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프린세스', 소현경표 멜로드라마의 사회성

"좀 전에 골라든 그 수백만 원 하는 가방, 그 동안 당신의 명품들, 인우 인생 짓밟은 대가라는 거 알아요? 인우 거 뺏은 거라는 거." '검사 프린세스'에서 인우(박시후)의 친구인 제니(박정아)가 마혜리(김소연)에게 던지는 이 말은 드라마의 시점을 살짝 돌려놓는다. 그동안 마혜리의 입장에서 진행되어오던 드라마는 제니의 이 역지사지를 제안하는 대사를 통해 인우의 입장을 풀어놓는다. 수백만 원 하는 가방에 명품들 속에서 공주로 검사로 살아오던 마혜리가, 자신의 삶이 사실은 한 가족의 인생을 파탄 낸 대가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를 개인적인 차원을 다루는 멜로에서 사회극으로 옮겨놓는다.

마혜리는 사회화가 덜 된 무개념의 공주 검사로 드라마에 등장한다. 검사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예쁘게 하고 다니는 게 뭐가 나빠"하고 말하며, 산적한 업무에도 6시면 무조건 칼퇴근을 주장하는 이 무개념 공주 검사는 사회를 모른다.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삶 속에 머물며, 그 삶이 사회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알지 못하며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마혜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부모가 만들어놓은 단단한 출세 코스의 길 안에서만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삶(즉 함께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 삶에 몰두하는 마혜리의 모습은, 고속 경제 성장 끝에 부자의 반열에 오른 부모를 갖고 걱정 없이 자라온 이른바 상류층 자제의 모습을 표상한다. 그 부모인 마상태(최정우)는 대물림되는 그 가난이 싫어 독하게 한 시대를 살아내고 결국 성공의 길에 선 이전 세대의 치열한 삶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가난이 좋았다 이거야? 나는 아니야? 진짜 싫었어. 아주 끔찍하고 징그럽게 싫었어. 5대를 머슴살이에 날품팔이만 하는 집안, 그 대물림된 가난을 내 대에서 끊기 위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당신 아냐? 내 자식부터는 이 마상태를 믿고 태어난 새끼, 토실토실한 살집에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보석보다 더 예쁜 눈에 해리부터 그 새끼도 그 새끼의 새끼들도 떵떵 거리고 대대손손 잘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뭔가 잘못됐어. 이럴려구 한 게 아닌데 내 딸을 망치게 생겼어."

마상태가 던지는 참회 섞인 이 말은 '검사 프린세스'를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마상태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놓은 그 부 위에서 마혜리가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나 누구나 우러러보는 검사라는 직업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로서의 직업조차 부에 의해 대물림되는 우리네 사회를 잘 보여준다. 그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 갖게 된 그네들의 검사라는 직업에서 진정한 사회정의를 행하는 일이 어찌 쉽게 바랄 수 있는 일일까.

하지만 '검사 프린세스'는 이 대물림되는 부와 지위의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을 꿈꿔보는 드라마다. 마혜리는 차츰 검사로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성장하는 캐릭터. 그녀가 '무늬만 검사'에서 차츰 진짜 검사가 될 때, 그녀가 궁극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의 숨겨진 과거라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서 있는 부가 사실은 개인적인 성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인식은 아프지만 이 단단한 대물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마혜리 곁에 생겨난 윤세준(한정수) 검사와 서인우 변호사라는 존재는 그래서 단순히 '검사 프린세스'라는 드라마의 삼각 멜로 구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윤세준 검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한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물이고, 서인우 변호사는 이제 검사로서의 삶을 이해하게 된 마혜리가 가족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갈등할 때, 복수나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그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검사 프린세스'는 어쩌면 소현경 작가의 일관된 사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은 대물림 되는 유산으로 표징되는 우리 사회의 진한 핏줄의식을 가족드라마라는 틀 위에서 뒤집었다면, '검사 프린세스'는 부는 물론이고 지위까지 대물림되는 사회 속에서 세워지기 어려운 사회정의를 멜로드라마라는 틀 위에서 뒤집고 있다. 무개념으로 시작한 마혜리라는 캐릭터의 성장과정 속에서 우리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성을 띠는 소현경표 멜로드라마가 가진 진면목이다.

