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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남 작가 컴백 성패가 보여줄 것들

 

최근 한 매체는 문영남 작가가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의 후속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해 SBSKBS 양사에 편성이 불발됐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항상 막장 논란이 야기되곤 하지만 그래도 한 때는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리던 스타 작가 아닌가. 문영남 작가는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클럽>, <수상한 삼형제> 등으로 항상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던 작가다.

 

'KBS연기대상(사진출처:KBS)'

그래서인지 그녀의 지난해 편성 불발 소식은 이제 지상파 드라마들이 시청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평판이 중요해졌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사실 문영남 작가의 작품이 막장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특정한 자기만의 고유영역과 드라마 작법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녀의 작품이 노이즈가 항상 있음에도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가져가는 건 그래서다. 다만 중요한 건 문영남 작가만의 드라마 문법이라는 것이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최근 SBS 주말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거야>는 사실 완성도에 문제가 없는 작품이다. 초반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오면서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까지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김수현 작가라고 해도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10% 미만에 머물러 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문법 역시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어딘지 식상해져 있다는 뜻일 게다.

 

사실 SBSMBC에 빼앗긴 주말 드라마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세스캅2> 같은 장르물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김수현 작가 같은 주말극에서 항상 힘을 발휘했던 작가의 작품을 편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미세스캅2>의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작품 자체가 어정쩡한 장르물에 머물러 있어 그다지 큰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문영남 작가는 통할 것인가. 중견작가인 그녀가 지금에 와서 새로운 문법을 시도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드라마일 것이고, 구성원들 중에는 분명 암 유발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갈등들이 첨예해질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화해 과정에 도달하는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문법이 요즘처럼 장르물의 완성도에 더 몰입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여전히 그 문법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빠져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작품 역시 대중적인 취향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취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 형식이 특별히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녀의 작품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겠지만 그것이 여전히 대중적인지는 이번 편성될 작품이 판가름낼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어디서 어떤 시간대에 들어오든 문영남 작가의 작품의 성패는 현재 지상파 드라마의 흐름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 성패가 김수현을 위시해 임성한, 문영남 같은 한때를 풍미했던 중견작가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대신 최근 떠오르고 있는 박지은, 김은희, 김은숙 같은 새로운 작가들로의 세대교체를 얘기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할 수도 있겠지만.

Posted by 더키앙

범접할 수 없는 경지 보여준 <유나의 거리> 김운경 작가

 

요즘 드라마 중견작가들에게는 찬사보다는 비난이 더 가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어느새 부턴가 시청률 좇는데 쓰고 있는 중견작가들이 많아진 탓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한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의 전면에 나선 작가들이 다름 아닌 중견작가들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임성한, 문영남, 서영명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임성한 작가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드라마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유나의 거리(사진출처:JTBC)'

중견 작가 중에서도 김수현 작가는 거장이다. 확실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수현 작가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여러모로 김수현 작가답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다. ‘세 번째 결혼은 나와 한다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문학적일지는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너무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는 지킬 것은 지키는 작가다.

 

사실 중견 작가로서 오랜 세월 자리하면서 현 세대와 소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또한 그 정도의 공력을 쌓아왔다면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세계가 여전히 지금도 통한다는 것 역시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영한 <유나의 거리>는 김운경 작가의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세대와도 소통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나의 거리>를 쓴 김운경 작가를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 부르는 건 그의 작품이 그 어떤 작가도 따라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나의 거리>는 그저 소소한 가족드라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하나의 사건으로 흘러가는 극적 구조도 아니다. 또 우리가 흔히 봐왔던 재벌가 이야기나 그저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 바로 우리 옆에서 살아갈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상적인 수준에서 다루는데 이처럼 흥미진진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김운경 작가가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력에서 비롯된다. 제목이 유나가 아니라 <유나의 거리>가 된 데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거리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포착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는 <유나의 거리>를 통해 보기 드물게 건실한 청년 창만(이희준)은 물론이고 한 때 소문난 조폭두목이었지만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만복(이문식), 과거엔 잘나가던 건달이지만 마지막엔 치매를 앓으며 기초수급생활자로 살아가는 장노인(정종준), 그밖에도 개장수 홍계팔(조희봉), 칠쟁이 변칠복(김영웅) 등등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로 우리의 마음에 남았다.

