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의 여행, 무엇이 달라진 걸까

 

과거 <12> 시즌2는 복불복 게임만을 반복하는 것 때문에 줄곧 비판을 받아왔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결국 여행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즌3는 복불복 게임이 아닌 여행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1박2일(사진출처:KBS)'

여행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2> 시즌3에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여전히 복불복 게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게임만 있다 비판받던 것들이 시즌3에서 반복되는 복불복 게임에서는 사뭇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커녕 오히려 호평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일단 복불복 게임의 양상 자체가 달라졌다. 유호진 PD가 전면에 나서면서 새롭게 투입된 멤버들로 재구성된 출연진들과 흥미로운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첫 복불복 게임으로 땅을 파고 물을 채우고 얼음 채운 물에 등목을 시키는 등 이른바 야생5덕 테스트로 유호진 PD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모가 드러나면서, 여기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김주혁이나 놀라운 임기웅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정준영, 특유의 현실 멘트로 큰 웃음을 주는 데프콘, 그리고 역시 개그의 달인답게 놀라운 리액션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준호가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

 

이러니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캐릭터 하나하나의 리액션이 모두 쓸 만한 방송 분량으로 나오게 된 셈이다. 여기에 유호진 PD나 막내 작가인 슬기 작가까지 캐릭터가 생기다 보니 관계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더 풍부해졌다. 슬기 작가를 놓고 출연자들이 서로 그녀와 파트너가 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나,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그간 <12>에서 빠져 있었던 알콩달콩한 스토리라인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복불복 게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게임을 누가 어떤 심리 상태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이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각 혹은 두근두근한 관계를 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게임의 성패가 아니라 그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그것은 향후에도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스텝까지도 캐릭터로 만드는 열정적인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그 재미에 대한 제작진의 진정성을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복불복 게임의 이런 다른 접근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복불복 게임만 있다 비판받았을 때 그 여행이란 도대체 뭘까. 그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더 소개하는 것일까. 멋진 풍광을 찍어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을 체험해보는 것일까. 사실 이런 정보들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인터넷만 열면 누구나 쉽게 얻어갈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아닌가.

 

유호진 PD<12>의 새 메가폰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를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유호진 PD나영석 PD와 자신은 다르다며 자신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여행의 본질이란 뭘까. 그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그 때 그 때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감성이나 체험을 말한다.

 

즉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막연히 느끼는 설렘이나, 어느 비오는 날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섬 마을 외딴 집 처마 밑에서 느끼는 처연한 느낌, 화창한 봄날 어디든 떠나고 싶어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숨 막힐 듯 흐드러진 꽃들을 마주할 때의 그 정서, 혹은 여행 중 아주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게임을 하다가 하루를 꼴딱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여행지와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감흥은 이렇게 다르다.

 

현재 <12>이 복불복 게임만 하는 것 같아도 거기에는 이들의 여행이 만들어가는 독특한 감흥과 정서가 깔려 있다. 게임을 해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대립이 그 감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여행이 주는 수많은 감흥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캐릭터가 확고해지고 나면 더 많은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지금 복불복 게임만 해도 호평이 쏟아지는 <12>의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이 추락하던 <12>을 되살렸나

 

도무지 기사회생할 것 같지 않았던 <12>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즌2로 가면서 줄곧 곤두박질치던 시청률도 반등하고 있고, 무엇보다 시즌3 2회만에 캐릭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예능에는 영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을 것 같던 맏형 김주혁은 인제에서 펼쳐진 인기투표를 통해 저조한 인지도로 굴욕을 맛본 이후 예능 열심히 할거야라며 의욕을 불태웠고, 깨알 같은 생활 멘트로 무장한 힙합비둘기 데프콘은 <12> 출연이 꿈이었다며 과한 의지를 드러냈다.

 

<12> 특유의 서열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엉뚱한 발언을 해대는 막내 정준영은 선배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록커의 매력을 드러냈고, 까불이 김준호 역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김주혁에게 전부 묻혀버렸다며 하소연을 해댔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새 매거폰을 잡은 유호진 PD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세워졌다는 점이다. 어딘지 마광수 교수를 연상케 하는 맥없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의외로 독한 야생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유호진 PD는 혹한기 입영캠프에서 벌어진 이른바 야생5덕 테스트를 통해 보여주었다.