‘아가씨를 부탁해’, ‘태양을 삼켜라’, ‘천만번 사랑해’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이 있다.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과 장면들이 나올 때면 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들. 시청률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은 드라마들. 어째서 이런 어정쩡한 드라마들이 나오는 것일까.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 ‘아가씨를 부탁해’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아가씨를 부탁해’. 실제로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갖고 있는 소구점들을 거의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 먼저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초부유층의 환상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똑같다. 하인들과 집사들, 거의 성을 연상시키는 집, 잘 빠진 스포츠카에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까지,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드라마라는 틀을 거대한 판타지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하나의 광고판 기능을 하게 했던 그 장치를 그대로 가져왔다.

캐릭터도 성별만 바뀌었지 성격까지 똑같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가 여자로 바뀌어 강혜나(윤은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하려는 이야기는? 변함없는 멜로다. 윤상현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서동찬 역으로 등장해 강혜나의 집사 역할을 하며 멜로의 감정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 역시 ‘꽃보다 남자’가 금잔디(구혜선)를 통해 못된 부잣집 자제 길들이기를 했던 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고 있다.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까지 유사하니 그 달달한 맛은 있지만 이 드라마만의 엣지가 부족하다. 시청률이 안 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제2의 ‘올인’, ‘태양을 삼켜라’
‘태양을 삼켜라’는 제2의 ‘올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남자들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늘 내세우는 야망과 복수의 코드는 ‘올인’이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고, 배경인 제주도와 카지노 도박의 세계 역시 판박이다. 인물들 역시 어디선가 봐왔던 캐릭터들이다. 늘 이런 드라마에 존재하기 마련인 재벌 장민호 회장(전광렬), 그 회장의 망나니 후계자 태혁(이완), 그 태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대신 감방에도 들어가는 정우(지성),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멜로를 연출하는 수현(성유리). 게다가 그 주인공인 정우가 사실은 장민호 회장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가 여기저기서 무수히 봐왔던 익숙한 코드들을 조합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새로운 스토리가 없는 볼거리는 맥락 없이 이어지고, 결국 스토리까지 잡아먹는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올인’에서 이야기를 더 절절하게 만들어준 이병헌과 송혜교 같은 배우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식상함이 배우들의 연기마저 삼켜버리는 형국이다. 이 정도의스케일과 이 정도의 제작비를 투여하고 20%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이여 다시 한 번(?), ‘천만번 사랑해’
한편 새로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천만번 사랑해’는 여러 모로 ’찬란한 유산‘의 코드들을 가져왔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 문제를 내세워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핏줄의식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려 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유산을 통해 문제제기 되었던 핏줄의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찬란한 유산’의 성공방정식을 거의 따라가고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가 만들어내는 가족의 파탄, 배다른 자식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 그 역경을 일으켜줄 재벌집 아들의 존재 등등. 유사한 코드들이 곳곳에서 보여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찬란한 유산’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심지어 자식을 내쫓는 계모 같은) 드라마 분위기가 늘 밝은 톤을 유지했던 것에 비해,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자극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주말이라는 시간대에 ‘찬란한 유산’이 거둔 성공을 다시 거두려 한다면, 자극적인 소재와 보편적인 정서 사이에 균형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의 탄생은 이미 확고히 성공한 드라마들의 성공 코드들을 다시 활용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장르라는 것은 바로 그 성공 코드의 재배열이 주는 이미 기대된 결과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즐거움에서 탄생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장르에도 변주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있다. 타 드라마와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는 분명 갖추고 있어야 그 드라마만의 존재이유는 그제야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이 드라마들이 바로 그 존재이유를 찾아서 부족한 2%를 채우기를 기대한다.

