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light’에 엄태구가 출연하자 생겨난 일

삼시세끼 light

“어떻게 보면 태구는 약간 좀 내성적인 면이 있잖아. 그런 성격인데 어떻게 연기를 할 생각을 했을까?” tvN ‘삼시세끼 light’의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한 엄태구에게 유해진은 불을 피우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실 그건 시청자들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상남자 카리스마를 보이곤 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게 엄태구는 극내향인으로 유명하다. 이런 사실은 이미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로 큰 인기를 끌었을 때,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모습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목소리 데시벨 자체가 낮아서 소곤거리는 듯 말하고 또 너무 낯을 가려서 카메라 앞에 얼굴보다 정수리가 더 많이 나온 엄태구였다. 그의 앞에서 토크를 잘 이끌어내는 걸로 정평이 난 유재석조차 요령부득의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삼시세끼 light’에 나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유해진과는 ‘택시운전사’를, 차승원과는 ‘낙원의 밤’을 함께 찍은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낯을 가리며 대선배들 앞에서 극도로 조심하려 하고 또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유해진, 차승원인데다, 역시 뭐 하나 강요하는 것 없는 ‘삼시세끼’에서도 그럴 정도다. 그러니 배우로서 작품에 들어가 연기를 할 때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유해진의 질문에 엄태구는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장난을 많이 치기도 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다만 자신도 안그러고 싶은데 낯을 본인이 불편할 정도로 가린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척하면 오히려 어색해진다는 엄태구에게 유해진은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얼마나 되냐고 갑자기 물었는데, 엄태구가 마흔 둘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나이 들면 변한다”고 말하려 했는데 “넌 굳어진 것 같다”며 “있는 그대로 사는 거지”라고 유해진은 말해줬다.

 

유해진이 있는 그대로 사는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엄태구는 그 상황 자체가 있는 그대로 살 수는 없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연기를 해야한다. 실제로 그는 그런 성격 때문에 연기를 계속 해야하나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해 무수한 작품들에 단역, 조역, 주연을 맡았지만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상영된 ‘밀정’에서 하시모토 역할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당시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는데 송강호 선배가 자신에게 “힘들지?”하며 따뜻하게 대해줘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 때의 인연으로 송강호는 자신이 주연으로 나왔던 ‘택시운전사’에 엄태구를 추천했고, 그렇게 출연해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군인 역할로 또다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주로 해온 역할은 차승원과 함께 출연했던 ‘낙원의 밤’ 같은 누아르에 어울리는 강렬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는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멜로 연기를 인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강렬한 모습들이 일종의 작품 속에서 굳어진 그의 이미지일뿐이라는 걸 드러냈다. 

 

‘놀아주는 여자’에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강렬한 눈빛을 가진 그가 상대역인 한선화 앞에서 순한 양처럼 돌변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빵터지는 웃음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줬다. 이 작품이 그에게 너무나 어울렸던 건, 극 중 그가 맡은 지환이라는 인물이 어두운 과거를 청산한 큰 형님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맨주먹으로 맞붙는 액션 연기도 등장했지만, 아이들과 놀아주는 은하(한선화) 앞에서 갈수록 달달해지는 반전 모습을 보여줬다. 배역 자체가 엄태구가 여러 작품들 속에서 굳어져 온 강렬한 카리스마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그 안에 담겨진 그의 순하디 순한 면모를 꺼내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엄태구의 변신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태구는 멜로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모습이 어쩌면 엄태구의 진면목에 가깝다는 걸 시청자들은 그 후 출연한 몇몇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알게 됐다. 지나칠 정도로 낯을 가리고, 남을 배려하느라 말 한 마디도 마구 꺼내놓지 못하는 섬세한 성격이 그였다. 그걸 알고 나니 이 배우가 지금껏 해온 연기의 길이 얼마나 도전의 연속이었을 지가 가늠이 됐다. 그저 지나치는 역할 하나도 쉬운 게 없었을 터였다.

