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이혼은 쉬워도 관계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뭐가 이렇게 쉬워. 서류만 접수하면 이렇게 끝날 거. 뭘 얻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날 괴롭혔는지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별거 아닌 거야? 어떻게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끝나고 보니까 그냥 빈손이야. 부부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고예림(박선영)은 지선우(김희애), 설명숙(채국희)과 술을 마시며 그렇게 토로한다. 내내 이혼을 한 걸 속 시원한 듯 방글방글 웃던 고예림이었지만 사실 속이 좋을 리가 없다. 그렇게 힘겨웠지만 애써 지켜내려 했던 결혼생활. 하지만 막상 이혼을 하는 일은 너무 간단하게 끝나버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고예림에게 지선우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더한다. “칼로 잘라내듯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마음 단단히 먹어. 생각만큼 쉽게 정리되진 않을 거야. 난 그렇더라구.” 이것은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담고 있는 부부라는 관계의 실체를 말하는 대목이다. 칼로 자르듯 이혼만 하면 끝날 것 같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관계,

 

지선우가 불륜을 저지른 이태오(박해준)와 이혼하고 아들 준영(전진서)의 양육권까지 얻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들의 관계가 모두 끝난 게 아니라는 건 금세 드러난다. 불륜녀였던 여다경(한소희)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 다시 돌아온 이태오는 아들 준영 앞에 나타나 그 관계를 이어간다. 지선우는 알게 된다. 남편과는 이혼했지만 아들의 아빠는 여전히 거기 그대로라는 걸.

 

이런 문제는 이태오의 사주를 받아 지선우를 위협한 박인규(이학주)가 역전에서 추락해 떨어져 사망한 사건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오히려 이태오를 위협하기 시작한 박인규의 죽음은 자살인지 아니면 타살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태오가 범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여병규(이경영)가 사주한 일일 수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지선우가 여병규를 만나 자신도 또 이태오도 “살인자가 돼선 안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지선우와 이태오는 서로를 박인규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의심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살인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건 아들 준영 때문이다. 둘 중 누구 하나가 살인자가 되면, 그건 준영이 살인자의 아들이 되는 걸 의미해서다.

 

<부부의 세계>의 1막은 불륜을 저지른 이태오와 지선우가 이혼을 하는 그 과정의 이야기였다면, 2막은 아들 준영을 두고 벌어지는 이태오와 지선우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2막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된 건 그 변수로서 박인규와 민현서(심은우)의 이야기가 들어가고, 결국 박인규가 죽게 됨으로써 펼쳐지는 치열한 심리전이 더해져서다.

 

<부부의 세계>는 이런 추리극이면서 심리극의 성격을 더함으로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여기에 공공연히 성차별을 하거나 폭력적인 남성들과 대항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현실을 꼬집는다. 지선우를 은근히 질시하는 설명숙이 “여자들이 문제야”라고 말하는 원장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 그렇다.

 

도대체 박인규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만일 타살이라면 누가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그리고 그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그 파장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지선우의 아들 준영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김윤기(이무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부부의 세계>는 치열한 심리극을 통해 부부가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참으로 질깃한 관계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

'부부의 세계' 김희애, 저질 밑바닥 박해준에게 살벌한 저주를

 

바닥 중에서도 이런 바닥이 없다. 아내 몰래 오래도록 바람을 피우고 친구들도 속이게 만든 것도 모자라, 집을 담보로 심지어 아들의 보험까지 건드려 빼낸 돈으로 내연녀의 명품 가방을 사주는 그런 인간. 게다가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상주가 되었지만, 상가에서조차 내연녀와 몰래 차 속에서 밀회를 나누는 그런 바닥 중의 바닥이 바로 이태오(박해준)의 실체였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이런 남편의 실체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무너져가던 아내 지선우(김희애)가 아들 때문에 갈등하던 마음을 다잡고 복수를 결심하는 과정을 담았다. 단지 다른 내연녀와 불륜을 맺었다는 사실보다 그를 더 아프게 하는 건 그를 속였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지선우에게 이태오가 프러포즈할 때 차에서 흘러나오던 스팅의 ‘My one and only one’은 상가 주차장에서 이태오가 몰래 밀회를 나누는 내연녀의 차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 속 ‘only one’은 거짓이었다. 지선우에서 내연녀 여다경(한소희)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태오는 여다경과 빨리 정리하라는 설명숙(채국희)에게 뻔뻔하게도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부부의 세계>는 지선우가 겪는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서 시청자들을 온전히 그의 입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태오의 그 이중적인 면면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무너지고 분노하는 지선우와 똑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갖는 분노감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건 이런 관점과 그 관점을 제대로 증폭해 보여주고 있는 김희애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 덕분이다.

