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이 이은 ‘비밀의 숲’ 이후 달라진 장르물

 

16부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tvN 주말드라마 <자백>의 종영에 이르러 돌아보면 이 드라마의 밀도와 완성도에 새삼 놀라게 된다. 곁가지 사건들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연결고리를 드러내고, 그 속에서 무관해 보였던 인물들이 과거사로 얽혀 있는 게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사건이 어느 요정에서 벌어졌던 국방비리로 인해 비롯된 총성으로 귀결된다. 거대한 한 게이트를 열기 위해 조금씩 사건을 파헤치고 어렵고 더뎌도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백>은 그 과정을 놀랍게도 한 호흡으로 담아냈다.

 

보통의 장르물의 경우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영화라면 한 사건을 다뤄도 되겠지만, 드라마는 적어도 16부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 사건으로 그걸 채우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사건들이 등장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이야기가 몇 회를 기점으로 뚝뚝 끊긴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이 확실한 캐릭터를 세우고 그렇게 끊어진 이야기를 이어붙이는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병렬적인 사건의 나열은 작품의 밀도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백>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벌어졌던 또 다른 사건들을 연결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블랙베어라는 차세대 헬기 도입에 대해 그 문제를 담은 문건을 작성한 차승후 중령이 대통령의 조카인 박시강(김영훈) 의원에게 우발적으로 총에 맞아 죽게 되고, 그 사건을 덮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추명근(문성근)과 오택진(송영창) 회장이 그 자리에 있던 최필수(최광일)에게 아들 최도현(준호)의 심장이식 수술을 대가로 살인범이 되도록 회유했던 것. 그 상황을 목격한 김선희는 이를 빌미로 추명근에게 돈을 요구하다 청부살해 당하고 당시 사건을 추적하던 진여사(남기애)의 아들 노선후 검사와 하유리(신현빈)의 아버지 또한 살해당한다.

 

즉 <자백>은 거대한 게이트와 그것을 감추기 위해 벌어진 또 다른 사건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초반 드라마는 저들이 감추기 위해 저지른 ‘연쇄살인’처럼 위장된 청부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시작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 사건들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무언가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걸 드러낸다. 사건 해결에 집중하던 시청자들이 ‘진상 규명’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끝까지 갈증을 느끼며 드라마를 들여다보게 만든 힘이 여기서 생겨났다.

 

법정물의 묘미와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담는 추리와 스릴러의 맛에 ‘비선실세’라는 그 단어만 들어도 실감하게 되는 현실인식과 공감을 넣어 <자백>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갖춘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사했다. 꽤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 이준호, 유재명, 신현빈, 남기애 같은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역시 명불허전의 문성근, 송영창 게다가 류경수, 윤경호 같은 악역들까지 빈틈없는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고, 이제는 믿고 보는 김철규 PD의 촘촘하고 섬세한 연출에 신예라고는 믿기지 않는 임희철 작가의 놀라운 대본이 삼박자를 이루며 <자백>이라는 명작을 탄생케 했다.

 

넓게 보면 <비밀의 숲> 이후 장르물들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을 풀어나가는 장르물에서, 이제는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풀어나가는 밀도 높은 장르물로 바뀌고 있는 것. <자백>은 이런 완성도 높은 시도가 충분히 가능하고, 또 그것이 복잡해 보여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앞으로도 이런 완성도, 밀도를 가진 장르물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기름진 멜로’, 멜로보다 복수극을 기대하는 까닭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가 한층 달달해졌다. 서풍(이준호)과 단새우(정려원)의 비밀연애가 본격화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네가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시쳇말로 ‘꿀이 떨어진다’. 두 사람의 멜로가 더더욱 달달하게 다가오는 건 둘 다 과거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서풍은 첫사랑이었던 석달희(차주영)를 그를 내쫓은 호텔 사장 용승룡(김사권)에게 빼앗겼고, 단새우는 아버지의 부도로 결혼의 단꿈도 깨져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한강다리 절망의 끝에서 처음 만나게 된 사이다. 죽고픈 마음까지 가진 단새우에게 마지막으로 포춘쿠키를 같이 먹자고 제안한 서풍은 그 때 쿠키 속에 들어있는 예언처럼 이미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헝그리웍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된 것. 이 과정에서 단새우에 대한 일편단심을 보이는 두칠성(장혁)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해졌다. 두칠성을 형처럼 생각하는 서풍은 그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려 했지만 때를 놓치고, 결국 두칠성은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기름진 멜로>는 드라마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그 멜로를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고 온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서풍과 단새우 그리고 두칠성 사이의 엇나간 사랑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서풍이 헝그리웍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진정혜(이미숙)가 단새우의 엄마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 마치 멜로의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다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도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기름진 멜로>에 대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멜로가 아니다. 애초에 호텔 중식당 ‘화룡점정’에서 쫓겨났던 서풍이 두칠성 건물의 중식당으로 오게 된 건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거대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화려한 중식당 앞에 초라하게 보이는 작은 중식당이 열리고, 소외됐던 인물들이 하나 둘 모여 그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축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기름진 멜로>는 호텔 사장인 용승룡의 계략으로 헝그리웍의 단체예약손님이 ‘화룡점정’으로 가게 되는 ‘갑질 상황’이 등장했다. 많은 인원의 음식을 준비했던 터라 그만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 용승룡은 코스 요리 가격을 대폭 할인해 줌으로써 자신들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헝그리웍을 짓밟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에 두칠성은 호텔의 리모델링을 하고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시위를 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서풍이 만든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해주며 ‘호텔 시위권’을 자신에게 팔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걸 통해 호텔에 반격을 가하려 하는 것. 과연 두칠성의 반격은 통하게 될까. 어쩌면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달달한 멜로보다는 거대 기업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서민들의 연대가 아닐까. 

