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 한 번 웃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률 5%는 그렇다 치고, <웃찾사>는 화제가 잘 되지 않는 걸까. 우리는 <웃찾사>에서 어떤 유행어가 나오는 지 잘 모른다. 무명의 일반인이 올린 동영상이라도 재미가 있거나 뒷통수를 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지상파다. 금요일 밤 11시가 워낙예능의 격전지인 건 맞지만 그래도 이렇게 유행어 하나 뜨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

 

'웃찾사(사진출처:SBS)'

재미가 없어서? 아니다. 분명 <웃찾사>를 한 번 마음 먹고 본다면 이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웃찾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몇몇 코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는 코너들이 꽤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열혈강호같은 전형적인 몸 개그 말 개그형 <웃찾사> 표 개그 코너에서도 이제는 현실이 보인다.

 

이 코너는 강호의 고수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지만, 이 고수들 사이에서 등 터지는 서민들의 이야기로 현실을 담는다. “그깟 최고수 자리가 뭐길래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고...” 같은 남호연의 읊조림은 이 아무 맥락 없어 보이는 개그를 현 정치판에 대한 풍자로 느껴지게 만든다. 당하기만 하던 서민 김정환이 갑자기 본 모습을 드러내며 강호의 고수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까지 다가온다.

 

응답하라 1594’<응답하라 1994>를 제목의 패러디로 가져왔지만 내용은 사실 현 세태를 풍자를 담고 있다. ‘걸 떼거지(걸 그룹)’ 에피소드에서는 은근한 연예 비즈니스 한탕주의나 걸 노출 문제를 비판하고, ‘면상 개조원(성형외과)’ 에피소드에서는 너도 나도 성형에 줄서는 성형공화국과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부산특별시같은 코너는 서울과 지방을 뒤집어놓은 상황을 통해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비꼬기도 한다.

 

<웃찾사> 개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몸 개그와 말 개그 역시 살아있다. <별에서 온 그대>를 패러디한 별에서 온 그놈은 천송이와 소시오패스 재경을 흉내 내는 홍윤화와 김건영의 연기가 큰 웃음을 준다. ‘체인지의 남자 같은 여자 박진주와 여자 같은 남자 장홍제도 예사롭지 않다. ‘우주스타 정재형의 자칭 스타라며 너스레를 떠는 정재형도 주목되고, ‘누명의 추억의 이동엽이 보여주는 “25년 전이었어...”하며 시작되는 엉뚱한 말을 쏟아내는 스피디한 말 개그도 흥미롭다. ‘굿닥터의 주원 흉내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안시우도 빼놓을 수 없다.

 

<웃찾사>는 분명 재미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가 재미에서만 머물 뿐 화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웃찾사>의 안철호 PD는 이 프로그램의 인기 하락 이유에 대해 공감개그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침체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거 있는 분석이다. <웃찾사>가 한때 <개그콘서트>와 함께 경쟁을 하다가 점점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맥락 없는 유행어의 반복으로 마치 개그가 말장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맥락 없는 개그는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만 조금 지나면 식상해져버리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의 <웃찾사>는 확실히 위에서 언급한대로 과거에 비해 현실 공감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개그가 워낙 강해서인지 현실 공감은 말의 상찬 앞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재능은 오히려 독이 된다. TV로 방영되는 개그는 공연으로 하는 무대 개그와는 다르다. 공연이라면 그 순간 얼마나 웃겼는가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TV 개그 프로그램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회자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분명 쏟아지는 말 속에서 웃기는 웃었는데 지나고 나면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잘 알 수 없다면 그것은 화제가 될 수 없다. 무수히 쏟아놓은 재치 있는 말의 상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팩트 있는 말 한 마디다. 유행어 역시 마찬가지다. ‘민기네 경비아저씨같은 코너는 그 때 그 때 던져지는 전해 줘-”, “기운 내-” 같은 말이 웃음을 주지만 그것이 강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행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유행어가 나오는 상황이 어떤 현실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유행어를 하기 위한 코너가 되어버린다.

