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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현대물보다 사극에서 빛나는 이유

멜로가 사극과 바람이 났다. 전통적으로 현대물과 조우하던 멜로드라마는 좀처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통 멜로의 부활을 예고했던 ‘못된 사랑’은 출연진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설정과 스토리로 오히려 ‘못된 드라마’라는 오명을 쓰고있고, ‘불한당’은 애초에 기획했던 휴먼드라마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이면서 여전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대물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멜로는 오히려 사극 속에서 더 빛나고 있다. ‘이산’의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 그리고 효의왕후(박은혜)의 삼각 멜로가 그렇고,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강지환)과 허이녹(성유리) 그리고 이창휘(장근석)의 삼각 멜로가 그렇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현대물에서 보여지는 멜로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사극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멜로드라마는 왜 늘 식상하다 욕먹나
멜로드라마는 그 성격상 사랑을 중심에 두고 그 빗나감과 마주침을 연속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극을 발전시켜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 속에 웃음과 눈물을 교차시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감지해버린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그 상황을 처음부터 만들어가거나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못된 사랑’의 처음 1,2회는 이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나인정(이요원)의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 이 2회분에는 사실상 작품 전체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단서들이 놓여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부분이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보여졌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 예측된 흐름 위에 새로운 어떤 틀이 마련되지 않고 예측한 대로 흘러갔을 때, 드라마는 식상한 것이 되어버린다. ‘못된 사랑’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이런 문제는 대부분의 멜로가 가미된 현대물들이 안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확보한 ‘뉴하트’같은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멜로가 이미 의학드라마 속 멜로의 전통 속에서 익숙한 구도이기 때문에 ‘뉴하트’는 긴박한 병원이야기가 돌아갈 때는 참신함을 느끼다가(물론 이것이 ‘뉴하트’의 경우는 익숙한 스토리가 많다), 멜로로 돌아올 때는 무언가 축축 쳐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멜로와 전문직의 봉합이 이루어졌을 때 ‘무늬만 전문직’이란 비아냥이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전문직의 디테일을 잘 못 살려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멜로 또한 천편일률적인 구도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사극 속의 멜로가 다른 이유
하지만 이러한 멜로도 사극을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몇 가지 제한점이 생겨난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 자체로는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의 인식 자체가 사극은 역사적인 이야기의 재미를 가진 드라마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양념이 될지언정 본 재료는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사극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제한점으로 인해 사극의 멜로는 스토리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산’의 성송연과 이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이를 정확하게 잘 보여준다. 이 둘은 신분상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보여지는 것들은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사건 속에서 인물의 행동으로 처리된다. 이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미거한 힘이지만 그 일을 해결하려 성송연이 뛰어다닐 때 그 멜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한 성송연이 이국 땅으로 떠났을 때, 이산이 말을 달려 그녀를 쫓아간다거나, 그 먼 길을 오로지 이산만을 생각하며 걷는 성송연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사랑의 강도를 전한다. 그 둘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멜로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막상 만난다 하더라도 신분상의 차이가 있기에 하는 대사 또한 우회적이다. 성송연이 돌아와 죽을 고비를 넘겨 깨어났을 때, 이산이 그녀에게 말하는 “네가 가고 나는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더냐”는 대사는 직설어법이 아닌 간접어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쾌도 홍길동’에서 홍길동과 허이녹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코믹이라는 장르적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향해 애정행각을 벌이는 낯간지러운 대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홍길동이 허이녹에게 ‘멍청이’이라고 말할 때, 먼 길 떠나는 길에 어머님의 무덤가 흙을 조잡하게 수놓은 주머니에 허이녹이 퍼담아 줄 때 그 사랑의 마음이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사극이 멜로를 제대로 품어줄 수 있는 것은 멜로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운명적인 사랑이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극은 그 시점을 과거로 돌려 운명적 사랑의 시대에 맞춰준다. 물론 지금의 가치에는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사극이니까’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멜로, 그 진화의 길들
이러한 사극과 멜로가 만나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멜로드라마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운명적인 사랑에 호소하는 순전한 멜로드라마에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멜로드라마는 그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타 장르와 몸을 섞는 실험이 필요하며 그것은 사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면 이것은 사극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멜로드라마가 현대물로서 진화의 몸부림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이른바 휴먼드라마이다. 작년 ‘고맙습니다’가 그 첫 번째 길을 열었고, 그 이후 ‘인순이는 예쁘다’가 그 계보를 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불한당’ 역시 휴먼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그 진화의 계보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휴먼드라마가 가진 가능성은 멜로드라마의 구도가 가진 남과 여의 만남을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확장시켜나간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의 영신(공효진)과 기서, 그리고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김현주)와 상우(김민준)의 만남은 멜로드라마로서의 남녀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몰이해와 편견을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멜로드라마는 미스테리와 몸을 섞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사랑을 넘어 사람을 포착하는 멜로드라마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극이 끝없이 진화의 길을 걸어오는 것처럼, 장르드라마가 늘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는 것처럼 이제 멜로드라마도 변화하지 않으면, 실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이 장르적인 퓨전이든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식이든지 간에 분명한 점은 멜로드라마도 진화해야 산다는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가수 인순이, 극중 박인순 그리고 모두의 인순이

