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판타지보단 아픈 현실 공감...드라마가 달라졌다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의 화려한 삶에서 1년 실형을 받고 감방생활을 하게 된 제혁(박해수)은 참고 참았던 속내를 털어냅니다. “세상에 나만큼 인생이 꼬인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제혁이 지내는 감방생활을 다루죠. 거기에 드라마가 전가의 보도처럼 다루던 판타지 따위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은 보통 이하의 삶에 처해있기 때문에 굉장한 욕망을 판타지로 갖지 않습니다. 그저 좀 더 따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다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사실은 재벌가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 이야기를 듣고 덜컥 그 집으로 들어간 지안(신혜선)은 그게 지옥의 시작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벌가의 화려한 삶은 고사하고 실은 그것이 동생 지수(서은수)의 자리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양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죠. 보통의 드라마, 그것도 주말극에서 ‘출생의 비밀’이라면 당연히 따라붙는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가 이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없습니다. 지안은 이 지옥과 추락을 겪으며 자기 앞에 놓인 목재를 다듬고 가구를 만드는 일에서 오히려 더 큰 행복을 느낍니다. 가족의 포근함? 삶이 수저 색깔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가족은 순간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의사 남편에 그럭저럭 잘 살아왔던 삶이었습니다. 치매를 앓아도 좋았던 기억이 있는 시어머니와 망나니 동생이라도 지지고 볶으며 살아주는 올케가 있어 그런대로 버텨낼 수 있는 삶이었죠. 그래서 이제는 남편의 은퇴에 맞춰 시골에 내려가 살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말기암이랍니다. tv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도에 방영된 드라마지만 하필이면 지금 왜 리메이크된 것일까요. 그것은 헛된 판타지보다는 아픈 현실을 공감해내려는 시대적 정서가 바탕에 깔린 선택은 아니었을까요.

JTBC 새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는 붕괴된 건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들이 서로 만나 그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상처를 이겨내고 해결해가는 이야기죠. 거기에 막연한 판타지 같은 것들이 들어앉을 자리는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랑도 그래서 대단한 삶의 욕망을 건드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사랑’을 하는 것도 벅찬 그들에게는 그래서 ‘그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일조차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들 중 다수가 ‘성장 곡선’을 그리는 막연한 판타지가 아닌 한껏 추락한 삶이 보통을 추구하는 현실 공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획은 훨씬 전에 이뤄진 작품들이겠지만 이미 그 때부터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정서는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게 틀림없죠. 그저 열심히 살아도 점점 추락하는 삶, 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삶, 그러다 한 순간 아픈 병이 닥치고 사고로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삶. 그것이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라는 인식이 이들 드라마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헛된 환상의 이야기에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편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대신 망가진 삶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를 버텨내고 보듬고 위로하고 그저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몇 편이 드러내는 이 같은 현실 정서는 그래서 못내 아픕니다. 우리는 성장을 꿈꾸는 게 아니라 ‘정상화’ 혹은 ‘그저 보통’을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과연 이 추락하는 삶에도 날개는 있을까요.(사진:tvN)

김장겸 사장 해임, MBC 정상화에 남은 숙제들

결국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이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지난 9월부터 70일 넘게 이어져온 노조의 파업은 이제 정리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번 해임안을 통해 겨우 MBC 정상화의 실마리가 보이게 됐지만, 이건 지난 70일 간의 파업만을 통해 얻은 성과는 아니다. MBC는 김재철 전 사장 이후부터 지금껏 너무 오래도록 시청자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만큼 이를 되돌리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장이 해임됐다고 해도 그와 수족처럼 함께 해온 MBC의 경영진들이 그 자리를 그대로 버티고 있는 이상 MBC의 정상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방송 장악을 시도했거나 이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처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엇나갔던 그 길을 되돌리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MBC가 예전의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뉴스, 시사, 교양 부문을 자율성을 다시금 확보해야 한다. 알다시피 시청자들은 과거 <피디수첩>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같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한때 국민의 귀와 입이었던 프로그램이 정치적인 힘에 의해 핍박받으며 결국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MBC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피디수첩>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뉴스데스크> 역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인력 구성에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그 자리를 지키려 애썼던 이들이 모두 방출되어 있는 현재, 남은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뉴스 보도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힘이 바로 이 신뢰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부분에 대한 개혁 없이는 <뉴스데스크>의 복원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MBC는 과거 ‘MBC스페셜’이나 ‘눈물 시리즈 다큐’처럼 교양 부문에 있어서도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던 방송사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에 아예 교양국 자체가 와해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런 과거의 MBC 교양이 갖던 존재감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 때 좋은 프로그램들을 만들던 이들은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결국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좋은 프로그램이 좋은 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라진 교양국을 어떻게 다시 부활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그래서 MBC가 가진 또 하나의 숙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MBC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주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외주제작사들마저 외면하는 방송사가 되어버린 건 이 역시 파행적인 간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막장드라마화한 주말드라마만이 겨우 남게 된 MBC 드라마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이런 권위적인 구조를 깨는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예능은 <무한도전>이 상징적으로나마 MBC를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분야에도 지난 10년 간 꽤 많은 인재들이 방송사를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늘 참신하고 새로웠던 MBC 예능 특유의 도전적인 분위기가 다시금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간 위축된 제작진들의 사기를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장겸 사장의 해임으로 이제 겨우 MBC는 정상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됐다. 무려 10년 간의 엇나감이다. 그걸 되돌리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보여준다면 의외로 빨리 시청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사진:MBC)

잠시 떠나는 건 아쉽지만... 정상화된 방송으로 돌아오길

사실 엄밀히 말해 배철수도 정은아도 방송국 소속이 아니다. 두 사람은 각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방송인이고 가수이고 아나운서다. 그러니 현재 KBS와 MBC의 노조가 결정한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흠이 될 일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업일 수도 있으니.

