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2', 결국 검경대결이 아닌 진실과 진영의 대결

 

"뭘 얼마나 무마시켜 주신 겁니까? 나가서 기자들 만나셔야죠. 전국의 경찰 대표해서 협의회에 나온, 그것도 그중에서 가장 고위급인 국장이 부당수사를 하다 고소당했다 널리 알리셔야죠. 부장님께서는 고소를 막을 게 아니라 부추기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수사권 조정 문제는 우리 검찰한테 영토문제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거라고요. 국장이 고소당하면 협의회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거고 그럼 그 영토문제는 가라앉는 거 아닙니까?"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2>에서 황시목(조승우)은 우태하(최무성) 부장검사가 남재익(김귀선) 의원이 경찰청 소속 수사국장 신재용(이해영)을 표적수사 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에 초조해 하는 모습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사권을 두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검경협의회에서 경찰을 대표해 나온 가장 고위급 국장이 바로 신재용이었다. 그러니 그가 고소당했다는 사실은 황시목의 지적처럼 검찰 측이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우태하가 급히 나서서 남재익 의원을 만나 고소를 막으려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남재익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수사권을 두고 검경협의회에서 결론이 나더라도 국회 법안 통과 여부에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검찰과 경찰은 어떻게든 남재익 의원을 압박하거나 포섭함으로써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 싸움의 핵심적 사안은 남재익 의원이 시중은행에 아들의 취업 청탁을 한 비리였다.

 

무혐의 판결이 난 사건이었지만 남 의원은 자신이 검찰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표적수사를 받았다고 고소했고 결국 경찰청 정보부장 최빛(전혜진)은 남의원의 약점을 꺼내들었다. 그 약점이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우태하가 이렇게 남 의원을 찾아와 그 약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한 건 바로 그 사건에 무혐의 판결을 낸 이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시목은 그 사실을 간파했다.

 

"아예 정지시킬 수도 있겠네요. 고소가 진행돼서 조사를 새롭게 시작하다보니 이번엔 검찰측 부장까지 의원 비리를 덮어준 게 드러나서 검경협의회가 엎어진다. 불명예스럽지만 자연스럽게요. 부장님은 남재익 의원 무혐의에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그게 고소당한 수사국장은 바로 안 튀어 와도 부장님은 즉시 오셨어야 했던 이유구요."

 

황시목의 일침이 따끔하게 느껴진 건, 그것이 이른바 진영 논리의 음험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허울과 명분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개인의 이익과 욕망 심지어는 비리를 덮는 것이 그 진짜 얼굴인 진영 논리. 우태하는 검경의 대결을 앞세워 검찰의 이익을 위해 나서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비리를 감추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검경 대결이라는 진영 논리에 빠지게 되면 그 사안의 실체인 남 의원의 비리와 그 비리를 덮어진 검찰의 비리 사실은 저 뒤편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한여진(배두나)이 세곡지구대 사건을 점점 수사해가며 갖게 되는 아이러니에서도 드러난다. 한여진은 그 사건이 한 경찰의 자살이어야 경찰 측에 유리하게 되는 상황이지만, 점점 타살과 비리의 혐의들이 드러나는 것에 당혹스러워했다. 죽은 송기현(이가섭) 경사를 특히 괴롭혔던 김수항(김범수) 순경이 바로 그 송 경사를 세곡지구대로 좌천시킨 동두천경찰서 서장의 조카였다. 송경사의 폭로로 인해 서장은 경정으로 강등된 바 있고 그래서 그를 일부러 조카가 있는 곳으로 보냈을 거라는 심증이 생겼다.

 

검찰을 대표하는 황시목과 경찰을 대표하는 한여진이 검경 협의회에서 수사권을 두고 진영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됐지만, 이들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오히려 자신들이 소속된 집단이 벌인 비리들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진영논리에 담겨진 제 식구 감싸기와 그래서 저질러지기도 하는 비리, 청탁 등은 결국 죄와 상관없이 처벌되거나 무마되기도 하는 사법정의의 불공정함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

 

황시목과 한여진이라는 다소 진영논리와는 섞이지 않는 아웃사이더들을 이 '비밀의 숲'에 던져 놓은 건 그래서 이 진영논리에 가려진 실체를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마치 곰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우인 우태하의 실체를 꼬집는 황시목의 일침이 통쾌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개훌륭’, 역대급 공격성을 키운 게 남다른 애정이었다니

 

“누군가를 물 수 있는데 입마개를 하지 않는다? 그 개를 키울 수 없어요. 알았죠? 전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 좋아하진 않아요. 잘 키우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은 역대급 공격성을 가진 희망이의 보호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보호자의 방식이 희망이를 공격성이 큰 개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보호자의 그 방식이라는 게 남다른 ‘애정’과 ‘동정심’이라는 게 놀라운 사실이었다. 희망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보호자가 데려와 임시보호를 하다 키우게 된 반려견이었다. 보호자는 그래서 희망이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평상시 유기견 봉사와 임시보호를 해왔던 사실에서도 보호자가 가진 반려견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보호자와 둘이 있을 때는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희망이지만 본래 함께 지냈던 럭키와 심각할 정도의 충돌이 있었다. 먹이를 두고 싸우다 럭키가 희망이의 얼굴을 물어 큰 상처가 났던 것. 보호자는 그럴수록 더더욱 희망이에 마음을 더 주었다. 그렇게 되면서 럭키도 힘겨운 상황이 됐다. 갇혀 지내야 하는 시간들이 생겼고 그건 럭키가 스트레스로 하울링을 하는 이유가 됐다.