편견을 넘어 날아간 거위, 인순이
그녀는 혼혈아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는 그녀를 냉대했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그녀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 고등학교는 그녀의 꿈이었다. 노래를 한다는 것도 그 당시엔 딴따라라 불리는 또 하나의 비아냥이었다. 피부색, 인종, 학력, 직업. 그녀는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든 편견을 다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노래가 있었다. 때론 아픔을 달래주고 때론 그 아픈 마음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노래. 그녀는 노래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세상에 날려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편견으로 가득한 이 사회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한 것이다. 혼혈아가 아니고, 못 배운 중졸 혹은 딴따라가 아닌 인순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그녀의 마음이 담긴 노래는 세상의 편견을 녹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부른 ‘거위의 꿈’은 10년 전, 이적이 만들고 불렀던 곡이지만, 긴 시간을 돌아 노래 주인을 찾아왔고, 덕지덕지 편견의 족쇄에 묶인 채 날지 못했던 거위는 세상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그녀가 날자 세상 저편에서 푸드득하고 변화의 날갯짓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왔다.

전과자도 스타도 아닌 자기 이름 박인순
같은 이름을 가진 KBS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인순이는 전과자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친구를 죽였다는 죄로(물론 후에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교도소에도 갔다. 긴 수감생활 끝에 수갑을 벗고 사회에 나왔지만 사회는 그 수갑을 벗겨주지 않았다. 엄마도 없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정붙일 곳 없는 처지에 직업마저도 가질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던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부른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상우다.

상우를 통해 다시 살게된 인순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났던 엄마를 다시 만나 새 삶을 시작하지만 편견은 바깥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엄마조차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선택하려던 자살. 그 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플랫폼 밑으로 떨어진 취객을 구하게된 인순이는 순식간에 ‘지하철녀’란 이름으로 스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순이가 불려지길 원하는 이름은 전과자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그저 자기 이름 박인순일 뿐이다.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 ‘거위의 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이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지하철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박인순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부를 때이다. 노래는 형편없다 못해 방송사고 수준. 짤막하게 부르고 끝냈어야 할 그 노래를 그녀는 끝까지 불러버린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만’ 끝까지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노래부르게 했을까.

이 ‘나도 모르게 그만’은 그러나 드라마 속 음치인 박인순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그녀, 가수 인순이에게서도 벌어졌다. 지난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의 일이다. 조금은 피곤한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곤 시작된 ‘거위의 꿈’.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꼈을 것이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드라마 속 박인순을 엉망이지만 끝까지 노래하게 한 것도, 가수 인순이가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 노래를 하다 끝내 음정을 놓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도 모두 그 ‘거위의 꿈’이 전하는 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찢겨지고 남루해도 보물처럼 간직했던 꿈, 누군가 뜻 모를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던 꿈, 이미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헛된 것이라고, 독이 될 뿐이라고 말하던 꿈. 그 꿈 하나 부여잡고, 벽처럼 서 있는 편견 가득한 무거운 세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순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또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려 살아가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꿈은 멀고 현실은 너무나 무겁기에 우리는 종종 자격지심과 우월감으로 ‘꿈을 가진 나’를 버리려 한다. 그 나를 폄하하거나 과장하려 한다. 그럴 때면 한번쯤 자신으로 돌아와 남루한 실력이나마 자신만의 ‘거위의 꿈’을 불러보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순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위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사보 '원우'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자격지심과 우월감, 그리고 나 자신

