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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이 드러내는 세 가지 가면

 

변지숙(수애)은 서민의 딸이다. 아버지 때문에 사채 빚 독촉에 내몰려 있는 그녀는 어느 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겪게 된다. 자신의 도플갱어인 서은하의 삶을 가면을 쓴 채 살아가라는 것. 대가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지위다. 그거라면 지긋지긋한 빚쟁이들로부터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본래 변지숙이었던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가면(사진출처:SBS)'

변지숙이 쓴 가면은 서민의 가면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절망적으로 선택한 거짓의 삶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가진 가면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출근할 때 그들은 누구나 저 마다의 가면을 꺼내 쓰고 나간다. 눈물이 나는 상황에서도 웃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무표정을 연기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변지숙의 가면과, 그 가면이 벗겨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그 설정이 서민들의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변지숙이 서은하인 줄 알고 정략 결혼한 민우(주지훈) 역시 가면의 삶을 살고 있다. 쇼윈도 부부로서 기업 간 합병하듯 결혼을 선택한 그의 삶은 거짓이다. 게다가 그는 신경증을 앓고 있다. 언제 자신 속에 있는 괴물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어 그는 전전긍긍한다. 그는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다. 가면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우의 가면은 상류층이라고 해도 쓰기 싫어지는 가면이다. 그 위치가 만들어내는 가면으로 심지어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씌워진다. 때로는 조작된 가면이기도 하다. 그를 전복시켜 부와 권력을 빼앗으려는 석훈(연정훈)이 정신과 주치의를 이용해 민우에게 씌운 가면은 정신병자의 그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민우는 그래서 이런 가면이 덧씌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민우가 가면을 쓴 채 정략 결혼해 만난 변지숙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가면을 벗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기막힌 아이러니다. 만일 변지숙이 아닌 진짜 서은하였다면 민우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은하 가면을 썼어도 서민적 삶을 버리지 못하는 변지숙의 모습은 민우의 가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정략결혼이 점점 사랑으로 바뀌는 과정은 그래서 두 사람 모두 가면을 조금씩 벗는 과정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메피스토펠레스 석훈은 문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너무 많은 가면을 쓰고 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유능한 사업가이자 평범한 가장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이 세계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변지숙을 협박하고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끔씩 비뚤어진 그의 사랑 내지 욕망이 엿보인다. 변지숙을 통해 과거 그가 사랑했던 서은하를 보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가 변지숙과 민우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기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야심을 채워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옛사랑을 떨궈내야 하는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석훈이 쓴 이 이중적인 가면은 야망과 개인적인 행복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류사회에 이제 막 진입한 서민 야심가의 자화상이 담겨져 있다.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의 갈등.

 

SBS 드라마 <가면>의 관전 포인트는 그 복합적인 인물들 덕분에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이 세 인물을 등가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수애도 주지훈도 연정훈도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연기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 캐릭터들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가면이라는 설정을 통해 이 이중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때론 분노하고 아파하며 때론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그 과정들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것은 숨겼던 가면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애와 주지훈 그리고 연정훈은 마치 연기 대결을 벌이기라도 하는 듯 극중에서 팽팽하다. 어딘지 맹한 듯 보이지만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수애나, 진짜 신경증 환자처럼 날카로워 보이지만 때론 허당처럼 따뜻해지기도 하는 주지훈, 그리고 마치 악마에 영혼을 판 듯한 연기하는 자아를 보여주는 연정훈의 연기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준다. 그들의 연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어지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예능에 이어 드라마도, 시청률 추락이 심상찮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위기라는 것은 방송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2%대의 프로그램도 적지 않고 6% 시청률만 나와도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것이 지상파 드라마들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10% 시청률이 목표가 된 듯한 하향평준화를 보이고 있다.

 

'조선총잡이(사진출처:KBS)'

월화드라마에서 최고 시청률을 내고 있는 드라마는 MBC <야경꾼일지>. 이 드라마는 12%대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과거 사극이라고 하면 20%가 기본이고 많게는 40%를 훌쩍 넘겨 국민드라마라고 불리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라는 걸 상기해보면 12%라는 시청률은 너무나 초라한 수치다. 그 뒤를 잇고 있는 SBS <유혹>10%, 그리고 KBS <연애의 발견>6%대다. 물론 최근 TV 시청패턴이 달라지면서 이를 반영하지 못한 시청률 추산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급격히 하락한 수치들이다.