 

다세대주택에서 이들이 서로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저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우리네 삶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누구나 고민 한 자락씩은 갖고 있고 그럼에도 서로서로 기대며 보듬고 사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드라마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이런 것이 어쩌면 우리가 중견작가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 게다. 중견이라면 적어도 삶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생길만한 위치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리는 드라마는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살생부를 휘두르며 비상식적인 드라마 전개로 시청률만을 노리는 중견이라면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김운경 작가는 확실히 문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번 <유나의 거리>에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다. 마치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을 읽는 듯한 해학적인 상황들이 <유나의 거리>에서는 번뜩인다. 한창 잘나갈 때 서로 구역 다툼으로 으르렁대던 주먹들이 나이 들어 병원에 나란히 누운 채 서로의 몸을 걱정하는 장면 같은 건 인생이 갖는 시간의 무게감을 느껴보지 못한 젊은 작가에게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김운경 작가는 <유나의 거리>를 통해 중견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를 지금 세대와 소통하려 애쓰는 그 모습에서는 중견의 품격이 느껴진다. 모쪼록 많은 중견들이 이런 노력을 보여주기를.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를 제대로 빛내주는 일이고 또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서영명 작가의 고소와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일들

 

임성한 작가의 원고료 50억설(물론 실제는 50억이 아니라고 한다)에 이어 서영명 작가의 JTBCJS픽처스를 상대로 낸 52억 소송이 알려졌다. 소송 사유는 JTBC <더 이상은 못 참아>를 집필하던 중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는 것. 서영명 작가가 JS픽처스를 통해 전해들은 JTBC측의 해지통보의 표면적인 이유는 대본이 늦게 나와서라고 한다.

 

'더 이상은 못참아(사진출처:JTBC)'

물론 이 늦은 대본문제는 JTBC 관계자에 의하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밥줘> 같은 드라마를 통해 서영명 작가가 보여 왔던 일련의 작가 권력의 파행을 잘 알고 있다. 당시 막장 전개에 대한 무수한 비판들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방송사까지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통제가 되지 않았던 상황.

 

늦은 대본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사유라고 한다면 <더 이상은 못 참아>라는 드라마의 내적인 이유가 더 클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평생 구박당하며 억눌려 살아오던 아내가 더 이상은 못 참고남편에게 이혼청구를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즉 황혼이혼을 소재로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로 과연 일일드라마로서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새 여자를 아내로 들인 전남편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설정이라든가, 제 아무리 억압받으며 살아왔다고 해도 거의 막말에 가까운 말들을 남편에게 쏟아내는 아내의 대사 같은 것들은 저녁 시간대에 가족이 함께 보기에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영명 작가의 교체 시점에서는 갑자기 이 드라마의 주인공격에 해당하는 길복자(선우용녀) 여사가 교통사고로 죽어 관에 실려 무덤 앞까지 갔다가 관 뚜껑을 열고 부활하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즉 이 드라마의 무리한 설정과 자극적인 전개가 계약 해지 사유의 이면에는 분명 존재할 거라는 점이다.

 

물론 자기 작품을 쓰다가 중도에 교체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큰 충격이자 상처일 수 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무작정 시청률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만 나오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이 경우를 <오로라공주>의 임성한 작가를 통해 겪고 있다. 심지어 시청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연장 반대와 임성한 작가 퇴출 운동까지 벌이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방송사는 요지부동이다. 계약이 되어 있다고 해서, 아니 시청률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방송사가 작가의 파행을 묵인해주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서영명 작가가 얘기하는 작가의 권익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서영명 작가처럼 이미 권력화된 중견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빛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젊은 신진작가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마치 이들을 대변하는 듯 얘기하고 있지만 서영명 작가가 과연 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큼 작가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지 자문하고 싶다.

 

방송사의 횡포일까. 아니면 이른바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불리는 중견작가의 또 다른 권력 행사일까. 만일 방송사가 아무런 사유 없이 작가를 교체했다면 그것은 물론 힘 있는 자의 횡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서영명 작가의 경우에 왜 굳이 작가를 교체까지 했는가 하는 점을 새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파행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방송사가 시청자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 되지 않을까. 현재 임성한 작가에 대해 대중들이 요구하고 있지만 방송사가 취하지 않은 조치 같은 것들.