인순이(김현주)는 플랫폼 앞에서 망설인다. 그녀는 전과자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그네들 말로 별을 달았다. 복역하고 나와서도 그 별은 그녀에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그녀는 “앙심품지 말라”는 주인의 말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다. 별을 단 여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그녀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다. 그러니 그녀가 선택하려는 것은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전과자라는 편견에 가려 이 세상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았던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우(김민준)다. 유상우. 어렸을 때 둘도 없던 친구.

플랫폼으로 뛰어들 운명을 막아준 상우의 부름으로 인순이는 그래도 다시 살아보겠다 마음  먹는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전과자란 낙인이 붙기 이전의 기억으로의 회귀다.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엄마도 찾게 되고 상우와 다시 만나게도 되지만 편견은 저 바깥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순이를 코디라 소개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태리로 유학을 보내버린다. 상우는 동료들에게 인순이가 영국의 왕립디자인스쿨을 나왔다며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엄마는 전과사실이 밝혀지자 이유를 묻기는커녕 ‘남부끄러운’ 자신의 심정만 토로한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별을 단 전과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찬가지. 그래서 그녀는 다시 플랫폼에 선다.

그런데 그 순간, 인순이는 또 누군가의 부름을 받는다. 그녀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떨어진 취객을 살리기 위해서 플랫폼을 뛰어내린다. 그리고 그 사건은 별을 단 전과자를 ‘지하철녀’라는 새로운 이름의 별(스타)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그녀에게 벌어진 두 번째 기적이지만 그 기적 또한 그녀가 바라던 일은 아니다. 인순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자신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불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엄마의 부름에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을 보며 간절히 원했던 것. 사회가 전과자라는 별을 달아 그녀를 부를 때 진정으로 듣고 싶었던 것. 엄마가 연극배우 이선영의 딸로서 소개할 때 진정으로 소개되고 싶었던 것. 또한 어울리지 않는 유명인이라는 껍데기로 불릴 때 돌아가고 싶었던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인순이는 예쁘다’는 전과자, 지하철녀처럼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지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 박인순으로 불려지는 과정을 찾아가는 드라마다. 인순이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서 살아간다. 인순의 엄마인 선영은 유명인이라는 허울 속에 살아가고, 그녀를 영원한 팬으로서 추앙하는 상우의 아버지 병국은 책임으로만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만나면서 거기에는 어떤 가능성이 피어난다. 선물을 주겠다는 병국의 말에 물질적인 어떤 것을 기대했던 선영이 막상 병국이 가져온 붕어빵을 먹는 장면은 그들이 서로를 만나면서 자기 자신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인순과 상우의 관계 역시 자격지심과 우월감으로 극과 극을 대변되면서 그 간극을 좁혀나간다. 따라서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곳은 자격지심과 우월감을 모두 훌훌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으로서 서로를 만나는 그 지점이다. 이것은 사랑이 가진 가능성이다. 진정한 사랑은 허울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라는 전언이다. 별을 달거나 별이 되거나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불려지는 인순이처럼 수많은 나 아닌 나의 모습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그 무엇도 아닌 자신으로서 인정하면서 예쁘다고 말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으로서 가능하다는 말을 인순이는 주문처럼 말하고 있다. “괜찮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특별한 존재야.”라고.

Posted by 더키앙

카멜레온 같은 그들, 연기변신의 끝은 어디?

