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우리는 얼마나 사태를 단순하게만 봤던 걸까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사태를 단순하게만 봐왔던 걸까.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를 보다 보면 언론에 나오는 일면적인 기사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들의 성급한 단정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본래 사태란 여러 욕망들이 뒤섞이고 부딪치면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작금의 병원이 처한 문제를 다루는 <라이프>는 이러한 단순함을 성급하게 담으려 하지 않는다. 의사들의 입장과 경영진의 입장이 부딪치고 그 어느 쪽이 완전히 옳고 그르다 성급히 판정하지 않는다. 어느 쪽도 공과 과가 공존하고 그것은 그런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는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처음 상국대학병원에 등장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응급센터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지방 전출 명령을 내리는 구승효(조승우) 총괄사장은 의사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마치 자본주의의 대변자처럼만 그려졌다. 그래서 의사들은 어딘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존재들처럼 여겨졌지만, <라이프>는 이야기를 이 단순한 구도로 끝내지 않는다. 

구승효는 병원 내에 있었던 약물투여가 잘못되어 벌어진 환자의 사망사건을 끄집어내 그런 잘못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의사집단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다. 물론 그것은 구승효가 의사들과의 대결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조처지만, 그 폭로로 인해 의사들이 그렇게 숭고한 존재들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해준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욕망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차가운 독종으로만 알았던 구승효가 이노을(원진아)과 함께 소아병동을 돌면서 보여주는 마음의 흔들림은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집으로 돌아와 잠든 어머니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그 옆에 누워 보는 그의 모습은 여느 집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소아병동에서 봤던 아이를 떠올리며 “나도 어릴 때 많이 아팠냐”고 어머니에게 묻는 구승효는 채산성만 얘기하던 그 독종이 아니다.

그런데 의사들도 사정이 없는 건 아니다. 잘못된 약물투여로 죽은 환자에 대한 추궁이 이어지는 회의에서 주경문(유재명) 흉부외과장은 그런 사망사고까지 벌어지게 되는 자신들의 현실을 토로한다. 그는 불친절하고 낡아 폐쇄된 병동 때문에 많은 환자를 잃었던 과거를 얘기하며 그 병동의 이유가 바로 ‘재정적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 병동은 매년 3,40억의 재정적자를 내고 있었다는 것. 물론 3,40억은 큰돈이지만, 도 전체의 1년 예산 12조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돈이었다. 

“전 늘 묻고 싶었습니다. 그 돈 3,40억이 그렇게 아까웠어요? 그 돈이 그렇게 목말랐습니까? 진짜 문제는 폐쇄 자체가 아닙니다. 당시 의료원 문제 많았습니다. 예 인정합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고쳐서 어떻게든 개선시켜서 다시 쓸 수 있는 나름의 기회였는데, 고민대신 날려버렸어요. 지방의료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냥 없애버렸습니다.” 혈세 낭비라는 성급한 여론에 밀려 지방 공공병동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주경문은 설파한다.

“구승효 사장님. 저희 흉부는 늘 인력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너무나 쉽게 말하죠. 요즘 젊은 의사들이 돈 되고 편한 데로만 몰려서라고요. 하지만 우리 젊은 후배들 전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헌데 왜 한 해에 나오는 흉부 전문의가 전국에 스무 명이 되지 않을까요. 병원이 흉부에 투자를 안해서입니다. 적자 수술이 많아서. 병원이 채용을 안해서입니다. 일할 데가 없어서요. 그래도 우린 오늘도 수술장에 들어갑니다. 만분의 일의 사고 위험도로 환자를 죽인 의사라는 비난을 들어도.”

