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로 말하라' 장혁·수영 공조수사, 은근히 설득력 높은 이유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사실만을 보고 말하고 있는 걸까. 왜곡된 걸 사실로 착각하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OCN 토일드라마 <본대로 말하라>는 특이하게도 사고로 눈이 멀고 걷지도 못하는 오현재(장혁)와 한 번 본 것은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차수영(최수영)이라는 두 인물의 공조 수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보통 수사물에서 형사들이 하는 수사과정은 현장에서 본 것들을 통해 그 스스로 추리해 범인을 추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보는 것’과 ‘판단하는 것’을 오현재라는 인물과 차수영이라는 인물로 나눠 놓았다. 이렇게 한 건,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본다고 해도 사실이 아닌 왜곡된 기억과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한다.

 

과거 오현재의 연인이 탄 차가 전복되어 폭발했을 때 그 사건을 저지른 이른바 ‘박하사탕 연쇄살인마’와 오현재가 대치하고 있었다. 그 폭발로 인해 범인은 사망으로 종결처리됐지만 그 현장에서 연인을 잃은 채 눈이 멀고 다리까지 못 쓰게 된 오현재는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의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차수영이 발견한 토막 시체에서 박하사탕이 발견되고 자신을 ‘그 놈’이라고 주장하는 용의자가 자수를 해온다. 위에서는 용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빨리 사건을 종결하라 요구하지만, 오현재는 심문받는 범인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사실이 아닐 거라 의심한다. 자수한 용의자의 범행도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혈흔이 발견됨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한 황하영(진서연) 광역수사대 팀장은 차수영을 그 현장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용의자가 살해한 여럿 사체들을 발견하고 살아남은 피해자를 구해낸다.

 

이렇게 보면 결국 그 용의자가 과거의 박하사탕 연쇄살인마라고 여겨지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한 번 더 상황을 뒤집는다. 용의자가 경찰서 취조실에 들어온 의문의 남자에게 살해된 것. 그리고 그 입에서는 박하사탕이 나온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 용의자가 진짜 ‘그 놈’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의문의 남자가 ‘그 놈’일까.

 

<본대로 말하라>는 이처럼 하나의 추정과 의심을 뒤집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보거나 그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차수영이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실에서 오현재가 리시버를 통해 전하는 목소리에 의지해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 해나갈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던전에 들어간 것 같은 그 어둠 속에서 차수영은 본대로 말하고 오현재는 그걸로 판단해 조금씩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본대로 말하라>는 한 번 보면 그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능력을 가진 차수영이란 특별한 인물을 세워두었다.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은 저 <보이스>의 ‘듣는 능력’을 마치 ‘보는 능력’으로 바꿔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관점은 전혀 다르다. 즉 ‘보는 능력’은 능력이기도 하지만 또한 왜곡될 수 있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걸 이 드라마는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인물과 판단하는 인물은 나뉘어져 있다. 보는 인물은 본 대로 말하고 판단하는 인물은 그걸 토대로 냉철하게 판단한다. 오현재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의 판단 능력에 신뢰를 더해준다는 건 아이러니지만, 그래서 차수영과의 공조를 통한 수사가 더 설득력을 얻고 독특한 설정의 수사물을 가능하게 만든다.

 

<본대로 말하라>는 이처럼 스릴러 명가인 OCN의 색깔을 제대로 갖춘 드라마다. 스릴러로서의 쫄깃한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드는 몰입감을 느끼면서도,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는 충분한 사회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 메시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진실이라 외치고 있지만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입장에서 왜곡된 것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눈을 감고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사진:OCN)

‘나의 나라’ 장혁, 이방원 역할이 깨운 막강 존재감

 

장혁의 존재감이 살아났다. 그토록 오랫동안 KBS 드라마 <추노>의 대길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썼던 장혁이다. 물론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강채윤 역할로 또 KBS 드라마 <아이리스2>에서 정유건 역할로 그만의 액션을 보여줬던 건 사실이다. 또 KBS <장사의 신>이나 OCN <보이스>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던 장혁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서 시청자들은 대길이 이미지를 자꾸만 떠올렸다.

 

장혁이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기 시작한 건 MBC <돈꽃>과 SBS <기름진 멜로> 같은 드라마에서 액션과는 조금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주면서다. 그러던 장혁의 연기가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로 활짝 피었다. 그 막강한 존재감은 이 사극의 주인공인 서휘(양세종)나 남선호(우도환)를 압도할 정도다. 무협 액션을 가미한 사극인지라 <추노>에서 보여줬던 액션 연기가 여기서도 이어지지만, 그것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보여주는 엄청난 욕망과 그 무엇 앞에서도 꼿꼿한 태도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다.