짜장면을 만들지 않는 ‘화룡점정’과 짜장면으로 승부하는 ‘헝그리웍’. 사실 이 음식만으로도 그 자체로 가진 자들과 빼앗긴 자들 사이의 대결구도가 그려지는 게 <기름진 멜로>다. 최고급 호텔 중식당이기에 짜장면도 특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왕춘수(임원희)와 그래도 짜장면은 짜장면다워야 한다는 간호사 손님의 비아냥 섞인 혼잣말, 그리고 공사대금을 못받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부들의 마음까지 돌리게 만드는 맛좋은 서풍의 짜장면. 음식 하나로도 만들어지는 대결구도를 어째서 <기름진 멜로>는 중심적인 테마로 삼지 않을까. 달달한 멜로보다 시청자들이 더 기대하는 시원한 복수극을.(사진:SBS)

‘기름진 멜로’의 병맛, 재야고수들의 복수전은 성공할까

마치 주성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톤 앤 매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다가 조금씩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톤 앤 매너의 핵심은 희비극을 중국풍으로 버무려 놓았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비극적인 일들을 겪고 밑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배고픈 프라이팬’이라는 폐업 직전의 중국집에서 모여 자신들을 그렇게 밀어낸 세상에 대해 복수를 꾀한다.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는 그래서 마치 짜장면을 닮았다. 중국인들이 인천으로 들어와 터전을 잡으며 개발해낸 음식. 중국요리의 재료와 방식들을 가져왔지만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외식에 있어 국민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 중국요리지만 우리나라에서나 먹을 수 있는 짜장면처럼 여러 이색적인 재료들이 섞여 독특한 맛을 낸다. 

그 맛의 중심은 멋진 액션조차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병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두칠성(장혁)이다. ‘북두칠성’을 등짝에 문신으로 새겨 넣고 그를 따르는 감방동기들을 챙기는 인물. ‘빚과 그림자’라는 사채사무실을 내고 있는 깡패지만, 깡패짓 안하고 중국집 하나라도 내서 동생들을 살 수 있게 해주려 ‘배고픈 프라이팬’이라는 중국집을 열었다. 절권도를 배워서인지 장혁의 액션에 걸맞는 인물이지만, 그것보다 더 이 인물에서 주목되는 건 쓸데없이 폼 잡고 진지한데서 오히려 터지는 웃음이다.

그 중국집으로 길 건너편 호텔 중국집에 복수를 하기 위해 들어온 서풍(이준호)은 이 <기름진 멜로>라는 요리에 자꾸 입맛을 당기게 하는 인물이다. 호텔 중국집에서 쫓겨나고 그 호텔 사장에게 결혼식까지 한 여자친구를 빼앗긴 그는 이 작은 중국집을 일으켜 호텔 중국집으로 가는 손님들을 모두 끌어 모을 작정이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배고픈 프라이팬’에서 일하는 두칠성의 부하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세제로 프라이팬을 닦아 세제 섞인 맛을 내는 짜장면으로 호텔 사장 용승룡(김사권)에게 석달희(차주영) 앞에서 굴욕을 당한 그는 와신상담하듯 그가 버리고 간 짜장면을 먹는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달달함을 더해줄 인물로 단새우(정려원)가 이 ‘배고픈 프라이팬’으로 들어온다. 한때 잘 나갔던 재벌가 딸이지만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경제사범으로 검거되고 길바닥에 나앉았다. 짠내 나는 현실이지만 벌써부터 그를 둘러싼 서풍과 두칠성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서풍은 한강다리에서 포츈쿠키를 주며 단새우에게 다시 살 기운을 준 남자이고, 두칠성은 첫 눈에 단새우에게 반해 돈까지 선뜻 빌려준 남자다. 

