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봐야할지 모르겠다면.. 쏟아진 신작들 매력 포인트 총정리

한꺼번에 드라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월화에 JTBC <뷰티 인사이드>, SBS <여우각시별>, MBC <배드파파>가 수목에 SBS <흉부외과>,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 이어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이 경쟁에 합류했다. 너무 많아 어떤 걸 봐야할지 고민스러운 분들을 위해 각 드라마들의 중요 캐릭터와 그 장단점들을 정리했다.

◆ 이제훈의 <여우각시별>, 그 평범과 비범 사이

월화극의 최강자가 된 건 놀랍게도 tvN <백일의 낭군님>이다. 무려 9.2%(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비지상파의 이런 선전에 그간 주춤했던 지상파들도 일제히 전열을 가다듬고 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SBS <여우각시별>은 첫 회 5.9%로 시작해 4회 만에 8.6%를 찍을 만큼 그 관심의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수연(이제훈)이라는 미스터리한 ‘무쇠팔’의 소유자다. 팔 하나로 사고로 날아든 자동차를 막아설 수 있을 만큼의 괴력을 보이는 이 인물은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보인다. 그 비범함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숨어 평범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 공항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그 곳 역시 매일같이 사건이 벌어지고 그래서 그 비범함을 숨길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특히 너무 평범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여름(채수빈)이 같은 부서로 오면서 그의 사수가 된 이수연은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려 그 비범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수연의 정체가 실로 궁금한 가운데, 비범과 평범을 대변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차츰 멜로 관계로 바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이 드라마의 중요한 특장점이고, 무엇보다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막연한 판타지와 그 현실 사이의 경계가 슬쩍 슬쩍 드러나는 묘미 또한 쏠쏠하다. 우리에게 <낭만닥터 김사부>로 확실한 믿음을 준 강은경 작가와 과거 <연인> 시리즈부터 김은숙 작가와의 작품들을 통해 알려진 신우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다만 초반부터 너무 오지랖을 보이며 민폐캐릭터 역할을 하게 된 한여름이 불안요소일 뿐.

◆ 장혁의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배드파파>, 중년 가장이라면

MBC <배드파파>는 한 때는 유명한 복서였지만 승부조작으로 은퇴하고 형사 생활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한 가장 유지철(장혁)의 이야기. ‘Badman or Hero’라는 부제를 단 첫 회 첫 장면은 사고 난 버스에서 아이와 엄마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돈을 챙겨 도망칠 것인가 고민하는 유지철로 시작한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웅 따위는 포기하고 나쁜 놈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돈을 구하기 위해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그 파란 약을 먹고 순간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지철은 격투기 도박장에 올라 거구의 상대를 무너뜨리고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이 신약은 부작용이 만만찮을 듯싶다. 그저 자신은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얻기 힘들어 집에서는 나쁜 아빠이자 가장이자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뭔가 찜찜한 이 신약을 먹고 ‘Family man’이 되려 한다.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보는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유지철 역할의 장혁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절권도 실력으로 슈퍼히어로 액션을 보여준다. 또 남자들에게는 오래된 이야기 소재였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사각의 링’의 이야기가 아드레날린을 자극할만한 드라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의 피곤함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쉽게도 여성 시청자들을 동시에 잡아끄는 고리들은 약한 편이다. 시청률이 4%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마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서현진의 <뷰티 인사이드>, 변신하는 그녀와의 로맨스

이미 원작 영화로도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JTBC <뷰티 인사이드>는 서현진의 매력으로부터 시작한다.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며 눌러대는 셔터 소리 속에서 보여지는 한세계라는 인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현진의 매력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 공유점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 한세계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변신을 하는 마법에 걸리는데, 때론 할머니가 되었다가 때론 중년 미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아이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에서 한 사람의 존재 근거가 되는 외모가 바뀐다는 건 쉽지 않은 장애물이 놓여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한세계의 ‘변신’만이 아니다. 그와 사랑에 빠질 서도재(이민기)라는 인물은 젊은 나이에 가질 것 다 가진 재벌3세지만 사고로 인해 타인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갖게 되었다. 얼굴이 계속 바뀌는 인물과 누군가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 간의 로맨스가 <뷰티 인사이드>다.

