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웃는 모습이 더 섬뜩한 엄기준과 엄지원의 정체

작은 아씨들

과연 인주(김고은)와 인경(남지현)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동생 인혜(박지후)를 구해낼 수 있을까.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인혜는 점점 저 괴물의 아가리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 괴물은 박재상(엄기준)과 원상아(엄지원)로 대변되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인혜는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자 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그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고 그 그림으로 상을 받게 해준다. 또 그 대가로 외국 유학을 효린과 함께 보내준다는 원상아의 달콤한 제안도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언니들은 엄청난 당혹감과 불안감에 빠진다. 그래서 인경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상을 받은 효린을 축하해주는 파티장에 찾아가 고래고래 동생을 부르는 것으로 난리를 친다. 언니가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걸 모른 채 그저 치욕스럽게만 느끼며 바라보는 인경에게 원상아는 짐짓 부드럽게 웃고 있지만 악마처럼 속삭인다. “들어갈까? 우리 인혜는 좋은 것만 보자.” 결국 보다 못한 인혜는 술에 취한 언니를 데리고 돌아가지만, 그런 언니와 인혜는 더 멀어진다. 

 

갑자기 효린과 유학을 떠나게 됐다는 인혜의 말에 인주 역시 버럭 화를 내며 “네가 효린이 하녀냐”고 묻지만, 인혜는 더 충격적인 말을 한다. “난 이 집에서 언니들처럼 사는 것보다 효린이네서 하녀로 살고 싶어.” 인혜는 가난에 지쳤다. 가난하게 자신이 사는 것도 지쳤지만, 자신 때문에 언니들이 ‘어두운 숲속에 처절하게 널브러져 있는’ 그런 희생하는 삶을 사는 걸 보는 것에 더 지쳤다. 그래서 스스로 그걸 벗어나려 한다. 그건 자기를 위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니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이 인혜를 통해 보여주는 건 천민 자본주의의 끔찍한 세상이다. 인혜는 그 괴물의 아가리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박재상과 원상아는 그 괴물의 분신이다. 그들이 사는 그 대저택에서 박재상은 운전기사의 아들이었고, 그 대저택은 원상아의 아버지인 원기선 장군의 것이었다. 그 장군의 아들이었던 원상우(이민우)와 박재상은 마치 지금의 효린과 인혜 같은 관계였던 것. 

 

그 집에서 예쁘장한 모형 집을 발견하고 그 방 중 하나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인형을 슬쩍 훔치다 인혜는 박재상에게 들킨다. 그런데 박재상은 인혜에게 이를 다그치기보다는 왜 자신의 딸 효린 대신 그림을 그려줬냐고 묻는다. 그러자 인혜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효린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그걸 그릴 때 저는 효린이었어요. 가장 효린이 같은 표정으로 효린이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질감으로 그렸어요. 그 그림은 완벽해요.” 

 

인혜는 진짜 효린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건 과거 박재상이 원상우를 보며 가진 욕망과 유사하다. 박재상은 그걸 간파하고 인혜에게 악마의 혀를 놀린다. “장군님은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아셨어. 그래서 상우가 아니라 날 이 집의 상속자로 점찍으신 거야. 그러기 위해선 큰 희생을 해야 했지만. 난 결국 이겨냈어. 그 인형 갖고 싶니? 그러면 너도 할 수 있겠어? 지구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겠어?” 

 

이 대사를 통해 보면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원상우를 그렇게 만든 건 박재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건 배신이었을 테고. 인혜는 그것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유혹에 끌린다. 저들의 삶이 너무나 유복해보이고 행복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번지르르한 그들의 삶이 진짜 행복일까. 그건 가짜다. 웃고 있지만 진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자못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뿐이다. 

 

언니들은 이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생을 보게 된 셈이다. 맏언니인 인주는 자신에게 뚝 떨어진 20억을 다 써서라도 동생들을 그 힘겨운 삶에서 꺼내려 하지만, 둘째인 인경은 다르다. 그건 도둑질이라며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고모할머니인 오혜석(김미숙)의 집에서 지낼 때 저지르지도 않았던 도둑질 누명을 그토록 많이 쓰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있다. 그건 동생 인혜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려서 자기들 말고 더 어린 동생이자 간난 아기가 있었고 그 아기가 가난해서 죽게 됐던 경험을 했던 그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인혜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인주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죽지 않는다는 절박함으로 살았지만 그건 결국 동생들을 챙기기 위함이었고, 인경이 힘겨운 이들을 리포팅하면서 감정이입이 과해 기자라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알코올 중독이 됐던 이유도 바로 그 간난 아기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긴 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었다. 

