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의학드라마가 활극을 더해 얻게된 것들

중증외상센터

이거 의학드라마 맞아?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첫 시퀀스를 보고는 많은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척 봐도 국내가 아닌 풍광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백강혁(주지훈)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며 미사일을 쏴대는 장면이 등장한다. 폭탄이 터지며 난장판이 된 분쟁지역의 도시를 질주하던 오토바이는 결국 폭격에 날아가고 간신히 살아남은 백강혁은 무사히 병원에 혈액을 전달한다... 이건 급박한 수술 장면이 채워지곤 하던 의학드라마의 오프닝 시퀀스와는 너무나 다르다. 국제 분쟁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활극이다. 

 

하지만 이건 <중증외상센터>가 아예 내걸고 있는 ‘활극 의학드라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잘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백강혁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병원보다 야전이 더 잘 어울리고, 그래서 수술만큼 활극에 더 적합해보이는 외상외과의다. 이런 인물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한강대학교 중증외상팀과 어울리게 되는 건 이 골든타임에 따라 삶과 죽음이 오가는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실의 정경이 저 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분쟁지역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어서다. 이 지점에서 활극은 의학드라마와 어색하지 않게 봉합된다. 

 

그리고 백강혁 교수가 1호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양재원(추영우)와 처음 손발을 맞추는 북한산 등산로 실족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이 활극과 의학드라마의 접합이 제대로 됐다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백강혁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양재원을 헬기로 태우고 절벽까지 날아가(심지어 안개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자 헬기 조종까지 한다) 위급환자가 있는 절벽 아래로 레펠을 하는 광경을 연출한다. 심지어 양재원을 안고 뛰어내리는 레펠이다. 

 

의학드라마에 ‘활극’이라는 장르적 요소가 더해졌으니 다분히 <중증외상센터>는 허구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백강혁 교수가 보여주는 액션(?)들은 묘하게도 중증외상센터라는 우리에게는 이국종 교수로 잘 알려진 현실적인 소재와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즉 환자들에게는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중증외상센터라는 곳이 경영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병원에 의해 소외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로지 환자의 생명만을 구하기 위해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이 의사의 판타지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시청자들은 이 슈퍼히어로를 암묵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백강혁,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고.

 

여기에 너무나 힘들어 아무도 오지 않아 ‘사명감 있는 또라이’나 간다는 외상외과에 어쩌다 슬금슬금 합류하게 된 양재원이나 특유의 낙천적인 데다 똘끼까지 있는 간호사 천장미(하영)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흘리는 박경원(정재광) 같은 성장캐들이 팀을 이룬다. 백강혁의 말도 안되는 수술을 함께 해나가면서 이들도 조금씩 성장한다.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누적되는 적자 때문에 병원측에서 갖가지 정치와 언론 공작으로 방해를 하려 하지만 그 때마다 백강혁은 언론을 역이용해 국민들을 중증외상센터편으로 돌림으로서 문제를 해결한다. 한 마디로 고구마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시원시원한 사이다 활극이 넘쳐나는 의학드라마가 그려진다. 

 

그런데 이 작품이 거의 활극에 가까운 허구적 캐릭터와 서사들에 중증외상센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해지고, 특히 다양한 수술 케이스들이 소재로 등장할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그건 현실과 허구가 적절히 이어지고 그것이 영상으로 현실화하게 되는 독특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중증외상센터>는 이국종 교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실제 이비인후과 의사인 한산이가(이낙준) 작가가 쓴 웹소설이 그 원작이다. 그래서 다양한 수술사례들이 가능해졌고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 교수의 실제 사례를 담은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 기반의 서사는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장르를 만나면서 특유의 허구성이 가미됐을 것으로 보인다. 백강혁이 활극의 주인공처럼 그려지고, 나아가 ‘신의 손’에 가까운 외과 천재의로 그려지게 된 것이 이만한 허구들을 요구하고 허락하는 웹소설과 웹툰 특유의 색깔이 가미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이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활극에 가깝게 그려진 작품이 넷플릭스라는 제작을 통과하면서 갖게 된 블록버스터와한 장르적 색깔이다. 좀더 그럴듯한 허구가 장르적 완성도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중증외상센터>를 보면 최근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과 색깔이 어떻게 생겨나고 있는가가 엿보인다. 실제 의사나 변호사 같은 현장인력들이 직접 작품의 원작을 쓰는 새로운 흐름과,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보다 상상력의 틈입을 넓혀주는 공간에 의해 생겨난 색다른 성격의 창작물들의 등장, 그리고 이들을 원작으로 삼아 리메이크되는 드라마라는 흐름(물론 여기에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성격의 서비스가 갖는 특징도 더해진다)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지는 경향과 색깔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최근 <중증외상센터>같은 현실과 허구가 장르적 틀 안에서 적절히 봉합되어 개연성을 넘어서도 그럴 듯하게 보이는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전문성이 더해지지만 동시에 상상력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기묘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연출과 대본, 연기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직업군이 대본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웹툰과 웹소설을 통해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저 백강혁 같은 천재적인 봉합술이 요구되는 시대에 들어왔다.(사진:넷플릭스)

