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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인더트랩>, 박해진의 대체불가 이중적 매력

 

박해진에게 이런 매력이 있었나.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심상찮다. 첫 회 3.5%(닐슨 코리아)의 괜찮은 시청률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2회에 4.8%를 찍었다. 이런 흐름이라면 tvN 드라마의 새로운 기록을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치즈인더트랩(사진출처:tvN)'

놀라운 건 이제 이 드라마가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홍설(김고은)과 유정(박해진)의 밀고 당기는 관계가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상황. 특히 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무표정하게 누군가를 바라볼 때는 마치 사이코패스 같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 무표정이 홍설을 향해 살짝 미소를 내비칠 때 섬뜩함은 거꾸로 눈 녹듯 녹아버리는 달달함으로 변한다.

 

홍설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 섬뜩한 존재로만 보였던 유정 선배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과 관심이 교차한다. 무언가 사람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이 자신의 오해였다고 믿게 되면서 홍설은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그것은 단지 오해만은 아니다.

 

상철(문지윤)이 회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영수증을 증거로 내세워 폭로했던 이가 유정이 아니라 재우(오희준)였다는 걸 알게 된 홍설은 자신이 유정을 의심했던 것을 미안해하지만, 알고보면 그 재우에게 영수증을 건넨 이가 실제로 유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바로 이 알쏭달쏭하고 미스테리한 유정이란 캐릭터는 그래서 홍설의 시선에 빙의되기 마련인 시청자들에게 기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어딘지 상처가 있을 것 같은, 그래서 마음이 뒤틀어진 듯한 그 이중성은 밝은 성격의 홍설과 흥미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웹툰으로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또 그래서 캐스팅 과정에서도 원작의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갖고 잡음들이 나왔던 작품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잘 된 캐스팅에 잘 만들어진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은교>, <협녀, 칼의 기억>, <몬스터>, <차이나타운> 같은 전작들이 모두 강렬한 캐릭터들이어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김고은이었지만 역시 다양한 연기의 결을 갖고 있는 배우라는 게 이 작품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유정선배 앞에서 그 밀고 당김에 쩔쩔 매는 모습은 김고은의 귀여운 매력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연기자는 역시 박해진이다. 이미 <나쁜 녀석들>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통해 차가운 이미지를 충분히 보여줬던 그는 이 작품에서는 차가움과 따뜻함을 오가는 이중적 매력을 통해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심한 듯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박해진의 얼굴에는 냉정함과 함께 어떤 우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많은 멜로드라마들의 남자 주인공들이 처음에는 까칠하게 버럭 대며 등장했다가 차츰 여자 주인공과의 만남으로 달달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치즈인더트랩>의 유정이라는 남자주인공은 그 차가움이 무서울 정도다. 그러니 그와는 대조적인 달달해지는 과정의 힘이 더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박해진의 밀당 하나만을 이제 겨우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Posted by 더키앙

기존 시스템과 충돌하는 버스커버스커의 행보

 

지금 현재 가요계에서 버스커버스커는 대단히 이질적인 존재다. 이것은 그들이 <슈퍼스타K>를 통해 알려지고 1집을 발표한 후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 자체부터가 그렇다.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의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 윤종신이나 이승철 심사위원이 이들을 혹평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음이 잘 올라가지 않는 장범준에게 가창력에 대한 지적이 계속 이어졌고, 버스커버스커만의 특징은 비슷한 패턴의 반복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자력으로 생방송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버스커버스커(사진출처:CJ E&M)'

당시 톱10에 올랐던 예리밴드가 <슈퍼스타K>의 시스템에 반발해 무단이탈하는 사건은 그러나 버스커버스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었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 후 예리밴드는 밴드 오디션이었던 <톱밴드2>에 나갔지만 이슈만 만들었을 뿐 그다지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반면 <슈퍼스타K>의 생방송 무대에 오르게 된 버스커버스커는 의외의 매력을 드러내며 톱2에까지 오르는 성과를 만들었다. 또 <슈퍼스타K>가 끝난 후 발표한 1집은 작년 한 해 내내 차트에 오르며 우승을 차지한 울랄라세션을 압도했다. 올해 들어 발표한 2집 역시 1집과 비교해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걸까.

 

버스커버스커의 이 이례적인 변칙 성공사례는 분명히 달라진 대중들의 어떤 기호를 반영하고 있다. 고음처리가 안되는 장범준의 가창력이나 전문가들에게 비슷한 패턴의 반복으로 평가되던 그들의 노래는 기존 가요계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되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고음을 얼마나 높게 올릴 수 있는가가 마치 그 가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오인되던 <나는 가수다>풍의 시선이나, 춤과 끼를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그 가수의 화려함을 드러내주던 기존 기획사 아이돌 풍의 시선에서 이들은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 전문가들이 지적하던 단점은 그들의 개성이 되었다.

