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2’,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다보니 우리 사회의 여성이 보인다? 시즌1에서 주목됐던 인물이었던 윤진명(한예리)이 짠 내 나는 우리네 청춘들의 초상을 그렸다면, 시즌2에서 주목되는 송지원(박은빈)이나 정예은(한승연)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건 어쩌다 보니 불안한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다. 

'청춘시대2(사진출처:JTBC)'

먼저 지난 시즌에 데이트 폭력을 겪었던 정예은은 그 충격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저녁 귀갓길에 홀로 집으로 오지도 못할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그는 겨우 비슷한 왕따 경험을 했던 남자친구 권호창(이유진)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그 집으로 날아든 의문의 살해협박 편지의 주인공인 문효진(최유화)이 자살을 하고, 그 동거남이 그 집에 들이닥쳐 애인의 한을 풀어주겠다며 벌인 공포의 칼부림과 폭력은 모두를 충격 속에 빠뜨린다. 

지난 시즌에 정예은이 겪었던 데이트 폭력을 이번 시즌에서는 이 셰어하우스에 지내는 하우스메이트들이 한꺼번에 겪게 됐다. 다음 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건 결코 과거의 일상이 아니었다. 가슴 한 편에 남겨진 트라우마가 그들의 일상까지 헤집어 놓았던 것. 그 밝고 명랑했던 송지원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문효진의 자살과 연루된 가해자가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한다. 

물론 이 셰어하우스에서 벌어진 괴한의 폭력 장면은 그간의 <청춘시대2>의 청춘 멜로 같은 장르적 특성에서 갑자기 스릴러로 튀어버린 느낌이 강했고, 게다가 다소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면이 있었다. 그래서 <청춘시대2>에서 어떤 밝은 에너지 같은 걸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 드라마가 이러한 과한 폭력적 상황을 연출한 건 아마도 이번 <청춘시대2>를 통해 여성들의 삶의 문제를 담아내려 했던 일관된 주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런 편지의 존재를 복선으로 깔아 둔 것일 테니. 결국 이런 집단적인 폭력사태를 겪은 하우스 메이트들은 함께 유은재(지우)의 시골집으로 가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는다. 거기서 송지원은 비로소 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 역시 피해자였다는 것. 

다소 과한 설정들이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청춘시대2>가 이런 사건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그것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건 숨기고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진실을 드러내며 그 사태의 진짜 책임자를 찾는 일이라는 것. 

정예은은 할머니의 생신잔치에서 자신이 겪었던 데이트 폭력과 그 충격을 꺼내놓는다. 부모조차 그 이야기를 숨기려 했지만 정예은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래야만 겨우 자신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꺼내놓는 자리에서 심지어 가족과 친지들조차 쉬쉬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행복을 가장하기 위해 불행은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는 자들이다. 

<청춘시대2>가 ‘여성시대’가 된 건 마침 이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청춘들이 모두 여성들이기 때문일 게다. 그들은 저마다 청춘의 버거움을 느끼고 살아가지만, 그 위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더 얹어져 있다. 그것은 폭력적인 사회와 그 폭력 속에서도 없었던 일처럼 침묵하며 살아가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비뚤어진 시선들이다. 박연선 작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다소 장르적 틀이 깨지더라도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여성, 정착, 일반인... 알고 보면 ‘청춘불패’ 안에 다 있었다

KBS <1박2일>이 폐지됐던 <청춘불패>의 추억을 되살렸다. 지난 2009년 시작해 1년 넘게 시즌1이 방영됐고 2011년에 시즌2가 방영되다 결국 폐지됐던 <청춘불패>다. 사실 시즌2에 와서는 본래의 색깔이 많이 사라져 아쉬움을 주었지만, 강원도 홍천 유치리에서 정착해 농촌의 삶을 사계에 걸쳐 보여줬던 시즌1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박2일> 당시 <청춘불패>에 출연했던 김신영, 나르샤, 구하라 등을 출연시켜 그 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유치리를 방문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비닐하우스에는 그 때 마을 잔치도 벌이고 게임도 했던 기억들이 사진들 속에 담겨 있었고, 출연자들이 머물며 찍었던 빈농가에는 직접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 여전했다. 그리고 <청춘불패>에서 스타가 됐던 마을 어르신 로드 리(이기욱)는 이들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처럼 반겨주었다. 로드 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막걸리 한 잔으로 발그레진 얼굴로 출연자들을 기분 좋게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1박2일>이 1회성으로 방문한 <청춘불패>의 유치리지만,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한 시청자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박2일> 멤버들과 짝을 이루고 게임을 하는 모습 속에서 <1박2일> 멤버들을 쥐락펴락하는 김신영이나 나르샤, 구하라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시청자들에이 <청춘불패>를 다시 되살릴 순 없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적인 면들을 두고 보면 <청춘불패>는 여러모로 앞서갔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행 버라이어티가 유행했던 시절에 <청춘불패>는 정착형 예능을 시도했다.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걸 택했던 것.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행만큼 정착해서 보여주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일시적으로 이벤트적인 여행보다는 훨씬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정착의 풍경이 리얼리티 예능으로서 시청자들이 더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별다른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소소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시청자들이 더 원하는 것이 됐다. 물론 <청춘불패>가 방영되던 당시만 해도 이건 너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다가 <청춘불패>에는 역시 요즘 예능들에 빠질 수 없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었다. 로드 리는 이렇게 프로그램에 들어오면서 스타가 됐던 일반인이었다. 그 이외에도 그의 친구인 유치리의 전 이장 왕구 아저씨(이왕구)도 있었고 그 분들의 부인들이나 동네 어르신들도 <청춘불패>의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했다. 

