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무명이 추구하는 건 결국 자본주의?

 

그것이 우리의 신념입니다. 헌데 새 나라는 이에 대한 인간의 위대한 욕망을 부정합니다.” 지금껏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봤던 그 어떤 대결이 이만큼 첨예할까. 정도전(김명민)과 무명의 수장인 연향(전미선)이 벌이는 설전은 이들이 가진 서로 다른 신념의 갈등을 보여줬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무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조직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가는 이 사극의 가장 큰 궁금증이 되었다. 이미 조선 건국의 역사적 사실이야 누구나 다 아는 일일 게다. 그러니 <육룡이 나르샤>만의 새로운 동력이란 바로 이 무명과 육룡이 부딪치는 그 지점에서 나오게 된다. 정도전과 연향의 설전은 이 두 세력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연향은 인간의 욕망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도전은 그 욕망이란 것이 고려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각은 정전제에 대한 다른 관점을 만들어낸다. 연향은 사전혁파가 더 많은 땅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근원적으로 봉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전제란 사람 숫자대로 땅을 나누어가지고 주어진 땅에서 한 뼘도 넓힐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도전은 누구도 자신의 땅을 한 뼘도 넓힐 수 없기에 그 누구도 한 뼘의 자기 땅도 빼앗기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여기서 무명이 어떤 조직인가가 분명히 드러난다.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을 통한 성공과 성장을 추구하는 조직. 지금으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지지하는 조직이다. 결국 사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그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땅이란 당연히 왕의 것이요 나라의 것이란 것이 당연하던 몇 백년 전 황무지를 개간하며 그 땅은 개인의 소유로 하는 정책을 실시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 땅을 갖고 싶은 욕망에 미친 듯이 황무지로 달려 나가 땅을 팠고 따라서 농토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삼한 땅은 전에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욕망이 길을 만들고 풍요를 이룬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 인간의 욕망과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논리에 정도전은 반발한다. “그 풍요가 어찌 되었소. 누가 풍요로워졌습니까. 결국 전 국토의 7할 이상을 권문세족들과 사찰들이 차지했고 백성들은 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어 저들의 터전에서 쫓겨나 객지에서 굶어 죽거나 개 돼지 같은 노비가 되어 천천히 죽어나가고 있었소. 헌데 위대합니까? 이를 쫓는 욕망이란 것이?” 정도전이 추구하는 건 결국 국가가 나서서 그 독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성리학적 이상으로 달성하려 한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자본주의 논쟁이다. 자본주의가 빈익빈부익부를 만들고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비판의 근원적인 요소다. 하지만 이상을 추구해 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려 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결국은 무너져버린 현대사를 떠올려 보면 정도전의 논리 또한 너무나 이상적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그의 군자적인 논리는 틀린 데가 없으나 모두가 그 같은 군자가 되기는 쉽지 않은 이상이라는 것이다.

 

무명이라는 가상의 조직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육룡이 나르샤>의 흥미로운 이야기 전재가 눈에 띈다.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결국 이 자본주의에 맞닿아 있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이 난다. 즉 조선의 시스템은 구축하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이상사회는 실현되지 않는 것.

 

그것이 좌절되어가는 이야기를 무명이라는 조직을 통해 그려내면서 흥미롭게도 <육룡이 나르샤>는 차츰 이방원(유아인)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화두로 봤을 때 이방원은 결국 이 정도전과 무명이 대립하는 두 관점의 교차점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은 그를 품으려 하지만 이방원은 결국 폭두가 된다. 이미 홍인방(전노민)이 예견했던 그 가슴 속의 벌레 한 마리는 새로운 조선에 자신의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방원을 폭주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이방원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건 역시 이 무명이라는 조직이 된다.

 

이 얼마나 기발한 해석인가. 여말선초의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제목이 내세우듯 육룡이라는 영웅서사를 그리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현재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자본주의 논쟁과 맞닿아 있다. 정도전과 이방원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한다는 건 웬만한 철학적 관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뿌리 깊은 나무>에 이어 <육룡이 나르샤>와 함께 연작 시리즈를 낸다면 이 무명이라는 조직의 역사 개입으로 계속 흥미로운 역사의 재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작가들로서는 놀라운 야심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육룡>은 다 아는 역사도 흥미진진하게 만들까

 