 

유행어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웃찾사>는 그걸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정도로 개그의 기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중요한 건 그 기량으로 만들어낸 유행어가 현실을 반영한 공감 가는 상황을 만나 오래도록 울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 유행어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감 가는 상황이 더 이상 여의치 않다면 코너를 접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웃찾사>가 반복적인 느낌을 주는 건 한 번 자리 잡은 코너가 적절히 변주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코너 발굴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웃찾사>는 지금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다. 또 코너의 재미 그 자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급한 건 일단 한 코너라도 대표 코너로서 화제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재미만큼 공감 가는 현실 상황을 끌어와 더 오랜 여운을 남기면서 반복적인 느낌을 없애줘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웃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웃기는 것이다. 그것만이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브랜드를 확고히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콘>, 여전히 시청률은 1위지만

 

<개그콘서트>는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다. 한때 17%까지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8주째 20% 선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매주 기록하고 있다. 코너들도 그런대로 화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고, 이 코너들이 쏟아내는 유행어도 꽤 많다. 무엇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위상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을 다양한 CF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전체적으로 안정된 지표들이 존재하지만 실상 <개그콘서트>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너들이 전체적으로 적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미 만들어진 유행어와 상황의 반복으로 웃음을 주고는 있지만 무언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인상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몇몇 유행어와 개인기 혹은 상황 연기로 이미 뜬 개그맨들이 매주 비슷한 아이디어의 코너들을 그저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대표할만한 이른바 잇(it) 코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개그콘서트>의 위기상황을 잘 말해준다. <꺾기도>는 이번 주 불방됐지만 이미 너무 맥락 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 기력이 소진된 아이템이기도 하다. <핑크레이디>는 노래와 상황만 제시될 뿐 아이디어가 보이질 않고, <좀도둑들> 역시 유행어의 반복에 머물러 있다. <아빠와 아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지만 그 ‘뚱뚱하다’는 아이템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 다채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배우들>은 김영희가 새롭게 투입되었지만 박지선이 근근히 코너를 살리고 있는 정도이고, <어르신>도 이른바 소고기 개그를 하는 김대희가 주목될 뿐이다. <갑을컴퍼니>는 그 상황극 자체가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그걸 매주 살려내는 한 방이 부족하게 여겨진다. <생활의 발견>은 좀 더 다양한 상황이 가능하지만 남녀의 이별 상황에만 매몰되다 보니 신보라가 스스로 비판하듯 ‘게스트빨’에 ‘홍보의 발견’이 되어가고 있다. 이승기가 출연한 이번 주 분량은 물론 이승기 본인이 살린 부분이 많았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와 광고를 홍보하는 느낌이 강했다.

 

꽤 주목을 끌었었던 <용감한 녀석들>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박성광과 이승건 PD의 대결구도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코너가 가진 본질적인 재미는 아니다. 김준현을 탑으로 끌어올린 <네가지>도 예전처럼 빵빵 터트리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과 정태호의 <정여사>가 <개그콘서트>의 얼굴이 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반복적인 유행어에 점점 의지하는 인상이 짙다.

 

새로운 코너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개그콘서트>의 위기 상황이다. 새로 시작한 최효종의 <주부9단>은 검사인 아들과 의사인 딸을 둔 주부가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지만 과거 그가 했던 특유의 공감개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코너가 계속 해서 생겨나고 적체된다 싶은 코너는 과감히 사라지던 그간의 방식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어딘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신랄한 현실 풍자 같은 날선 느낌과 힘겨운 서민들을 대변하는 듯한 그 헝그리 정신은 모든 코너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있다. 여장남자 캐릭터가 너무 많은 것도 어떤 시대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아이디어 부족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좀도둑들>의 김혜수 분장을 하고 나오는 이상훈, <갑을컴퍼니>의 희숙대리 김지호, <생활의 발견>의 김준현, <정여사>의 정태호, 김대성, 그리고 새로 시작한 <주부9단>의 최효종까지 여장남자 캐릭터는 넘쳐난다. 이렇게 많은 여장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높은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들 코너가 그런 느낌을 살리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개그콘서트>는 여전히 시청률은 1위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주는 체감은 예전만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코너들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몇몇 톱스타 개그맨들 중심으로 코너들이 유지되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청률 1위와, 배우나 가수 못지않게 잘 나가는 개그맨들(물론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힘든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지만)에 도취된 나머지 생겨나고 있는 매너리즘이다. 이를 사전에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개그콘서트>가 계속 예능 전체의 수위를 차지할 것이란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위기는 항상 최고 정상에 있을 때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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