 

이렇게 된 것은 드라마의 완성도하고도 무관하지 않다. <야경꾼일지>는 제 아무리 판타지 사극이라고 해도 조선사회를 표방한 것조차 무색할 정도의 개연성 부족을 드러내고 있고, <유혹>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불륜드라마의 공식에서 허덕이고 있다. <연애의 발견>은 그나마 완성도가 가장 높은 드라마지만 기획적인 차원에서 보면 결코 지상파에서 시청률을 내기는 어려운 드라마다. 결국 지상파 시청자들이 월화드라마에 볼 게 없다는 푸념은 그냥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목드라마는 분명 월화드라마보다는 만듦새나 기획적인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건 지상파 드라마들의 난감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KBS <조선총잡이>10%,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SBS <괜찮아 사랑이야>9%대에서 접전을 벌이며 고른 경쟁력을 보이고 있지만 이 시청률들은 빠질 대로 빠진 본방 시청 패턴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이제 작품의 완성도가 높건 낮건 시청률이 10%대에서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지상파 드라마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대신 10%를 훌쩍 넘어 20%, 심지어 30%를 넘기는 지상파 드라마는 이제 일일드라마거나 주말드라마에 국한되고 있다. 일일드라마로는 <뻐꾸기 둥지>17%, <고양이는 있다>22%KBS가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하고 있고, 주말드라마로는 MBC <왔다 장보리>30%를 넘어섰고 KBS <가족끼리 왜 이래>25%를 넘어섰다.

 

즉 이런 수치가 말해주는 건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이 작품성보다는 어떤 시간대에 어떤 형식의 드라마를 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지상파에서 10%를 넘기려면 가족드라마를 하거나 막장 코드를 담은 클리셰 가득한 드라마를 하는 편이 낫다. 주중드라마의 시간대인 10시는 점점 시청률면에서는 무덤이 되고 있고, 대신 일일드라마 시간대인 주중 저녁이나 주말드라마 시간대인 저녁 8, 그리고 9,10시가 드라마 편성에서는 골든타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시청률표가 현실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바로 이런 시청률표를 의식하다보니 나타나게 되는 드라마 제작상의 왜곡도 무시할 수 없다. 작품성 좋은 드라마를 시도하려면 시청률을 포기해야 되고, 시청률을 높이려면 작품성을 포기해야 되는 것이 작금의 지상파 드라마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다.

 

이런 식이 반복된다면 시청자의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부 나이든 세대들의 본방 시청만을 겨냥한다면 지상파는 종편과 다름없는 시청세대로 기울어질 가능성도 있다. 예능에 이어 드라마로까지 번지고 있는 지상파의 추락이 심상찮은 우려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현실화된 시청률 추산이 시급하고, 그걸 통해 왜곡된 드라마 제작현실을 바꿔놓는 일이 급하다. 그게 아니라면 지상파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돌아온 커플 연기, <운널사><유혹> 차이는

 

공교롭게도 과거 드라마에서 커플 연기를 했던 배우들이 다시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끈 두 드라마가 있다. 과거 <명랑소녀성공기>에서 커플 연기를 했던 장혁-장나라가 다시 뭉친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과거 <천국의 계단>에서 연인을 연기했던 권상우-최지우가 다시 등장한 SBS <유혹>이 그 작품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사진출처:MBC)'