<뷰티 인사이드>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멜로드라마는 어떤 인물의 외형(외모를 포함한 현실적 조건들)을 뛰어넘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해 피어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고 있다. 톱 연예인과 재벌3세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그 흔한 멜로드라마에서 늘상 주인공으로 자리해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 외형적인 조건들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공평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과연 무엇으로 서로에게 끌리게 될 것인가. 외모지상주의에 스펙사회를 슬쩍 뒤틀어놓은 판타지 코미디가 달달하고 유쾌한 멜로와 엮어지게 된 이유다. JTBC가 월화드라마 시간대를 9시30분으로 바꿔 공격적으로 편성된 드라마지만, 경쟁작인 tvN <백일의 낭군님>에 밀려 다소 낮은 2.8%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서도재 역할을 연기하는 이민기의 연기는 다소 호불호가 나뉠 법하다.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소 과장된 면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 소지섭의 <내 뒤에 테리우스>, 첩보·멜로·육아까지 다 잡았다

수목드라마에서 MBC <내 뒤에 테리우스>가 9% 시청률로 초반 시청률 1위에 오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소지섭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이다.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어딘지 강렬한 액션과 절절한 멜로가 가능할 것 같은 배우.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살짝 망가뜨려 코믹한 웃음까지도 줄 수 있는 배우. 그게 바로 소지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초반 시청률 1위에 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여타의 수목극들과 달리 경쾌하고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전직 정보원이었으나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된 김본(소지섭)이라는 캐릭터가 킹캐슬 단지에서 숨어 지내다 우연히 고애린(정인선)의 아이들을 챙겨주는 시터가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살해된 전 국가안보실장 사건을 목격한 이유로 고애린의 남편 차정일(양동근)이 역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본은 시터로 일하면서 동시에 자신과도 얽혀있는 사건들을 파헤쳐나간다.

정보원이 시터가 됐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이 온전히 코믹과 멜로라는 걸 잘 드러내준다. 그래서 실제로 이 킹캐슬 단지의 아줌마 모임인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같은 조직(?)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패러디 뒤에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하는 일만큼 어렵고 중차대한 것이 ‘육아’라는 공감대가 깔려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코믹과 멜로에서 때때로 진짜 ‘본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첩보물과 액션 장르로의 변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소지섭이라는 배우의 다채로운 매력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빛날 수 있게 되었다. 가벼움과 무거움, 진지함과 코믹함,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결합된 흥미로운 드라마. 다만 옥에 티라면 너무 흔한 첩보물의 뻔한 설정들이 주는 클리셰의 반복이 많다는 정도.

◆ 고수의 <흉부외과>, 심장이라도 훔치고픈 절절함

수목에 동시에 만나 <내 뒤에 테리우스>와 1,2위 각축을 벌이고 있는 SBS <흉부외과>는 의학드라마의 디테일이 빛나는 작품이다. 과거 <종합병원>에서부터 차츰차츰 특정 과로 축소되고 디테일이 더해져왔던 우리네 의학드라마의 흐름은 <흉부외과>에서는 실제 의사들의 제대로 된 감수와 취재들을 통해 더더욱 생생해졌다. 좋은 스펙을 갖지 못해 늘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심장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엄마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살아가는 박태수(고수)와, 조작된 진단서로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던 아픈 딸 대신 이사장의 딸 윤수연(서지혜)을 수술함으로써 딸의 죽음을 바라봐야 했던 최석한(엄기준)의 얽히고설킨 절절한 관계들이 흉부외과라는 특정과의 특성과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박태수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 최석한에게 왔을 때 갑자기 병원장으로부터 내려진 오더로 어느 쪽을 수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상황이나, 공항에서부터 쓰러진 환자를 긴급 처치해 수술을 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쓰러져 수술을 그만둘 수도 그렇다고 어머니를 방치할 수도 없는 박태수의 상황처럼 이 드라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있어도 위험한 수술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흉부외과의 특성을 담아낸다. 하지만 거기에 얽혀 있는 스펙사회와 조직의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 속에서 환자의 생명만을 보는 의사들이 소외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드라마는 심장이라도 훔치고픈 절절함을 담아낸다. 워낙 긴박한 상황들의 연속이라 한번 보면 한 시간이 순삭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드라마지만, 그 팽팽함과 절절함은 다소 시청자들이 바라보기가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인 드라마.