 

조분조분 조용하게 말하는 엄태구에게 ‘삼시세끼 light’의 유해진과 차승원도 덩달아 비슷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유해진과 차승원의 배려도 담겨 있었다. 차승원은 자꾸만 “태구가 너무 좋아”라고 말했고, 유해진은 특유의 너스레로 그를 편안하게 해주려 애썼다. 차승원이 만든 음식을 맛보며 과장된 리액션을 보였던 다른 게스트들과 달리, 엄태구는 낮게 “정말 맛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진심이 담겨 있어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너무 말이 없고 말을 해도 너무 데시벨이 낮아 심심하다고 여겨졌지만, 차츰 적응하다 보니 그것이 전국의 한적한 곳을 찾아가 음식을 해먹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색깔이기도 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차승원은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지리산 등반을 나서서 했는데 그건 여러모로 엄태구를 배려한 선택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해야 오히려 편안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고단까지 함께 오르고 내려오는 길 엄태구는 훨씬 편안해진 모습으로 차승원에게 마음을 털어놨다. “예능을 많이 안해봤는데 제가 힐링 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항상 긴장만 하다가 되게... 자괴감이 많았었어요. 너무 스스로가 답답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잘 못한다고 느꼈어요. 제가. 근데 그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게 너무 신기해서 있는 그대로 더 놔둬도...” 엄태구의 그 말에 차승원은 말했다. “그런 네가 너무 좋아. 난. 뭐 변하지도 않겠지만... 그냥 변하지 마라.” 

 

사실 타고난 내향인들이 억지로라도 친해져야만 하는 사회생활을 하는 건 그 자체로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게 해주고 끝내 그 진가를 드러내게 해주는 건 몇몇 주변사람들의 말 한 마디 때문이기도 하다. “힘들지?”라고 그 속마음을 읽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다며 “변하지 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들은 그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게 도전이었을 극내향인 엄태구라는 페르소나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삼시세끼’, 이 단순한 소박함에 담긴 삶의 비의 

삼시세끼 light

이제 추자도를 떠나야 할 시간, 차승원과 유해진은 마지막 밥상을 차린다. 아침 일찍 손님으로 왔던 김남길을 마중해주고 뒤늦게 차린 아침 밥상은 소박하다. 전날 솥밥으로 먹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눌은밥과, 역시 전날 ‘피시앤칩스’에서 칩이 되지 못한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김남길이 가져온 달걀 남은 것에 양파와 파를 송송 쓸어 부쳐낸 달걀말이, 먹고 남은 열무김치다. 그리고 특별하게 된장찌개 안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투망에서 찾아낸 소라 몇 개가 들어갔다. 

 

tvN ‘삼시세끼 light’가 보여주는 끼니의 풍경은 이처럼 한결 같다. 물론 가끔은 바다에서 참치 같은 힘을 가진 부시리를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처럼 낚아와 포를 뜨고 감자까지 튀겨낸호사스런 ‘피시앤칩스’가 한 상 차려지기도 하지만, 그런 호사스러움에서 느끼할 것 같다며 열무비빔밥을 ‘반찬’으로 더해넣는 촌스러운 맛을 잃지 않는다. 대단할 것 없는 끼니들이 하루 세 끼씩 채워지고 그게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음식을 먹고 우리의 몸이 만들어지듯. 

 

그런데 그 끼니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단순한 밥상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야기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눌은밥은 유해진이 낯선 오분도미로 연거푸 밥짓는데 실패한 후 추자도에서 비로소 성공시킨 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감자에서는 전 날 먹은 피시 앤 칩스와 그걸 가능하게 했던 바다낚시의 짜릿한 추억들이 연달아 낚아올려지고, 달걀말이에서는 추자도 형들 만나러 오던 김남길이 손에 잔뜩 들고 있던 계란 한 판이 떠오른다. 

 

남은 걸 탈탈 털어 마지막 밥상에 올라온 열무김치는 차승원이 폭염 속에서도 오자마자 뚝딱 만들어냈던 광경과 피시앤칩스의 호사스러움이 주는 느끼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열무비빔밥이 떠오른다.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쓰인 장작불의 열을 모으기 위해 쓰인 이른바 ‘열모아’는 또 어떤가. 정선에서 김고은이 손님으로 왔을 때 유해진이 함께 쇠를 자르고 구부려 만들었던 그 광경이 떠오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열모아 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끓여지고 구워지고 했던가. 

 

‘삼시세끼’는 이처럼 하루 세 끼의 밥상의 정경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무심하게 만들어져 밥상 위에 올라온 것 같지만, 거기에는 유해진과 차승원 그리고 그 곳을 찾은 손님들이 함께 해온 생활과 시간의 흔적들이 더해져 그 느낌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러고 보면 ‘삼시세끼’라는 제목이 참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큼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있던가. 

