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군대, 회사의 부당함, 꼰대냐 어른이냐

 

주머니 속의 송곳. 언제든 바지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그 송곳 같은 존재. 아마도 JTBC 드라마 <송곳>은 그런 의미에서 달린 제목일 것이다. 이수인(지현우)은 그런 인물이다.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을 거부하고 대신 매를 맞는 걸 선택하는 인물이며, 대선에서 특정 인물을 강요하는 사관학교의 장성에게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나서는 인물이다.

 


'송곳(사진출처:JTBC)'

그런 그에게 푸르미 마트의 정민철 부장은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는 송곳 같은 존재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이 평탄치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장래희망을 꼰대라고까지 적기도 했었다. 즉 송곳 같은 선택이 늘 그를 힘겹게 했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 송곳 같은 선택을 한다. 모두 해고하라는 명은 불법이라고.

 

사실 학교에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이나 대선에 특정인물을 찍으라 강요하는 일, 그리고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요구하는 일은 모두 잘못된 일들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부당함을 토로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당함을 얘기하기보다는 그것을 감수하는 걸 선택한다. 그것이 훨씬 편안한 삶을 만들어주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과연 옳은 일일까. 이런 식의 포기가 결국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송곳>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간단하다.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는 것일 뿐. 하지만 그 송곳 같은 한 마디는 의외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모두가 수긍하고 포기했던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곳>이 겨냥하고 있는 건 바로 이 상식 없는 현실이다.

 

이수인이 송곳이 된 공간이 학교, 군대, 회사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 세 곳은 다름 아닌 사회집단이다. 우리네 사회집단이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함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으며 심지어 그 부당함을 당연한 것처럼 체화시키는 곳이 되어 있다는 건 통탄할 일이다. 흔히들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이 사회생활도 잘한다고 말하는 데는 그 부당함이 하나의 요령이 되어버린 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송곳>은 이수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런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부당한 현실에도 적당히 수긍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비로소 그런 문제제기를 통해서만이 현실이 그 부당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을 때는 그저 당연한 듯 흘러가던 현실이 아닌가.

 

그저 그런 꼰대가 되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것인가는 그래서 <송곳>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단할 것도 없는 상식적인 일을 생각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일 뿐이라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러니 이수인을 송곳 같은 존재로 만든 건 그 자신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비상식적으로 굴러가는 현실이다.

 

<송곳>이라는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이 현실과 조응하면서 생겨난다. 우리 현실이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체화시키고 교육시켜 왔던 포기. 그래서 어른이 아닌 꼰대가 되어야 살기가 수월하게 되는 현실. 그 주머니로 가려진 현실 속에서 주머니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송곳 같은 역할을 해주는 드라마.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은 꺼내지 않았던 그것을 말해주는 드라마. 그것이 <송곳>이 주는 통쾌함의 이유다.



<앵그리맘>의 선정성, 논란이 되지 않으려면

 

MBC <앵그리맘>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학내의 폭력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 간의 원조교제 교사와 조폭과의 커넥션 심지어는 교사가 조폭을 시켜 청부살해를 요청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물론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명성고등학교처럼 심각한 폭력과 전횡에 노출된 학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극화된 부분이 많고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이처럼 극화를 통한 과장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그 첫 번째다. 이것은 <앵그리맘>이 극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 과장을 어느 정도 허용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가 사회의 현실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 즉 그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을 이끌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것은 그저 드라마의 자극적인 소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앵그리맘> 즉 분노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정당하려면 학교 문제에 대해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법적 정의가 아니라 사적 복수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의미로 흐르게 되면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 회에 조강자(김희선)라는 엄마는 이러한 학교 폭력 문제에 분노하는 존재로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조강자가 학내 폭력의 뒤편에 서 있는 조폭 안동칠(김희원)과 사적으로 얽힌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

 

안동칠의 동생과 조강자가 사귀는 사이였고 그걸 반대하던 안동칠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 동생이 칼에 맞아 죽는 사고를 당했던 것. 이런 사적인 상황의 우연한 연루는 드라마의 개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적인 존재로서의 조강자라는 엄마의 행동을 지극히 사적인 행동(과거의 사건과 연루된)으로 보이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학교 폭력의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러니 그런 실상을 조금 극화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정당한 기획의도가 있다면 무리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기획의도가 엉뚱하게 흐르거나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치중되기 시작하면 드라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빌미로 자극과 선정성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심지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교육효과를 만들 수도 있다. <앵그리맘>이 위험해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딸의 복수를 위해 엄마가 주먹을 드는 이야기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공감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박노아(지현우)라는 선생님의 존재다. 그의 아버지인 판사 박진호(전국환)는 분재를 하며 아들에게 자신은 이렇게 잘못된 가지를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교사는 햇볕이나 비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잘못 자라고 있다고 해도 햇볕을 늘 비추고 비는 늘 내려주기 마련이라고. 즉 교사라는 존재가 아이들을 판정하고 재단하는 인물이 아니라 모든 걸 받아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얘기다.