과거의 커플이 다시 뭉쳐 지금 현재의 드라마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복고적 코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 작품의 향수가 어느 정도 현 작품의 기획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유혹>은 그래서 조금은 옛 트렌드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약간은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로맨틱 코미디다. 요즘의 로맨틱 코미디가 좀 더 일과 사랑에서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것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란 인물은 타인에게 피해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여성이다. 스스로를 포스트잇걸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이건(장혁)에 의해 본드걸로 재탄생하는 중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성장담을 담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보수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혹> 역시 과거에 봤을 법한 불륜 드라마의 공식을 거의 따라가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10을 제안하는 유세영(최지우)와 그 돈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최석훈(권상우)-나홍주(박하선)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이 드라마는 그렇게 10억을 매개로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네 사람이 감정싸움을 갖고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4각 멜로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운명처럼 널 사랑해><유혹>은 시청률에서는 10%대와 9%대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화제성이나 평가에 있어서 두 작품은 상이하게 나뉘어진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유혹>은 아예 관심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서 이 두 작품에서 다시 모인 장혁-장나라와 권상우-최지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상반되게 나오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로맨틱 코미디 멜로 공식을 뒤집어놓은 신선한 설정을 갖고 있다. 즉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가 어찌 어찌해 사랑에 빠지게 된 연인이 결혼에 골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드라마는 먼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점점 사랑을 알아가는 드라마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차츰 알아가면서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라는 인물은 요즘 여성답지 않게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모성애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가 타인을 배려하고 끌어안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끌어안는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이건이 그녀에게 빠져드는 건 바로 그녀가 가진 모성애로 대변되는 강력한 여성성이다. 요즘처럼 사랑보다는 일에 더 몰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김미영이라는 인물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결코 적지 않다. 그렇게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김미영은 이건을 만나 차츰 능동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성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혹>의 유세영이란 캐릭터는 이와는 정반대다. 굉장히 쿨하고 뭐하나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이 인물은 사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조기 폐경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최석훈에게 자기 방식으로() 접근하다가 덜컥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전형적이고 식상한 불륜 드라마의 코드 속으로 빠져버린다.

 

사실 유세영이라는 캐릭터는 훨씬 더 참신할 수 있었지만 드라마는 그 새로운 이야기로 나가지 않고 익숙한 불륜 드라마의 이야기에서 도돌이표처럼 관계를 반복한다. 당연히 그녀를 연기하는 최지우의 연기가 좋아 보이기 어렵다.

 

여성 캐릭터의 참신함의 차이는 거기서 함께 화학작용을 할 수밖에 없는 남성 캐릭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허세 가득한 인물에서 김미영의 모성애를 통해 점점 진짜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이건을 연기하는 장혁은 그래서 연기 호평을 받았다. 그의 과장된 코믹 연기는 장나라의 눈물 연기와 괜찮은 앙상블을 만들었다. 반면 최지우가 연기하는 세영 캐릭터의 식상함 속에서 상대역인 권상우가 연기하는 석훈의 행보 역시 식상할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연기력 논란까지 있었던 최지우와 권상우다. 그 정도의 연기 경험을 해왔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선구안도 연기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은 이들에게는 최악의 선택처럼 여겨진다. 도무지 배우의 매력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장혁과 장나라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재평가되고 있다. 장혁은 의외의 코믹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고 장나라는 역시 명불허전의 눈물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작품 선정이 만들어내는 결과의 차이는 이처럼 혹독하다.

 

Posted by 더키앙

<유혹>,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유혹>에서 3일에 10억을 제안한 세영(최지우)과 그것을 돈 때문에 수락한 석훈(권상우)의 관계는 그저 거래관계였을 뿐일까. 거래관계라면 일한만큼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일 게다.

 

'유혹(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파격적인 제안 속에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어린 시절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보면 곧 무너질 걸 왜 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세영. 그녀는 모래성 같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 앞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걸 석훈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런 세영에게 석훈은 되묻는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있을 때 세영은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무너질 모래성이 두려워 그저 옆에서 쳐다보고 있지 않았냐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석훈에게 세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모래성의 비유는 석훈과 세영의 관계가 단지 거래관계가 아니라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거래관계라면 이런 식의 대화는 왜 하는 걸까. 홍콩에서의 거래가 끝나고 국내로 돌아온 세영은 그래서 석훈이 3달러를 주고 산 시간동안 함께 지냈던 잠깐 동안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모래성 같은 시간은 지나버렸지만 그 추억은 잔상은 강렬하게 남았다.