◆ 서인국의 눈빛이 다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 원작 드라마가 바로 tvN 수목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이다. 2002년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기무라 타쿠야 출연작. 우리식 리메이크에는 그 기무라 타쿠야가 한 역할을 서인국이 연기하게 됐다.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지만 군 면제 사실 때문에 논란을 겪고 있는 서인국에게는 이 작품이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는 수제맥주 회사에서 일하는 김무영(서인국)이라는 인물이 가진 미스터리하고 때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그 캐릭터에게 집중되어 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그는 HJ그룹 계열사 부사장의 딸 백승아(서은수)와 만나 순식간에 그를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의 친구인 유진강(정소민)과도 점점 알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유진강의 오빠인 형사 유진국(박성웅)에게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섬뜩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존재인 김무영의 미스터리함은 이 드라마가 후반부까지 흘러가며 그려낼 이야기 속에 꽤 많은 숨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감지하게 한다. 그것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만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다가와 친절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고는 또 그렇게 훅 지나가버리는 김무영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시쳇말로 ‘츤데레’ 그대로다.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그 캐릭터가 빛나 보이는 건 서인국이 보이는 그 미소와 눈빛 속에 그 두 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어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성패만큼이나 궁금해지는 것이 서인국이 과연 많은 논란들을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빠져들 수 있는 매력. 물론 이 작품이 가진 리스크 역시 그 논란에 있지만.(사진 : MBC, SBS, JTBC, tvN)

‘기름진 멜로’, 멜로보다 복수극을 기대하는 까닭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가 한층 달달해졌다. 서풍(이준호)과 단새우(정려원)의 비밀연애가 본격화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네가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시쳇말로 ‘꿀이 떨어진다’. 두 사람의 멜로가 더더욱 달달하게 다가오는 건 둘 다 과거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서풍은 첫사랑이었던 석달희(차주영)를 그를 내쫓은 호텔 사장 용승룡(김사권)에게 빼앗겼고, 단새우는 아버지의 부도로 결혼의 단꿈도 깨져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한강다리 절망의 끝에서 처음 만나게 된 사이다. 죽고픈 마음까지 가진 단새우에게 마지막으로 포춘쿠키를 같이 먹자고 제안한 서풍은 그 때 쿠키 속에 들어있는 예언처럼 이미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헝그리웍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된 것. 이 과정에서 단새우에 대한 일편단심을 보이는 두칠성(장혁)의 안타까운 사랑이 더해졌다. 두칠성을 형처럼 생각하는 서풍은 그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려 했지만 때를 놓치고, 결국 두칠성은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기름진 멜로>는 드라마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그 멜로를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고 온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서풍과 단새우 그리고 두칠성 사이의 엇나간 사랑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서풍이 헝그리웍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진정혜(이미숙)가 단새우의 엄마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 마치 멜로의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다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도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기름진 멜로>에 대해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멜로가 아니다. 애초에 호텔 중식당 ‘화룡점정’에서 쫓겨났던 서풍이 두칠성 건물의 중식당으로 오게 된 건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거대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화려한 중식당 앞에 초라하게 보이는 작은 중식당이 열리고, 소외됐던 인물들이 하나 둘 모여 그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축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기름진 멜로>는 호텔 사장인 용승룡의 계략으로 헝그리웍의 단체예약손님이 ‘화룡점정’으로 가게 되는 ‘갑질 상황’이 등장했다. 많은 인원의 음식을 준비했던 터라 그만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 용승룡은 코스 요리 가격을 대폭 할인해 줌으로써 자신들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헝그리웍을 짓밟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에 두칠성은 호텔의 리모델링을 하고도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시위를 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서풍이 만든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해주며 ‘호텔 시위권’을 자신에게 팔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걸 통해 호텔에 반격을 가하려 하는 것. 과연 두칠성의 반격은 통하게 될까. 어쩌면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달달한 멜로보다는 거대 기업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서민들의 연대가 아닐까. 

짜장면을 만들지 않는 ‘화룡점정’과 짜장면으로 승부하는 ‘헝그리웍’. 사실 이 음식만으로도 그 자체로 가진 자들과 빼앗긴 자들 사이의 대결구도가 그려지는 게 <기름진 멜로>다. 최고급 호텔 중식당이기에 짜장면도 특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왕춘수(임원희)와 그래도 짜장면은 짜장면다워야 한다는 간호사 손님의 비아냥 섞인 혼잣말, 그리고 공사대금을 못받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부들의 마음까지 돌리게 만드는 맛좋은 서풍의 짜장면. 음식 하나로도 만들어지는 대결구도를 어째서 <기름진 멜로>는 중심적인 테마로 삼지 않을까. 달달한 멜로보다 시청자들이 더 기대하는 시원한 복수극을.(사진:SBS)

