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프들은 어떻게 주말 예능의 메인이 됐을까

 

이 정도면 셰프들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실내에서나 실외에서나 음식이 등장하고 그 음식을 요리하는 셰프들이 등장한다.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 예능에 출연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였다면 최근에는 셰프들이 등장하는 게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이런 사정은 주말 예능도 예외가 아니다. <12>은 지난해 가을밥상특집으로 샘킴과 레이먼 킴이 출연해 대결을 벌인 바 있다. 이번에 샘 킴과 레이먼 킴은 각각 MBC <진짜사나이>KBS <12>로 대결을 벌이고 있다. 물론 <12> ‘주안상특집에는 레이먼 킴 이외에도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와 강레오 셰프가 출연했지만 최근 들어 주목받는 건 단연 레이먼 킴이다.

 

레이먼 킴은 SBS <정글의 법칙> 인도차이나 반도편에 출연해 이른바 정글 쿡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껏 정글에서 맛보다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어왔다면 레이먼 킴이 있는 정글에서는 즉석에서 얻은 식재료들로 화려한 정글세끼의 만찬이 매번 벌어진다. 조금은 거친 듯한 레이먼 킴의 요리 스타일은 정글과 잘 어우러지며 독특한 그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그가 <12>에 새로 투입돼서는 재료 구입비를 놓고 벌어지는 복불복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0원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에 있는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가 그 막걸리에 걸 맞는 주안상을 차리는 미션을 부여받은 출연자들. 재료 구입비가 하나도 없는 레이먼 킴은 막걸리를 팔아 재료를 사면 안 되냐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레이먼 킴이 그래도 요리를 하는데 있어서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준다면, 샘 킴은 훨씬 더 인간적인 면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그는 지난 <12> 가을 밥상 편에 출연했을 때도 레이먼 킴과는 달리 의외의 허당 이미지를 보여준 바 있다. 샘 킴의 허당 이미지는 <진짜사나이>라는 군대 상황 속에서 극대화되어 보여지고 있다.

 

특급 셰프로서의 위용은 온 데 간 데 없고 취사병으로 들어가서도 설거지를 도맡아 하며 선임들에게 갖은 구박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나름대로 셰프로서의 선택, 이를 테면 식감을 위해 양배추를 조금 넓게 쓰는 것 같은 그의 선택은 그러나 군대라는 공간에서는 오히려 핀잔을 듣는 이유가 되었다. 먹기 좋게 얇게 썰어야 한다는 것. 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레스토랑의 주방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보여지는 건 샘 킴의 인간적인 면모다. 셰프로서의 카리스마보다는 그런 걸 내려놓은 소박한 아저씨의 모습을 보여주는 샘 킴은 바로 그 권위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그만의 매력이 발견된다. 반면 레이먼 킴은 초반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하지만 특유의 진지함과 카리스마를 잃지 않고 마지막 반전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반되지만 각자의 매력이 확연히 달라지는 지점이다.

 

셰프들이 주말 예능을 장악하게 된 까닭은 최근 트렌드로 자리한 쿡방이 한 몫을 차지한다. 본래 음식이야 예능의 단골소재였지만 이제 그 음식을 단순히 먹는 것만이 아니라 요리하는 재미까지를 덧붙이게 된 것. 그러니 이를 수행해줄 셰프들의 등장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단지 요리만 잘한다고 예능에서의 활약을 보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레이먼 킴과 샘 킴은 그런 점에서 작금의 예능에 최적화된 인물들이다. 요리실력은 기본이고 그 위에 자신들만의 확고한 캐릭터까지 세워놓고 있으니 말이다.

 

지상파가 연예인 토크쇼에 연연할 때 <냉장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스튜디오물이다. 구성만으로 보면 전형적인 토크쇼 형태다. 매회 새로운 게스트가 출연하고 정형돈, 김성주 같은 고정 MC들이 있으며 8인의 쉐프들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들이 있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토크쇼 구성을 통해서도 <냉장고를 부탁해>가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비법은 뭘까.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그것은 같은 공간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완전히 다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걸 <냉장고를 부탁해>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토크쇼 형태로 게스트가 출연하지만 이야기가 괜한 연예인 신변잡기로 흐르지 않는 건 거기 함께 출연(?)하고 있는 냉장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게스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냉장고의 재료들에서 나온다.

 

이규한이 공개적으로 밝힌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냉장고를 부탁해>에 들어오면 냉장고 속 식재료 이야기로 이어진다. 몇 년 전 식재료가 나오면 거기서 이전 연애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뉘앙스를 정형돈이 풍기자 이규한이 긴장하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만의 음식을 통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잘 말해준다.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렌틸콩을 환약 먹듯이 먹어왔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나 부패해버린 양파를 김치로 알고 놔두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규한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어낼 수 있다. 냉장고 안의 재료들은 일종의 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유추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 재료들이 그리 특별하다기보다는 누군가의 냉장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일상적일 때 <냉장고를 부탁해>는 일종의 마법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이규한은 자신의 평범한 냉장고에서 홍석천이 만들어낸 렌틸콩 요리 털업 샐러드나 이연복 대가의 완소 짬뽕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점은 여기 출연하는 셰프들에게 연금술사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이고 최근 이들 셰프가 스타덤에 오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일상 속에서 마법 같은 특별함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음식을 통한 것이라면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들은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지니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음식은 15분이라는 제한시간을 둠으로써 프로그램에는 쇼적인 성격을 부여하고(허세 최연석 셰프의 현란한 동작과 이연복 대가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칼질을 떠올려 보라!) 또한 일반인들도 왠지 그 마법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셰프들의 등장은 이 프로그램이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벗어나 실용적인 느낌마저 부여한다. 실제로 여기 등장한 레시피들은 일반인들이 직접 시연해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양방향적인 소통체계에 얹어진 실용성은 이 프로그램이 정보적으로도 유용하다는 걸 말해준다.

 

이렇게 게스트와 셰프를 연결해 하나의 음식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자 메인 MC들의 역할 또한 여타의 토크쇼와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호들갑 콤비로 이미 정평이 난 정형돈과 김성주의 시너지는 게스트를 콕콕 찔러 요리(?)해버리는 정형돈과 셰프들의 요리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하듯 풀어내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김성주에 의해 활활 타오른다. 이들은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는 흔하디 흔한 토크쇼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버라이어티한 상차림이 이미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각자의 주석을 다는 토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냉장고를 부탁해>웰 메이드의 성공이다. 혹자는 최근 쿡방이라는 트렌드와 맞아 떨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소재나 기획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촘촘한 재미로 완성시켜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들 현장으로 나가는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토크쇼나 스튜디오물은 한 물 갔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스튜디오물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소재나 구성보다 그것을 어떻게 잘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것은 현재 고전하는 지상파 주중 예능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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