이것은 ‘환자를 죽인 의사’라고 섣불리 매도했던 그 의사가 처한 현실이다. 경영진의 입장과 의사들의 입장 그리고 그 일면만이 기사화되어 보도됐을 때 우리들이 보였던 입장들이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통해 드디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비단 병원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던 무수한 사안들을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단순하게만 판정해온 건 아니었을까. <라이프>의 다각적인 시각은 우리의 성급함을 반성하게 만든다.(사진:JTBC)

‘그사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먼저 보낸 사고 현장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할까.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문수(원진아)의 엄마 윤옥(윤유선)은 멀찍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 손이 떨렸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그에게 사고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 양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러니 그 떨리는 손에 애써 술병을 쥐고 의지했을 터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남편 하동철(안내상)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할까.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서 겨우 찾아낸 딸의 시신을 확인한 그는 못내 아내에게 그 마지막 모습을 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 확인하고 딸을 떠나보냈지만 아내인 윤옥은 그게 끝내 후회로 남았다. 그 마지막 얼굴을 못보고 떠나보낸 것이.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후회한다고 했다. 그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피해자의 가족은 그렇게 뭘 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회한 속에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사고는 저 밖에서 났고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지만 그 가족들마저 서로를 의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를 보는 것이 그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힘겹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픈 말들을 독하게 쏟아낸다. “참 속 편해 좋겠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멀쩡한 사람은 없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멀쩡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그 아픈 상처들이 계속 끄집어내질 것으로 알고 있으니. “자네 눈에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멀쩡해 보여? 이 사람아 자식 잃고 멀쩡한 부모가 어딨나. 그런 일을 당하고 멀쩡한 사람이 어딨냐고?” 하동철의 이 아픈 호통은 그래서 단지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많던 사고 피해자들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멀쩡한 건 없다. 

그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보내고 자신만 혼자 살아남은 문수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또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술에 빠져사는 엄마와 집 나와 가게를 하며 지내는 아빠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툭 던진 그 사고가 있던 날에 대한 회한 섞인 한 마디가 못내 그 상처를 드러내게 만든다. “그 날도 그래. 그렇게 연수랑 같이 있으라고...”

동생과 꼭 같이 있으라고 했던 엄마의 그 말은 동생을 먼저 보낸 문수에게는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 말은 비수처럼 문수의 상처를 헤집는다. 그래서 끝내 꺼내지 말아야할 말이지만 속 깊숙이 담겨져 있던 말이 튀어나온다. “같이 있었음 나도 죽었어. 그게 더 나았겠어? 아님 연수 대신 내가 죽었으면 했어?...그 날 나랑 연수 거기로 보낸 건 엄마야. 그럼 엄마가 미안해야지? 왜 자꾸 내가 미안하게 하는데?” 그는 그 긴 시간을 미안한 감정 속에 살아오며 자신의 아픔은 저 밑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거였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그리는 ‘사랑’은 어쩌면 강두(이준호)와 문수와의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게다. 그건 어쩌면 문수네 가족 이야기를 포함하는 것일 게다. 가족이라면 그냥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관계지만, 사고는 이 가족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고 현장에서 먼저 보낸 가족의 일원이 남긴 상처가 피할 수 없는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꺼내놓는 이 남은 가족들의 상처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계속되는 일일 것이다. 결코 우리도 잊어서는 안 되는.(사진:JTBC)

‘그사이’, 그냥이라고 해도 결코 그냥이 아닌 이준호·원진아의 사랑

이들의 사랑에 무슨 특별함이 있어 이토록 울림이 큰 걸까.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제목 그대로 청춘들이 ‘그냥 사랑하는 모습’을 담담히 담아낸다. 하지만 그 담담함의 밑바닥에는 과거 건물 붕괴 사고가 그들의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강두(이준호)는 사고로 잃은 아버지와, 혼자 빠져나오다 그 붕괴된 건물 속에서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며 발목을 잡았던 생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환청에 시달린다. 그 무너진 건물 터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그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나온 신발 하나에도 그의 마음은 섬뜩해진다.

문수(원진아)는 사고현장에서 동생을 잃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힘겨워한다. 사고 이후 가족은 파탄이 났다. 아버지와 엄마는 따로 살아가고, 사고보상금으로 목욕탕을 지어 살아가지만 엄마는 술로 나날을 보낸다. 동생이 돌잡이로 원래 실을 집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문수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된다. 

