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외면하는데, 지상파에 쏟아지는 멜로물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지상파 3사 드라마 대결에서 기선을 잡았다. 첫 방 시청률 7.1%(닐슨 코리아). MBC에서 새로 시작한 <사생결단 로맨스>의 4.1%보다 앞섰고 이미 방영되고 있던 KBS <너도 인간이니?>의 5.6%도 앞질렀다. 

그런데 어쩐지 기선을 잡았다 해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는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지상파 드라마들이 이렇게 소소해졌나 싶어서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들이 모두 평범한 멜로물인데다, 그 이야기 구조도 새롭다 보기에는 너무 뻔해 보인다. 

고교시절 이제 막 좋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 버스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져 13년이나 누워 있던 우서리(신혜선). 그 버스에서 자신이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 자책하며 그 13년을 우서리를 바라보며 살아왔던 공우진(양세종). 우서리가 깨어나면서 시작되는 멜로다.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내는 큰 변화를 말하는 이 드라마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불행과 행복을 담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이유도 다소 사소한 일들로 비롯된다. 우서리가 외삼촌(이승준)의 집인 줄 알고 찾아간 집에, 공우진이 조카인 유찬(안효섭)을 돌보러 찾아왔다 만나게 되는 것. 어찌 된 일인지 외삼촌은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우서리는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건 아마도 불행한 사고 이후 모든 걸 잃어버렸던 우서리와 공우진이 다시 만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게다. 그 멜로적 구도나 ‘불행 끝에도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지만, 그것이 그다지 새롭거나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우서리와 공우진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의 멜로구도만이 있을 뿐.

이런 사정은 새로 시작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아예 제목에 달아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는 본격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추구한다. 여기도 빠지지 않는 건 독특한 캐릭터다. 호르몬에 미친 내분비내과 의사 주인아(이시영)와 승부욕의 화신 한승주(지현우)와 만나 만들어내는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

대작이 아니라도 기대작은 되어야 채널이 집중될 것인데,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너무 소소해졌다. 월화수목을 통틀어 10%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종영한 SBS <훈남정음>은 2% 대의 수목극 사상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소한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물들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지상파 멜로물에 대해 외면하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상파들은 계속 멜로물들만 세워두고 있다. 좋은 작가, 작품들이 비지상파로 빠져나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상파의 기획이 예전만 하지 못해서일까.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지상파 주중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봐야 할 이유다.(사진:SBS)

반가운 신인 양세종·박혜수, 호평도 혹평도 자양분 삼아야

신인 연기자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할 수밖에 없는데다 배역 또한 존재감 있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 나란히 등장한 신인, 양세종과 박혜수는 다르다. 그들은 신인이지만 꽤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박혜수는 사임당의 젊은 시절 역할을 맡았고, 양세종은 그 시절과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겸 역할과 현대로 넘어와 서지윤(이영애)과 과거 사임당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조교 역할을 동시에 맡았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흥미로운 건 두 신인배우들이 모두 최근 들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혜수는 <K팝스타>로 먼저 얼굴을 알렸지만 SBS <용팔이>에 출연한 후 JTBC <청춘시대>에서 호평을 받았고 tvN <내성적인 보스>에선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있다. 양세종은 SBS <낭만닥터 김사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 SBS <사임당>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여러 작품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박혜수의 경우, <내성적인 보스>와 <사임당> 모두 연기력 논란을 겪고 있다. 차분한 역할로 <청춘시대>에서 받았던 호평과 달리 활달한 성격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내성적인 보스>에서는 연기의 과잉을 지적받고 있다. <사임당>의 경우도 비슷하다. 쉽지 않은 사극 연기인데다, 발성에 있어서 아직까지 준비된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어린 사임당이 이겸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다른 남자와 혼인을 맺는 그 비극적 상황에서 그래도 괜찮은 몰입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아직 신인이기 때문에 부족한 면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약점과 강점을 정확히 알고 여러 연기를 경험해가며 부족한 점들을 채우는 것이 신인들에게는 필요한 일이다. 

반면 양세종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거대병원 원장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서려는 도인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이기적인 면면을 가진 그가 차츰 강동주(유연석)와 함께 동료의식을 배워가고 자신을 성장시켜가는 과정을 잘 소화해냈다. 

<사임당>에서도 양세종은 신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1인2역을 해내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에서는 이겸이라는 풋풋하면서도 비극적인 인물을 소화했다. 현대로 넘어와서는 훨씬 더 신세대에 가까운 가벼운 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서지윤과 선후배 관계지만 미묘한 멜로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양세종의 강점은 무엇보다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과잉되게 밖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내려 하기 보다는 안으로 감정을 꾹꾹 눌러 표현할 줄 안다. 

평가는 엇갈리게 되었지만 박혜수도 양세종도 신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평가는 어쩌면 배역에 따른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캐릭터를 맡게 되느냐에 따라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건 신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다. 하지만 요즘처럼 신인배우 찾기가 어려운 시절에 이런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자양분 삼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낭만닥터> 고구마 시국 날려준 사이다 낭만 드라마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 추하게 버티지 말고 내려와서 네가 싼 똥 네가 치워. 됐냐?” 어째서 이 평범해 보이는 대사는 이토록 다른 뉘앙스로 들리게 된 걸까. 이 대사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한석규)가 도윤완(최진호) 원장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도원장은 과거 자신이 조작한 대리수술의 증거들을 김사부가 내놓자, 자신이 병원장직을 유지하게 되면 돌담병원을 외상전문센터로 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자 그럼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도 원장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속 시원한 한 마디.