 

구덩이 하나를 파 놓고 무려 50여분에 가까운 방송 분량을 뽑아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성과로 보인다. 처음에는 삽질로 땅을 파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거기에 물을 채우고, 그 물에 얼음을 들이부은 후 등목을 시키고, 그 구덩이를 제자리 뛰기로 넘게 하는 일련의 복불복 게임은 그간 맥락 없이 때 되면 벌어지곤 하던 복불복의 묘미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똑같은 복불복 같지만 거기에는 특유의 야생 분위기가 살아났고, 무엇보다 유호진 PD와 새로운 MC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복불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는 여지없이 PD를 놀리는 MC들의 도발이 있었고, PD 역시 이건 성공할 수 없을 거야라며 미션을 던지는 독함이 돋보였다. 게다가 <12> 공인 국제심판(?) 권기종 조명감독의 얄미운 까지 합세하면서 복불복은 시즌1의 느낌을 재현해내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12>의 핵심적인 재미가 PDMC들 사이의 갈등과 대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즌1에서 독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이명한 PD와 강호동의 대결구도가 그랬고, 이어 바톤을 이어받은 나영석 PD는 좀 더 아기자기한 밀당으로 이 대결을 심리전으로 이어가기도 했다. 강호동이 잠정은퇴 선언을 하고 빠져나갔을 때는 나영석 PD가 더 독하게 밀어붙임으로써 특유의 야생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결국 핵심적인 키는 야생의 분위기에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PD의 역할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호진 PD의 첫 발은 <12> 본연의 색깔을 꽤 제대로 짚어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유호진 PD가 편집을 통해 보여준 훨씬 디테일해진 MC들의 리액션들은 그네들의 행동 이면에 담겨진 심리를 포착하게 해줌으로써 단순한 게임조차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중요해진 건 여행이다. 복불복을 통해 특유의 야생 분위기를 되살려낸 것은 <12>의 긴장감을 되찾아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이 프로그램의 본질에 닿아있다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복불복은 말 그대로 양념일 뿐 주재료는 여행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즌3의 시작을 독한 복불복으로 꾸려낸 것은 잘 선택한 전략이다.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멤버들의 캐릭터를 좀 더 빨리 확실하게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렇게 구축된 캐릭터들 속에 깔려있는 관계의 심리가 여행이라는 낯선 체험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만일 이렇게 어렵게 구축된 관계의 심리가 빠져버린다면 자칫 시즌2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매번 여행지를 바꿔가며 비슷한 복불복을 제 아무리 독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캐릭터 관계 속에서의 맥락을 발견할 수 없고 여행지와의 관계도 없다면 굳이 계속 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12> 시즌3는 어렵싸리 부활의 불씨를 되살려 놓았다. 이제 그 불씨에 여행의 참맛을 덧붙여 활활 태워야 할 시점이다. 여행지 소개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여행지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여행이 주는 특유의 감성과 정서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과연 <12>은 이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한껏 높아진 기대감만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 유호진 PD가 말하는 <응답> 신원호 PD

 

예능 PD가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연출했을까. <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에는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어딘지 드라마 PD보다 예능 PD를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이 두 분야가 전혀 달라서 연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자 도전이라는 것.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응답하라 1994>의 이우정 작가나 <주군의 태양>의 홍자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 같은 예능작가 출신들이 드라마작가로 전업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예능을 연출하다가 드라마 PD로 이름을 날린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기황후>를 연출하고 있는 한희 PD도 예능 연출 출신이고, <파스타>, <골든타임> 등으로 스타PD 반열에 오른 권석장 PD 역시 <일밤> 조연출 출신으로 <테마극장> 연출로 잔뼈가 굵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원호 PD 역시 <여걸식스>, <남자의 자격>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본래 본인은 영화 연출에 뜻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남다른 신 PD의 성향은 고스란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출에도 묻어나고 있다.

 

<응답하라 1994>가 특별한 느낌으로 전달되는 이유는 그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감성이나 정서를 묶어내는 신 PD만의 연출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정우)와 빙그레(바로)가 비오는 날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렇다. 정보적으로는 그냥 술을 마시는 장면이면 족하겠지만, 이 장면에서 정우는 평상에 앉아 맨발을 쭉 뻗어 빗물에 내놓은 채 소주를 마신다. 이런 디테일한 연출에는 당시 상황이 주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들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12>의 새 매거폰을 잡은 유호진 PD는 신원호 PD가 가진 정서적인 연출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신원호 PDCJ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의 자격>을 연출할 때 유호진 PD는 인사차 편집을 하고 있는 신 PD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남자의 자격> 아이템은 아저씨들이 호주 사막을 여행하는 것이었는데, 그냥 원샷으로 편집해도 되는 자동차가 달려가는 장면을 굳이 중간에 끊어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장면 같은 것을 인서트로 넣더란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신 P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더 아련한 느낌 같은 게 묻어나잖아.”

