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포스트잇 세태에 던지는 질문

 

맞아요. 제가 김미영이에요. 진짜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죠? 제 얼굴처럼. 포스트잇 보면 꼭 저 같아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니까.”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이런 저런 심부름과 잡무에 시달리던 평범해 보이는 한 여사원이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이 포스트잇을 닮았다고 말한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사진출처:MBC)'

그녀의 이름은 김미영(장나라). 너무 흔해서 보이스피싱의 대명사처럼 이용되는 그 이름(김미영 팀장)과 같다. 뭐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회사 일과는 상관없는 심부름까지 그녀가 도맡아 하곤 한다. 착하다기보다는 자신이 거절하면 상대가 민망해 할까봐 그녀는 거절을 못한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는포스트잇 같은 존재. 그건 어쩌면 현대인들의 얄팍한 관계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김미영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자존감 제로의 김미영이 운명처럼 만나는남자는 정반대로 자의식 과잉의 이건(장혁)이란 인물이다. 전주 이씨 9대 독자. 그의 회사에서 만든 샴푸 광고 촬영 현장에 등장하는 이건의 모습은 자신감을 넘어서 과장된 몸짓을 연발하는 판타지 속에 살아가는 인물 같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는 장인화학이라는 회사를 물려받아 무려 주가총액을 다섯 배나 올려놓은 인물. 돈이면 돈, 능력이면 능력. 안되는 게 없는 그런 인물이다. 그것이 작은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허세라는 함정을 만들고 있지만.

 

김미영과 이건의 만남은 어찌 보면 전형적이다. 왕자님 이건과 현대판 신데렐라 김미영. 우연 혹은 운명처럼 마카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두 사람. 이건은 자신의 옆에 피앙세인 세라(왕지원)가 아닌 김미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꽃뱀이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결국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이건은 맨발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그녀가 이 사건을 일으킨 형부와 사장 아저씨의 선처를 요구하는 걸 듣고는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타인을 생각하는 그녀의 진심을 보게 된 것.

 

맨발인 그녀에게 신발을 갖다 주는 시퀀스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이다. “착각하지마. 넌 그냥 네 별명처럼 포스트잇 걸이야. 필요할 때 잘 써먹다가 마음에 안 들면 금방 버리는. 나 변호사야. 변호사가 비정규직하고 연애하고 싶겠어? 귀족이 평민이랑 어떻게 사귀어.” 이렇게 김미영에게 모욕을 주는 민 변호사(김영훈)에게 이건은 니가 귀족이라고? 넌 그냥 레기야. 쓰레기. 너 같은 건 평민 축에도 못 끼는 개백정 망나니 같은 새끼라고!” 한 바탕 쏘아준다.

 

김미영이 그런 남자에게 모욕당하는 걸 이해할 수 없어 당신 바보냐고 쏘아대던 이건은 그녀가 흘리는 눈물 앞에 또 한 번 마음이 흔들린다. “이건 말도 안돼! 왜 상처 준 사람들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상처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가슴 터질 듯이 아파하고 비참해져야 하는 거야! 도대체 왜!” 그리고 김미영을 하룻밤의 신데렐라로 변신시켜 카지노에서 민 변호사를 무릎 꿇린다.

 

막연한 사랑타령에 신데렐라 판타지만을 엮었다면 어쩌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공감이 그리 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안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실적인 부딪침을 멜로 구조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판타지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즉 김미영의 판타지는 그녀가 처한 비정규직 같은 서민적 정서로 인해 공감대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단지 왕자님이 신데렐라를 구원하는 일방향적 스토리가 아니다. 자의식 과잉의 이건과 자존감 제로의 김미영은 각자가 갖고 있는 미숙함이 존재한다.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너무 많고 한 사람은 너무 부족한 자존감과 자의식을 조금씩 나눔으로써 서로가 성장해가는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건과 김미영은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가를 배워나갈 것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한 여름 밤의 꿈같은 판타지다. 하지만 그 판타지가 건드리고 있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진정한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소중하진 않고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버려도 되는포스트잇 같은 관계. 신데렐라 판타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 대한 기대와 우려

 

MBC 새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개과천선>의 후속작이라는 사실은 <운널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만일 <개과천선> 같은 진지하고 사회성 강한 드라마에 강한 잔상을 느끼는 시청자라면 대책 없이 명랑하고 유쾌한 <운널사>가 너무 가볍게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개과천선> 같은 드라마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던 시청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운널사>처럼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사진출처:MBC)'

<운널사>는 장나라와 장혁이 주연인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심각할 것 없이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빵빵 터지는 웃음과 달달한 멜로를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첫 회만 봐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 것인가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장혁이 연기하는 이건이란 캐릭터는 전주 이씨 9대독자에 돈과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장님. 반면 장나라를 사환에 가까운 서무 직원이다. 이 구도만 봐도 <운널사>가 전형적인 신데렐라류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널사>의 익숙한 신데렐라 로맨틱 코미디를 바라보는 시선도 극과 극으로 나뉜다. ‘2014년도에 이런 90년대 드라마를 하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는 반면, ‘정통 로맨틱 코미디에 간만에 웃었다는 반응도 있다. 사실 너무 공식적인 <운널사>의 멜로는 최근 <너의 목소리가 들려><별에서 온 그대>처럼 멜로가 미스테리, 스릴러부터 판타지까지 퓨전되는 경향을 두고 보면 퇴행적인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너무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인 멜로가 복잡하다고 여기는 분들이라면 <운널사>의 멜로는 고전적인 맛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장나라와 장혁 캐스팅은 다분히 <명랑소녀 성공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작품의 사업적인 부분과 상당부분 연관되어 있다. 특히 해외 사업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이 <명랑소녀 성공기>를 통해 보여준 성과는 <운널사>에서도 기대를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장나라의 연기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는 점과 장혁의 과장된 코믹 연기가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적잖은 연기경력이 있어 배역에는 무난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얘기도 나온다.

 

<운널사>2008년에 방영된 대만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가 원작으로 대만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만큼 기대감이 높지만 최근 국내의 멜로 장르가 변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보면 이 작품이 국내에서도 먹힐 지는 미지수다. 리메이크물로 나온 <운널사>의 만듦새는 로맨틱 코미디물에 충실하게 부합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남는 문제는 지금의 대중들이 이 충실한 로맨틱 코미디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운널사>의 첫 회 시청률은 6.6%(닐슨 코리아). <개과천선>8%에 못 미치는 시청률이 나왔다. 아직 첫 회이기 때문에 성패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하기는 어렵다. 반응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과연 <운널사>명랑소녀의 성공기를 그려낼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어쩌면 향후 멜로 장르에 대한 시금석이 될 지도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