 

자본이라는 괴물이 삼키려는 동생과 이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언니들. 그건 빈부의 시스템 속에서 생겨나는 처절한 대결구도지만, 그 이야기가 자매들의 끈끈한 애정으로 얽혀 있다는 점에서 <작은 아씨들>은 더 큰 몰입감을 준다. 과연 언니들은 이 위기를 넘기고 돈이면 영혼도 팔게 만드는 이 세상 속에서 끝내 소중히 지켜야 하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사진:tvN)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 여성 서사의 정점 보여줄까

작은 아씨들

드라마 <마더>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 <왕이 된 남자>,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 그리고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세 여성 배우들이 중심 롤을 맡은 작품.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대본, 연출, 연기 모두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그 제작진의 면면만 봐도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근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헤어질 결심>을 쓴 정서경 작가에, <빈센조>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을 보여줬던 김희원 감독의 만남이 그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로 박찬욱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온 정서경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드라마업계에서도 그가 쓴 <마더>는 일본 원작의 아우라를 지울 만큼 탁월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니 <작은 아씨들>이라는 다소 여성 서사의 고전을 제목으로 가져와 새롭게 우리 식으로 해석한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진다. 이미 <아가씨>나 <헤어질 결심>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진 것처럼 그가 가진 남다른 여성 서사에 대한 매력이 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 감독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주목받고 있는 김희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기대감은 더 커졌다. <돈꽃> 같은 어찌 보면 막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을 유려한 연출로 그 색깔을 바꿔 놓았던 김희원 감독은 그 후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여성 감독 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사극의 흐름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감독, <붉은 단심>의 유영은 감독으로 이어졌다. 또 김희원 감독은 <빈센조>를 통해 액션 느와르에도 탁월한 연출 능력을 증명했다. 이번 <작은 아씨들>에서도 자매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 담겨지는 액션 느와르적인 색깔은 다분히 김희원 감독의 이러한 폭넓은 연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 작가가 쓰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타이틀 롤을 맡은 세 자매 역할의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여성 배우들이 포진했으니, 이 작품에 ‘본격 여성서사’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실제로 <작은 아씨들>은 첫 2회 분량에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대결하게 되는 부조리한 세상에 박재상(엄기준) 같은 절대 빌런을 세워 두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자연스럽게 이 세 자매의 자매애를 통한 여성들의 연대를 드러내면서 저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비뚤어진 남성 중심의 권력화되고 부패한 시스템과의 파열음을 예고한다. 정서경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큰 그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은 아씨들> 무슨 이야기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모티브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따왔다. 물론 20세기 들어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재조명되었지만 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한동안 가부장적인 문학의 전통 속에서 무시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여성들의 성장소설에 담겨진 새로운 여성상이나 그들 간의 연대는 지금껏 세대를 뛰어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2년 한국드라마로 재해석된 <작은 아씨들>은 여기에 현재적 의미와 한국적 현실이 담겨졌다. 

 