 

사실 연출이라고 하는 분야를 그저 그 장면이 갖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원호 PD의 경우 연출이란 다만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정서나 심리상태까지를 담아내는 것이란 얘기다. 이것은 어쩌면 <응답하라 1994>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서가 바로 이 연출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똑같은 장면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잡아내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유호진 PD<12>에 있어서도 그저 스토리나 상황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PD가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그런 정서를 잡아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얘기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12>이 시즌2를 통해 추락하게 됐던 것이 바로 이 특유의 정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여행가고 복불복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진 데는 똑같은 그림 안에서도 그 속에 담겨진 인물들의 심리나 정서적인 느낌 같은 것이 잘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확실히 요즘은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다. 예능은 언제부턴가 스토리텔링을 하기 시작했고, 드라마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예능에서 두드러지던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 같아도 이 두 장르가 하나로 맞닿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영역이다. 스토리(이야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텔링(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이 담기지 않으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신원호 PD가 추구하는, 또 유호진 PD가 배우고 싶은 그 정서까지 담아내는 연출은 어쩌면 앞으로 예능이든 드라마든 그 성패를 가늠하는 필요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12>, 기대감 뺄수록 기대되는 까닭

 

우리의 장점은 다 고갈됐다.” <12>을 새롭게 이끌 유호진 PD는 시즌3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장점을 묻는 질문에 장점이 없다는 답변. 어찌 보면 황당하게도 느껴질 수 셀프디스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을 예능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기는 KBS와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러한 <12>의 셀프디스 분위기는 시즌3의 첫 촬영 예고편에서도 묻어난다. 차태현은 죄송한데 이게 다인가요?”하고 물었고, 김준호는 누구 한 명 데리고 와하고 말했다. 자막으로 표기된 것만 봐도 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 ‘저조한 인지도’, ‘저조한 자신감같은 문구들이 전하는 고개 숙인 <12>’의 분위기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왜 유호진 PD는 자신감이나 기대감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 없음기대감 없음을 내세운 걸까.

 

여기에서 유호진 PD가 가진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유호진 PD는 독불장군식으로 <12> 혼자 달려 나가기보다는 지금 현재 대중들이 체감하는 <12>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사실 현재의 <12>은 전성기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패턴의 반복으로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고, 새로운 예능 형식들에 비해 어딘지 구닥다리 느낌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호진 PD는 이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제작진의 생각과 대중들의 생각이 공유되는 지점이라고 볼 때 유호진 PD의 마인드는 일단 합격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 새로운 멤버가 될 것인가를 두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기대 없음의 표현이 더 많았다. 아마도 이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유호진 PD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같은 다소 부끄러운 마음을 드러내는 자막을 붙였을 게다.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일단 괜찮은 접근방식으로 여겨진다.

 

<12>이 시즌2를 하면서 망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프로그램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겉핥기만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12>의 본질은 늘 대중들과 함께 하는여행이었다. 그래서 대중의 이름을 빌어 와 복불복을 하고 까나리 액젓을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제작진 전원이 비를 맞으며 야외취침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 대중들과 함께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여행을 했던 것이다.

 

요는 복불복이나 여행 그 자체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정서적인 유대감이라는 점이다. 저 복불복이 저 여행이 우리들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저들만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호진 PD<12>의 현재 초라한 모습을 꺼내놓고 대중들과 다시 소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그 어떤 새로운 게임의 개발이나 새로운 여행지의 발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된다.

 

뭔가 잘 안 되는 이들의 여행은 뭔가 잘 안 풀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어쩌면 정서적인 공감대를 줄 수 있다. 이 대중들의 정서적 지점과 제작진이 처한 현실 그리고 출연자가 느끼는 무력감 같은 것이 하나의 공감대로 엮어진다면 <12> 시즌3의 여행은 분명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아이템이 낡아서, 형식 그 자체가 식상해서, 아니면 새로 들어온 출연자들이 재미가 없어서 <12>이 추락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중들의 정서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함께 하지 않으면서 저 혼자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소통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추락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시작하는 마당에 유호진 PD의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남은 것은 이 정서적 공감대를 어떻게 유지하고 또 어떻게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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