연기자의 연기변신은 놀라울 것 없는 의무사항이다. 한 가지 작품만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거나 배우가 아닌 스타만을 꿈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연기자라는 말에 제대로 걸맞는 배우들이 있다. ‘포도밭 그 사나이’의 순박한 시골청년에서, ‘왕과 나’의 내시,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끔찍한 살인자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오만석, 늘 바른 이미지로만 보였지만 곽경택 감독의 ‘사랑’에서 소름끼치는 건달역으로 그리고 다시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번듯한 기자로 변신한 김민준, 그리고 ‘얼렁뚱땅 흥신소’의 마음 따뜻한 건달역에서 ‘세븐데이즈’의 껄렁한 비리형사로 변신한 박희순이 그들이다.

광기 어린 눈빛과 순박함 사이, 오만석
오만석이 ‘포도밭 그 사나이’의 그 사나이 역할을 맡았다고 했을 때, 이미 그는 연기 변신의 또 한 발을 내딛는 셈이었다. 그는 일찍이 ‘왕의 남자’의 원작이었던 연극 ‘이’에서 왕의 남자인 공길 역으로 알려져 있었고, 가끔은 연산 역할을 할 정도로 변신의 귀재였다. 조승우의 광기 어린 연기로 소문났던 뮤지컬 ‘헤드윅’에서 조승우 대신 헤드윅 역할을 맡아서 그만의 색깔을 덧입혀 ‘조드윅’에 이어 ‘오드윅’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니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의 시골청년 장택기는 그에게는 좀 심심한 역할이었다.

오만석의 연기 스펙트럼은 광기와 순박함을 오가는 그의 이미지에서 나온다. 그의 눈빛은 순박한 시골청년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강렬한 광기를 뿜어낸다. 그러니 순박한 청년과 내시로서의 광기를 보여줘야 하는 ‘왕과 나’의 김처선 역할은 정확히 그의 연기 스펙트럼과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최근 개봉한 영화 ‘우리동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가 맡은 경주는 살인자이면서도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형사 재신(이선균)과 우정을 나누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이 극과 극을 오가는 눈빛은 그의 앞으로의 연기변신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반듯함 속에 숨겨진 막가는 열정, 김민준
곽경택 감독의 ‘사랑’을 다 보고서 엔딩 크레딧에 오르는 김민준이라는 이름을 본 많은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김민준이 어디에 나왔다는 거야 하고 생각할 즈음, 영화 속 소름끼치도록 악독했던 치권이란 건달이 그였다는 걸 알고 진짜 소름이 돋던 기억이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건욱이나, ‘썸데이’의 진표, ‘프라하의 연인’의 지영우 같은 댄디한 이미지를 가진 반듯함 속에 어디 그런 갈 데까지 가보는 막가는 열정이 숨겨져 있었는지 모두들 의아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찬히 떠올려보면 김민준은 늘 그렇게 반듯한 인물로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다모’에서 그가 맡았던 장성백이란 캐릭터는 그 밑바닥에 잡초 같은 질깃질깃한 근성을 숨겨둔 인물이었고 ‘강력3반’의 김홍주는 기막히게 범죄의 냄새를 맡는 초보형사로 반듯함과는 역시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반듯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었지 그 자신은 아니었다. 현실은 그를 다시 ‘인순이는 예쁘다’의 유상우로 앉혔지만 ‘사랑’에서 보여준 풀어진 눈빛의 김민준은 반듯함 하나만으로는 아까운 배우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타고난 복합 캐릭터의 연기자, 박희순
이윤기 감독의 ‘러브 토크’에서 박희순은 상처 입은 영혼의 소유자, 지석 역을 맡아 감정이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우수에 찬 듯한 타고난 눈빛은 그다지 연기를 하지 않아도 지석 그 자체가 될만했다. 하지만 그 뿐, 그것은 진짜 박희순의 진가가 아니었다. 그는 사실 초창기부터 조폭 같은 악역으로 주로 등장했다. 특히 영화 ‘가족’에서 보여준 연기는 건달의 이미지를 그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그의 진가는 이 두 이질적인 요소, 즉 악역과 우수의 눈빛이 만났던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흥신소 사람들과 대적관계에 서 있는 건달이지만 희경(예지원)을 사랑하고 치매를 앓는 노모를 가진 아픔을 동시에 보여주는 백민철이란 캐릭터는 그에게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100% 드러내게 해주었다.