 

이 대사 한 마디에는 어째서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 그토록 빠지고 열광했던가가 들어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지금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퍽퍽해진 고구마 시국에 잠깐이라도 속 시원함을 안겨준 사이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라마 안의 스토리에 맞게 돌아가는 대사이고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현 시국에 바라는 마음 그대로였다. 탄핵 국면과 특검 상황 속에서도 버티기에 돌입한 그들에게 던지는 일갈. 갈수록 추하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들로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들을 향한 김사부의 한 마디.

 

그러고 보면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학드라마의 탈을 쓴(?) 현실 비판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낭만을 소환해온 건 자본과 권력으로 움직이며 낭만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가치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낭만 없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던진 김사부는 그 스스로 붙인 이름처럼 세상의 사부가 되었다.

 

그런 사부 밑에서 제대로 된 제자들이 생겨난다. 강동주(유연석)는 과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의사가 되고 그래서 성공해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김사부를 만나 변화한다. 진정한 의사의 길을 깨닫게 된 것. 그저 금수저 경쟁자로만 생각했던 도인범(양세종)에게 함께 수술하자고 손을 내밀며 그 스스로 변화하자, 그 변화의 힘은 도인범 또한 변화시킨다.

 

아버지 도윤완의 권세 밑에서 자라온 도인범은 돌담병원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찾았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거대병원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에게 그는 돌담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낭만닥터 김사부>가 전하는 잘못된 권력에 대한 가장 큰 복수일 게다.

 

아직 세상에는 의사 사장이 아니라 의사 선생이 되고 싶은 애들이 많다. 인범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사부가 도윤완에게 던지는 이 한 마디는 실로 낭만적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건 의사의 본분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어느 샌가 생명을 담보로 돈 버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의사라는 직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게다.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는 장관도 대통령도 곱씹어야할 이야기.

 

콘트롤 타워가 부재한 우리네 현실에 김사부는 하나의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흔히들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진정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먼저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저마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노력하는 것.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 하는 것 같냐. 난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람이 산다.” 드라마를 뚫고 나와 현 시국에 대한 일갈로 들리게 된 김사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게 울린다

<낭만닥터 김사부>, 유연석과 강동주의 평행이론

 

잘 되는 드라마에는 좋은 캐릭터들이 많기 마련이고, 좋은 캐릭터들은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잠재력을 깨워준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동주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유연석이 그렇다. 드라마 속에서 강동주의 성장이 놀라운 것처럼, 그걸 연기해내는 유연석이란 연기자의 성장 또한 놀랍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아버지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것에 대해 울분을 터트리던 강동주라는 아이는 어느 새 훌쩍 자라 의사가 되었고, 힘이 있어야 진실도 밝힐 수 있다며 성공을 꿈꾸었다. 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무리하게 한 수술의 실패로 인해, 거대병원에서 돌담병원으로 좌천된 그는 김사부(한석규)를 만나게 되면서 의사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갖고 있는 강동주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연기자 유연석이 걸어온 길과 맞닿는 면들이 있다. 유연석은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그다지 빛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꽃보다 청춘> 같은 예능에서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였지만, <맨도롱또똣>에서는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유연석에게서 느껴지는 건 연기자로서의 욕심과 야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그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동주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금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잘 보이지 않던 훨씬 복합적인 내면의 연기를 훨씬 자연스럽게 해나갔던 것.

 

그가 연기하는 강동주라는 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야심이 가득했던 자신이 돌담병원 같은 작은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지만, 김사부가 과거 자신이 의사의 길을 걷게 만들어준 계기를 주었던 부용주라는 걸 알고는 그의 밑에서 배우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 시작은 의술을 배우겠다는 욕망이 더 컸지만 차츰 강동주는 단지 의술이 아닌 진짜 의사의 길을 배워나간다.

 

그토록 인정욕구가 강하던 강동주가 신 회장(주현)의 수술을 앞두고 라이벌로 생각해 왔던 도인범(양세종)에게 함께 수술을 하자고 제안하는 대목은 이 인물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병원과 싸워 이기기 위해 의사가 됐던 그가 온전히 환자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

 

또한 그는 자신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으로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 또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이 VIP 환자에게 밀려 수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복수하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 수술 결정이 김사부가 내렸던 것이고 그것은 또한 VIP 환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로서의 당연한 결정이라는 걸 의사가 된 그 역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의사가 된 입장에서 김사부의 결정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이 야기하는 억울한 감정과 증오 같은 걸 어쩔 수 없어 하는 강동주의 복합적인 심리는 유연석의 연기를 통해 제대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그 아픔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의 성장이 느껴졌다. 그는 드디어 진정한 의사로서 서게 되었던 것이다.

 

강동주가 김사부를 만나 진정한 의사가 되어가는 드라마 속 이야기는, 마치 유연석이 한석규라는 대선배를 만나 진정한 연기자가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연기에서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 이 성장 과정을 제대로 거쳐 온 연기자가 얻은 결실일 게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래서 연기자 강동주에게는 진짜 사부 같은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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