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의도적 설정보다는 자연스러운 발견으로

 

출연자들을 대거 교체한 SBS <룸메이트>는 적어도 인물구성만으로는 꽤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배종옥 같은 여배우가 자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룸메이트>의 유사가족을 좀 더 가족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써니의 사근사근함과 영지의 전혀 아이돌스럽지 않은 털털함, 새벽에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잭슨의 엉뚱함과 오타니 료헤이의 진지함이 잘 어우러진다. 또한 늙지 않는 방부박준형과 늘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이국주의 흥은 <룸메이트>의 셰어하우스를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다.

 

'룸메이트(사진출처:SBS)'

인물구성은 확실히 좋아졌다. 한 방을 쓰게 된 배종옥과 써니의 세대를 뛰어넘는 자매의 느낌이 궁금하고, 이제 막 아이돌로 활동하게 된 영지의 전혀 예능 조미료를 치지 않은 성장이 기대된다. 잭슨과 강준이 만들어가는 형제 같은 우정도 흥미롭고, 혼자 오랫동안 살아온 오타니 료헤이가 이 한국적인 가족 분위기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어갈 지도 대단히 궁금한 대목이다. 물론 늘 밝게만 보이는 박준형과 이국주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면이 <룸메이트> 같은 관찰카메라를 통해 포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만큼 우려스러움 또한 존재한다. 사실 <룸메이트> 시즌1 역시 출연자들은 저마다 충분한 다양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송가연의 남다른 가족사와 격투가로서의 면모도 그렇고, <룸메이트>의 엄마를 자처한 신성우, 출연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이소라, 의외의 흥을 가진 홍수현이나 늘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찬열도 그랬다. 하지만 시즌1은 이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많은 논란들이 발생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에 난항을 만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제작진의 실수라는 점이다. 관찰카메라라면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기획하거나 시키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행동들과 부딪침을 더 면밀하게 관찰해 거기서 디테일한 이야기를 풀어냈어야 그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1은 끊임없이 상황과 미션을 부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틀에 묶여 있었다. 괜히 출연자들이 점을 보러가고, 일상적으로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마당에서의 이불 빨래를 하는 등은 과한 연출의 느낌을 부가했다. 이렇게 되면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점은 시즌2에서도 여전히 보이고 있다. 즉 출연자들이 다 함께 모여 성북동 투어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갑자기 투어를 한다고 모여서 우 몰려다니는 모습은 절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 투어가 주는 정보적 재미는 물론 충분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재미보다 먼저 중요한 건 그런 투어가 발생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한두 명이 그런 투어가 있다는 걸 찾아내 여유 있는 시간을 통해 동네 한 바퀴를 체험하는 정도로 소소하게 그렸다면 의외의 정서적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 같이 모여서 뇌구조를 그려 넣고 거기에 자신의 관심사를 넣어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좀 더 빨리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조급증이 느껴진다. 처음 새로운 인물들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면 서먹한 순간들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서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거기서 조금씩 달라져 가는 인물관계를 서두르지 않고 보여줬다면 훨씬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룸메이트>는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는 관찰카메라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본질을 지켜내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낯선 이들이 함께 산다면 거기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데면데면한 관계라던가, 성격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던가, 지나친 흥도 부담으로 다가온다던가 하는 그런 자잘한 심리들을 그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이렇게 좋은 인물구성을 새롭게 갖게 된 <룸메이트>에게 남은 숙제다. 출연자들에게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대신 그들의 일상적 행동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그치지 말아야 한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그것이 <비정상회담>의 묘미다

 

요즘 대세로 불리는 조세호지만 <비정상회담>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터키 대표인 에네스 카야가 한국의 조직문화의 장단점에 대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때 조세호는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회식자리 상황극에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나선 조세호가 보여준 반전 춤 실력도 가나 대표 샘 오취리가 나서 의외의 춤 실력을 보여주자 잊혀져 버렸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조세호가 주목된 시간은 엉뚱하게도 춤을 추다 장운동이 과도하게 됐다며 중간에 화장실을 갔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런 조세호에 대해 메인 MC들이나 외국인 대표들이 그걸 언급해주는 모습은 없었다. 만일 지상파의 토크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자리를 비웠다 다시 온 조세호에 대한 토크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에서 그런 건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토크쇼의 주인공은 한국대표가 아니라 외국인대표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인 MC들인 전현무, 유세윤, 성시경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얘기하는 걸 시청자들이 그리 바라지 않는다는 걸 셀프 디스 코드로 언급해 웃음을 주었다. 메인 MC가 이 정도니 게스트는 오죽할까. 한국대표로 출연한 게스트지만 조세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건 처음 소개를 할 때뿐이었다. 이것은 조세호뿐만 아니라 이국주가 나왔을 때도 신해철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간에서는 <비정상회담>의 게스트 활용법이 잘못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성 토크쇼들의 틀로 <비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토크쇼를 재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비정상회담>에서 게스트는 그 날의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의 입장을 게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메인 MC들도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게스트가 상대적으로 잘 보일 수가 없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의 게스트가 가진 한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직까지 이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적응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기존 토크쇼들을 보면 게스트가 나와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때로는 개인기를 선보이는 것이 하나의 공식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금의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인가를 미지수다. 이미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의 홍보의 장이 되고 있는 지상파 토크쇼에 식상해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이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4% 시청률에 육박하고 동시간대 지상파 토크쇼들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 그 원동력이 사실 거기에 있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 신변잡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회식문화를 외국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또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문화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 시간을 더 할애한다. 메인 MC들은 사실상 이들의 이야기에 효과적인 추임새를 넣거나 리액션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비정상회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표 게스트들은 어떤 자세로 이 토크쇼에 임해야할까. 일단 스스로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그리고 그저 한국 대표로 거기 앉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국인 출연자들이 얘기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며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전형적인 토론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정상회담>의 다른 게스트 활용법은 여타의 지상파 토크쇼들이 참조할만한 일이다. 일단 연예인이 게스트로 섭외되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방송분량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정해진다. 하지만 이런 기대치 정도로는 무언가 의외의 이야기를 바라는 지금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와 의견을 원한다.

 

다양화된 사회는 온리 원(Only one)에서 원 오브 뎀(One of them)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것은 연예인처럼 과거 온리 원의 입장에 늘 있던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시선의 변화다. 하지만 많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의 소통방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비정상회담>은 그러한 달라진 소통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게스트가 묻힌다고? <비정상회담>은 오히려 그걸 즐기는 토크쇼다. 그리고 이것이 온리 원으로 출연하는 게스트에 대해 집착하는 여타의 토크쇼들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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