그가 가끔씩 보여주는 우수에 찬 눈빛은 건달 특유의 건들거림과 부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박희순은 이것을 하나로 잘 버무려 미워할 수 없는 건달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이 따뜻한 건달이라면, ‘세븐데이즈’의 김성열은 따뜻한 비리경찰인 식이다. 그 복합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오랜 연극과 뮤지컬 공연의 공력이다. 그는 극단 목화 출신으로 연출자 오태석 밑에서 바닥부터 기며 연극과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어온 연기자다. 뮤지컬 ‘그리스’나 ‘록키 호러 픽쳐쇼’는 그의 가능성을 입증시킨 작품들이다. 불혹을 향해 달려가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때론 소년 같은 느낌을 주는 이미지는 앞으로 더 복잡한 성격의 연기가 가능하리란 것을 예측하게 한다.

오만석, 김민준, 박희순의 연기변신에 대한 찬사는 이 시대 대중들이 연기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를 명확히 말해준다. 대중들은 카멜레온처럼 끝없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는 진정한 연기자를 원하지, 한 가지 굳어진 이미지로 스타가 되려는 연예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의 복잡한 삶 속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들은, 이들의 다중적인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든다. 어느 모로 보나 연기자들의 연기변신은 시대적인 요청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혹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다양한 연기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그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Posted by 더키앙

인순이와 KBS드라마, 그리고 표민수

“난 사랑스럽고 예쁘고 훌륭해, 난 특별한 존재야.” 인순이(김현주)는 자기최면을 걸듯 이 말을 되뇐다. 하지만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온 인순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급기야 그녀는 이런 세상에서 꺼져주겠다며 달려오는 전철로 뛰어들려 한다. 아마도 인순이가 처한 상황은 양대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3%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라진 ‘사육신’의 바통을 이어받은 표민수 PD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 KBS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화려한 볼거리와 수백 억에 달하는 물량이 더 통하는 시대, ‘인순이는 예쁘다’는 그 처한 상황을 인정하면서 이제 ‘진심’으로 그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 전철로 뛰어들려는 인순이를 다시 삶으로 끌어내준 유상우(김민준)처럼 표민수 PD는 과연 KBS가 처한 이 어려운 상황을 다시 제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 유독 관심이 가게 되는 이유다.

단 첫 회를 끝낸 상황, 그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좋은 드라마가 나올 거라는 예감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서 저 ‘고맙습니다’가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순이는 예쁘다’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사람이 아름답다’는 그 한 마디 진심을 전하려는 드라마다. 실제 가수 인순이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녀의 인간다움과 열정이 아름답다는 뜻이지, 외모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드라마는 극중 주인공인 재소자 출신 인순이가 인간으로서 아름답다는 것을 설파하려 한다.

여러모로 드라마는 표민수 PD의 지난 작품인 ‘넌 어느 별에서 왔니’가 가진 코드들을 활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설정도 그렇고, 멜로 라인에 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부류의 남녀를 세우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드라마의 스타일은 조금 더 진지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물론 김현주라는 연기자의 이미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발랄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드라마는 좀더 그녀의 내면심리 쪽에 무게를 둔다.

여기서 유상우는 저 ‘고맙습니다’에서 민기서(장혁)가 영신(공효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분명 재소자 출신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을 대변한다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시청자분들은 유상우의 눈을 통해 인순이를 바라보고, 편견을 넘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체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편견 앞에 선 인순이가 그걸 뛰어넘는 모습이 되겠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해결로 드러날지는 의문이다. 궁극의 해결은 실제 인순이의 성공이 아니더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아름답다 여기는 그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도 잔인한 시청률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수목의 밤에 실제적인 성공의 모습을 보일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 스스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임을 자처할 수 있을 때, 시청률이란 잣대는 무색해질 것이 틀림없다. 시청률이란 칼날 앞에서 유난히 마니아 드라마를 많이 낸 KBS 드라마가 표민수표 진심을 통해 세상과 진정한 말을 걸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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