 

서영명 작가의 고소에는 분명 작가의 권리라는 측면과 방송사의 입장 그리고 시청자의 권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대중들이 바라보는 중견작가들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점 또한 거기에는 정서로 깔려 있다. 요즘은 이른바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리는 중견작가들이 드라마를 다 말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이들이 주로 그리는 가족드라마의 양태를 보면, 말 그대로 파탄 난 가족들뿐이다. 이것은 해체되고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일까, 아니면 가족드라마의 파행을 보여주는 일일까. 무엇보다 서민들의 귀에 들려오는 몇 십 억씩 하는 그네들의 원고료가 과연 그 드라마들의 가치에 합당한가 하는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들 중견들의 시청률 지상주의 드라마들에 우리네 드라마판이 무너질 판이다. 이것이 더 이상은 못 참고 퇴출운동까지 하는 대중들의 마음이다.

Posted by 더키앙


'해품달' 성공이 중견작가들에게 시사하는 것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37%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면 40%도 손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사극이란 장르가 첫 회부터 20% 시청률로 시작해 통상 40%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던 걸 떠올려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드라마들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는 사극마저 20% 넘기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항간에는 대신 예능이 드라마의 권좌를 빼앗았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이 첫 회에 18%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심지어 제작진마저 깜짝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저 한 작품의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즉 이 작품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침체됐던 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는 '역사로부터의 탈피'라는 과감한 선택이 있었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완전한 허구가 된 사극은 그 장르적 특성이 가진 장점만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청춘 멜로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간 침체기를 겪은 멜로 장르가 사극이라는 틀을 접목시켜 부활한 작품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우리의 주목을 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그 핵심에 바로 이 '참신한 시도'가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주의 남자'가 본래 역사를 재구성하여 팩션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라는 소재 속에서도 전혀 다른 장르적 재미를 덧붙인 팩션 사극의 새로운 실험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작년 초 '현빈 앓이'를 만들었던 '시크릿 가든'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를 덧붙여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독고진 현상'을 만든 '최고의 사랑' 역시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보기 드물게 법의학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 '싸인', 의학드라마의 틀 안에서 심지어 컬트적인 시도를 보인 '브레인'도 그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반면 작년 두드러진 현상은 중견작가들의 저조한 성적이다. 김정수 작가가 쓴 '내일이 오면'은 10%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문영남 작가의 '폼나게 살거야'도 시청률 10%를 못 넘기고 있다. 그나마 임성한 작가가 '신기생뎐'으로 24%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이 작품은 시청률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졸작이었다. 유령에 빙의되고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을 막장 중의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문제를 덧붙여 절절한 멜로를 만들어냈던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지만 그 명성에 비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견작가들이 써내는 거의 비슷비슷한 도돌이표의 작품들에 대중들이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것. 가족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것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중견작가들이 주로 써온 가족드라마들은 인물 구성만 달리했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굳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중견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거나 연구해서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한 마인드 게임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대중들의 외면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 '공주의 남자'의 조정주 작가, '무사 백동수'의 권순규 작가, '싸인'의 김은희 작가, '브레인'의 윤경아 작가 등등, 사실상 신진작가들이 작년 대거 주목을 받은 반면, 중견작가들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제작진들의 시선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드라마 업계에는 작가의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신진작가들에 비해 원고료는 터무니없이 비싸면서도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중견작가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시청률이 나온다 해도 매번 비슷한 패턴에 머물러 있는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이 좋아도 이런 작품에 광고가 잘 붙을 리도 없다.

