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영화는 어째서 현실에 미치지 못했을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마스터>는 여러 가지 흥행의 기본조건들이 이미 기획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실제 사건으로서 희대의 금융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이야기는 요즘처럼 현실에 민감해진 대중들에게는 충분히 유인이 될 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마스터>에서 조희팔을 모델로 한 캐릭터 진현필 회장(이병헌)이 중요한 순간마다 꺼내드는 이른바 정관계 로비가 적힌 노트는, 최근 벌어진 엘시티 비리 사건에서 거론되는 이영복 회장이 갖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로비 리스트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진출처:영화<마스터>

영화가 아예 대놓고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라고 포스터에 캐치프레이즈를 담아 놓은 건 그래서 의도적이다. 관객들은 그 문구가 지목하는 비리에 연루된 정관계 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통쾌하게 말 그대로 싹 다 잘려내지는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워낙 고구마 시국인데다 갈수록 답답해져가는 정국 속에서 영화를 통해서나며 어떤 카타르시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런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는 못한다. ‘썩은 머리를 싹 다 잘라낸다고 했지만 영화 속에서 머리는 목소리만 들려올 뿐 좀체 보이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금융사기의 꼬리에 가까운 진현필 회장만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정관계 로비 리스트가 적힌 노트를 입수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그 썩은 머리를 향한 사정의 칼날이 날아갈 것을 예고하지만 어디 우리네 현실이 그런가. 결국 다된 수사처럼 보여도 썩은 머리들은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던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마스터>는 심지어 이병헌, 강동원에 김우빈까지 캐스팅해 막강한 라인업이 잡아끄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내부자들>의 이병헌과 <검사외전>의 강동원 그리고 <기술자들>의 김우빈이 아닌가. 물론 캐릭터는 조금씩 변주되거나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이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아우라는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한 30분 정도가 흐르고 나면 어쩐지 이들 배우들의 매력이 좀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사건에 인물들의 감정이 제대로 얹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강렬한 느낌이 없다.

 

이병헌은 확실히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딘가에서 봤던 캐릭터를 영화 속으로 그저 끌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마스터>의 진현필이라는 인물만의 독특한 개성 같은 것들이 잘 설정되어 있지 않아 악역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이런 문제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배우는 바로 강동원이다. 사실 강동원 하나만 써도 티켓 파워가 어마어마할 정도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스터>에서 강동원이 연기하는 김재명이라는 형사는 그다지 인간적인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멋진 카리스마를 폭발시키지도 못한다. 그나마 영화적 재미를 주는 배우는 김우빈이다. 그가 연기하는 김장군이라는 캐릭터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오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마스터>는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 소재를 따오고, 제 아무리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캐스팅과 100억 대의 물량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야기와 장르가 제대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때 얼마나 지루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최근 이병헌과 강동원 그리고 김우빈이 나왔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이들이 함께 모인 작품이 이렇게 지루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달의 연인>, 무게감 주는 이준기와 강하늘의 존재감

 

이준기와 강하늘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는 사극이지만 청춘 로맨스의 가벼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주인공 해수(이지은)는 현대에서 고려 시대로 넘어간 인물이다. 그러니 그 옛 시대의 감성들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황궁에서의 말투는 물론이고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사진출처:SBS)'

그래서 해수는 현대인의 자유로움을 통해 이 무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낸다. 황자들은 그런 그녀의 자유분방함에 시선을 빼앗긴다. 청춘 로맨스는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사극의 진지함을 깨고 들어오는 가벼움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너무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태조 왕건이 나오는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너무 장난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 같은 사극은 그래서 그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가벼움으로 흘러버리면 사극 특유의 진지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다고 그 진지함을 고수하다 보면 청춘 로맨스의 달달함과 코믹함이 주는 웃음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달의 연인>에서 가벼움을 주는 존재들은 해수를 비롯해 10황자 왕은(백현) 14황자 왕정(지수) 같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13황자 왕욱(남주혁)도 한 몫을 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딘지 숨겨진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달의 연인>이 초반부에 가벼움을 먼저 보여준 건 전략적인 실패로 보인다. 갑자기 황자들 속에 뚝 떨어진 해수의 이야기부터 <달의 연인>은 너무 사극 같지 않은 가벼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가벼움을 드러내는 존재들인 해수나 왕은, 왕정, 왕욱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딘지 사극에 잘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건 이 사극의 초반 약점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이 가벼움 속에서 사극 특유의 어떤 진지함과 무게감을 세운 건 4황자 왕소(이준기)8황자 왕욱(강하늘)이었다. 이 두 사람이 있어 <달의 연인>은 사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왕소가 일찍이 어머니인 황후 유씨(박지영)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채 황궁 밖으로 내쳐져 신주 강씨 집안의 양자로 자라온 인물. 그는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늑대개의 거친 삶을 살았다. 3황자 왕요(홍종현)가 정윤 왕무(김산호)를 살해하려는 걸 막아내면서 왕소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왕욱은 왕소와는 상반되게 차분하고 자상한 인물이다. 고려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해수를 돕고 또 보호해주는 인물. 그 특유의 차분함은 사극이 가지는 진지함을 잡아내면서 또한 조금씩 해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사극에서의 멜로도 해수를 사이에 두고 왕욱과 왕소가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연기력에 있어서도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건 바로 이 왕소와 왕욱 역할을 연기하는 이준기와 강하늘이다. 이준기와 본래 사극연기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까지 모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지만, 강하늘의 안정감 있는 연기 역시 돋보인다.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노려보는 이준기의 눈빛과 부드럽고 자애로워 보이지만 한층 무게감이 느껴지는 강하늘의 눈빛. <달의 연인>이 그래도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 두 인물 덕분이다.

