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을 다루는 '앨리스', 김희선이기에 가능해진 것들

 

김희선 아니면 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싶다.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에서 40대에 죽음을 맞이한 박선영에서, 30대의 괴짜 교수 윤태이를 넘나드는 김희선의 변신은 그다지 이물감이 없다. 단 몇 회 만에 세대를 뛰어넘는 캐릭터를 한 배우가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그런 변신을 맡은 배우에 대한 대중들의 허용(?)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미래의 인물들이 과거로 넘어 들어오는 설정이 되어 있다. 미래의 인물은 과거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떠오르는 건 '타임 패러독스'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죽이면 그 미래의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역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이 종종 마주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앨리스>는 그런 과학적 논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박진겸(주원)은 죽은 어머니 박선영과 똑같이 생긴 교수 윤태이를 마주하고는 무언가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것이 시간여행과 관련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윤태이와 박선영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걸 박진겸의 시선에서 시청자들도 똑같이 갖게 된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으로 다가오지만, 윤태이를 마치 박선영을 보듯 바라보는 박진겸의 눈물은 이런 논리적 궁금증을 감정적 몰입으로 바꿔놓으며 어쨌든 이야기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흥미로운 건 40대에 사망한 박선영과 박진겸이 모자 관계였지만, 30대의 윤태이와 만난 박진겸은 묘한 남녀 관계의 케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40대의 박선영과 30대의 윤태이를 연기하는 김희선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이다.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의 근간은 깨져버린다.

 

놀랍게도 아이를 가진 걸 뒤늦게 알고는 앨리스로 돌아가지 않고 박진겸을 낳아 박선영으로 살아가는 그 모성애 가득한 역할을 김희선은 잘 소화해낸다. 평범하지 않은 아들을 위해 헌신적인 엄마의 역할이다. 그리고 박진겸이 성장한 후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괴짜 교수 윤태이에서는 김희선 특유의 멜로 연기의 향기가 묻어난다.

 

한때 여배우에게 결혼과 출산은 연예계 은퇴로도 이어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배우들에게 결혼과 출산의 경험은 배우로서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희선의 경우가 그렇다. <참 좋은 시절> 이후로 그는 과거의 전형적인 여주인공 상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해진 연기의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품위 있는 그녀>에서는 그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시작했다.

 

<앨리스>에서 김희선은 모성애 가득한 엄마와 괴짜 교수 사이를 오가는 연기를 잘 소화해내고 있지만, 거기에는 세대를 뛰어넘어도 허용되는 그의 여전한 젊음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김희선은 실제로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변함없는 얼굴의 소유자다.

 

사실 <앨리스>는 SF 장르로서 설명되어야 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요소들에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초반이라 그럴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김희선과 주원 같은 연기자들의 남다른 연기다. 특히 30대와 40대를 오가는 김희선의 연기는 이 드라마의 근간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겨진다.(사진:SBS)

<청담동>이란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가 온 까닭

 

청담동은 ‘이상한 나라’다. 거기서는 백 하나의 가격이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이고 옷 한 벌이 누군가의 일 년치 봉급이다. 그런데도 물건이 없이 못 팔 지경이다. 아니 심지어 가격을 더 높이면 높일수록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그래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 코리아라는 명품(사치품?) 브랜드의 이제 겨우 33세 회장인 차승조(박시후)는 가격을 끊임없이 더 올리라고 한다. 결국 이 명품의 탈을 쓴 사치품은 가격과 상품의 질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팔리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살 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감.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이 부자들의 섬 같은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 한세경(문근영)이 들어온다. 그녀는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등록금 대출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고 여기저기 취업전선을 뛰어다니지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약한 스펙으로는 취업이 어렵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쓰러진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다 빚더미에 올라앉고 범법행위를 한 후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고, 부모님은 대기업들의 횡포에 점점 기울어가는 골목상권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한쪽은 껍데기에 불과한 옷 한 벌에 수백 만 원을 펑펑 쓰고, 다른 한쪽은 돈 몇 푼이 없어 빚쟁이로 쫓겨 다니는 이 기묘한 세상. 청담동은, 아니 이 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청담동이 이상한 나라가 된 건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어버리는 양극화된 빈부의 삶 때문이다. 한세경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직장상사인 신인화(김유리)는 혹독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한세경의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것.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바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삶에 의해 생겨나는 안목’이란다. 즉 한세경의 부족한 스펙이란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유학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오면서 갖게 된 낮은 안목이라는 것.

 

결국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이 그저 ‘희망고문’이 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나라를 보고는 절망하는 한세경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버지는 이미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헛된 꿈이나 희망이라도 갖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말한다. 아버지의 이 고백은 이제 청담동에 발을 딛고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한 한세경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남편 잘 만나 청담동 사모님이 된 고등학교 동창 서윤주(소이현)와 한세경은 빈부의 양극단에 서서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어쩌면 그 둘은 똑같은 앨리스인지도 모른다. 서윤주 밑에서 심부름을 하며 굴욕을 당하던 한세경이 어느 날 찾아와 서윤주의 과거를 꺼내 협박하며 자신도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도무지 성장의 사다리는 보이지 않는 사방이 막혀져버린 막막한 현실 속에서 한세경이 청담동 며느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과거 서윤주가 선택했던 그 길일 수 있다.

 

사랑조차 돈이 있어야 되는 이 현실을 한세경은 받아들인 것(그 선택이 끝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하지만 정반대의 인물도 있다. 돈을 찾아 떠나버린 서윤주와 결혼까지 했지만 버림받고 절치부심해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으로 돌아온 차승조가 그렇다. 그는 ‘돈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한세경의 순수한 사랑을 목도하고는 펑펑 눈물을 흘린다. 물품을 빼돌려 고소위기에 몰린 남자친구를 위해 차승조에게 한세경이 보낸 적금통장과 편지는 돈의 또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치와 과시에 불과한 돈이지만, 그 적금통장 속에 알알이 적혀진 사연들은 한세경의 한없이 순수한 사랑의 표징이니까.

 

과연 한세경은 앨리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신데렐라가 될 것인가. 청담동 며느리가 된 서윤주가 신데렐라를 꿈꾸며 사랑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인물이라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세경 역시 그 신데렐라가 되고 말 것인가. <청담동 앨리스>는 바로 이 한세경이 신데렐라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앨리스로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드라마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한 바탕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런 앨리스. 이 절망적인 현실을 그녀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앨리스를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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