물론 이렇게 중견작가들의 몸값이 성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데는 방송사의 책임이 있다.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 참신한 신진작가들의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중견작가를 너나 할 것 없이 모시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극성이 높아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인 막장드라마의 양산은, 바로 이런 몸값에 걸 맞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중견작가들의 안간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시청자들이 이런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런 작가를 기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같은 패턴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작품은 쏟아져 나오고 드라마가 아니어도 점점 볼 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중견작가들은 이제 스스로도 연구하고 실험하는 작품을 고민해야 될 시기다. 중견작가로서 '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그런 점에서 모든 중견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자기 스타일이 있고 글 잘 쓰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이제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해를 품은 달'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속에는 그 참신함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Posted by 더키앙


시청률이 만들어낸 막장, 왜 중견들이 쓰고 있나

'신기생뎐'(사진출처:SBS)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은 막장의 차원을 넘어섰다. 그래도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어떤 논리적인 흐름을 전제로 하여 거기서 벗어난 것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신기생뎐'에는 어떤 논리적인 흐름 자체가 없다. 갑작스럽게 귀신이 등장하고, 빙의가 벌어지고,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TV를 켜면 우리의 눈에 노출되는 드라마는 최소한 공감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엽기적인 취향을 왜 우리가 봐야 하는가.

놀라운 건 이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보통 3,4천만 원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건 뭔가 열심히 작품을 쓰는 젊은 작가들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얘기다. '작품? 써봐야 돈이 되지 않는다. 시청률을 뽑아낼 수 있는 걸 써라.'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다. 개연성을 공부하고, 대중들과의 공감과 리얼리티를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이 도대체 뭘 보고 배울 것인가.

사실 중견작가의 문제는 임성한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권력화 되어 있는 스타 중견작가들은 현재 그 존재 자체가 문제거리다. 임성한 작가를 비롯해 김수현, 문영남 같은 이른바 시청률 제조기 중견작가들은 자신들이 받아가는 고료만으로도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액의 원고료는 결국 제작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써낸다면야 그나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중견들이 그만한 가치의 작품을 써내고 있을까.

김수현 작가는 누구나 그 필력을 인정하는 작가지만, 그래서 작품을 가지고 가타부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 역시 껍데기를 벗겨내면 늘 비슷한 이야기의 도돌이표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시대적인 문제들을 하나 정도씩 꼭 끼워 넣기 때문에 그것이 현재적인 의미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 실체를 언뜻 보여주었다. 동성애 문제를 집어넣었지만(물론 그 문제가 가치 없다는 건 아니다), 그것이 지금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젊은이들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청년 실업이 횡행하는 시대, 인생은 과연 그렇게 아름다운가. 아니 그렇게 아름답다고 섣불리 긍정해도 되는가.

그래도 김수현 작가는 작품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문영남 작가나 임성한 작가는 작품을 두고 얘기하기가 꺼려진다. 물론 문영남 작가는 나름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전개방식에 있어서 다분히 시청률에 경도된 자극을 만들어낸다는 혐의는 벗을 수 없다. 본래 정극을 제대로 써왔던 문영남 작가는 왜 중견에 이르러 이런 변신을 하게 되었을까. 결국 그 끝에서 발견하는 건 시청률이다. 임성한 작가가 개연성이 전혀 없는 드라마를 써도 작가 선생님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은 그 놈의 시청률이 있기 때문이다.

정하연 작가는 본래 문제의식이 투철하고 작품에 있어서도 말 그대로 문학적인 향기가 묻어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달콤한 인생'은 중견작가로서의 무게감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욕망의 불꽃'은 다르다. 물론 개연성은 어느 정도 담보되어 있지만, 그 흐름은 다분히 자극적인 코드를 만들어내는데 있었다는 심증을 버릴 수 없다. 그만큼 시청률은 무서운 것이 되었다. 누군가는 같은 중견으로 몇 천 만원의 회당 원고료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작품만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중견작가들이 그만큼의 원고료를 가져가는 것은 그들이 중견으로서 그만한 책임과 역할을 다할 때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중견들은 젊은 작가들보다도 더 시청률에 목매는 드라마를 써대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중견작가들이 더 많다. 하지만 방송사에 의해 모셔지는 스타급 중견작가들은 대부분 그렇다. 창피한 일이 아닌가. 젊은 작가들의 패기 넘치는 등용문은 이미 단편드라마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좁아지고 있고, 중견들은 방송사 입맛에 맞는 시청률이나 뽑아내는 드라마를 쓰고 있다. 이래서 어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여러 모로 중견작가라면 중견에 걸 맞는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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