무엇보다 <청춘불패>가 가치 있게 여겨진 대목은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여성 출연자들이 중심이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너무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편향된 예능 프로그램의 추세 속에서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박2일>로 인해 다시금 재조명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청춘불패>는 지금의 예능 트렌드에 오히려 더 잘 어울렸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집밥’, 신화 버리자 활짝 열린 상상초월 요리신세계

백종원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할 때부터 자주 했던 말이 “야매”,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다. 그것은 그가 하는 요리가 가진 파격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요리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곤 했던 어떤 이미지를 깨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파격이지만 또한 요리를 정석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것을 ‘야매’라고 낮춰 마치 웃음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곤 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집밥 백선생>이 지금껏 해왔던 요리들의 신세계를 돌아오면 그 ‘야매’가 의도치 않게 해온 놀라운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우리가 요리하면 생각하는 그 정형화된 이미지를 깬 것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집밥’의 이미지를 깬 것이다. ‘엄마의 밥상’만을 집밥으로 생각했었다면 <집밥 백선생>은 ‘집에서 먹는 밥’, 즉 누구나 다 해먹을 수 있는 밥을 ‘집밥’으로 새로 이미지화시켰다. 그건 ‘집안일 분담’을 위한 그 어떤 주장들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집밥의 신화를 깬 자리에 들어온 건 상상을 초월하는 요리의 세계다. 식빵을 구워서 잼 발라 먹을 줄만 알았던 우리들은 그걸 밀대로 밀고 돌돌 베이컨과 함께 말아서 구워 마치 롤처럼 잘라먹는 방식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이야 어딘가의 레시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 가면 1+1의 단골메뉴처럼 나와 있는 양념돼지갈비를 가지고 간단하게 갈비고추장찌개, 갈비된장찌개를 만드는 건 집밥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색할만한 레시피가 아닐 수 없다. 

굴소스가 없을 때 굴소스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굴전을 만들 때 굴에 부침가루를 조물조물 묻혀 달걀을 넣고 바로 전을 붙여내는 간단함을 보여준다. 값싼 냉동낚지를 사다가 소금으로 빡빡 닦아내고 살짝 물에 데쳐 탱글탱글하게 심폐소생을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게를 넣어서 만드는 뿌팟퐁커리를 게살로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맛의 상상을 통해 상식을 깨는 요리가 가능해진 건 모두 그 ‘야매’ 정신 덕분이었다. 

물론 이건 백종원이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요리사업가로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해온 전력이 있고,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노하우가 이러한 상식 파괴 요리 레시피들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혼자 보유하고 개인적 사업으로만 활용하기보다는 방송을 통해 그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집밥’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요리의 세계를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캠핑 요리 같은 개념이 아니라 <집밥 백선생>이라는 ‘집밥’의 틀로 묶어놓은 연출의 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집밥 백선생>은 현재 시즌3로 33회를 마쳤다. 시즌1이 37부작이었고 시즌2가 36부작이었으니 전체 분량이 100회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2015년부터 현재 2017년까지 그 2년 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사이에 우리가 오래도록 갖고 있던 그 ‘집밥’의 이미지가 깨지고 요리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중요한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격자'도 그랬는데 왜 '브이아이피'만 문제 삼느냐고?

영화 <브이아이피>는 북한에서 내려온 고위급 자제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져왔다. 누아르 장르를 표방하는 만큼 피가 튀는 총격전이나 칼부림은 심지어 미학적 액션으로까지 담아진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이었던 <신세계>가 그러하듯이 이 작품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러한 폭력이 난무하는 누아르를 통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미국, 북한의 외교적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진출처:영화 <브이아이피>

연쇄살인범을 잡았지만 북한의 고위 정보를 가진 그에게서 그 정보를 빼내기 위해 그를 보호하는 미국 측에 의해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연쇄살인범이 버젓이 일가족을 처참하게 유희를 위해 살해해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못하는 북한의 비뚤어진 권력 체계. 그 안에서 피해를 보는 건 북한이든 남한이든 평범한 서민들인 상황. 이건 마치 사드 배치와 미사일 위협의 갈등 사이에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가는 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정세를 압축해 보여주는 듯한 흥미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누아르에 덧댄 현실적 정경들 같은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브이아이피>는 비뚤어진 여성에 대한 의식을 담고 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연쇄살인범이 저지르는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여성 살해 장면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데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그저 살인이 아니라 유희에 가깝기 때문에 특히 관객들은 왜 저런 장면이 저렇게 적나라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사실 폭력적인 장면이 수반되기 마련인 누아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소재로 다뤄진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추격자>도 그랬고, <살인의 추억>도 그랬다. 그러니 그 장면만으로 섣불리 이 영화가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왜 그런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과연 <브이아이피>는 적절한 답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추격자>나 <살인의 추억>의 경우 이 여성 피해자들이 더 이상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형사들의 간절함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즉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런 일들을 벌이는 살인자에 대한 공적인 분노 같은 것들을 영화가 그 정서적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이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나 국정원 요원도 또 북한에서부터 내려온 보안요원도 분노하는 건 이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대신 동료가 죽음을 당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사적 분노가 더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야기의 동력이 브이아이피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굳이 그토록 잔인한 여성 피해자에 대한 묘사가 왜 필요했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가 중반 이상을 지나고 나면 여성 피해자에 대한 감정보다는 저들끼리의 대립에 의한 감정이 더 전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가서 연쇄살인범이 최후를 맞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남는 불편함을 피할 수 없다. 그 불편함은 처절하게 당한 피해자가 있지만 그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이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대신 저들끼리의 액션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데 머무른다.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나아가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관점이 투영되었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이 소외된 피해자라는 지점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