 

<유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드라마다. 만일 이 드라마를 전형적인 4각 구도의 불륜 드라마로 본다면 그저 그런 치정 멜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관계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면 자본이 지배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물질과 얽혀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를 키워달라고 하며 보모 일에 대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민우(이정진)와 돈이면 다 되느냐는 식의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도 로이에 대한 동정심에 보모 일을 맡는 홍주(박하선)의 관계는 단순한 보모와 아이 아빠의 관계일까. 사실 보모라는 직업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냉철하게 뜯어보면 모성애와 돈관계가 뒤얽혀있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홍주와 로이 그리고 민우의 관계는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고, 또 민우를 쫓아다니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흥신소 업자들의 시선으로는 딴 살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관계가 아니라 돈 관계가 바탕이 된 보모와 아이, 아이 아빠의 모래성 같은 관계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석훈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고 자살해 버린 도식은 그에게 선배인가 아니면 사업적인 동업자에 불과한가. 사업을 꿈꿀 때만 해도 그들은 친한 선후배 관계였을 게다. 하지만 사업이 망가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사업관계가 되어버린다.

 

쇼윈도 부부인 민우와 그의 아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는 아내는 그러나 민우가 건네는 목걸이에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쪽(불륜을 저지르고 다니는)으로는 최악이지만 이쪽으로는(목걸이 같은 걸 사주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고. 그러자 민우가 말한다. “널 놓치지 않으려면 회사부터 더 키워야겠다.

 

사람과 만날 때는 속내를 보이지 말라며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세영에게 석훈은 아픈 이야기를 꺼낸다. 세영이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건 지금껏 행복한 적도 불행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프면 아프다 드러내놔야 인간적인 관계도 가능해지는 법이다. 조기폐경이지만 늘 콧대높고 당당해 보이는 세영의 포커페이스는 그래서 안쓰럽게 여겨진다.

 

이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실타리를 풀다 보면 거기에 살짝 겹쳐져 있는 인간관계와 돈 관계의 혼재가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아니면 거래관계일까. 이것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불륜이라는 극적 설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유혹>의 질문은 꽤 진지하다. 모래성 같이 얄팍해진 우리들의 관계.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Posted by 더키앙

<유혹>과 <운명>이 제시하는 10억의 사회학

 

요즘 드라마가 제시하는 액수는 1억도 아니고 100억도 아닌 10억이다. 10억이라는 돈이 제시될 때는 그만한 조건이 따라붙기 마련.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이건(장혁)이 김미영(장나라)에게 10억을 주는 조건은 이혼합의서다. 아이를 낳으면 자동적으로 이혼이 되는 합의서. 10개월 동안 위자료로 10. 한 달에 1억씩 받는 셈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사진출처:MBC)'

SBS <유혹>에서 세영(최지우)이 석훈(권상우)에게 10억을 제시하면서 붙이는 조건은 3일 간의 시간을 자신에게 팔라는 것이다. 육체적 관계를 상상했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세영이 석훈 부부를 일종의 시험에 들게 한 대가로 보인다. 완벽하다는 그 신뢰가 얼마나 돈 앞에서 무력한가를 실감하게 하려는 것. 하지 않겠다던 석훈도 계약금으로 1억이 즉시 입금되자 눈빛이 흔들리고 결국은 먼저 아내를 귀국하게 만든다. 그리고 3일 동안 나머지 9억을 받는다.

 

두 드라마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것은 또한 비슷한 정황이기도 하다. 10억이면 사람을 사고 팔 수도 있다는 것. 돈 가진 자들의 사고방식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져 있다. <유혹>의 세영은 돈 앞에 완전한 사랑 따위는 없다는 것을 석훈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으로 증명하려 하고 이것은 그대로 실제가 된다. 불편한 일이지만 ‘3일에 10은 하루하루를 빚쟁이에 끌려 다니며 사는 삶에게는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혼합의서를 내밀며 10억을 제안하는 이건의 제안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다. 본뜻은 그게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돈 10억에 아이도 산다는 얘기다. 물론 <유혹><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상황은 다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모성애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10억은 유혹적이지만 그렇게 강력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거부하고 진심을 드러내는 김미영 앞에 그런 제안을 한 이건이 머쓱해지는 상황이다.

 

<유혹><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장르가 다르지만 그 주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혹>이 일종의 치정극을 보여주면서 드러내려는 건 10억으로 표징되는 자본 앞에 얼마나 우리가 무력해지는가 하는 그 불편한 진실이다. 반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여전히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현실에서 그래도 사람의 가치를 지키고 살아가려는 김미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히려 이건의 사고방식을 바꿔놓는 이야기다. 전자가 현실적이라면 후자는 판타지적이다.