 

사실상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드는 것은 장점보다는 단점에서 비롯된다. 완벽하게 모든 걸 구사하는 이들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어느 한 구석 비어있는 이들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버스커버스커가 기존 가요계의 완벽주의가 가진 숨막힘에 하나의 숨통을 터준 부분이다. 버스커버스커의 1집 성공 이후, <슈퍼스타K>의 정준영이나 <K팝스타>의 악동뮤지션 같은 개성강한 신예들이 주목받게 된 것은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

 

버스커버스커가 최근 들어 무수한 잡음을 내고 있는 것은 이들의 행보가 기존 가요계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발표하고 콘서트를 통한 직접 대면만을 고집하는 방식. 게다가 그 흔한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들의 방식은 대중들에게는 대단히 참신한 것이지만 기존 가요계 시스템에서는 심지어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다. 버스커버스커가 만일 이 행보로 확고한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이끌어낸다면 그것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는 관리의 문제가 발생한다. 버스커버스커의 브래드가 노이지에 인터뷰한 내용이 대서특필되고, 김형태가 일베논란을 겪거나 <은교>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그 과정들은 이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밴드가 기존 가요계 시스템과 생기는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이다.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고 완벽히 짜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조금은 자유롭게 활동함으로써 논란도 발생하지만 여전히 인기도 있는 이들은 그래서 기존 가요계 시스템에서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수한 논란이 쏟아지면서도 버스커버스커에 대한 인기가 여전한 이유 역시 이들이 보여주는 아마추어리즘의 힘에서 발생한다. 즉 아마추어리즘이란 프로처럼 완벽한 관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 역시 순수함에서 비롯된 실수 정도로 여겨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시스템 안에서 관리되고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시스템이 너무 오랫동안 공고하게 유지되어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진입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은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번 <슈퍼스타K5>의 출연자들이 실력에 있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결과는 훨씬 후에 나타날 수 있다. 버스커버스커처럼 본인이 갖고 있는 단점들마저 개성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기존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단점을 잘라내 버려 개성이 잘 안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또 다른 매력을 대중들에게 선사할 수도 있을 게다. 버스커버스커는 그래서 현 가요계에 대단히 불편한 존재지만 기존 틀에 묶인 가요계 시스템에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Posted by 더키앙

<은교>, 사멸해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할아버지. 뾰족한 연필이 슬퍼요?" 열일곱 살 소녀 은교(김고은)가 칠순이 다된 국민시인 이적요(박해일)에게 묻는다. 이적요는 어린 시절 학교 갈 때 필통에서 달각거리던 연필 이야기를 통해 연필이라도 각자의 기억에 따라 '이승과 저승만큼의 거리'를 가진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은교가 "그게 시인가요?"하고 되묻는 것처럼 시란 그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라도 저마다의 의미로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과 다름 아닌 것이다.

 

 

사진출처: 영화 <은교>

<은교>에 대한 홍보 마케팅 포인트가 이 영화가 가진 진면목과 이승과 저승만큼의 거리를 갖는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마치 19금 영화로 치부되고, 나이든 할아버지가 어린 여고생을 탐하는 변태적이고 성적인 영화인 것처럼 오인되는 시선이 관객들을 영화로 끌어들이려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 이전부터 성기나 음모 노출 같은 노출 수위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많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똑같은 벗은 몸이라도 그것을 성적인 노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하나의 나이 들어가는 육체로 바라보는 시선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멸해가는 몸에 대한 서글픈 인간의 조건을 다룬 <은교>에서 노출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적요의 벗은 몸은 그 쓸쓸함을 담아내고, 은교의 벗은 몸은 청춘의 생기를 담아내며, 서지우(김무열)의 벗은 몸은 외로움과 욕망을 담아낸다.

 

산장처럼 깊숙한 숲속에 놓여진 이적요의 집은 이적요 자신처럼 고적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속에 쌓여진 책들 속에 앉아있는 이적요의 모습은 마치 책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책이란 유적처럼 남는 것이 아닌가. 그 이적요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그 집에 어느 날 느닷없이 은교가 들어온다. 은교는 그 낡은 마룻바닥을 청소하고 서재 곳곳에 놓여진 찻잔들을 치우고, 먼지가 낀 유리창을 깨끗이 닦는다.

 

사실 은교의 노출이나 섹스보다 더 가슴을 살랑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낡은 이적요의 공간에 풋풋한 은교가 들어온다는 그 사실일 것이다. 이적요는 차츰 낡아져가는 자신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청춘'의 설렘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은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이적요의 옆에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서지우가 있다는 것은 이 사랑의 아이러니를 잘 대비시켜준다. 젊은 서지우와 은교가 서로의 몸을 탐하는 것은 '외로워서'이다. 젊은 그들은 육체의 욕망에 눈 멀어 사랑을 보지 못하고, 나이든 노구의 시인은 사랑을 느끼나 이미 늙어버렸다. 훗날 은교가 벽을 향해 등 돌리고 누워 있는 이적요에게 쏟아내는 그 눈물이 그토록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 등 돌림 하나가 거대한 시간의 장벽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은교>는 벗은 몸의 에로티시즘보다 그 생기발랄한 몸이 주는 생명력과 사멸해가는 몸의 비통함이 더 느껴지는 영화다. 극 중에 서지우가 이적요에게 "이건 사랑이 아니라 추문"이라고 얘기했을 때, 이적요가 분노하는 건 마치 이 영화에 대한 오독을 경계하는 말처럼 들린다. 스캔들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이 분명한 <은교>는 그래서 야하다기보다는 슬프다.

Posted by 더키앙
TAG , , 은교,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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