이제 웹툰의 문법에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 마트>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의 공식을 첫 회부터 깨버렸다. 물론 드라마의 공식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하고 놀라워할만한 과장된 이야기들은 파격적이었다.

 

이제 망하기 일보직전의 천리마 마트에 좌천되듯 정복동 이사(김병철)가 대표로 부임해와 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전혀 스펙이 되지 않는 이들을(심지어 빠야족까지) 정직원으로 떡 하니 채용하고 고객만족센터에 곤룡포를 입은 전직 조폭을 떡하니 단상 위에 앉혀놓질 않나, 심지어 출입구가 손님들이 들어오기 너무 쉽게 되어 있다면 손으로 한참을 밀어 돌려야 열리는 회전문까지 설치한다.

 

이런 정도의 황당한 조치는 당연히 현실적 개연성이라면 마트가 망하는 게 상식이지만 드라마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님들이 더 북적이게 되는 것. 이렇게 망할 위기에 처한 회사의 현실적인 모습은 아마도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거기도 일개 말단경리가 사장이 된다는 설정이 들어 있지만 짠내 가득한 중소기업의 현실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드라마의 개연성과 현실성의 관점으로 보면 <청일전자 미쓰리>가 훨씬 그럴 듯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이 훨씬 크다는 것. 드라마의 문법을 과감히 깨고 저 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풍자가 들어가자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황당함에 시청자들은 점점 빠져들었다.

 

알다시피 이런 스토리 전개가 가능했던 건 원작이 웹툰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웹툰 특유의 과장과 특히 B급 감성 가득한 웃기는 설정들은 그 장르적 특성 때문에 훨씬 개연성에 대한 부담 없이 그려지는 면이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웹툰으로서도 놀라운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드라마화된 작품에서도 이런 웹툰의 감성들이 먹히고 있다. 한때 이런 황당한 전개는 만화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라고 치부되던 것이 아니었던가.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역시 원작 웹툰인 <어쩌다 발견한 7월>의 그 독특한 세계를 드라마적으로 잘 구현해냈다. 흔한 학원 로맨스물처럼 여겨지는 소재가 웹툰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과 엮어지면서 기막힌 세계관을 만들었다. 웹툰 속 주인공들이 의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본래 정해져 있던 설정값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

 

중요한 건 이런 웹툰의 설정들이 드라마화 되면서도 시청자들이 이제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작품의 드라마화가 성공적이었던 건, 그 황당하기까지한 웹툰 설정에 담겨진 뒤집어보는 현실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상술로 돌아가는 세상을 뒤집는 통쾌함이 있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작가의 뻔한 이야기 전개를 캐릭터들이 뒤집는다는 흥미로움이 존재한다.

 

어쨌든 <쌉니다 천리마마트>나 <어쩌다 발견한 하루> 같은 웹툰 설정을 가져온 드라마들이 점점 시청자들을 공감시키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웹툰의 힘이 드라마 문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만큼 웹툰이 이제 우리네 문화 콘텐츠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사진:tvN)

‘천리마마트’, 처음엔 낯설어도 익숙해지다 빵빵 터지는

 

이거 도대체 뭐지? 아마도 원작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며 당혹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가져온 ‘털이 나는 광택제’를 내놓는 에피소드부터 시작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할 법 하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권영구 전무(박호산)에 모든 이사들이 찬성할 때, 반대의사를 들고 나온 정복동(김병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해보기 위한 일이었다며 충언을 할 줄 아는 정복동을 추켜세우지만, 갑자기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얼토당토 않은 일로 대마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되게 된다.

 

그런데 황당함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천리마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겠다 나선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과 은행에서 명퇴 당한 대리기사,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힘겹게 대마그룹의 천리마마트에 점장으로 취직한 문석구(이동휘)는 정복동이 온 후로 놀라운 마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하는 빠야족들이 마트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게 된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는 조선시대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고 왕좌에 앉아 불만을 갖고 온 손님을 발밑에 무릎 꿇리며 그 불만사항을 들어준다. 심지어 “오늘은 꽃이 되자”는 정복동은 스스로 해바라기 분장을 하고 직원들은 꽃 분장을 한 채 손님들을 맞는다.