 

여기에 지선우의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든 건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이태오의 어머니다. 그가 이미 이태오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들을 두둔하는 모습은 시청자들마저 공분하게 만들었다. 그 역시 남편의 불륜을 겪었던 인물이었지만 자기 아들만 생각하는 모습 때문이다. “자식 앞날 생각해 용서하고 살라”는 그에게 지선우는 선언한다. “이혼할 겁니다. 빈털터리로 쫓아낼 거구요. 이 동네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겁니다. 준영이 영원히 못볼 거예요.”

 

하지만 이태오의 어머니는 그 불륜이 지선우의 탓이라는 몰상식한 말을 던진다. “바늘 끝 하나 안 들어가는 너랑 사느라 내 아들도 고단했다. 오죽하면 그래. 네가 숨 쉴 틈만 줬어도 한 눈 안 팔았어.” 그 장면에서 지선우가 이태오의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던지는 저주들은 마치 살벌한 스릴러의 한 대목처럼 그려진다.

 

밑바닥을 보여주는 이태오와 그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지선우를 더더욱 분노하게 하는 그 주변사람들.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 팽팽한 대결구도를 보여주는 지선우와 여다경. 그리고 이제 이혼을 결심하고 이태오에 복수하기 위해 민현서(심은우)를 여다경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지선우... 이 일련의 과정들은 이제 복수극의 서막이 올랐다는 걸 말해준다. 제목은 <부부의 세계>지만 그 어떤 스릴러보다 팽팽한 긴장감과 폭발력을 보여줄 지선우의 복수가 갈수록 기대된다.(사진:JTBC)

폭주기관차 같은 ‘부부의 세계’, 우리가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정체

 

어딘가 심상찮은 반응이다. JTBC 새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19금에도 불구하고 2회 만에 9.9%(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1회 시청률 6.2%로 JTBC 역대 첫방 최고 기록을 경신한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만들고 있는 것. 두 자릿수 시청률은 기정사실이고, 과연 이런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2회 만에 이런 몰입감을 만들어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지선우(김희애)의 완벽하다 믿었던 세계가 거짓투성이였다는 게 밝혀지며 여지없이 부서지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파괴력 덕분이다. 단 하나의 사랑을 약속했던 남편 이태오(박해준)는 끝까지 거짓말을 했고, 그의 친구들과 자신이 절친이라 믿었던 설명숙(채국희) 같은 병원 동료까지 그 거짓을 도왔다.

 

워낙 불륜 소재가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서인지 그 자체로는 이제 식상하게조차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불륜 그 자체보다 이것을 자신만 모르게 모두가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첫 회만으로는 어째서 이태오의 동창 손제혁(김영민)이나 그의 아내 고예림(박선영), 그리고 지선우의 회사 동료이자 절친이었던 설명숙 그리고 이태오의 비서 장미연(조아라)까지 이 배신에 가담했는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2회를 통해 이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손제혁은 이태오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아내가 있는 데도 성적 농담을 공공연히 던질 정도로 성 윤리가 없는 인물인데다 이태오에게 무슨 일인지 마음의 앙금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설명숙은 혼자 살아가며 선우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했지만 알고 보면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이태오의 불륜을 알면서도 숨기며, 스스로 완벽하게 살아간다 여기는 지선우의 삶을 비웃듯 즐기고 있었던 것.

 

<부부의 세계>는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지선우가 알게 되고 심지어 설명숙에게 “행동거지 똑바로 하라”고 엄포를 놓는 장면을 2회도 되지 않아 전개시켰다. 흔한 불륜 코드 드라마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 또 그걸 드러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질질 끄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 전개다. <부부의 세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설명숙을 이용해 이태오에게 불륜녀인 여다경(한소희)의 임신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제 거꾸로 이 모든 사실을 안 지선우가 자신을 속인 이들을 시험대에 올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역전된 상황을 연출하는 것.