오키드 건설에서 경리로 일하는 오인주는 회사에서 같은 왕따 취급을 받는 언니 화영(추자현)이 자신에게 20억 현금을 남기고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자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런데 오인주는 화영이 15년간이나 신현민 이사(오정세)와 함께 회사의 불법 비자금을 운용해왔고, 죽기 직전 700억의 불법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영 이전에 비자금을 운용하는 일을 했던 여직원이 화영처럼 똑같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오인주는 신현민 이사가 화영을 죽였다고 의심하지만 그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서 비자금을 둘러싼 배후가 존재한다는 게 드러난다. 한편 오인주의 동생으로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은 정치인을 꿈꾸며 청년들을 위한 재단까지 만든 박재상(엄기준)이 과거 보배저축은행 사건의 배후라 의심하며 과거사를 파고 들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제보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는다. 화영과 신현민 이사 그리고 제보자까지 이들의 죽음 옆에는 모두 동일한 꽃이 놓여있다. 그들의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암시다. 여기에 오인경은 막내 동생으로 예고에 다니는 오인혜(박지후)가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을 대신 그려줘 상을 받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작은 아씨들>의 서사는 세 자매가 모두 저마다 박재상이라는 인물과 대결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오인주는 화영과 신현민 이사의 죽음 앞에서 비자금을 둘러싼 거대한 비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오인경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박재상의 실체를 기자로서 파헤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인혜 역시 돈을 받고 효린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는 사실이 언니들이 마주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저들과 대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과거사로부터 이어진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검은 자본의 흐름에 휘말리게 된 세 자매가 이를 헤쳐 나가며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그려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서경 작가가 자본화된 세상과 맞서는 방식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왔던 작가라서 그런지 정서경 작가가 쓴 <작은 아씨들>의 전개 속도는 거침이 없다. 그 흔한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질질 끄는 느낌이 없다. 1회 만에 화영의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열린 세계에 2회 만에 신현민 이사의 죽음이 만든 반전이 더해지며 향후 벌어질 대결구도를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자본화된 세상과 대결하는 정서경 작가의 방식이다. 그건 오인경이나 오인주라는 인물을 통해 담아내는 남다른 ‘감수성’이다. 이들은 자본화된 세상이 굴러가는 그 익숙한 방식들을 그저 익숙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즉 오인주는 죽은 화영이 말하듯, “경리는 (의사가 환자 몸을 보는 것처럼) 돈을 숫자로만 봐야 된다”는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돈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20억이 갑자기 생긴 일에 결코 초연해하지 못한다. 그가 그저 20억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건의 진실이나 내막을 궁금해 하는 이유다. 오인경은 기자로서 무감하게 사건을 리포트해야 하지만 결코 아픈 비극을 겪은 이들을 리포트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고 알코올 중독 판정까지 받지만, 그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런 알코올 중독이 되어야 비로소 감정을 숨길만큼 독하디 독한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감하게 자본화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인경과 오인주 같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그걸 바라보는 이들은 그걸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서경 작가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이다. <작은 아씨들>이 가진 여성 서사가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부조리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그걸 달리 볼 수 있는 눈이란 그 세상이 배제한 이들의 시선일 수 있어서다. 자매들은 그래서 더 확장되어 세상이 배제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여성서사를 그려나갈 작정이다.(글:매일신문, 사진:tvN)

‘라이프’, 조승우의 진짜 얼굴은 도대체 어떤 걸까

도대체 구승효 총괄사장(조승우)의 진짜 얼굴은 뭘까. 경영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된 응급센터,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를 지방병원으로 파견 보내겠다는 방침으로 의사들의 반발과 파업 결의까지 일으켰던 그는 돌연 그 방침을 뒤집었다. 지방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한 것. 그렇게 쉽게 결정을 번복할 거였다면 왜 그토록 강경하게 의사들을 몰아세웠던 걸까.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구승효 사장이 가진 오리무중의 행보를 보다 보면 새삼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 느껴진다. 그가 의사들을 몰아붙였던 건 실제로 지방 파견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숨겨진 노림수들이 들어 있었다. 첫째는 상국대학병원이 의사들만의 힘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고 이제 화정그룹의 경영 하에 움직인다는 걸 실력행사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지방 파견이라는 한 마디에 병원 전체가 시끌시끌해지는 그 상황을 통해 의사들이 경영진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게 됐던 것.

둘째 노림수는 그 혼돈 과정을 통해 인물들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가 그 혼돈 속에서 드러나게 됐던 것. 예진우(이동욱) 응급의학센터 전문의는 조용히 지내던 모습에서 구승효와 대적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주경문(유재명)은 상국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병원 내부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라는 본분을 지키려 구승효와 맞서게 되었다. 

반면 김태상(문성근) 부원장은 간에도 붙었다가 쓸개에도 붙었다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구승효와의 독대를 통해 자신이 원장이 되려는 일에 서로가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시키면서, 동시에 병원의 실세들인 오세화(문소리) 신경외과 센터장, 이상엽(엄효섭) 암센터장, 서지용(정희태) 안과 센터장을 만나 자신을 밀어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원장이 되어 사장을 몰아내겠다는 것. 그는 과연 사장 편일까 아니면 의사들의 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원장이 되고픈 욕망을 위해 어느 쪽이든 활용하는 인물일까.

