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봐>, 논란의 힘으로 굴러가는 이상한 예능

 

<나를 돌아봐>는 설마 막장 예능을 지향하고 있는 걸까. 막장은 드라마에만 있다는 편견을 깨고 싶은 건가. 이번에는 최민수 폭행 논란이 불거졌다. <나를 돌아봐>를 촬영하는 도중, 최민수가 의견충돌을 빚은 외주제작사 PD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는 것.

 


'나를 돌아봐(사진출처:KBS)'

일단 무슨 이유에서든 폭력을 썼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한 번도 아니고 시작부터 반복적으로 계속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은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도 그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제작발표회에서 벌어졌던 논란부터 이번 최민수 폭행 논란까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기 출연하는 인물들의 평소 이미지와 캐릭터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증폭되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평소 욕쟁이에 독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수미가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을 도발했던 건 시청률을 빌미로 하차 운운했던 돌직구였고, 평소 기행을 일삼는 조영남이 거기에 대응했던 것 역시 하차 선언 후 발표회장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번 최민수 폭행 논란 역시 그에게 늘 따라다니던 거친 남자의 이미지가 프로그램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문제적 출연자들의 어둡고 불편한 부분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나같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건 마치 이것이 의도된 것 같은 생각마저 갖게 만든다.

 

물론 제 아무리 시청률이 갈급하다고 해도 논란을 의도했을 리는 없다(실제로 논란에도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프로그램의 정체성 자체가 이런 논란의 소지를 어느 정도 품고 있었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를 돌아봐>는 결국 관계의 불편함을 예능의 기폭제로 끌어오는 콘셉트일 수밖에 없다. 김수미와 장동민 그리고 박명수가 그렇고, 조영남과 이경규가 그러하다. 이홍기와 최민수는 말할 것도 없다.

 

매니저라면 연예인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홍기는 매니저로 온 최민수 앞에서 늘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그 역전된 상황이 웃음의 포인트가 되는 것. 이것은 평소 버럭 하던 박명수가 욕쟁이 김수미 밑에서 얌전해지는 모습이나, 늘 주도권을 쥐고 방송을 하던 이경규가 조영남에게 휘둘리는 모습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불편한 관계는 어쨌든 그 불편한 인물이 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조영남은 기행을 하고 김수미는 욕과 독설을 던질 때 그 불편함이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니 최민수는 어딘지 거칠고 센 이미지를 계속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물론 폭행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지만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촬영 분위기가 그런 센 이미지를 어느 정도는 부추겼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관찰카메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설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감나는 진짜모습을 꺼내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이 만드는 불편함이란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인물들의 불편함을 마치 과시하듯 적극적으로 밖으로 꺼내놓는 이 프로그램이 논란의 많은 빌미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다.

 

김수미도 조영남도 최민수도 잘못했다. 하지만 그들만을 욕하는 것으로 이런 논란의 바탕을 제공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들이 비껴가는 건 더 잘못된 일이다



<피노키오>, 이 청춘들이 처한 현실 과연 옳은가

 

SBS <피노키오>에서 최인하(박신혜)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이유로 MSC 입사 시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다. 거짓말을 못한다는 건 기자로서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 그녀를 떨어뜨린 MSC 보도국의 에이스이자 그녀의 엄마이기도 한 송차옥(진경)은 이렇게 말했다. “무수한 거짓말들 위에 떠오르는 게 진실이라고.

 

'피노키오(사진출처:SBS)'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언론이 가진 현실일 것이다. 일단 보도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아니라 그 이상도 해야 하는 게 작금의 언론이다. 과거 송차옥이 보도를 좀 더 임팩트있게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사고를 당한 현장에서 아이 신발(사실은 마트에서 산)을 들고 리포트를 하거나, 홍수보도를 하면서 무릎밖에 물이 안차는 데도 무릎을 꿇고 허리까지 차는 것처럼 꾸며 방송에 내보내는 것. 그런 자극과 연출은 물론 풍자적으로 과장된 것이지만, 아마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침소봉대하는 건 지금의 언론이 처한 경쟁적인 현실일 수밖에 없다.

 

엄마이면서도 딸에게 그토록 무정한 송차옥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일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인물처럼 극화되어 있다. ‘얼음마녀로 불리는 송차옥은 <피노키오>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바로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캐릭터. 그녀는 최달포(이종석)네 가족을 과장 추측 보도로 파탄 낸 기자이기도 하다. <피노키오>는 그래서 이 현실을 대변하는 얼음마녀 송차옥과 그 현실과 대결하는 최달포와 최인하라는 청춘들을 다루고 있다.

