리동네 예체능>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그들의 분투를 스스로 아마추어라 규정하고 대충하는 모습으로 때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자칫 거짓방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방송 트렌드의 하나인 이 같은 리얼리티TV의 경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안전문제가 불거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외국의 리얼리티 TV는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나 해당 분야의 진짜 전문가를 투입하는 반면 우리 예능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똑같이 정글을 가도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베어 그릴스는 생존전문가인 반면, 우리네 김병만은 달인이라고 해도 여전히 일반인에 가까운 연예인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안전 문제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최근 들어 <정글의 법칙>이나 <진짜 사나이> 같은 강도 높은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트렌드로 자리하고, 아직까지 국내 예능이 일반인보다는 연예인 출연자를 더 선호하는 점은 연예인들로 하여금 이 살벌해진 예능 정글에서 살아남기가 만만찮게 만들었다. 과거의 예능이라면 주로 웃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체력이나 특별한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병만이다. 그는 물론 <정글의 법칙>을 하기 전에도 진짜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던 인물이었지만, 막상 정글에 내려놓자 그조차도 힘겨움을 토로할 정도로 상황은 예측 불허였다. 첫 번째로 떠났던 나미비아의 악어섬을 빠져나오면서 사실은 두려웠다며 눈물을 펑펑 흘리던 김병만을 기억하는가.

 

그런 그였지만 지금 그는 김병만이라는 이름 하나로 같이 정글로 떠나는 동료들을 안심시키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스카이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 같은 자격증을 따서 블루홀로 뛰어내리고 그 심해로 과감히 뛰어드는 김병만의 준비성은 어찌 보면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나마 믿게 만드는 보루가 되고 있다.

 

예능 정글은 과거보다 훨씬 더 혹독해졌다. 말이나 웃음 그 자체보다 몸이나 땀이 주는 진정성을 더 추구하다 보니 예능은 리얼리티의 차원을 넘어서 리얼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은 점점 만능 스포츠맨이거나 아니면 김병만 같은 달인을 새로운 예능의 아이콘으로 세우고 있다. 하지만 김병만이 처음부터 달인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동안 남모르는 준비와 대비가 그를 달인으로 만들었을 게다. 어쨌든 해당 분야의 비전문가로서 연예인이 출연하기 마련인 국내의 리얼리티TV가 가진 안전 문제는 김병만 같은 접근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어른보다 아이를 열광시킨 생존의 콘텐츠, 왜?

생활 속에 산재한 위기와 그 탈출법. 어른들이 꼭 챙겨 봐야 할 것 같은 콘텐츠지만 여기에 매료된 것은 아이들이다. 놀이터, 부엌, 학교, 길거리.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던 자신의 공간이 사실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못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번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위기의 상황을 담은 영상들은, 끝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손을 잡아끌게 만든다. "저것 좀 봐." 일상에 무뎌져 그 속에 숨겨진 위기에도 무감각해진 어른들은 아이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것은 이제 200회를 맞은 '위기탈출 넘버원'이 서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의 위치를 말해준다. '위기탈출 넘버원'은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들용 과학학습만화로 출간되어 대박을 친 상품이기도 하다. 출판시장에서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에서 살아남기'나 '노빈손' 시리즈 같은 과학과 생존을 연결시킨 서바이벌 형식의 콘텐츠들이다. 그 이유는 극명하다. 주변환경의 위협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극단적인 상황과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과학적인 해법은 아이들의 성장과 거의 궤를 같이 한다. 어떤 것을 처음 접할 때의 두려움과 호기심은 아이들의 성장 동력이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200회를 거듭하면서 1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일상 속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에 대한 환기가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은 일상의 일이 삶과 죽음을 나눌 수 있다는 형식의 '위기의 순간! 죽느냐 사느냐'는 충격적이면서도 생존의 노하우를 준다는 점에서 어떤 정보적 의미를 갖는다.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콘텐츠에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다. 실제 상황보다는 가상의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재연 상황을 보여주고, 그것을 하나의 문제형식으로 만들어 퀴즈로 진행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 부담 없어 보이는 퀴즈의 방식은 자칫 충격적으로 다가올 정보들과 균형을 맞춰준다. 위기상황의 나열만이 주는 자극을 피하고, 오히려 위기를 사전에 피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정보적 접근은 이 프로그램의 큰 장점이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함께 이 프로그램을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유화된 형식 덕분이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정보가 주는 공익적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가스가 폭발하고, 지하철에 불이 나는 등 엄청난 인재를 겪으면서도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한 편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보를 찾아볼 정도로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아이들과, 눈에 보여야 그제야 관심을 갖는 어른들 사이에 놓여진 격차는 우리들에게 어느새 무뎌진 안전에 대한 감수성을 생각하게 한다. '위기탈출 넘버원', 그 200회의 저력은 바로 이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있는 빈틈을 공략하는 살아있는 정보들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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