드라마, 예능 시청률의 격전지가 된 주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던 시기, 주말은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주말이면(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나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는 주말 시청률을 반 토막 내곤 했다. 특히 봄에 찾아오는 상춘객들의 급증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불황의 여파일까. 아니면 점점 여가로 정착되어가는 영상문화의 영향일까. 이제 주말은 계절을 불문하고 시청률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먼저 드라마 시청률 경쟁의 불을 댕긴 것은 시청률 47%라는 괴력을 보인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 드라마들이 주로 고정적인 시청층에 소구하는 가족드라마를 내세우며 평균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찬란한 유산’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47%라는 수치는 좋은 작품에 그만한 시청자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적인 특징을 끌어안는 것으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 기폭제를 만들었다. 이것은 주말드라마하면 가족드라마라는 공식의 균열을 의미한다. ‘친구’나 ‘탐나는도다’ 같은 지금까지 주말에는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주말에 포진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종영 후 전체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선덕여왕’으로 그 바톤을 월화로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주말은 드라마 시청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3회 만에 20% 시청률에 도달하고 있다.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하나’ 역시 15% 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는 떨어진 시청률에도 12%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위 권에 들어있는 주말드라마가 총 네 편으로 전체 순위에 있는 아홉 편 중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주말 시청률 경쟁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격전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전체 예능프로그램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KBS의 ‘해피선데이’가 따르고 있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 다음이고,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한 때 이 경쟁의 대열에 있었지만 현재는 주춤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일요일에 집중되던 시청률 경쟁은 이제 토요일로 번져갈 조짐이다. 토요일 예능의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을 맛보고 있으며, 토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MBC의 ‘세바퀴’ 역시 16%대의 시청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BS의 ‘천하무적 토요일’은 아직 9%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지만 잠재력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때 ‘무한도전’의 시청률을 위협하던 ‘스타킹’은 조작과 표절 시비로 가라앉고 있지만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MBC가 ‘무한도전’ 앞자리에 ‘스친소’를 폐지하고 대신 ‘우리 결혼했어요’를 포진시킨 점이다.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 때문에 약화되긴 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간대 변경은 어쩌면 토요 예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경쟁은 이로써 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말해주는 주중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20위권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무려 9편에 이른다. 만일 주말의 의미를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다면 ‘절친노트2’를 포함해 전체 주중시청률 20위 권에 든 프로그램의 반이 주말에 포진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주말이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말은 오히려 시청률의 밭이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적이고 피곤해진 주중의 사회 풍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말의 TV는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진 지친 현대인들의 여가로 자리하고 있다.

‘신파’라는 용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많다. 그 용어는 주로 최루성 멜로물, 자극적인 설정 남발, 뻔한 소재와 스토리 전개처럼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스토리텔링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니 현재의 작품을 얘기할 때, 신파적이라는 말은 절대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부정적인 의미의 신파 코드들이 여전히 문화 전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때로는 호평받는 작품 속에서도 발견되며, 심지어는 이 코드를 버리고서는 대중성을 얻기가 어렵다고까지 말한다.

시청률 45%를 넘긴 국민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흔히들 착한 드라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호칭은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애매한 구석이 많다. 이 드라마는 물론 주제가 착하지만, 드라마의 극적 구성으로 보았을 때 여타 자극적인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다. 아무리 계모라 해도 남편이 죽자(실은 살아있지만) 자식을 내치고 그 유산을 가로채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인 은성의 동생 은우까지 멀리 내다버리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은 자극이다.

그런데 이 극과 극을 치닫는 대립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른바 신파 코드(이것은 신파라기보다는 신파적인 코드들을 활용하는 것을 지칭한다)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계모에 의해 버려졌지만 착한 심성으로 하늘이 도와 결국, 잘 살게 되는 이야기 구조는 우리네 고전적인 이야기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으로, 신파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이 계모 백성희로부터 버려지지만, 그 착한 심성으로 거의 신적인 존재인 장숙자 여사(반효정)의 구원을 받는(게다가 왕자님인 선우환(이승기)까지!) 이야기는 소재적으로나 극적 구성에 있어 신파 코드를 잘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파 코드의 활용은 이미 우리네 드라마에서 흔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신파 코드인 출생의 비밀은 최근 드라마들만 예로 들더라도 쉽게 발견된다. 시대극을 표방한 <에덴의 동쪽>이 그렇고, 다시 리메이크된 <미워도 다시 한 번> 역시 그러하며, 심지어 최근 방영되는 사극 <선덕여왕>이나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태양을 삼켜라>에서도 이 코드는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 이유는 그 신파적인 코드가 자극적인 감정 분출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유행했던 막장 드라마는 바로 이 자극적인 감정 분출의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파적인 코드들, 예를 들면 출생 비밀, 불륜, 불치 같은 소재들을 섞어 심지어 개연성을 무시하고 나열했던 드라마들이다.