 

김훈은 에세이 ‘허송세월’에서 그가 사는 동네의 허름하고 싼 식당 이야기를 하면서 ‘밥이 아무리 싸고 남루해도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경건한 것’이라고 했다. 밥과 노동의 순환을 이른바 ‘밥벌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 인간 삶의 비의를 꺼내놓은 이 작가는 모든 인간이 먹는 밥 한 끼에 담긴 숭고함을 읽어냈던 것일 게다. 

 

‘삼시세끼’는 유해진과 차승원의 평범한 세 끼의 풍경을 담는 것이지만, 그걸 위해 밭으로, 바다로 나가 재료를 구해오고 인간의 지혜가 누적된 요리라는 노동을 통해 맛난 밥상을 차려 즐겁게 먹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의 본질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유해진이 구해오는 식재료들이나 때론 보다 효율적으로 요리를 하기 위해 고안해 만들어내는 도구들에서도 본래 삶과 밀착되어 있던 문명의 본질 같은게 보인다. 갈수록 고도화되면서 삶과 유리되어 삶을 소외시켜가는 도구들과는 사뭇 다른 진짜 본질이. 

 

3박4일 간의 촬영이 끝나고 이제 추자도를 떠나는 시각, 영상은 괜스레 그들의 그간 생활이 묻어난 공간들을 편집해 담아놓는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나서 땀에 절은 옷을 빨아 ‘햇볕을 먹이던’ 그 빨래들을 보여주고, 함께 투탁대면서 밥을 해먹었던 평상을 비춰준다. 또 매일 설거지를 하던 수돗가와 같이 깔깔 대며 TV를 보던 방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추억의 공간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정리되어 비어가고 떠나는 차승원과 유해진을 담아낸다. 

 

왁자했지만 결국은 하루 세 끼의 밥을 챙겨먹는 하루하루의 힘겨움과 즐거움의 시간들이 채곡채곡 채워져 하나의 삶을 이루는 건 아닐까. 그렇게 시간을 한참 보내다 하나하나 정리하고 떠나고 나면 그 빈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추억의 재잘거림들이 여운처럼 떠다니는 게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삼시세끼’를 보다 보면 그 단순함에 담긴 삶의 비의가 엿보인다. (사진:tvN)

‘삼시세끼 light’, 예능적인 맛은 덜해도 임영웅과의 평화로운 시간들이니

삼시세끼light

등장부터가 조심스럽다. 다른 게스트도 아니고 임영웅이 아닌가. tvN ‘삼시세끼 light’의 10년 차 베테랑들인 유해진, 차승원조차 말을 쉽게 놓질 못한다. 워낙 존재감이 큰 게스트지만 임영웅 본인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전날 미리 그 곳에 왔었다는 임영웅은 소주라도 한 잔 하고 방송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긴장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영웅에게도 이런 예능은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삼시세끼’라는 레전드 예능이고 대선배들인 유해진, 차승원과 함께가 아닌가. 

 

이등병의 마음으로 왔다는 임영웅은 그래서 자기에게 이 일 저 일 시켜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편안하게 해주려는 심산이다. 유해진과 차승원도 조금씩 마음을 놓고 “이제부터는 손님 아냐”라며 일을 시켜본다. 첫 번째 일로 주어진 마늘까기. 사실 뭐 어려운 일일까 싶지만 처음 하는 사람한테는 낯선 일이기도 하다. 마늘까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이 잔잔한 웃음을 준다. 어딘가 서툰 모습에 마늘까기 달인(?) 수준인 유해진과 차승원의 시선은 자꾸 임영웅에게 간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은 임영웅은 어딘가 엉성하다. 요리부인 차승원을 도와주는 역할에서도 그렇지만, 작업부 유해진이 양념통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일을 도와주는 데서도 그렇다. 호기롭게 어렸을 때부터 가구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며 나섰지만 톱질이 삐뚤빼뚤 엉성하다. 유해진은 그걸 콕 집어 “임! 이거 상당히 삐뚤어”라고 말해 웃음을 준다. 도와주려 열심히 했는데 엉성하게 된 상황에 멋쩍어 하는 임영웅의 모습이라니. 

