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왕좌에 누가 앉든 부족함이 없다는 건

 

애초에 이렇게 쟁쟁한 후보들이 등장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제 본격적인 트로트 ‘왕좌의 게임’이 시작됐다. TV조선 <미스터트롯> 준결승에 오른 14인의 면면을 보면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저마다 색깔이 다른데다 만만찮은 실력자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14인 중에서 역시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는 건 프로가수들이다. 임영웅, 영탁, 장민호는 물론이고 신동부로 소개된 김희재, 김수찬도 프로가수들이다. 여기에 이찬원 같은 경우 대학생이지만 신동부로 소개됐을 만큼 프로가수라 볼 수 있고, 정동원 역시 나이는 어리지만 현역 활동 중인 트로트가수다.

 

장르만 다를 뿐 가수나 다름없는 이들도 만만찮다. ‘파파로티’로 이름 난 테너 김호중이 그렇고 뮤지컬가수 신인선, 다양한 오디션에 출연했을 정도로 모델이자 가수로 활동해온 류지광, 국악인 강태관, 아이돌그룹 로미도의 메인보컬 황윤성 그리고 태권 트롯을 선보인 나태주도 영화배우이자 가수가 직업이다. 방송 전까지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김경민만 그 직업이 다를 뿐이다.

 

이처럼 준결승에 올라온 14인은 저마다 자기만의 음악적 역량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인물들이다. 게다가 갈수록 더해가는 오디션의 긴장감은 확실한 왕좌의 주인을 예측하기 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김호중 같은 경우, 애초 막강하고 안정적인 무대로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거라 여겨졌지만, 팀 미션 2차전 에이스 전에서 의외로 긴장하고 감정이 올라와 음정이 불안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반면 인기투표 순위 1위를 다투고 있는 임영웅은 안정적이면서도 능수능란한 가창력으로 정통 트로트의 맛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동원처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려버리는 타고난 트로트 신동이 어떤 반전의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영탁의 탁배기 가창과 김희재의 끼 넘치는 무대는 물론이고, 매번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무대를 선사해 ‘신인선한 아이디어’라는 말을 만들고 있는 신인선이나, ‘진또배기’를 특유의 흥 넘치는 민요가락처럼 불러내는 청국장 보이스 이찬원도 주목할 만하다. 트로트계의 BTS로 불리며 남다른 경륜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장민호나 댄스가 돋보이는 흥 넘치는 끼쟁이 김수찬도 만만찮다.

 

물론 준결승과 결승에서 어떤 변수가 생겨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후보들의 면면으로 그 가능성과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임영웅의 경우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가장 걸맞는 정통 트로트를 구사하는 인물로서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볼 수 있고, 김호중의 경우는 트로트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차원에서 충분한 우승 후보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말할 수 있다.

 

또 이찬원 같은 젊지만 확실한 자기 색깔과 민요가락처럼 흥 넘치게 풀어내는 트로트 스타일이나 정동원처럼 나이는 어려도 정통 트로트의 맛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는 신동 같은 인물들은 트로트의 신세대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후보들이다. 한 마디로 그 어느 누구를 딱 하나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14인 모두가 색다른 트로트의 맛을 선보이며 트로트라는 장르의 저변을 넓히는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승과 상관없이 왕관을 씌워주고픈 마음이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결과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일 것이다.(사진:TV조선)

트로트의 진가 보여준 ‘미스터트롯’, 패밀리가 떴다

 

마치 인생 전체를 담아낸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에 이어진 노래 한 곡 한 곡이 우리네 삶의 희노애락을 담았다. TV조선 <미스터트롯>에 기부금 팀미션으로 김호중이 이찬원, 고재근, 정동원과 함께 꾸린 팀 ‘패밀리가 떴다’는 그 날 무대의 주제를 ‘청춘’으로 잡았다. 10대의 정동원, 20대 이찬원, 30대 김호중과 40대 고재근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갖춘 이들은 고민 끝에 정동원이 낸 ‘청춘’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무대를 구성했다.

 

이 날 무대가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 건 정동원이 조부상을 당하는 비보가 공연 전 보여졌기 때문이다. 정동원은 <미스터트롯>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TV에 나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라고 한 바 있다. 이제 열세 살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 정동원을 위로해주기 위해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조문을 했다. 먼저 찾아온 ‘패밀리가 떴다’팀은 물론이고 다른 출연자들도 무려 6시간을 달려 하동에 있는 빈소를 찾았다.

 

뭉클했던 건 이들이 정동원과 나누는 대화 속에 담겨진 따뜻함이었다. 슬프지 않냐고 묻는 남승민에게 슬픈 데 참고 있다는 정동원은 울면 할아버지가 더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장민호와 영탁은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보다 백 배는 응원해주실 거라며 이번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해주었다. 장민호는 동원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촌들이 엄청 응원할게 동원이. 끝까지. 동원이 다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좋지. 동원이 스무 살 넘을 때까지 삼촌들이 응원해줄게. 그 뒤로는 네가 아마 우리를 지켜줘야 될 거야.”