김태상과 손을 잡은 듯한(?) 구승효는 슬쩍 약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자회사를 설립할 거라는 걸 그에게 말한다. 사실상 불법이지만 비영리법인처럼 만드는 편법으로 그렇게 하면 화정그룹으로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승효가 이 자회사를 통해 약품은 물론 건강보조식품까지 납품하게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순차적이다. 

먼저 병원 각 부서들의 감사를 통해 약물 투약이 잘못되어 사망한 환자의 기록을 찾아내 의사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언론에 알려 공론화함으로써 의사들 역시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궁지로 몰아넣는다. 의사들도 반발한다. 그것이 너무나 인력이 부족한 시스템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는 것. 구승효 사장은 그것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 다음 단계를 진행한다. 이른바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바코드로 찍기만 하면 환자가 어떤 약물을 투여받아야 하는지 또 약물 투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가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 그 바코드 시스템에 의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편리함에 빠져들게 되자, 그 시스템을 제공한 제약회사의 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이 들어온다. 의사들은 건강보조식품까지 영업해야 하는 상황에 반발하지만, 이미 바코드 시스템에 적응되어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구승효 사장은 반발하는 의사들에게 확실하게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각인시킨다. 그저 병원의 의사가 아니라 화정그룹이라는 기업에 돈을 받고 일하는 의사들이라는 것. 

구승효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이노을(원진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그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 소아병동에 데려갔을 때 아기들을 보던 그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돈벌이를 하려 병원 내에서 벌인 일련의 조치들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것. 갑자기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는 일도 마찬가지다. 수행비서인 강경아(염혜란)가 우연히 반려견의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엄청났던 병원비용을 얘기한데서 구승효는 이것이 돈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던 터다. 

구승효에게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그 하나는 무심한 듯 친절해 보이는 모습이다. 서산의 땅 주인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마치 그 분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통해 얻어가려는 자신의 이익이 존재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처해있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 아닐까. 편리함이라는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지만, 거기에 종속되고 나면 이익이라는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라이프>가 구승효를 통해 보여주는 놀라울 만큼 치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얼굴.(사진:JTBC)

‘명불허전’, 헬조선을 넘나드는 타임리프가 보여주는 것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껏 조선과 현재를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주로 보여줬던 건 그 다른 환경을 마주한 인물들의 멘붕 코미디에 가까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서로 공존하는 그 장면들이 주는 흥미로움 또한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명불허전>이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 알맹이는 아니었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그 진짜 메시지가 드러난 대목은 허임(김남길)이 두칠(오대환)의 형을 치료해주지만 결국 주인 양반에 의해 맞아 죽게 되는 그 에피소드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어 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놓아도 천출들은 양반의 명 하나로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비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과거 허임은 이미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치료해주지만 그녀 역시 노비라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것. 

이러한 신분의 벽은 허임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신분과 상관없이 생명은 귀하다 여겨온 의원이 그였다. 밤마다 아픈 노비들을 몰래 치료해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자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헬조선’이라는 그 표현이 이 곳은 표현이 아닌 진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니. 

그래서 그 곳을 뛰어넘어 현재로 넘어온 허임은 과연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생명을 살리는 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반과 노비로 나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이 곳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허임은 한방병원에서 VIP들의 병을 고치며 잠시 쾌재를 부르지만 또한 가난해 길거리로 내몰리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노숙자들을 또한 보게 된다. 거대한 한방병원의 VIP들과 길거리 노숙자들이 다른 생명으로 비교되는 현실. 헬조선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명불허전>이 과거로 회귀하는 그 시점이 하필이면 임진왜란이 터지는 그 때라는 건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한다. 선량한 백성들은 선조가 도망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최연경(김아중)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책임을 가져야할 권력자들의 도주가 결국은 백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암담한 현실이라니.

<명불허전>이 담고 있는 두 개의 헬조선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타임리프 설정을 그저 트렌드가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치로 바라보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그것이 어째 다른 풍경이 아니라는 것. 굳이 두 개의 헬조선에서 허임과 최연경이 각각 의원과 의사라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설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에 어디 신분이 있고 빈부가 있으며 계급이 있겠는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두 개의 헬조선을 오가며 허임과 최연경이 보는 그 암담한 현실과 그래서 그들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명불허전>의 본색이다.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한탄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이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그 길은 과연 이들에 의해 제시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의 노력들이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는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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