'배철수의 음악캠프(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들은 각각 라디오 방송 진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배철수가 진행하는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정은아가 진행하는 KBS <함께 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는 당분간 멈춰서게 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음악방송으로 대체되고, <함께 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는 오영실 아나운서로 MC가 교체됐다. 

이들이 프리랜서이면서도 이처럼 총파업에 동참하게 된 건 동료와 후배들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은아는 “후배들이 결의를 해서 그렇게 하는 상황에 빈 책상을 보며 들어가 일하는 게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밝혔고, “힘내시고 잘 되셨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의 행보에 힘을 얹어주었다. 

배철수는 중단 선언 마지막 방송에서 엔딩 곡으로 브라질 작곡가 유미르 데오다토의 연주곡 ‘아베 마리아’를 선곡하고 “종교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란다. 청취자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파업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참여하지 않고 정상 방송을 내보내 아쉬운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총파업에는 MBC 라디오 PD 40명은 물론이고 작가 70명도 참여해 성명서를 냈다. 그 명단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인 배순탁, 김경옥도 들어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진행자, 출연자 섭외 등 제작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며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자율성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물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프로그램의 위상이나 특성상 이런 부당함에 대한 체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철수가 이 파업에 동참하게 된 건 동료와 후배들이 겪는 힘겨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렬히 프로그램을 청취하던 팬들로서는 배철수나 정은아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질 수 있고, 그만큼 아쉬움도 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잠시 방송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지지’를 표하고 있다. 방송사가 정상화되어 돌아오는 날까지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 

때론 ‘빈자리’가 더 많은 이야기와 울림을 남긴다. 늘 우리 옆에 있던 목소리의 소중함은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더 큰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할 수 없는 방송 앞에서 이들이 선택한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배철수는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한때는 MBC 시그널 송으로 귀에 콕 박혀 있는 그 문구가 어쩌다 무색해진 작금의 방송사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배철수의 기원대로 이번 기회에 방송사가 예전 ‘만나면 좋은 친구’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입대하는 황광희, 빈자리 꽉 채워준 양세형

이제는 양세형의 존재감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사실 양세형은 아직까지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라고 소개된 적이 없다. 그저 언젠가부터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무한도전>에 서 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멤버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지만, 양세형은 어느새 <무한도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7주간의 ‘정상화’ 기간을 거치고 돌아온 <무한도전>은 광희의 군 입대 소식과 함께 어떤 불안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 빈자리를 제대로 채워주고 있는 양세형이 존재한다는 건 실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양세형이 없는 상황에서 광희마저 군 입대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의 다섯 명 체재로도 쉽지 않은 <무한도전>은 네 명 체재로 돌아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아마도 김태호 PD는 이러한 앞으로 닥칠 상황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양세형을 차근차근 <무한도전>의 한 자리에 세워두고 자연스럽게 그 적응과정들을 겪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시간은 <무한도전>의 기존 멤버들은 물론이고 양세형에게도 필요한 일이고 나아가 프로그램과 늘 함께하는 팬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광희가 ‘식스맨 특집’이라는 아예 내놓고 하는 검증시스템을 거쳐 <무한도전> 멤버로 들어왔다면, 양세형은 그런 거창한 특집이 아니라 차라리 프로그램에 실전 투입해 겪는 일종의 인턴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양세형은 장난기 가득한 어린이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하하와도 약간 겹치는 면이 있지만 양세형이 다른 점은 ‘전문 패널’이라는 별칭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그럴듯한 리액션과 설명을 덧붙인다는 점이다. 제법 진지하게 말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어린이 같은 캐릭터는 그 진지함마저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는 <무한도전>에서도 그렇지만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그 누구보다 재밌는 리액션과 패널 같은 맛 설명으로 자기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떤 게임이나 대결에 들어갔을 때 양세형의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그건 유치할 정도로 상대방을 놀리고 감정을 건드리는 모습으로 한편으로는 웃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결에 불을 붙인다는 점이다. 7주간의 정상화 기간을 거치고 돌아와 <무한도전>이 보여준 ‘하나마나 대결’ 특집에서 양세형이 특히 도드라졌던 건 그래서다. 

그는 끊임없이 뭐든 잘 한다는 식의 허세를 드러내며 상대방 팀을 약올렸지만 유재석과 함께 연거푸 게임에서 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대결이지만 그 대결을 팽팽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양세형의 ‘도발’이 꽤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지막 철인3종경기 대결에서 양세형은 수영 종목에서 말도 안되는 접영을 보여주며 웃음을 주었고 끝까지 아슬아슬한 대결 속에서 광희가 마라톤 주자로 나서 마지막 피니시 라인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입대하는 광희를 향한 <무한도전> 멤버들의 헹가래가 이어졌다. 광희와 양세형의 성공적인 이어달리기를 보는 듯한 그 광경은 마치 <무한도전>이 앞으로도 빈자리 없이 계속 달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광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떠나는 그 빈자리를 양세형은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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