 

한 사람의 생의 끝자락을 들여다본 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들이 무대에 올라 오프닝으로 부른 ‘백세인생’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 박혔다.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하는 그 가사가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정동원이 부르는 김창완의 ‘청춘’은 열세 살 감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연한 느낌마저 주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구슬픔이라니.

 

‘고장난 벽시계’는 고장도 없는 세월의 야속함을 경쾌한 트로트 리듬으로 전했다. 슬픔이나 비감을 오히려 한바탕 흥으로 풀어내는 트로트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다함께 차차차’ 역시 근심 따위 훌훌 털어놓고 한 바탕 놀아보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걸 노래를 통해 전해주었다. 우리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청춘을 예찬하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 역시.

 

하지만 역시 압권은 엔딩으로 부른 ‘희망가’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듯한 헛헛함과 쓸쓸함 그리고 이를 관조하듯 긍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정동원이 ‘희망가’를 전하며 그 무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김호중의 테너와 트로트 창법을 넘나드는 목소리에 빠져들고, 진또배기로 한 바탕 한을 흥으로 바꿔내는 이찬원의 노래는 우리네 민요가락이 가진 새삼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록커답게 콕콕 찔러대는 고음을 선사하는 고재근에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슬픔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정동원까지 그 4인4색의 목소리 또한 우리네 인생의 사계처럼 다채로웠다.

 

이 무대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담아냈듯이 우리네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한과 흥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트로트의 진가가 아닐까. 장윤정 마스터가 정동원에 해준 말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환경 때문에 슬픔이 자꾸 많아지다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한이라는 게 생기고, 근데 아이한테 한이라는 표현을 하는 데는 미안함도 있고 그렇긴 한데 그런 아이들이 노래로 위로를 받고 관객의 박수를 받아서 치유를 할 수 있다면 동원이가 계속 그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기회를 계속해서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사진:TV조선)

아이돌, 테너, 록커, 신동...‘미스터트롯’의 블랙홀 같은 퓨전

 

이 정도면 트로트의 블랙홀이 아닐까 싶다. 첫 회부터 아이들의 걸쭉한 트로트에 마술, 1인2역, 태권도 등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킨 트로트는 물론이고 정통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트로트의 세계를 보여주며 12.5%(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TV조선 <미스터트롯>.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회는 무려 17.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20% 시청률을 넘기는 건 시간문제라고 보인다.

 

2회에는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다 트로트에 도전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 특이한 삶이 영화화되기도 했던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 같은 테너가 트로트에 도전하고, SBS <스타킹>에서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던 김희재와 이찬원과 김수찬, 양지원 같은 이미 유명한 트로트 신동들이 무대를 꽉 채웠다. 물론 아이돌에서 발라드를 거쳐 트로트까지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온 장민호에, MBC 공채 개그맨으로 크론병 수술까지 받고도 혼신의 무대를 보여준 영기 같은 인물도 있었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이제는 더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것이 편견이라는 걸 <미스터트롯>은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도전으로 깨고 있고, 젊은 출연자들의 면면만으로도 납득시키고 있다. 이들은 자기가 해왔던 분야의 특장점을 가져와 트로트와 절묘하게 엮어낸 무대를 보여줬다.

 

그룹 A6P의 김중연이나 군복을 입고 무대에 선 그룹 아시즈비의 최정훈, 로미오 황윤성 같은 아이돌부는 아이돌 특유의 절도 있고 각 잡힌 퍼포먼스에 끼가 넘치는 표정 연기까지 더해 트로트 실력을 뽐냈고, “강하늘이 제1호 팬”이라며 뮤지컬을 했다는 추혁진은 뮤지컬적인 무대 구성을 더한 무대를 선사했다. 또 김준수와 똑 닮은 목소리를 가진 레드애플 김도진 역시 애절한 보이스로 노래를 소화해내 김준수의 찬사를 받았다.

 

고딩 파바로티로 불리는 김호중은 굵직한 테너로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도대체 저런 성악으로 어떻게 트로트를 할 수 있을까 의심됐지만, 진성의 ‘태클을 걸지 마’를 완벽한 트로트 창법으로 불러내 진성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트로트 창법을 쓰면서도 고음에서는 특유의 성악 창법을 활용해 무대를 더 꽉 차게 만들었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신동으로 탄생했던 울산 이미자 김희재, 리틀 남진 김수찬, 대구 조영남 이찬원, 양지원 등은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아온 만큼 너무나 안정적인 무대를 구사해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이밖에도 록커로 유명한 Y2K 고재근은 록 창법에 어울리는 김상배의 ‘안돼요 안돼’를 불러 록과 트로트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무대를 선사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다채로운 인물들이 트로트와 어우러질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트로트라는 장르가 가진 특징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즉 우리네 정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트로트라는 감성은 그만큼 타 장르들과도 쉽게 접목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분야에서 실패를 맛보거나 불운을 맛본 이들이 트로트라는 장르를 통해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게 해준 <미스터트롯>의 무대 그 자체다. 그 무대가 있어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이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었던 것. <미스터트롯>은 그 프로그램의 존재만으로도 트로트의 신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사진:TV조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