 

장르적 차이 때문에 선택과 양상은 다르지만 드라마가 드러내는 현실은 같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씁쓸한 세태가 그 바탕에는 깔려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벌어져 실종자들을 찾지도 못한 와중에도 보상금을 얼마 받을까를 보도하는 세상이다. 사람의 가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돈 몇 푼으로 환산되게 되었을까.

 

실로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제시하는 10억 속에는 그 개탄할 세상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유혹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하필 10억일까. 몇 년 전에는 아예 <10>이라는 우승상금을 두고 벌어지는 서바이벌 소재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출판가에 가보면 ‘10억 모으기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자리해 있다. 그것은 10억이라는 액수가 이제 서민들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액수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유혹적이지만 어찌 보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놓여진 그런 액수.

 

한때는 연봉 1억이 성공한 직장인의 기준처럼 제시되곤 했지만 요즘처럼 물가와 세금이 갈수록 많아지고 벌이는 시원찮은 시대에 이들 또한 그저 샐러리맨의 하나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 갑자기 제시하는 10억 정도는 되어야 마음이 움직이게 된 것. 사실 자신의 몸값을 연봉으로 환산하는 그 때부터 이미 우리는 돈에 포획된 삶을 살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유혹>의 석훈의 선택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의 선택에 그나마 위안을 받는 것은. 10억 앞에 무릎 꿇는 현실이라니.

 

Posted by 더키앙

'유혹', 권상우는 아내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SBS 월화드라마 <유혹>의 첫 회 마지막 장면은 도발적이었다. 빚으로 벼랑 끝에 몰린 석훈(권상우)에게 세영(최지우)“3일에 10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10억이라는 액수가 환기시키는 건 다름 아닌 불륜이다.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제안을 받아들인 석훈을 놔두고 홀로 귀국한 홍주(박하선)가 상상하는 육체적 관계.

 

'유혹(사진출처:SBS)'

하지만 시청자가 상상하고 홍주가 상상하는 그런 육체적 관계, 즉 불륜은 벌어지지 않았다. 세영이 석훈에게 10억을 주며 한 일이라고는 홍콩에서의 업무를 돕는 것이었다. 사적인 자리라고 해봐야 일을 잘 끝내고 저녁에 와인을 한 잔 같이 한 것 정도. 그것을 갖고 불륜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세영은 석훈에게 어린 시절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보며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은 세영과 홍주에게 파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토록 굳건하다 믿는 사랑을 문득 시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불륜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세영의 말대로 석훈과 홍주의 관계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석훈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문제는 돈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아내와 돈 10억 사이에서 돈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불륜과 상관없이 이미 엇나가버린 석훈과 홍주의 관계를 보여준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행동에 대해 동생에게 과도하게 발끈하는 홍주는 돈 앞에 어쨌든 무너진 관계를 확인하고는 절망하는 중이다.

 

<유혹>‘3일에 10이라는 설정은 마치 전형적인 불륜 드라마의 하나처럼 오인시키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2회에서 <유혹>이 보여준 진짜 유혹은 육체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불륜이라기보다는 돈의 유혹이다. 인간관계가 돈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걸 이 드라마는 마치 그 심리를 실험하듯 보여주고 있다.

 

세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돈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통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모성마저 상실한 워커홀릭의 단면을 보여준다. 파트너십을 정하는데 있어 그녀는 상대방이 우익이든 뭐든 개념치 않는다. 석훈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사업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유혹>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이런 돈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삶이 가진 부박함을 드러낸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란 세영이 말하듯 사실상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래성같은 한없이 가녀린 것이 된다. 하지만 돈에 아쉬움이 없는 세영이나 민우(이정진)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을 내포하고 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그리운.

 

드라마에서 불륜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비난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저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처럼 그 욕망을 적나라하게 탐구할 수도 있고 <밀회>처럼 그 관계 속에서 자본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물질적인 삶에 대한 비판을 담아낼 수도 있다. 어떻게 소재를 다루느냐에 따라 불륜이라는 소재가 깊이 있는 작품이 되느냐 아니면 천박한 자극에 머무느냐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유혹>은 어떨까. 과연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넘어서는 작품의 밀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육체적 욕망이 아닌 돈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을 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인다. 하지만 저 네 사람의 전형적인 통속극의 구도가 이러한 가능성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혹>은 과연 <밀회>가 될 수 있을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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