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팬’, 오디션 그 후, 새 스토리텔링 찾는 음악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뜨겁게 우리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2009년부터였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포문을 열었고,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시즌2는 케이블 채널 역사상 첫 두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상파들도 오디션 트렌드에 뛰어들었고 그 성공작으로 얘기되는 SBS <케이팝스타>가 2011년 방영되며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데뷔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이뤄지는 이 오디션 트렌드는 이내 꺼져버렸다. 2016년 <슈퍼스타K>는 결국 종영을 선언했고, <케이팝스타>도 2016년 말 ‘더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Mnet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오디션을 시도했지만 이 형식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들이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해 성장한다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은 ‘소확행’ 같은 경쟁 바깥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고,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 바깥에서 순위가 아닌 저마다의 취향을 찾아갔다. 오디션의 사실상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는 이제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며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시점에 <케이팝스타>를 만들었던 박성훈 PD가 새롭게 들고 온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심사가 없다. 유희열, 보아, 이상민, 김이나 등이 팬 마스터로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00명의 팬이 버튼을 눌러야 2라운드에 통과하는 첫 무대에서 MC들도 관객들과 똑같이 표 한 개를 행사한다. 

중요한 건 이 무대에 올라올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무대에 선다는 건 좋은 기회이자 특혜일 수 있다. 그만한 실력이나 매력이 분명해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추천하는 셀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가 나와 소개한 비비는 그 매력적인 보이스와 독특한 재즈적 감성으로 그가 왜 이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설득시켰고, 도끼와 수퍼비가 소개한 트웰브는 팝가수 같은 느낌의 알앤비로 ‘귀르가즘’을 자극했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추천한 오왠 같은 감성 보컬이나 장혜진이 반해 소개한 카더가든 같은 실력파 보컬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가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가수라는 점에서 <더 팬>이라는 무대가 가진 색깔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무대는 아마추어든 아니면 프로든 상관없이 팬을 확보하는 자리라는 것.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마니아적일 수 있을 게다)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그래서 <더 팬>은 경연 형식을 갖고는 있지만 그건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일 뿐, 숨겨진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경연 형식은 이들에게 주목시키고 그 음악적 색깔을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일 뿐,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색깔의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발굴이라는 것. 

결국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는 가수들을 순위표 형태로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 팬>이 ‘팬심’이라는 말로 드러내는 취향의 경연이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무이한 한 사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적 취향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728x90

만일 이게 바이럴 마케팅이라면, 차트는 무슨 소용이 있나

닐로 사태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음원 사재기 의혹이 불거졌다. 밴드 칵스 멤버이자 EDM DJ로 활동 중인 숀의 신곡 ‘웨이 백 홈(Way Back Home)’이 지난 17일 새벽 1시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에서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다. 

곡도 생소한데다가 숀이라는 가수도 생소한 마당에 갑자기 음원차트 1위를 했다는 소식은, 차트를 민감하게 들여다보는 팬들이나 기획사로서는 의구심을 만들 수밖에 없다. 트와이스, 블랙핑크, 마마무 같은 신곡을 내놓기만 하면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아이돌들을 밀어내고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해당 아이돌 팬덤들이 먼저 음원사재기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런 ‘이상 현상’이 자꾸만 발생하자 이번에는 박진영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박진영은 자신의 SNS에 “최근 음원순위 조작에 관한 의혹들이 제기되어 의혹을 제기하는 분들과 또 의혹을 받는 분들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이미 유관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조사를 의뢰한 회사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썼다. 또 이 문제를 문광부,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조사 의뢰를 하고 결과에 따라서는 “검찰에도 이 문제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대형기획사들도 차트 순위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윤종신은 SNS를 통해 이런 사재기 의혹들이 계속 드러나는 차트가 가진 문제점을 꼬집었다. “차트는 현상의 반영인데 차트가 현상을 만드니 차트에 올리는 게 목표가 된 현실”이라는 것. 차트 순위 1위에만 집착하는 음악계의 풍토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윤종신은 실시간 차트와 TOP 100 전체 재생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그 차트는 ‘무취향적 재생 버튼’으로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는 음원차트 TOP 100 전체 재생 버튼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이제는 사재기 문제가 불거지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바이럴 마케팅’이다. 숀의 기획사인 디씨톰 엔터테인먼트는 사재기나 조작, 불법적인 마케팅은 없었고, 페이스북을 이용해 노래를 소개시킨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음원 차트 1위라는 기록이 나오게 된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만일 이 이야기대로 바이럴 마케팅이 차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상황이라면, 도대체 이 차트는 뭘 반영하는 것일까. 음원 차트는 대중들의 집중된 취향이나 트렌드를 반영해야 차트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이럴 마케팅에 의해 가능하다면 이 차트는 대중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상업적으로 접근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자인하는 게 아닐까.

이런 차트는 기획사들의 돈벌이에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듣고 픈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하나의 방해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자꾸만 누군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듣게 되는 음악. 그게 오래 갈 수 있을까. 이건 궁금적으로 차트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개인 취향의 시대다. 대중들도 누가 들으니 나도 듣는다의 식으로 음악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음원사이트들이 새롭게 정비를 해야 할 때다. 자꾸만 의혹이 제기된다는 건 차트가 삐걱대고 있다는 징후이니 말이다.(사진:디시톰엔터테인먼트)

728x90

‘어서와’, 독일 친구들과는 달랐던 젊은 러시아 여성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기는 짧게 마무리됐다. 5회에 걸쳐 방영됐던 독일친구들편에 비교하면 3회 만에 마무리된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너무 짧아 이제 시작하려다 바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물론 독일친구들 이전의 멕시코친구들 역시 3회 분량으로 방영됐던 걸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기가 짧았던 게 아니라 독일친구들의 여행기가 남달리 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특별했으니 길었을 수밖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하지만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그들 나름대로 특별한 면면들을 담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족관을 가서 물고기를 보며 “귀엽다”를 연발하고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물고기를 먹는 이색적인 하루를 보여주거나, 한류 팬으로서 그 캐릭터 상품들을 살 수 있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젊은 여성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또 당연히 관심이 있는 한국 화장품을 폭풍 쇼핑하는 모습 등은 독일친구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친구들의 색다른 여행의 모습이었다.