도대체 척사광은 누구인가. 사실 SBS <육룡이 나르샤>가 아니었다면 이런 궁금증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척사광은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척사광이 실존인물인 고려 최고의 무장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설정은 이 가상인물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게 만든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척준경이 누구인가. 인터넷에 이 인물에 대해 쳐보면 상세한 역사적 기록들이 나온다. 그는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황해도 곡산 출신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윤관과 함께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한 인물로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곡산 척씨 가문의 시조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기록보다는 거의 하나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그의 놀라운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들에게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여진족을 상대로 싸운 전공은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 같은 이야기로 회자된다. 심지어 수만의 여진족 병사들 속으로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수급 수십 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이게 사실인지 무협지의 한 대목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무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인물이 척준경이다.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이야기는 무수한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다. 무휼(윤균상)의 무술 스승인 홍대홍(이준혁)이 척사광이 아니냐는 예측들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그가 사실은 여자였고 왕요가 사랑하는 인물 윤랑(한예리)이었다는 사실로 이를 뒤집음으로써 최고의 반전을 만든다.

 

척사광의 등장 또한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방지(변요한)가 그토록 수련을 통해 성공시키려 했으나 되지 않았던 검 위에 잔을 올려놓고 하는 검법을, 윤랑이 중독된 왕요를 치유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담겨진 날아가는 잔을 검으로 받아냄으로써 그녀가 심상찮은 무공을 가진 척사광이라는 걸 드라마틱하게 알려준다.

 

척사광이라는 캐릭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등장시키는 방식은,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역사를 통해서 또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남은(진선규)이나 조준(이명행), 하륜(조희봉) 같은 인물들을 처음부터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인상적인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다룬 후 그가 사실은 이 인물이었다고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을 써왔다. 이것은 이 사극의 주인공들인 이성계(천호진), 이방원(유아인), 정도전(김명민) 같은 육룡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썼던 방식이다.

 

알다시피 여말 선초의 역사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 재현된 바 있다. 게다가 웬만한 시청자들이라면 이 시대의 역사와 그 인물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역사를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 정통사극의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맥 빠지는 일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 역사라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인물들의 등장을 비밀스럽게(?) 슬쩍 등장시켜 나중에 정체를 밝히는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왔던 것.

 

척사광이란 가상인물이 실제 역사적 인물인 척준경과의 연관성으로 흥미로운 인물이 되는 것처럼, <육룡이 나르샤>의 가상설정 주인공들인 이방지, 무휼, 분이(신세경) 같은 인물이 흥미로워지는 것도 이들이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실제는 가상에 흥미로움을 덧붙이고, 가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실제 역사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가시킨다. <육룡이 나르샤>가 왜 실제 역사 인물 3인이 아니라 가상인물 3인을 합쳐 육룡을 만들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육룡>,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SBS <육룡이 나르샤>는 여섯 명의 용이 고려를 깨치고 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결코 쉽지 않은 전개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여섯 명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이합집산하는 걸 따라가야 한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명쾌한 여섯 캐릭터는 그래서 중요하다. 만일에 한 캐릭터라도 처지거나 약하게 그려지면 그것은 그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인물의 조합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는 사극이니 그렇다. 그래서 이 사극은 먼저 이성계(천호진)라는 묵직한 산 같은 캐릭터를 중심에 세워두고, 그 산을 말 몇 마디로 움직여 민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정도전(김명민)을 덧붙였다. 이인겸(최종원) 같은 희대의 악당 앞에 과거의 약점이 잡혀 무릎을 꿇는 이성계를 잔트가르라 믿었으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아프게도 목도한 이방원(유아인)이란 캐릭터도 세워졌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성계 같은 힘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정도전 같은 머리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행동에 옮기는 이방원의 실행력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가 필요하다. 이성계 대신 실행에 옮기는 이방원도 있어야 하고, 정도전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이성계라는 상징화된 존재도 필요하다. 물론 이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리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걸 실현해가는 정도전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는 여기에 민초들을 넣었다. 이 새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들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강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민초들 없는 나라가 나라일 수 없다. 분이(신세경)는 그래서 민초들의 대변자가 되었고, 그녀의 오빠인 이방지(변요한)는 음지에서 정도전을 돕는 무술의 고수가 되었으며, 무휼(윤균상)은 이방원의 호위무사가 된다.