 

둘이 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보호자의 말에 강형욱은 단호하게 “무인도에 살면 모르지만” 함께 이웃들과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호자님이 키우고 싶은 욕구보다 이 강아지가 사는 동네의 안전함이 우선이에요.” 강형욱은 희망이의 공격성을 누르기 위해 보호자가 줬던 애정을 끊으라고 했다. 다가오는 희망이를 밀쳐내고 싫어하는 입마개를 하게 하고 밥 주고 산책하고 배변 치우는 일 이외에는 애정을 주지 말라는 것.

 

그건 보호자처럼 반려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동정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정을 주면 안돼요. 아무 것도. 교육을 하면서 개를 혼내고 때리는 사람보다 강아지를 너무 예뻐하는 사람을 교육하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모르거든요. 그리고 인정하지 않아요.”

 

보통 반려견을 우리는 마치 아기 대하듯 대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그래서다. 그렇기 때문에 애정을 주면 줄수록 반려견이 더 좋아질 거라 착각한다. 또 반려견을 마치 사람을 대하듯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려 한다. 심지어 참 많은 동물 프로그램들은 그런 반려동물들의 이야기를 의인화해 보여줌으로써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건 과연 진짜일까.

 

물론 진짜 이야기도 있겠지만 강형욱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고 단언했다. 보호소의 개들이라고 하면 막연히 느끼는 ‘상처’나 ‘트라우마’ 같은 것들도 결국 우리 맘대로 해석한 것일 수 있다는 것. “보호소의 개들이 다 상처받았다 생각하면 안돼요. 트라우마가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건 너무 드라마에요. 내 개가 불쌍하다, 내 개가 불안하다, 내 개는 이렇다 저렇다 라고 생각하며 개를 데리고 있는 건 위험해요. 좋지 않아요.”

 

강형욱의 일침은 반려견을 너무 우리의 관점으로만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포장하려 했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동물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의인화를 해서 스토리텔링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반려동물들을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들을 위해 우리가 자의적으로 덧붙인 이야기들일 수 있다는 것. 실로 뜨끔한 진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예뻐하고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반려견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애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사진:KBS)

‘라이프’, 이러니 적폐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이원장이 왜 그렇게 죽었냐구? 그걸 밝혀달라구? 그래. 이상엽이. 네가 보고를 해? 원장님한테? 환자가 죽었다니까 원장님이. 덮자 그러셨다구? 내 두 눈 똑바로 보고 다시 얘기해봐. 나 원장님께 보고했다? 김정희. 너. 네 환자 죽었을 때 어떻게 했어? 누가 네 대신 유족 찾아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지? 어떻게 그 와중에 코빼기 한 번 안 비칠 수 있었냐? 서지웅이. 너 요새도 여자환자 만져? 간호사한테 문자 계속 보내? 네 와이프가 원장님께 울고불고 매달려서 너 겨우 안 잘린 거 너 알고 있어? 야 장민기. 누가 네 가족부터 이식수술 해주래? 원장님이 영원히 모를 줄 알았냐? 이 중에 이보훈이 피 안 빨아먹은 인간 어딨는데? 주경문이. 넌 혼자 고고한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원장이 챙겨주는 건 잘도 받아먹더라. 네가 정말 자리에 욕심이 없어? 이보훈한테 왜 심근경색이 왔을까? 너, 너, 니들 모두 니들이 갉아먹었잖아? 늙어가는 심장 한 웅큼씩 한 웅큼씩 니들이 필요할 때마다 떼 갔잖아. 근데 뭘 물어?!”

마치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만 같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이 장면에서 김태상 전 부원장(문성근)은 거기 앉아 있는 의사들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그 과실들을 끄집어낸다. 마치 공개 재판이라도 하듯 이보훈(천호진) 원장이 김태상 전 부원장의 집에서 죽은 일에 대해 예진우(이동욱)가 추궁하지만, 그는 원장의 죽음에 모두가 유죄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자신들에게도 저마다의 죄가 있다는 것을.

결코 떳떳한 인물이 아니지만 김태상 전 부원장의 말은 아프게도 틀린 게 없다. 그래서 그 아픈 일침 앞에 그 누구도 뭐라 반박하지 못한다. 한참을 듣다 못한 예진우가 그에게 묻는다. “스스로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대리수술도 그래서 하신 건가요? 다른 분들과 형평성을 맞추려고?” 타인의 죄를 끄집어내지만 그렇다고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명백히 한 것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죄가 없는 이들은 없다. 모두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잘못을 떠안아준 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이보훈 원장이었다.

상국대학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장면은 확장해서 보면 우리네 국가와 정치, 사회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보훈 원장이 김태상 부원장의 집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장면은 우리네 정치사의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을 김태상 같은 인물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인 양 단죄하는 일 역시 우리가 정치사에서 흔히 봐왔던 일들이다.

잘못된 행위를 한 그들을 ‘적폐’라 부르고 그것을 ‘청산’하려 하는 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진정 적폐가 모두 사라지게 될까. <라이프>가 김태상 부원장의 아픈 일침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 적폐는 김태상 부원장 같은 외부의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적폐’에 일조한 면이 있다. 그것까지 끄집어내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다는 것.

<라이프>가 다루는 인물들이 때론 인간다워 보이면서도 때론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을 아프게 만드는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건 작가가 가진 인간관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공과 과를 모두 함께 갖고 있다. 적폐는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적폐’ 또한 청산하지 않는 한 잘못된 일은 또 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째서 적폐청산이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외부의 적폐를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의 적폐 역시 끄집어내 깨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공간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가 이런 우리 사회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근원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사진:JTBC)

‘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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