 

하지만 엉성해도 그렇게 익숙지 않은 요리와 작업을 하고, 잘 하면 잘 한다 못 하면 못 한다고 말하며 웃고 떠들면서 조금씩 임영웅과 유해진, 차승원 사이에 존재하던 어색함은 사라진다. 웰컴 드링크로 막걸리 한 잔을 주고, 특별 코스요리(?)라며 부추전에 수육 그리고 임영웅이 가져온 수박으로 후식까지 챙겨먹으며 식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물론 농촌에 왔으니 노동이 빠질 수 없다. 수육거리로 산 고기 대신 빚으로 갖게 된 감자 캐기 140Kg을 채우기 위해 세 사람은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한다. 허리를 굽힌 채 하는 안해본 감자캐기 역시 만만찮은 노동이지만 커다란 감자가 쏙 나왔을 때의 즐거움이 교차된다. 일하고 함께 끼니를 챙겨먹는 평범한 시골에서의 일상이 후루룩 지나간다. 오롯이 삼시 세 끼 챙겨먹는 일에만 집중함으로써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 ‘삼시세끼’ 특유의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드라마처럼 예능도 어떤 갈등이나 대결 같은 것들이 들어가야 극적인 재미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삼시세끼 light’는 아예 ‘light’를 표방한 것처럼 그다지 극적인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이제 어언 10주년을 맞이한 ‘삼시세끼’가 이 프로그램의 본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본래 ‘삼시세끼’는 그 시절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득해 있던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했던 프로그램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풍경처럼 자리한 평창의 산세들과, 그 사이를 유유히 움직이는 구름들, 어스름해지는 저녁에 식사 후 감자밭 저편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정서적인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라면 대단한 사건보다는 밥 한 끼 같이 해먹고 수다를 떠는 일조차 푸근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밍밍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도록 함께 해온 유해진과 차승원은 이 평범한 시골에서의 하루에도 깨알같은 재미들을 채워놓는다. 고추장찌개에 유해진이 시큼한 김치를 썰다가 충동적으로 맛있을 것 같아 그걸 찌개에 몰래 넣자 차승원이 “안 만든다”며 국자를 놓고 나가버리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해진이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에 막걸리를 권하며 “한 잔 해”라고 하는 말에 금세 풀어지는 차승원의 모습은 그 짧은 장면 하나에 마치 드라마 같은 극적 상황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제는 뭐 하셨어요?”라는 임영웅의 질문에 “어젠 좀 싸웠어.”라고 너스레를 떠는 유해진의 말은 전 날의 그 사건을 가져와 그 때와는 너무나 다른 임영웅과의 평화로운 하루를 그려낸다. 대단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그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낯선 손님들에게도 배를 다 드러내고 누워 애교를 부리는 집주인의 반려견 복구만 봐도 힐링이 되는 그런 평화로움이랄까. 

 

도시에서라면 지나쳤을 찌개 끓는 소리도 더 잘 들리고, 날이 어둑해져 가는 그 시간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는 평창의 시골집이니 그런 낯설음에 엉성함 또한 작은 재미들이 된다. 유독 뜨거웠던 늦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너무 좋다”고 말하는 평화로움이 있으니. “이거 평화를 어떻게 하면은 쉽게 깨는 방법을 알려줘? 뭐 넣으면 돼.” 유해진의 말은 그래서 본질로 돌아온 ‘삼시세끼 light’ 본연의 맛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그런 별 것도 아닌 자잘한 일조차 사건처럼 느껴지게 되는 재미가 그것이다. (사진:tvN)

‘삼시세끼 light’, 유해진이 보여주는 촌스러움의 가치

삼시세끼 light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넣을 청양고추를 따러 잠시 자리를 비운 몇 분 사이, 김치를 썰던 유해진은 갑자기 찌개에 김치를 넣고 싶어진다. 그만큼 김치를 좋아하고 펄펄 끓는 냄비만 봐도 넣어 끓여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유해진은, ‘그러다 차승원한테 혼난다’는 나영석 PD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숭덩 짤라 찌개에 넣고만다. 돌아온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청양고추를 잘라 넣고 휘휘 젓는데 무언가 낯선 비주얼에 눈에 들어온다. 금세 알아챈 차승원은 “이거 왜 김치를 넣었어?”하고 나무란다. 유해진이 감짝 놀라 올려다보자 차승원은 누가 고추장찌개에 김치를 넣냐며 안만든다며 국자를 던져놓고 나가버린다. 순간 흐르는 침묵. 유해진 특유의 너스레가 시작된다. 차승원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괜스레 막걸리 채운 잔을 들이밀며 “한 잔 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굳었던 차승원의 표정이 풀어진다. 망쳐버린 고추장찌개를 되살려내고 금세 화기애애 해져서 함께 밥상을 차려 먹는 두 사람의 풍경이 이어진다. 

