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에 끌리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한 때 SBS 금요드라마를 보면서 ‘어 이거 금요일 맞아?’하고 의아함을 느끼게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지우 작가의 ‘내 사랑 못난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성인극을 들고 나와 보기에 민망한 불륜과 치정을 드러냈던 반면, 이 드라마는 보는 이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서 ‘내 사랑 못난이’의 진차연(김지영)이나 호태(김유석), 신동주(박상민), 정승혜(왕빛나)의 면면이 떠오르는 건, 정지우 작가가 일관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찬(김승우)의 부성애는 진차연의 모성애를 떠올리게 하고, 백수찬과 친구 먹은 정윤희(배두나)는 측은지심 가득한 호태를 닮았다. 겉으로는 얼음이지만 착하고 따뜻한 내면을 가진 유준석(박시후)은 저 신동주를 떠올리게 하고, 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때론 냉정하지만 결국은 착한 내면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혜미(민지혜)는 정승혜란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보여진다. 또한 ‘내 사랑 못난이’가 금요드라마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주인공 주변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고스란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의 도처에서 반짝거리는 이웃들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내 사랑 못난이’와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 못난이’가 아무래도 금요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세련됨보다는 직접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설정들이 많았던데 비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물기와 기름기를 쪽 뺀 듯한 느낌이다. 사랑과 배신 같은 ‘내 사랑 못난이’의 기본 설정 구도가 가진 질척거림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 와서는 이웃 간의 사랑과 의리 우정 같은 코드로 엮이면서 발랄해진다.

“진가년 그년에게서는 사람냄새가 나”라는 조옥자(여운계) 여사의 말을 통해서 이 세상 못난이들의 잘난 이들과의 한판 승부가 바로 그 사람냄새에서 결판날 것을 암시한 정지우 작가는, 이야기를 이웃으로 가져와 진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려 작정한 듯 하다. 제비라는 것이 들통났어도, 또 허울좋은 개살구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어도 행복마을 사람들은 백수찬과 그 집에 더부살이하는 양덕길 부자를 걱정한다. 특히 도저히 농촌총각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미희(김성령)는 바로 그 측은지심으로 인해 점점 양덕길에게 끌리는 중이다. 그것은 역시 언발란스 하기만 한 정윤희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유준석 실장을 특유의 독특함(?)으로 녹이는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가 그저 주변 인물이 아니었듯이, 이들 중심인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다. 아끼라는 말이나 할 줄 알았지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해줬던 아내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김대식(김동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아내를 구속하는 위대한(박광수), 집에서는 잘난 마누라와 자식 땜에 회사에서는 직장 상사들에게 굽신거리느라 기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변희섭(이원재)이란 캐릭터들이 그들이다. 특히 “나는 남자들의 삶이란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자식에게 제 살점 하나씩 떼 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지.”라 말하는 변희섭이란 캐릭터는 물이 오른 듯한 이원재의 어눌한 연기에 덧붙여져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이처럼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못난이 캐릭터들에 있다. 이 캐릭터들을 갖고 드라마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인간다움’에 서로 끌리는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전직 제비와 정윤희의 우정관계, 정윤희라는 개념상실 비서와 얼음장같은 유준석 실장의 사랑관계, 농촌 총각으로 결혼 한 번 해보지 못한 양덕길과 무려 세 번의 이혼을 한 정미희의 애정관계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좀더 시각을 넓게 해서 보면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행복마을 사람들의 이웃으로 엮인 공존 자체가 어떤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지우 작가가 말하려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그러니까 빈부나, 출신, 계층, 지역, 남녀 같은 것을 넘어서는,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 바로 ‘사람을 사람냄새 나게 만드는 그 무엇’에 있는 게 아닐까.

가정법의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이웃사촌’이란 말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벽한 이웃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퍽이나 쓸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섬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SBS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도시 생활에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환타지다.

유사부부, 유사연인, 유사이웃
그들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는 곳에는 교수지만 본색은 제비인 백수찬(김승우)이 살고 있고, 촌사람이라 살림해줄 처자 하나 얻지 못했지만 정작 살림은 제 차지인 양 이웃주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양덕길(손현주)이 제비교수와 유사부부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에 사는 정윤희(배두나)는 대기업 회장 아들 유준석(박시후)의 비서라지만 비서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철통같은 방어 벽을 쳐놓은 유준석 실장은 이 대책 없는 비서의 침범에 유사연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에 걸맞게 서로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심지어 이방인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강역개(김뢰하)마저 유사이웃 관계로 끌어들일 정도다.

현실에선 좀체 보기 힘든 흐뭇한 그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직업이나 출신 등을 통해 선입견으로 판단했던 그런 유형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수찬은 분명 유부녀를 꼬드기는 제비지만, 악랄하고 비열한 현실의 제비가 아니다.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양덕길을 받아주고, 연애에 젬병인 이웃들을 돕는 착한(?) 제비이기도 하다.

정윤희는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자격미달의 비서이며, 유준석은 현실이라면 자질 운운하며 자격미달의 비서를 자를 것이 분명한 그런 실장이 아니다. 도회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양덕길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그런 촌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정윤희를 비서로 발탁한 회장조차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의 회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이웃’들은 현실이라면 문을 꼭꼭 닫아걸고 무관심한 그런 이웃이 아니다. 그들은 전임강사가 된 백수찬이나 만년 과장으로 묵힐 줄 알았던 변희섭(이원재)이 부장이 됐을 때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웃들이다.

즉 이 드라마에는 제비 같지 않은 제비, 촌사람 같지 않은 촌사람, 비서 같지 않은 비서, 실장 같지 않은 실장, 형사 같지 않은 형사, 회장 같지 않은 회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엮어내는 (현실의 각박한) 이웃 같지 않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무차별로 엮어가는, 그다지 극적인 사건 전개도 두드러지지 않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것은.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의 드라마
그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구사하는 화법이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현실을 직접 묘사하기 보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넓혀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비록 제비지만 저처럼 여자의 마음을 쏙쏙 알아채는 남자가 있다면, 촌사람이지만 저렇게 정이 가고 재주 많은 사람이 있다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비서 같진 않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진심으로 돌보는 비서가 있다면, 그리고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곳에서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가정법의 드라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가정법이란 사실 현실에선 가정일 뿐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꿈꾸는 것이기에 가능한 거라는 걸. 늘 굳은 얼굴로 좀체 웃을 줄 모르는 현대인의 외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준석이, 도무지 넘어올 수 없게 그어놓은 선을 대책 없이 넘어오는 정윤희의 엉뚱함에 ‘특이해’라고 읊조리며 미소지을 때 시청자도 같이 미소짓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두터운 벽을 만들며 살게된 시청자분들이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드라마다. 잠깐동안의 드라마 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웃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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