 

이것은 어쩌면 이방원이라는 그가 연기하는 인물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왕좌에 오르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 이성계까지 밀어내는 인물. 우리네 역사에서 이만큼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도 없다. KBS <용의 눈물>의 유동근이나 SBS <육룡이 나르샤>의 유아인이 모두 이방원이란 역할을 통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던 건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인물 자체의 극적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그려낸 이방원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용의 눈물>의 이방원이 카리스마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은 신세대 젊은 리더에 가까웠다. 장혁이 소화하고 있는 <나의 나라>의 이방원은 강력한 카리스마에 내적 아픔을 더해놓은 캐릭터다. 그저 폭주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득되고, 나아가 자기 사람을 위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는 그런 리더십까지 보여준다.

 

<나의 나라>에서 장혁이 연기하는 이방원의 색깔을 공고히 해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주변인물들이다. 그의 아버지이자 정치적 대적자가 되는 이성계(김영철)는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앞에서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 이방원의 존재감도 살아나게 만들었다. 조선 건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이방원에게 시키고 그러면서도 그를 적당히 이용만하고 버리려 하는 이성계 앞에서 이방원은 결국 형제의 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드라마가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 이성계보다는 이방원에 더 맞춰져 있어 비정하게 동생들까지 죽인 그가 심지어 처연하게까지 그려진다.

 

이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게 된 이방원에, 가상의 인물로 이 난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킨 서휘와의 브로맨스가 겹쳐지면서 어떤 인간적인 면까지 생겨났다. 벗인 남선호 앞에서 그 아버지이자 누이를 죽인 원수인 남전을 죽이지 못하고 망설일 때 대신 그를 베고 이방원이 하는 말은 웬만한 멜로보다 뜨거운 브로맨스를 담아낸다. “벗의 아비를 죽은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지 말거라. 내 그리 살았다.” 정몽주를 죽였던 자신의 괴로움을 알고 있기에 그 아픔을 서휘가 겪지 않게 하려 대신 피를 묻히는 모습이다.

 

이성계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주고, 서휘에게는 그 피 흘리며 휘청대는 몸을 뉘일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이방원. 장혁이 연기로 축조해낸 이방원의 캐릭터는 이토록 입체적이다. 그래서 본래 이 사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가 중심에 서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발견하게 됐다. <나의 나라>가 점점 이방원의 나라처럼 보일 정도로.(사진:JTBC)

‘나의 나라’ 양세종,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 그 먹먹함

 

어째서 이 청춘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를 보다 보면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이 눈에 밟힌다.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는 이 사극에서 항상 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피와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초상과 겹쳐져 더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남전(안내상)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서휘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방원(장혁)이 가세한 거사(?)에서 서휘가 맡은 역할은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방원을 제거하는 것처럼 꾸민 서휘는 남전이 동생 서연(조이현)을 위해 자결하라 던져 준 칼을 기꺼이 자신의 가슴에 박았다. 물론 급소를 피해 자결한 것처럼 꾸미려던 일이었지만, 서휘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 상황은 짠하기 그지없었다.

 

서휘는 남전에게 칼을 받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남전이 던진 칼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그래서 남전처럼 더 많은 걸 가지려는 이들에 의해 제 한 몸을 던져야 하는 삶이다.

 

피투성이의 서휘를 간호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희재(김설현)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게 되는 건 그 처절한 청춘의 삶을 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휘의 그런 온 몸을 던지는 거사가 쉽게 이뤄질 리가 없다. 죽을 위기에 몰렸던 남전은 그렇게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서휘는 제 몸을 던져 구해내려 했던 서연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걸 보게 된다.

 

남선호라는 청춘 또한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 남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심지어 서휘를 전쟁터로 보내는 모진 선택을 하면서까지 입신을 하려 한다. 정작 비정한 아버지 남전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아들인 남선호까지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남선호는 서휘를 배신했지만, 그와 그의 여동생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구해내려 제 몸을 던진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도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남선호. 그에게서도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절망감이 느껴진다.

 

서휘와 남선호의 앞길을 전면에서 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남전이라는 욕망에 의해 비뚤어진 어른의 초상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누구든 이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휘의 아버지를 이용하고는 죽게 했고, 그 아들인 서휘마저 그 길에 들어서게 했으며 결국 서휘의 여동생까지 죽게 만든다. 게다가 서자라고 해도 자신의 자식인 남선호까지 언제든 제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인물이다.

 

<나의 나라>는 조선 초기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피 튀기는 역사를 밑그림으로 가져왔지만 거기에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들을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들은 남전 같은 엇나간 욕망에 휘둘리는 어른에 의해 피 흘린다. 어째서 이런 구도를 사극의 이야기 속에 상상력으로 채워넣은 걸까. 그건 어쩌면 이 사극이 담아내려는 것이 저 조선 초기의 역사가 아니라, 그 혼돈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현재의 청춘들이 겪는 절망감을 담아내려 함이 아니었을까. 서휘의 얼굴만 봐도 짠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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