 

이 정도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드라마의 리얼리티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대마그룹 같은 대기업이 어디 있고, 천리마마트나 정복동 같은 사장이 어디 있으며, 그런 곳에 오인배 같은 전직 깡패나 심지어 빠야족 사람들까지 정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일이 어찌 벌어질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쌉니다 천리마마트>라는 드라마의 정체를 이제 받아들이게 된다. 병맛으로 가득한 웹툰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라마로 들어와 있는 것. 그러니 현실성이나 리얼리티를 따질 필요는 없어진다. 대신 우리가 알고 있던 현실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천리마마트의 기상천외한 풍경들을 보며 웃을 준비만 하면 되는 것.

 

그래서 처음엔 기존 드라마들이 갖던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로 약간의 낯설음과 당혹감을 느끼다가 조금씩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빠져드는 기이한 병맛의 세계를 시청자들은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리얼리티의 정반대를 그려내는 마트의 풍경이 의외로 우리네 현실에 대한 은근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병맛 뒤에 숨겨진 날카로움 같은 묘미도 감지하게 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린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 때 잘못된 길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진 현실, 심지어 외국인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대접을 받는 일이 요원한 우리네 현실을 투영해보면, 천리마마트의 병맛 풍경은 의외로 짜릿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직원이 왕’이라는 이 마트의 상상초월 성장기가 자못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빈틈 많아도, 상상력을 끝까지, <W>의 가치

 

우리에게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종영한 MBC <W>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든 시도를 보여줬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엉켜버리는 어찌 보면 빈틈도 많고 복잡한 이야기는 어떻게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W(사진출처:MBC)'

<W>의 가장 가치는 결국 상상력이다. 만일 우리가 웹툰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을 것이다. 웹툰의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허구의 캐릭터가 각성하는 걸 자신을 삼켜버릴 괴물로 인식한 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맥락 없이 그를 죽이려 하고, 오로지 강철에게 강력한 동인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얼굴 없는 진범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각성하게 되면서 <W>라는 웹툰의 세계는 상상력이 폭주하는 세계가 되었다.

 

죽었던 인물을 꿈으로 설정해 되살리고, 진범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오히려 작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실제 인물 오연주(한효주)를 웹툰의 세계로 옮겨 다시 살려내는 등, <W>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상상력으로 뛰어넘겠다는 듯 반전스토리로 이어갔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건 웹툰의 세계라는 허구의 공간이 실재하고 그 안의 인물들도 저 마다의 법칙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 드라마의 가정 덕분이다.

 

결국 결론은 오성무라는 작가의 희생으로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런 끝은 사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또한 굉장히 복잡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들 하나하나를 그것이 왜 벌어졌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일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W>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가 하는 점일 게다.

 

웹툰의 인물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빠져드는 세태. <W>는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저 황당하게만 읽히는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세계가 더 이상 그저 가짜로만 치부되지 않고 마치 진짜처럼 여겨지고, 심지어 그 가상의 인물들과 사랑에 빠지는 <W>의 이야기는 그래서 콘텐츠의 시대가 보여줄 미래의 세계를 슬쩍 보여주는 면이 있다.

 

이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같은 기술들이 가상을 통해 현실을 바꿔가고 있는 것처럼 <W>의 세계는 그저 한 편의 드라마라고만 말할 수 없는 우리의 가상이 갖는 무게감을 잘 드러냈다고 보인다.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W>의 세계였다. 가상의 인물들은 창조되고 설정된 이후에는 그 고유의 힘에 의해 끝까지 움직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개입은 오히려 세계를 망치고 자신을 망치는 길이 되기도 한다. <W>의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결국 이 캐릭터들과 작가의 싸움에서 비롯됐던 일들이다. 허구라고 해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W>는 허구의 시대가 현실을 압도하고 바꿔나가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끝까지 엔딩을 이뤄냈고 물론 허점도 많은 이야기지만 시청자들의 욕망을 추동시킴으로써 그 빈틈을 채워 넣는 기발함과 능숙함도 보여줬다. 결국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제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의 자생력과 그걸 보는 독자와의 긴장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되었다. ‘잡아먹히느니 잡아 먹겠다는 경구는 지금의 작가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일 뿐, 이제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것이 될 수 없는 시대다.

 

그저 잠깐 상상으로만 했을 수 있는 세계. 하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것을 끝없이 발전시켜 상상력이 폭발하는 세계로 만들어냈다. <W>의 가치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늘 드라마라고 하면 머릿속에 공식처럼 떠오르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그걸 <W>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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