 

흥미로운 건 환자로 신경안정제 처방전을 얻기 위해 내원했던 민현서(심은우)와 지선우가 어떤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그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 지선우는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민현서를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처럼 여기며 선을 그었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는 그에게 남편의 불륜 정황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처방전을 내주겠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이태오를 미행하게 하고 결국 그 불륜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지선우는 답답한 마음에 술 한 잔 하러 민현서를 찾았다가 마침 폭행을 당하고 있는 그를 구해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지선우와 민현서가 진심을 나누는 사이로 변해가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건 지선우가 생각했던 익숙하고 완벽해 보이던 세계의 위선을, 민현서라는 낯선 세계의 인물과의 새로운 관계와 대비하려는 의도다.

 

시청자들은 저들의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이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걸 위태롭고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설명숙이 속내를 숨긴 채 그 위선적 세계를 즐기듯 들여다보는 악취미에 어떤 분노를 느끼면서도, 민현서처럼 솔직하게 그 위선을 지선우에게 말하는 인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갖게 되는 것.

 

<부부의 세계>는 지선우를 둘러싼 위선과 진실이 밝혀지고, 설명숙 같은 그간 절친으로 여겼던 인물 대신 동지적 관계를 갖게 된 민현서 같은 인물과의 새로운 공조를 단 2회 만에 전개시켰다. 이런 빠르고 거침없는 전개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만일 이 폭주기관차 같은 속도의 전개와 그 속에서 변화하는 관계들의 부딪침과 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부부의 세계>의 상승세는 더 가파르게 치솟지 않을까 싶다.(사진:JTBC)

<판타스틱> 박시연, 그녀의 반전을 기대하는 까닭

 

요즘도 저런 시댁이 있을까. JTBC <판타스틱>에서 백설(박시연)의 시댁은 이른바 명문가. 그녀의 남편 최진태(김영민)는 로펌 사장이고 그녀의 시누이인 최진숙(김정난)은 아도니스 엔터의 대표다. 이 집안은 정치인인 미도(채국희)와 가깝게 지냄으로써 최진태는 정치계에 입문하고 최진숙은 사업을 키워나가려 한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집안에서 백설은 이름에 걸맞는 공주가 아니라 거의 하녀나 다름없는 존재다. 시어머니는 툭하면 백설의 집안을 비하하며 막말하고, 남편 최진태는 심지어 미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백설에게 들키기까지 한다. 이 집안에서 백설을 가장 구박하는 존재는 시누이 최진숙이다. 그녀는 백설에게 하녀 부리듯 밥 차려라, 술 내와라 심지어 외출할 때는 신발 꺼내놓으라는 명령까지 내리고, 최진태가 그래도 미안한 지 아내에게 용돈을 주려 하자 버릇 나빠진다며 돈을 빼앗기까지 한다.

 

시댁에서 구박받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사실 조금 구세대의 구도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과거 드라마들의 대부분이 고부갈등을 담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 자체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구박받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어딘지 납득이 가는 건 이것이 단순한 고부갈등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갑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부갈등은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갈등을 빚는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판타스틱>의 백설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이 명문가라는 번지르르한 집안이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초에 없는 안하무인의 갑질 가족이라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갈등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사람 취급 안하고 거의 노예 취급하는 착취와 학대에 가깝다.

 

물론 <판타스틱>의 주인공은 이소혜(김현주)이고 그녀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달라진 삶을 선택하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그 주된 줄거리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만큼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건 바로 이 백설의 이야기다. 한 때는 이소혜의 둘도 없는 단짝으로 그녀의 보디가드를 자처했을 정도로 잘 나가던 그녀가 어쩌다 이 막장 집안에서 제복 같은 한복을 입고 하녀처럼 살아가게 되었을까. 그 한복을 벗어던지고 대신 집안을 박차고 나와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해방감은 이 드라마가 가진 또 하나의 재미다.

 

백설이 살고 있는 이 시댁의 모습은 이 작품의 연출자인 조남국 PD가 과거 연출했던 <황금의 제국>의 그 갑질하는 집안을 그대로 닮았다. 요즘은 과거 같은 고부갈등의 이야기는 더 이상 그다지 큰 공감대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갑질에 가까운 시댁의 횡포에 당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시댁이 아니라 마치 천민자본주의의 시스템을 가족의 틀에서까지 내재화한 이른바 비뚤어진 상류층의 역겨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집안으로부터 탈주하는 백설의 이야기는 그저 고부갈등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천한 자본의 힘만을 믿고 갑질 하는 자들에 대한 통쾌한 한 방으로 다가온다. 멋진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올 그녀의 반전을 간절하게 기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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