 

물론 이들 캐릭터도 빈틈이 없다. 분이는 똑 부러지게 민초들이 할 말을 하는 캐릭터로 지금의 시청자들이 당대와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몰입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물론 분이는 향후 이 사극의 인물들 간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낼 멜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방지는 대사보다는 액션이 더 많은 인물이다. 마치 이 사극의 그림자처럼 슬쩍 슬쩍 등장하지만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극에 액션을 통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휼은 장쾌한 액션과 함께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우직한 성격과 어딘지 아이 같은 단순함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중요해진 건 이들 여섯 캐릭터들이 빈틈없이 꽉 채워질 수 있게 연기자들이 각자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마치 이들이 저마다의 연기력을 펼쳐 보이는 무대처럼 보인다. 어느 누구하나 빈 구석 없이 채워주는 연기 덕분에 여섯 용들은 이야기에서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 물론 이들이 대적하는 삼적, 이인겸, 길태미(박혁권) 그리고 홍인방(전노민)의 캐릭터와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섯 명의 인물이 어느 하나 처지지 않고 팽팽한 캐릭터의 힘을 유지하며 서로 엮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력 덕분이다. 김명민부터 유아인까지 꽉 채워진 연기. 그것이 <육룡이 나르샤>라는 쉽지 않은 사극을 훨훨 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육룡>, 민초들의 대변자 신세경의 일갈

 

그럼 전 뭘해요? 산다는 건 뭔가 한다는 거잖아요. 근데 전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요. 길을 잃었다고요. 그럼 그냥 이렇게 죽어요? 뭐라도 해야 사는 거잖아요.” SBS 월화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이(신세경)는 정도전(김명민)에게 이렇게 토로한다. 그녀는 절망하고 있다. 아니 백성들이 그렇다. 자신들이 경작한 쌀의 무려 8할을 세금으로 뜯어가는 양반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9할로 세를 올렸다. 잦은 왜구들의 출몰로 백성들을 돌보기 위함이라는 미명하에.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민초들은 그들이 경작하는 땅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이 그렇듯이 제 몸이 제 몸이 아니고 끊임없이 수탈당한다. 정도전은 절망에 빠진 분이에게 한 가지 희망을 전한다.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서 곡식을 경작해보라는 것. 하지만 이런 시도는 금세 들통이 나버린다. 한때는 성균관의 지식인이었으나 모진 고문 끝에 변절하고 이제는 앞장서 백성들을 수탈하는 홍인방(전노민)의 가노들이 들이닥쳐 민초들을 짓밟고 경작한 곡식을 빼앗는다. 그들은 말한다. “고려의 모든 땅은 다 나라 땅이야.”

 

분이와 살아남은 민초들을 구해준 이방원(유아인)은 굳이 관아에 가겠다는 그녀를 막아 세우며 결국 너희들이 국법을 어겨 이 사단이 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누르고 눌렀던 분이의 분노가 폭발한다. 이방원의 뺨을 올려붙인 그녀는 당신 귀족 따위가 뭘 알아?”하고 쏘아붙인 후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당해왔던 일들을 줄줄이 털어놓는다.

 

원래 우리 땅에서 한 해에 4백석의 곡식이 나왔어. 국법? 국법에 의하면 40석은 나라에 40석은 향리에 바쳐. 그게 바로 법이야. 하지만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어. 내가 태어나던 해 우린 240석을 바쳤대.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320석을 바치고 그리고 얼마 전에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명의 귀족에게 자그마치 360석을 바쳤어. 남아있는 40섬으로 일 년을 살아야 되는 인원은 200명이 넘어. 그게 어떤 숫자인지 모르겠지? 하루에 밥 두 숟가락씩만 먹고 살아야 된단 이야기야.”

 

9할의 세금. 물론 이건 여말선초의 극단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도 분명 울림이 있다. 매달 월급 명세서를 보면 어디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른 채 각종 보험료가 숭덩 잘려진 쥐꼬리만한 월급이 들어오고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리해서 은행 빚 얻어 산 집은 집값은 뚝뚝 떨어지는데 이자는 따박따박 나간다. 아이들을 점점 커가고, 몇 년도 안 되어 계속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여기 찔끔 저기 찔끔 보내는 학원비도 만만찮다.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육아와 교육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9할의 세금은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는 여러 명목으로 쪼개진 채 샐러리맨들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직장이 온전한 샐러리맨들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지만 이제 사회에 나가야할 청춘들은 이미 대학교 때부터 지게 된 등록금 빚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육룡이 나르샤>의 백성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건 좀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그런 사치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다. 삶이 삶이 아닌 현실에서의 생존.

 

그래도 우린 살아야 됐고 그래서 이 황무지를 파고 또 팠어. 올해 추수를 하는 그 첫 수확이었고 근데 사람을 죽이고 곡식은 다 빼앗아 갔어. 그래서 난 3년 동안 개간하고 낱알 하나 먹지 못하고 간 죽은 언년이를 위해서라도 뭐라도 할 거야.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니까.” 분이의 일갈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그리고 9할의 세금이 상기시키는 것들은 무엇일까. <육룡이 나르샤>의 민초들을 보다보면 자꾸만 현재의 허리띠를 조이는 서민들과 샐러리맨들이 아른거린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어떤 것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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