 

청춘들이 일의 세계 속으로 들어와 부조리한 세상과 대결하는 이야기는 최근 드라마들의 화두가 된 느낌이다.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는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미생이라 치부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무언가 거창한 꿈이나 이상을 더 이상 펼칠 수 없는 현실. 그러니 꿈이나 이상이란 하나의 사치처럼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 미생의 청춘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위안은 없다. 그렇게 버텨낸 삶의 결과가 바로 오과장(이성민)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장그래와 다를 바 없는 여전한 미생이다.

 

<오만과 편견>의 청춘 한열무(백진희)나쁜 놈들 잡는 것이 검사의 책무라 생각하지만 검찰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정의 같은 이상만 갖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깨지기 십상인 곳이 바로 이 조직의 현실이다. 제 아무리 명백한 심증이 있다고 해도 위로부터 덮으라면 덮어야 하는 게 조직생활의 또 다른 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문희만(최민수) 검사 같은 인물 앞에서 한열무의 치기는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비춰진다.

 

거짓말이 기자의 덕목이 되는 언론의 현실. 꿈을 갖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직장의 현실. 또 정의보다 조직의 룰이 앞서는 공권력의 현실. 이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미생>이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현실 앞에 서 있는 미생의 청춘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고 완생으로 거듭날 수 없다. 또 완생으로 거듭난다고 해도 그것은 현실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의 시스템의 공고함을 확인하는 것일 뿐.

 

우리가 <피노키오><미생> 그리고 <오만과 편견>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의 판타지에 열광하다가도, 한편으로 막막함을 느끼게 되는 건 바로 이 어찌 할 수 없을 것처럼 공고하게 구축된 부조리한 현실을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청춘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이런 청춘들 앞을 가로막는 현실은 옳은가. 도대체 무엇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들을 현실 앞에 마치 죄인처럼 서게 만들었을까.

 

미화도 폄하도 없는 <오만과 편견>의 검찰

 

MBC <오만과 편견>이 다루고 있는 건 검찰이다. 흔히들 떡검같은 표현으로 얘기되듯 검찰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곳은 왠지 권력형 비리가 연루된 것처럼 보이고, 때론 정치가 정의를 덮어버리는 곳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대중들의 이런 생각이 그리 틀린 것만도 아니다. 검찰은 대중들에게는 오만과 편견이 뭉뚱그려진 어떤 집단처럼 다가온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검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지 않고(변호사는 많다), 나온다고 해도 그리 긍정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자칫 검사들을 감싸주고 비호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가는 시청자들의 비난만 사기 쉽다. 그렇다고 검사를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폄하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주인공을 세워서 드라마를 끌고 가겠다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 점은 <오만과 편견>의 놀라운 점이다. 이 드라마는 검사를 세워놓고 미화도 폄하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라는 존재가 늘 정치와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굳어져 있어서인지 지금 세상의 꼴은 한 마디로 형편없다. 비리가 판을 치고 정의는 돈 앞에 무릎 꿇기 일쑤다. 이런 비리들은 무수한 사건사고를 만들어낸다. 정의 없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니 생기는 사회의 증상들이다. 이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은 너무나 크지만 그걸 해결해주리라 기대하는 건 검찰이 아니다. 그래서 나쁜 놈들 잡는 나쁜 놈들이 오히려 더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온다. 많은 우리네 영화, 드라마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건 어딘지 삐딱하게 되어버린 서민들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인천지검 중수부장 검사 문희만(최민수)이다. 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우리가 검찰하면 떠올리는 그 이미지와 그걸 배반하는 이미지 양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결코 바른 검사는 아니다. 상부에서 덮으라면 사건을 덮는 검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실적과 안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사다. 덮으라는 사건을 구동치 수석검사(최진혁)가 계속 수사하겠다고 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막아도 구동치가 계속 수사를 할 것을 알고 있다. 내심은 자신도 수사를 원하지만 자신은 만일 잘못됐을 때의 책임에서조차 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문희만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나쁜 놈들을 잡으려는 마음이 깊지만, 오랜 검사 생활을 통해 검찰이라는 조직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 그 바위에 무모하게 계란을 던져봐야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입는다는 것을. 그래서 문희만은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 외부에 패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에게 말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동치와 한열무 역시 그 위치에서 검사로서의 모습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한열무는 수습이기 때문에 순수한 열정이 가장 큰 무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으로 사건을 그르치기도 한다. 또 구동치나 문희만이 하는 일종의 페이크를 실제로 알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구동치는 한열무와 문희만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그는 문희만이 알고 있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한열무 때 자신도 가졌을 그 순수한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즉 이들 역시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은 또한 검찰 내부 시스템과도 갈등을 일으킨다.