‘기름진 멜로’의 병맛, 재야고수들의 복수전은 성공할까

마치 주성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톤 앤 매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다가 조금씩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톤 앤 매너의 핵심은 희비극을 중국풍으로 버무려 놓았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비극적인 일들을 겪고 밑바닥으로 떨어지지만 ‘배고픈 프라이팬’이라는 폐업 직전의 중국집에서 모여 자신들을 그렇게 밀어낸 세상에 대해 복수를 꾀한다.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는 그래서 마치 짜장면을 닮았다. 중국인들이 인천으로 들어와 터전을 잡으며 개발해낸 음식. 중국요리의 재료와 방식들을 가져왔지만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외식에 있어 국민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 중국요리지만 우리나라에서나 먹을 수 있는 짜장면처럼 여러 이색적인 재료들이 섞여 독특한 맛을 낸다. 

그 맛의 중심은 멋진 액션조차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병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두칠성(장혁)이다. ‘북두칠성’을 등짝에 문신으로 새겨 넣고 그를 따르는 감방동기들을 챙기는 인물. ‘빚과 그림자’라는 사채사무실을 내고 있는 깡패지만, 깡패짓 안하고 중국집 하나라도 내서 동생들을 살 수 있게 해주려 ‘배고픈 프라이팬’이라는 중국집을 열었다. 절권도를 배워서인지 장혁의 액션에 걸맞는 인물이지만, 그것보다 더 이 인물에서 주목되는 건 쓸데없이 폼 잡고 진지한데서 오히려 터지는 웃음이다.

그 중국집으로 길 건너편 호텔 중국집에 복수를 하기 위해 들어온 서풍(이준호)은 이 <기름진 멜로>라는 요리에 자꾸 입맛을 당기게 하는 인물이다. 호텔 중국집에서 쫓겨나고 그 호텔 사장에게 결혼식까지 한 여자친구를 빼앗긴 그는 이 작은 중국집을 일으켜 호텔 중국집으로 가는 손님들을 모두 끌어 모을 작정이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배고픈 프라이팬’에서 일하는 두칠성의 부하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세제로 프라이팬을 닦아 세제 섞인 맛을 내는 짜장면으로 호텔 사장 용승룡(김사권)에게 석달희(차주영) 앞에서 굴욕을 당한 그는 와신상담하듯 그가 버리고 간 짜장면을 먹는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달달함을 더해줄 인물로 단새우(정려원)가 이 ‘배고픈 프라이팬’으로 들어온다. 한때 잘 나갔던 재벌가 딸이지만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경제사범으로 검거되고 길바닥에 나앉았다. 짠내 나는 현실이지만 벌써부터 그를 둘러싼 서풍과 두칠성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서풍은 한강다리에서 포츈쿠키를 주며 단새우에게 다시 살 기운을 준 남자이고, 두칠성은 첫 눈에 단새우에게 반해 돈까지 선뜻 빌려준 남자다. 

하지만 이 <기름진 멜로>라는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은 아직도 더 남아있다. 잠깐 에필로그로 보여진 것이지만 새로운 직원을 구한다는 소리에 속속 등장하는 ‘재야고수들’이 그들이다. 이름에서부터 심상찮은 ‘채썰기의 달인’ 같은 채설자(박지영)가 조선족 사투리를 쓰며 등장했고, 역시 이름처럼 한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뚱뚱하고 다리를 저는 임걱정(태항호)이 나타났으며,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재벌가 사모님 진정혜(이미숙)가 합류했다. 

과연 이렇게 ‘배고픈 프라이팬’ 안으로 들어온 저마다의 맛을 지닌 인물들은 함께 어우러져 <기름진 멜로>라는 음식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지만 볼수록 중독되는 맛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 번 맛보면 언제든 그 맛을 다시 찾게 되는 짜장면처럼.(사진:SBS)