여러모로 독일친구들의 여행과의 비교 때문에 소소하게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러시아친구들은 또 다른 색깔의 여행을 보여줬다고 느껴진다. 일단 세대가 독일친구들보다 훨씬 젊다. 따라서 독일친구들이 여행에 있어서 서로를 배려하거나 좀 더 학구적인 자세를 갖는 등 성숙한 면들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러시아친구들은 젊은 또래들이 보여줄 만한 여행에서의 좌충우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낸 게 대학가를 여행하는 도중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더 이상 못하겠다”며 힘겨움을 토로하며 생긴 갈등이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차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 유독 습도가 높은 날씨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상황, 오해로 인해 어딘지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 아나스타샤의 감정이 터져버린 것. 

결국 여행 일정을 모두 접고 숙소로 돌아와 버렸지만, 사실 이런 사소한 다툼들이나 갈등들은 여행 도중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자주 싸우지만 또 금세 친해지는 게 그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지만 현장에서는 자못 심각했던 그런 일들을 러시아 친구들이 보여준 건 그래서 독일친구들의 늘 좋았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여행의 면면을 드러내줬다. 

그런 갈등이 지나고 나서 서로 말 한 마디로 화해를 하고 금세 다시 친해져 찜질방으로 향하는 러시아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었다. 불가마의 뜨거움과 얼음방의 차가움을 오가며 냉탕온탕의 단짠 체험을 즐기거나, 처음 해보는 안마의자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 날 낮에 있었던 갈등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행복한 순간들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러시아 음식점에서의 편안한 식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의 술 한 잔은 이 젊은 친구들의 여행에 괜찮은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 나이 대에 각기 가진 취향들이 다르니 그 여행의 양상도 달라진다. 이것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사실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겪는 문화적 충돌이라고 하면 어찌 보면 비슷한 것들의 반복처럼 보인다. 언어적 차이, 문화적 차이, 음식이나 숙소의 차이 같은 게 그것이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주는 건 그 여행자들의 다른 취향들이다. 이 취향들이 있어 또 다른 여행기가 나온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래서 그들의 한국 체험기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눈으로 여행으로 하는 ‘그들의 취향 체험’이기도 하다.

728x90

대종상의 몰아주기, 청룡의 나눠주기

 

아마도 이번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파행으로 인해 오히려 돋보인 시상식이 아니었나 싶다.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진 두 영화상이지만 대종상 시상식장에 주조연 배우들이 대거 불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청룡영화상에는 상을 받든 못 받든 별들이 모여 들었다. 대종상에서 대리수상 불가를 공표함으로써 결국 대리수상이 남발하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청룡영화상은 참석한 배우들이 상을 고루 가져가는 축제의 장으로 기억되게 됐다.

 


'청룔영화상(사진출처:SBS)'

“청룡영화상이 참 상을 잘 주죠?” 김혜수가 던진 이 말은 물론 청룡영화상의 균형 잡힌 고른 시상에 대한 상찬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대종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종상은 <국제시장>에 무려 10관왕을 몰아줬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이미 2012년 대종상은 <광해>에 총 22개 부문에 15개의 상을 몰아준 바 있다. 어째서 같은 해에 상영됐던 같은 영화들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이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 자체로 상의 성격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대종상이 구태의연한 영화 시상식의 전형처럼 다가오게 된 건 이 같은 몰아주기가 과연 지금의 영화 환경과 관객 취향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영화는 그만큼 다양해졌고,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물론 1천만 대작 대박영화가 매해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작은 중박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아예 독립영화들도 의외로 다양한 관객들의 취향을 받쳐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니 몇몇 대작 영화에 상을 몰아준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은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적어도 문화에서는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룡영화상이 블록버스터과 독립영화에 똑같은 상의 지분을 나눠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올해 작품 중 누구나 <베테랑>과 <암살>, <국제시장>이 상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도> 같은 의미 있는 작품도 있고, 독립영화로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나 <거인> 같은 작품도 있었다는 걸 청룡영화상은 놓치지 않았다. 결국 최우수작품상은 <암살>이 감독상은 <베테랑>이 가져가고 남녀주연상에 <사도>의 유아인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이 받은 건 균형잡힌 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상식에 몰아주기만큼 비판받는 것이 나눠주기다. 하지만 이것은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에서 과연 그 상이 적절한가 싶을 인물들에게 다음해를 위해 억지로 나눠 상을 시상할 때 나오는 비판이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보여준 나눠주기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다양해진 영화들과 관객의 취향을 고루 끌어안는다는 의미에서의 나눠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

 

시상의 공정성과 균형은 결국 그 영화상이 축제의 장이 되게 만드는 이유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유독 훈훈한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균형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을 받고도 사과하는 상, 한쪽으로 몰아주기를 해서 다른 한쪽은 커다란 그림자와 병풍을 만들어버리는 상, 권위로 오라마라 강요하는 상. 이번 청룡영화상은 이런 시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