한때 이러한 신파 코드들이 활용되는 드라마들이 외면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트렌디물이라 불리던 멜로 드라마들의 퇴조와 미국 드라마(미드) 열풍으로 일어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환호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과연 신파적이고 트렌디한 멜로 드라마는 사라졌을까? 잠깐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호응은 낮았기 때문이다. 즉, 이성적으로는 감정 과잉 드라마가 식상하다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감성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드라마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재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이제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도 그 안에 우리식의 신파 코드를 반드시 끼워 넣는다. <카인과 아벨>은 의학 드라마에 가정 비극(이 코드는 <찬란한 유산>과 유사하다)을 넣었고, <태양을 삼켜라>는 액션 드라마에 트렌디한 멜로 구조를 끼워 넣었다.

신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신파가 주로 다루는 감정의 분출을 근간으로 삼는 콘텐츠들은, 드라마는 물론이고 연극, 소설, 대중음악 등에서도 하나의 지류를 이루고 있다. <친정 엄마와 2박3일> 같은 연극은 암에 걸린 딸이 친정 엄마를 찾아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전형적인 신파조의 극으로 연일 매진 사례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신파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들 즉, 틀에 박힌 대사나 연출 등을 벗어나 같은 소재라도 새롭고 진지한 접근을 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2009년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 역시 바로 이런 시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신파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신파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신경숙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대중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또한, 대중음악에 있어서 신파적인 코드들은 주로 외환위기 시절에 활용되었었다. 조성모의 <아시나요>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나중에 등장한 이른바 소몰이 창법들의 창궐과 퇴조는 신파 코드가 가요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대변해 준다. 현재 발라드 가수들은 여전히 신파 코드가 담겨진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같은 웃음의 코드를 동시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가수가 트리플 크라운(드라마, 가요,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이승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분야 진출은 다양한 감정의 분출을 통해 캐릭터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것은 마치 <찬란한 유산>이 구사한 감정의 양면 전략과 유사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드라마는 물론이고, 연극, 소설, 대중가요에까지 신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늘 어떤 시기에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에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파가 가진 어떤 힘이 우리네 문화 속에서 그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한국식’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사용한다. ‘한국식’ 블록버스터, ‘한국식’ 액션, ‘한국식’ 의학 드라마 등등. 그런데 여기서 ‘한국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네 정서 속에 자리한 특유의 ‘감정 중심 문화’와 ‘특유의 끈끈한 관계의 문화’가 들어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 할리우드식의 아드레날린 과잉의 드라마나 영화에 익숙하지가 않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끈끈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폭풍, 혹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콘텐츠에 더 익숙하다. 외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하드보일드한 감정 배제의 스토리텔링을 할 때, 우리는 끝없이 감정을 터뜨리고 끌어올리는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이것은 볼거리 위주의 콘텐츠들이 갖는 대규모의 투자와 대규모의 소비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우리네 문화 산업의 특징과도 연관이 있다. 우리는 볼거리보다는 그 속에 있는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물량 투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작품은 물론이고 작품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문화 콘텐츠는 여전히 인력에 의지하는 산업이다.

흔히들 신파라고 말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마련이다. 그 상투적인 설정과 뻔한 스토리, 게다가 그런 스토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고 나면 이성적인 문화의 소비자들은 도리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에 치중하는 우리식의 문화 경향을 모두 후진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그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부정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감정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갖는 힘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흔히 신파라고 했을 때 갖게 되는 부정적인 인상을 제거하면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발전적인 것이 아닐까.(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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