‘기름진 멜로’가 이 비극을 단짠 멜로 코미디로 담은 까닭

SBS 월화드라마 <기름진 멜로>의 서풍(준호)은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 중식당 ‘화룡점정’에 미슐랭 별을 안겨준 요리사. 죽기 살기로 일하며 배운 것으로 그 중식당에 그 이름처럼 ‘화룡점정’을 해준 인물이다. 그리고 그 중식당은 그 호텔에도 ‘화룡점정’이 되어 그 호텔이 6성급이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건 단번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밑바닥에서부터 힘겨운 세월의 공을 들여 오른 자리. 그래서 호텔 그 꼭대기에 자리한 ‘화룡점정’에서 일을 끝마치고 바깥이 내다보이는 전망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진다. 마치 이제 모든 걸 이뤘다는 듯.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결국 그는 실력과 노력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곳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재벌3세로 호텔 사장에 부임한 용승룡(김사권)은 하루아침에 그가 가졌다 생각했던 모든 걸 지워버린다. 첫사랑으로 결혼까지 한 석달희(차주영)를 유혹해 파경에 이르게 만들고, 서풍과 대립각을 세우던 ‘화룡점정’의 일인자 왕춘수(임원희)가 그를 밀어내기 위해 세운 모략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방 호텔로 좌천시켜버린다. 결국 그 높은 곳에서 서풍은 눈물을 삼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실력을 통한 신분상승은 그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기름진 멜로>는 이처럼 서풍에게 닥친 비극의 연속을 담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절절한 눈물보다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택한다. 용승룡이 석달희와 밀회를 갖는 호텔방 문짝에 중식칼을 꽂아 넣고 돌아간 서풍의 이야기는 기묘하게도 ‘엑스칼리버’ 설정으로 이어진다. 일주일이 지나도 뽑혀지지 않은 칼 때문에 용승룡이 직원들에게 한 소리를 하자, 왕춘수가 칼은 자신이 잘 안다며 나서지만 칼 주인의 저주가 깊어 못 뽑겠다고 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러한 짠내와 단맛을 섞어 넣은 건 서풍만이 아니다.

재벌가의 딸로 결혼을 준비하던 단새우(정려원)는 승마와 펜싱을 취미로 하며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인물로 이제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다. 하지만 결혼식장에 오라는 신랑은 오지 않고 대신 경찰이 들어와 아빠 단승기(이기영)를 경제사범으로 구속해가자, 이 장밋빛 인생은 하루아침에 빚쟁이 파산녀가 되어버린다. 

결국 자신에게 남은 말 한 마리를 끌고 세상이 두렵다며 펜싱 헬멧을 쓴 채 그는 한강다리에 오른다. 한강물에 뛰어들기라도 하려던 찰나, 그 옆에 있던 서풍이 주머니에서 포춘쿠키를 꺼내 건넨다. 뛰어들기 전에 그거라도 까보자고. 절망의 끝이지만 이들이 굳이 포춘쿠키를 까먹는 장면은 그래서 어떤 희망을 예감케 한다.

그 희망은 사채업을 하는 전직 조폭 두칠성(장혁)이 된다. 서풍은 하필이면 자신이 일했던 호텔 중식당 바로 앞에 이제 막 폐업해버린 두칠성의 가게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찾아간다. 그 가게를 다시 일으켜 호텔 중식당 손님들을 다 빼앗아오겠다고 결심한 것. 전직 조폭이지만 두칠성은 단새우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순정남의 면모를 갖춘 데다, 그가 위기에 처하자 수십 명과 마치 이소룡처럼 대적하는 무술(?)실력의 소유자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이 더 이상 나쁜 일 하지 않고 조촐한 중국집이라도 하나씩 차리길 바라는 바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

두칠성과 서풍 그리고 단새우의 만남은 밑바닥에서의 연대로 그려지고, 그들이 향하는 칼끝은 저 높디높은 호텔을 향하게 된다. 비극이 유쾌한 복수극이자 빵빵 터지는 희극으로 바뀌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이들은 세상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개성과 생각으로 세상에 맞서는 인물이다. 그 캐릭터가 가진 힘은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서민들에게 묘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다소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첫 회는 몸 풀기였을 뿐이었다. 마치 더 멀리 높이 뛰어오르기 위한 웅크림이라고나 할까. 마치 복수극이나 비극을 담으면서도 유쾌한 정서를 잃지 않는 주성치가 나오는 중국영화의 장르적 특징들을 가져온 연출도 흥미롭다. 세상의 현실들이 가진 어쩌면 ‘기름진’ 그 굴곡과 분노가 그 밑바닥 정서에 존재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느끼한’ 전개가 아닌 유쾌한 전개를 꿈꾸고 있다. 현실을 공감하면서도 통쾌함을 전해주는 단짠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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