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용', 돈만 있으면 기사도 맘대로? 그 정반대인 이유

 

"야 다 니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보란 듯이 사옥 올려서 니들 월급 주고 취재에만 전념하라고." 뉴스앤뉴 문주형(차순배) 사장은 강철우(김응수) 서울시장의 뒤를 봐주는 것이 결국 기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강철우 시장이 지을 테크노 타운 분양권을 받아 입주하려 한다. 그것이 수백억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 줄 것이고 그 이익은 결국 기자들의 처우를 좋게 해줘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게 그의 논리다.

 

하지만 문주형 사장의 그 말에 이유경(김주현) 기자는 너무나 따끔한 비판을 내놓는다. "저 앞 광화문만 나가도 언론사 빌딩 많아요. 그 언론사 보란 듯이 진실을 쫓고 있나요? 누가 보는데도 자기 주머니만 채우고 있나요?" 언론사들이 도시 한복판에 빌딩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진실만을 기사로 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그런가. 이유경 기자에게 "우린 달라. 우린 그렇게 안살거야."라고 문주형 사장이 말하지만 과연 진짜 빌딩을 세우고 나면 저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은 물론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여타의 다른 드라마들과 조금 다른 건 실제 있었던 재심 사건들을 다루고 있고, 여기 등장하는 박태용(권상우) 변호사나 박삼수(배성우) 기자가 모두 실제 인물들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박상규 기자가 직접 대본작업을 했다. 그러니 드라마 속 이유경 기자가 따끔하게 던지는 일침이 예사롭지 않은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 속 내용들이 '실제와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보여지곤 하는 고지와는 사뭇 다른 사전고지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으나 일부 상황, 인물, 이름, 사업체, 사건, 지역에는 극적효과를 위해 허구를 가미했습니다.' 즉 실제를 바탕으로 했고 다만 허구를 가미했다는 것.

 

<날아라 개천용>이 뉴스앤뉴라는 언론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건 어떻게 언론과 권력이 유착되어 진실과 정의보다는 돈과 권력을 서로 추구하게 되는가하는 점이다. 고지처럼 다소 허구를 가미했지만 문주형 사장이 권력형 비리들을 취재해 가져오는 이유경 기자에게 "덮으라"고 강요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저 가상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차기 대법원장이면 의전서열 대한민국 넘버3야!"라며 그는 조기수 대법관의 비리를 기사화하려는 이유경 기자를 막아 세운다. 그는 말한다. "조기수 곧 대법원장 되고 내년에 총선이야. 후년에는 대선이고. 집권여당 빌빌 거리는 거 안보여? 새로운 집권세력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게 안 보이냐고.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막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사로 가짜 자술서를 쓰게 만드는 비리 형사들과 진짜 범인을 잡고도 자신들의 실수가 피해로 돌아올까 봐 그들을 놔주고 대신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옥살이하게 만드는 비리 검사 그리고 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에 엉터리 판결문을 내는 판사는, 재심으로 그들의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서 여전히 공고한 권력의 힘을 이용해 언론을 움직이고 유착된 언론은 그들에게 유리한 기사들을 써줌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간다.

 

허구를 가미한 드라마라지만 이유경 기자의 따끔한 일침이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건 우리네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게다. "우린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권력의 힘에 의해 세워진 언론사는 결국 갈수록 진실보다는 자기 주머니를 더 들여다볼 테니 말이다. 어찌 보면 약자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기대고 싶은 이들이 형사, 검사, 판사 그리고 기자가 아닐까. "주먹보다 아픈 게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올 때라는 거 선배님들 정말 실망입니다." 이유경 기자의 툭 던지는 말 한 마디의 여운이 의외로 길게 남는다.(사진:SBS)

<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