 

최근 시작한 tvN ‘삼시세끼 light’에서 등장한 이 짧은 장면은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무엇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빛을 발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이번 ‘삼시세끼’가 ‘light’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이전처럼 두 사람을 보조해주던 손호준 같은 후배가 빠져 있어서다. 오롯이 차승원과 유해진이 끌고 가는 콘셉트이랄까. 물론 게스트로 임영웅이나 김고은이 출연하지만 두 사람에 온전히 무게중심을 세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손호준 같은 후배가 없이 차승원과 유해진 두 사람이 막상 가게 되니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다. 두 사람이 해야 할 노동(?)이 많아져 수다 떨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아저씨 둘이 수다를 떨 것도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해진이 진짜 시큼한 김치 냄새에 혹해서 고추장찌개에 그걸 넣는 순간 갑자기 이 심심했던 예능의 정경에 재미가 생겨난다. 요리에 진심인 차승원이 진짜로 기분 상해 하고 유해진은 특유의 너스레로 그 마음을 풀어주면서 별 거 없어 보이는 이 시골 저녁에 긴장과 이완의 극적 상황들이 전개된다. “분명 끈인데 왜 아니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라며 ‘노끈’을 꺼내놓고 해학적으로 웃는 유해진의 모습은 어딘가 촌스러운 정감이 묻어난다. 일을 하면서 별것도 아닌 농담을 툭툭 던져 웃게 만드는 허허로움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시골에 가서 세 끼 챙겨먹는 단순한 콘셉트를 가진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유해진이 어째서 이토록 찰떡 같은 캐릭터로 서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 냄새 가득한 유해진의 모습은 그가 지금껏 해온 연기의 영역에서도 특유의 빛을 발한 면이 있다. 그는 97년부터 영화 ‘블랙잭’으로 배우를 시작했지만 거의 대부분 단역과 조연을 오가는 역할들을 맡았다. 그러다 대중들의 눈에 확실하게 각인된 건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천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육갑이라는 광대로 등장하면서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코믹하면서도 처연한 광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그는 이듬해 ‘타짜’의 고광렬 역할과 주목을 받았고 그 다음 해인 2007년 ‘이장과 군수’에 차승원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때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유해진은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전우치’ 같은 판타지물에서 초랭이 역할로 깨알같은 감초 웃음을 선사했고, ‘이끼’ 같은 스릴러에서는 정반대로 다소 모자라면서도 섬뜩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밑바닥에는 어딘가 사람 냄새 나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한 몫을 차지했다. 따뜻한 느낌이 해학적으로 풀어지면 코미디가 되지만, 그 따뜻한 이미지를 배반하는 모습에서는 섬뜩한 스릴러가 만들어졌다. 물론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해온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액션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놈이다’, ‘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완벽한 타인’, ‘말모이’, ‘봉오동전투’, ‘승리호’ 등등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최근 그의 연기가 가장 도드라진 작품은 ‘올빼미’다. 유해진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인조라는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다소 병적이고 광기 가득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과거 ‘왕의 남자’에서 광기 어린 연산군 앞에서 살기 위해 광대 놀음을 했던 육갑 연기를 했던 걸 떠올려보면 17년만에 이제 왕 역할을 하게 된 유해진의 성장 과정이 배역으로도 느껴진다. 물론 최근 ‘파묘’를 통해 또 하나의 천 만 영화 배우가 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지만. 

 

그런데 이러한 유해진이 가진 경쟁력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특유의 촌스러움 혹은 사람 냄새 가득한 그만의 개성이 엿보인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지성적인 배우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더 느껴지는 배우다. 그가 해온 일련의 역할들이 이른바 ‘장삼이사(張三李四)’라 불리는 평범한 서민들이었던 건 우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건 물론 오래도록 조연과 단역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작을 수 있는 그 역할들을 크게 만들어내는 그의 진정성 가득한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삼시세끼’로 그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특유의 사람 냄새가 불러 일으키는 따뜻한 정서가 만들어내는 그리움이랄까. 

 

유해진은 이른바 ‘촌스러움’의 가치를 되살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흔히들 ‘촌스럽다’는 표현을 우리는 한때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해왔다. ‘촌뜨기’나 ‘촌놈’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 생활이 주는 각박함은 정반대로 ‘촌스럽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는 시골의 푸근함이 그것이다. 유해진은 바로 그 기분 좋은 촌스러움이 ‘인간화’한 인물처럼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래서 그의 빙그레 웃는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면 지독한 도시의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한껏 힘을 빼는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단 며칠이라도 그렇게 삼시 세 끼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글:국방일보,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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