하지만 이 <기름진 멜로>라는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은 아직도 더 남아있다. 잠깐 에필로그로 보여진 것이지만 새로운 직원을 구한다는 소리에 속속 등장하는 ‘재야고수들’이 그들이다. 이름에서부터 심상찮은 ‘채썰기의 달인’ 같은 채설자(박지영)가 조선족 사투리를 쓰며 등장했고, 역시 이름처럼 한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뚱뚱하고 다리를 저는 임걱정(태항호)이 나타났으며,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재벌가 사모님 진정혜(이미숙)가 합류했다. 

과연 이렇게 ‘배고픈 프라이팬’ 안으로 들어온 저마다의 맛을 지닌 인물들은 함께 어우러져 <기름진 멜로>라는 음식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지만 볼수록 중독되는 맛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 번 맛보면 언제든 그 맛을 다시 찾게 되는 짜장면처럼.(사진:SBS)

‘그사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먼저 보낸 사고 현장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할까.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문수(원진아)의 엄마 윤옥(윤유선)은 멀찍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 손이 떨렸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그에게 사고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 양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러니 그 떨리는 손에 애써 술병을 쥐고 의지했을 터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남편 하동철(안내상)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할까.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서 겨우 찾아낸 딸의 시신을 확인한 그는 못내 아내에게 그 마지막 모습을 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 확인하고 딸을 떠나보냈지만 아내인 윤옥은 그게 끝내 후회로 남았다. 그 마지막 얼굴을 못보고 떠나보낸 것이.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후회한다고 했다. 그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피해자의 가족은 그렇게 뭘 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회한 속에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사고는 저 밖에서 났고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지만 그 가족들마저 서로를 의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를 보는 것이 그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힘겹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픈 말들을 독하게 쏟아낸다. “참 속 편해 좋겠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멀쩡한 사람은 없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멀쩡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그 아픈 상처들이 계속 끄집어내질 것으로 알고 있으니. “자네 눈에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멀쩡해 보여? 이 사람아 자식 잃고 멀쩡한 부모가 어딨나. 그런 일을 당하고 멀쩡한 사람이 어딨냐고?” 하동철의 이 아픈 호통은 그래서 단지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많던 사고 피해자들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멀쩡한 건 없다. 

그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보내고 자신만 혼자 살아남은 문수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또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술에 빠져사는 엄마와 집 나와 가게를 하며 지내는 아빠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툭 던진 그 사고가 있던 날에 대한 회한 섞인 한 마디가 못내 그 상처를 드러내게 만든다. “그 날도 그래. 그렇게 연수랑 같이 있으라고...”

동생과 꼭 같이 있으라고 했던 엄마의 그 말은 동생을 먼저 보낸 문수에게는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 말은 비수처럼 문수의 상처를 헤집는다. 그래서 끝내 꺼내지 말아야할 말이지만 속 깊숙이 담겨져 있던 말이 튀어나온다. “같이 있었음 나도 죽었어. 그게 더 나았겠어? 아님 연수 대신 내가 죽었으면 했어?...그 날 나랑 연수 거기로 보낸 건 엄마야. 그럼 엄마가 미안해야지? 왜 자꾸 내가 미안하게 하는데?” 그는 그 긴 시간을 미안한 감정 속에 살아오며 자신의 아픔은 저 밑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거였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그리는 ‘사랑’은 어쩌면 강두(이준호)와 문수와의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게다. 그건 어쩌면 문수네 가족 이야기를 포함하는 것일 게다. 가족이라면 그냥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관계지만, 사고는 이 가족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고 현장에서 먼저 보낸 가족의 일원이 남긴 상처가 피할 수 없는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꺼내놓는 이 남은 가족들의 상처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계속되는 일일 것이다. 결코 우리도 잊어서는 안 되는.(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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