같은 사고현장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입은 두 사람, 강두와 문수가 그래서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고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은 담담해보여도 그 가슴 속 밑바닥의 감정들 때문에 평범할 수가 없다. 보통의 남녀라면 그 첫 만남을 건물 계단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엘리베이터 타는 것마저 트라우마로 남은 두 사람에게는 그 상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버스를 타고 가며 문수가 그저 툭 던진, “추모비에 내 동생 이름이 있다”는 말 한 마디의 울림도 그래서 남다르다. 문수의 고백에 강두 역시 “우리 아빠도 있다”고 털어놓는 것. 사실 강두는 그 추모비가 ‘같잖아서’ 부숴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거기 남겨진 이름은 누구에게도 선뜻 드러내기 힘든 것이었을 게다. 그러니 두 사람이 그 추모비의 이름들을 고백하는 건 서로의 상처를 상대방에게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대한 불만만을 갖고 살아가며 입만 열면 가시 돋친 말들이 튀어나오던 강두가 조금씩 문수에게 마음을 열고, 스스로 그런 자신을 “미쳤다”고 말하는 대목은 이들의 사랑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늘 상처를 몸에 달고 다니는 강두가 역시 화상을 입은 문수에게 약을 챙겨주는 모습은 이들의 사랑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걸 내 상처처럼 어루만져주는 일로 그려진다.

보통 청춘의 사랑이라면 그저 가슴 설레기만 하는 연정을 주로 다루기 마련이지만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사랑은 이처럼 다르다. 고통과 상처를 겪고 살아남은 자들이 하는 사랑이란 그래서 좀 더 본질적인 사랑의 면면을 담아낸다. 이들은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고 스스로를 말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본 시청자들로서는 그것을 ‘그냥’이라는 수식어로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사고 트라우마를 가진 청춘들의 사랑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우리네 보편적인 사랑을 극적으로 담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그 ‘상처와 치유로서의 사랑’이라는 명제 덕분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쩌면 똑같은 사멸하는 존재로서의 아픔 같은 것들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그냥’은 아닌 사랑을 해왔던 걸 깨닫게 된다.(사진출처:JTBC)

‘그사이’, 시대를 관통하는 상처받은 이들의 사랑 

이 드라마 첫 방부터 심상찮다. 그저 평범한 청춘 멜로인 줄 알았는데,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과 아픔 그리고 위로 같은 것들이 첫 회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저 가슴 설레는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아픈 상처의 응어리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그 따뜻한 응시로 풀어헤치는 그런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랑이야기다. 

JTBC가 새롭게 편성한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쇼핑몰 붕괴 사고로부터 시작한다. 48명이나 죽은 그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문수(원진아)와 강두(이준호). 하지만 살아남은 그들은 여전히 그 사고의 충격과 후유증 속에서 파괴된 삶을 버텨내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문수는 그 트라우마와 죄책감 속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엄마와 그 엄마와 헤어져 국수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아빠 사이를 오간다. 

강두는 무너진 건물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지만 온몸이 망가져버리고 그가 재활하는 동안 집안이 망가진다. 결국 아빠도 잃고 엄마도 잃은 강두는 동생과 덩그라니 세상에 던져지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건물 붕괴로 인한 끝없는 트라우마 속에서 건설현장 잡부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진통제로 고통만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삶.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참사 같은 우리네 기억 속에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픔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불쑥불쑥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를 건드리는 사고의 기억들. 그것은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픈 정서 같은 것일 게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문수와 강두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보듬는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시대의 상처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창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6층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다 문득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은 그래서 어쩌면 그 사고의 상처가 엮어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과거 사고현장을 중심으로 다시 얽히게 된다는 점이다. 무너졌던 건물에 새로 올라가는 바이오타운 건설에 문수는 건축사무소 건물 모형 만드는 일을 하면서 참여하게 되고, 강두는 건설현장 인부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그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고픈 서주원(이기우)이 있다. 즉 이미 무너졌던 건물의 흔적들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지만, 그 곳에서 이들은 다시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래서 그 청춘 멜로의 관계들 속에 상처받은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워놓는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게 사랑할 나이의 청춘들이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먹먹한 아픔과 위로의 마음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그저 드라마의 밑그림일 수 있는 첫 회를 슬쩍 본 것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느껴지는 둔중함. 이 드라마 어딘가 심상찮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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