 

문희만이라는 인물이 중요해지는 건 범인을 알고 있어도 수사를 더 펼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는 이 검찰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면서 동시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가의 키를 그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검찰을 다루는 꽤 괜찮은 방식이다. 일방적인 미화도 폄하도 아닌 한 직업인으로서의 고민들이 거기에는 묻어난다.

 

무엇보다 문희만이라는 역할을 최민수라는 베테랑 연기자가 맡게 됐다는 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민수는 문희만이라는 인물을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로 세워놓는데 성공하는데 이것은 이 드라마에서 검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문희만의 감춰진 속내는, 진실과 정의를 원할 수도 있고, 사실은 현실을 원할 수도 있다. 그 우물대는 대사 속에는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한 직업인의 여러 면들이 유추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래서 검찰과 범죄를 그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와는 걸맞지 않아 보이는 제목처럼 우리가 흔히 무언가를 바라볼 때 단순화함으로써 생겨나는 오만과 편견을 다루는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 물론 자칫 잘못하면 검찰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 딱 좋은 이 드라마가, 그래도 괜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건 미화나 폄하 같은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무게를 딱 잡아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최민수다. 실로 그가 있어 <오만과 편견>으로서는 천만 다행이다.

 

설경구의 무엇이 <힐링캠프>까지 킬링하게 했을까

 

방송의 힘을 과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는 것일까. 혹자는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든 누가 출연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것은 제작진들의 선택이다. 다만 방송의 목적이 시청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게스트를 위한 것인지, 혹은 시청자를 낚기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대중들이 반대한 것은 그가 전처와 이혼하고 송윤아와 결혼하면서 생긴 잡음들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루머인지는 알 수 없다. 부부 간에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그 깊은 내막을 알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방송의 효과면으로만 생각해봐도 <힐링캠프>와 설경구의 만남은 양자에게 모두 득이 되기보다는 독이 된다. <힐링캠프>는 설경구의 출연, 그것도 2회 분량으로 만들어 첫 회에는 변죽만 때리는 식의 편집으로 사실상 시청자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늘 토크쇼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지만, 그것이 게스트 홍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시청자를 위한 것이냐는 여전히 뜨거운 문제다.

 

<힐링캠프>는 시청자가 굳이 원하지 않는 게스트를 데려왔고, 데려온 후에도 시청자가 원하는 내용은 쏙 빠져있는 첫 회를 구성했다. 굳이 ‘설경구의 눈물’ 운운하며 예고편을 내보낸 것으로 볼 때 첫 회 편집은 다음 회를 위한 꼼수인 셈이다. 첫 회가 그나마 <힐링캠프>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은 설경구의 얘기 그 자체보다는 김민기나 이창동 감독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송은 과연 설경구에게도 도움이 되었을까. 설경구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만일 설경구와 송윤아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들이 루머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해명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 대중들이 과연 방송을 그렇게 신뢰하는가. 그것도 몇 차례 논란 연예인의 해명 방송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힐링캠프>를.

 

만일 루머라면 억울할 법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예인 루머는 그것이 생기는 이유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실제 사실이 아니더라도 앞뒤 정황이 그렇게 만드는 수도 있고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가 그 루머를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루머란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평상시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갖기 마련이다. 루머는 그래서 법적인 차원으로도 해결되지 않고(고소를 한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호소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대중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게 마련인 연예인들의 루머는 결국 대중들의 마음만이 풀어낼 수 있다.

 

과거 최민수가 자신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무조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한 것은 자신의 존재근거가 결국은 대중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행한 현명한 대처였다. 최민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신 산속에 칩거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열었다. 루머란 토크쇼에 나와 답답한 속을 토로하는 것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혹 <힐링캠프>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것일까. 대중들의 시선마저 교화시키고 바꿀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일까.

 

<힐링캠프>의 설경구 출연이 본인의 힐링에 머물고 대중들에게 다가오지 못할 때 그것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될 수 있다. <힐링캠프>는 대중들을 무시한 셈이고, 설경구 또한 프로그램에서는 속 시원할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대중들과의 교감에는 그다지 성공적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만이라도 성공해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힐링캠프> 설경구편의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힐링캠프>란 말인가. ‘힐링’이 소통에 닿아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자칫 교조적이고 계몽적인 문구가 되어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잠깐 논란을 통해 주목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는 토크쇼는 결국 그것이 제살 깎아 먹기가 된다는 걸 알아야하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