 

<앵그리맘>은 학교 폭력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 하나는 조강자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주먹으로 맞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노아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그런 학생들을 사랑과 배려로 끌어안는 것이다. 전자가 드라마적 판타지와 쾌감을 선사한다면 후자는 드라마의 의미를 담아낸다. 박노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종말에 이른 학내 상황에 아이들을 태워줄 방주를 짓는 존재다.

 

<앵그리맘>은 자칫 선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한 드라마다. 어느 순간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거나 자극적인 상황으로 기울게 되면 드라마는 균형을 잃을 위험성이 크다. 조강자만큼 박노아가 중요해지는 건 그래서다. 이 두 인물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질 때 드라마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여성의 두 로망, 연애냐 결혼이냐

이제 두 명의 여성 사이에서 남성이 한 명을 선택하던 시대는 갔다.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칙릿(Chick 젊은 여성+ Literature 문학)’이 떠오르는 것처럼 이제는 여성이 여러 남성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두 남자, 태오(지현우)와 영수(이선균)는 바로 그 여성들의 로망이 투영된 그 남성들로, 은수(최강희)는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연하지만 어른스러운 태오, 지현우
“예쁨 받는 거 말고 사랑 받고 싶어요. 귀여운 어린애가 아니라 남자로써.” 태오의 이 말에 은수는 마음이 저리다. 우연히 만난 첫날,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 되면서 활활 타오르게 된 연하남 태오와의 사랑에 있어서 은수는 스스로의 벽을 세워둔다. 현실과 유리된 듯한 알콩달콩한 태오에게서 달콤함을 느끼지만 그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늘 태오는 아이취급을 받는다. 태오는 31살 현실에 치일대로 치인 은수에게 여전히 달콤한 사랑을 꿈꾸게 만들지만 친구들에게 보이기에는 쑥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태오는 그렇게 철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늘 생활의 중심에 은수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사랑하기에 그 순수함이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오히려 그를 아이로 만드는 건 이제 그런 열정을 보이기엔 스스로 나이 들었다 생각하는 은수다. 과음으로 늦잠 자는 은수를 위해 후배 여자에게 부탁해 대신 회사에 전화를 하게 할 정도로 태오의 배려는 깊다. ‘당신은 날 사랑한 적이 없어요’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태오는, 이제 직장생활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이 되어버린, 그래서 그런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기엔 너무 나이 들어버린 현대여성들의 로망을 보여준다.

연상이지만 소년 같은 영수, 이선균
“미안하지 않아도 돼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미안하다면 고마운 마음도 잊을께요. 미안한 마음 잊어요.” 그만 만나자는 은수의 말에 특유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영수가 하는 이 말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세월처럼 묻어난다.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영수는 서른 여섯의 훈남. 이 나이 많음이 오히려 편안함과 여유, 따뜻함으로 전화되어 여성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소년 같은 순수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난 첫날 관계를 가져버린 태오와는 상반되게, 영수는 은수의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존재다.

무언가 아픔이 많았던 인물이지만, 그래서일까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영수를 편안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가끔씩 낮은 목소리로 얘기할 때 이 사람이 깊은 바닥의 이야기를 내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진지함과 순수함, 그리고 능력과 연륜, 게다가 꿈을 잃지 않은 영수는 이제 나이 들어가는 현대여성들에게 여전히 현실적으로 꿈꿀 수 있는 로망이 되어준다.

연애하고 싶은 남자, 결혼하고 싶은 남자
태오와 영수, 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지현우와 이선균은 그 본래의 이미지를 그대로 드라마에 투영한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연하남으로서 여성들의 로망이 된 지현우는 특유의 순수하고 선한 웃음으로 오히려 연상인 여성을 배려해주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반면 이선균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통해 그 훈남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그는 원숙하지만 소년 같은 순수함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달콤시’가 보여주는 태오와 영수, 혹은 완소남 지현우와 훈남 이선균은 현대여성들의 로망으로서 이율배반적이지만 여전히 꿈꾸고 싶은 두 요소를 지닌 존재들이다. 연하에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어른스러운 태오가 연애하고 싶은 남자라면, 연상에 능력 있고 진중하지만 때론 소년 같은 영수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다. ‘달콤시’가 전해주는 달콤함은 이들이 어느 쪽이든 현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환타지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랴. 힘겨운 현실 속에서 환타지라도 잠시 동안의 그 달콤함에 젖어보는 것이. 은수의 말처럼 늘 자신을 먹여 살려온 자신에게 “때론 칭찬해줘도 좋은 날”은 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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