 

<달의 연인>은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어떤 반전의 기회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준기와 강하늘, 이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존재감과 매력이 아닐까. 작품이 가진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충분히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갈 만큼 매력적이다.

<대박> 최민수, 어떤 사극에도 없던 숙종을 연기하다

 

SBS <대박>의 시청률 성적은 좋지 않다. 동시간대 지상파 꼴찌는 물론이고, tvN <또 오해영>이 기록한 7.9%(닐슨 코리아)보다도 낮은 7.7%까지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시청률이 급락한 19회에 숙종(최민수)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급 숙종을 연기한 최민수의 퇴장은 마지막까지 강렬했다.

 

'대박(사진출처:SBS)'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은 지금껏 어떤 사극에서도 보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그건 대본에 있던 장면은 아니었다. 최민수가 현장에서 숙종의 당시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며 제안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온 장면은 의외로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최민수의 숙종 연기가 역대급이었다는 것은 과거 MBC <동이>에서의 숙종(지진희)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동이>에서 숙종은 왕의 위엄보다는 사랑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숙빈 최씨(한효주)와의 신분의 뛰어넘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선보였던 인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박>에서 숙종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왕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이인좌(전광렬)라는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대박>이라는 드라마의 성격 상 자칫 숙종 역할은 가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인좌의 농간을 내려다보듯 눌러버리는 숙종의 카리스마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훨씬 더 팽팽해질 수 있었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이인좌를 잡기 위해 갖가지 명분들을 생각할 때, 왕의 명이라며 그를 잡아 능지처참하라고 소리치는 숙종의 모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아편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는 숙종의 모습은 숙빈 최씨(윤진서)의 죽음으로 인해 점점 몸이 쇠해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는 듯한 숙종의 마지막이지만 최민수는 그 모습에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연잉군과 대길의 대결을 걱정하며 서로가 살 길을 일러주는 모습에는 제왕으로서의 면모와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면모가 뒤섞여 있었다.

 

드라마는 숙종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연잉군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모습으로 피곤해하는 숙종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이로써 최민수가 만들어낸 숙종의 이미지는 그 인물이 죽고 난 후에도 강렬하게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대박>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민수의 숙종만큼은 건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만큼 최민수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연기자라면 드라마가 어떻건 자기 몫을 해내야 한다는 걸 최민수는 실제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시그널>에는 두 명의 김혜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시그널>이 이렇게 잘 된 첫 번째 이유로 김혜수가 캐스팅된 걸 꼽는다. 드라마에 많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김혜수의 희소성은 확실히 빛난다. 그렇다고 <직장의 신>처럼 드라마를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중들에게 김혜수는 어딘지 영화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동참한다는 건 <시그널>이라는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시그널>에서 김혜수의 연기가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대목은 젊었던 시절의 차수현과 팀장이 된 차수현이 교차 편집되어 나올 때다. 사실 같은 얼굴로 바로 다음 시퀀스에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은 차수현이 등장해 그 시간의 흐름을 연기 하나로 이물감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혜수는 이 두 명의 차수현을 완전히 다른 결로 보여주면서도 그 성장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도 성공하고 있다.

 

젊었던 시절 차수현은 모든 게 낯설고 힘든 강력계의 풋내기 형사였다. 그녀는 그래서 이재한(조진웅) 형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무언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애쓴다. 홍원동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와 똑같은 설정으로 그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모습은 그녀가 어딘지 어리숙해도 열정만은 남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홍원동 살인사건은 지금껏 <시그널>이 그려온 미제사건들 중 김혜수가 그 중심에 서게 되는 사건이다. <시그널>은 형사물의 장르적 특성을 살려내면서도 그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이재한과 박해영 그리고 차수현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건들을 차례로 집어넣었다. 그 첫 번째 사건인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은 이재한이 사랑했던 여인이 희생자가 된 사건이고, 대도사건은 과거의 형사인 이재한에게 미래의 프로파일러인 박해영이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비극적인 결과가 생기자 다시 과거를 바꿔 그것을 되돌리는 이야기다. 이 사건에서는 심지어 차수현이 차량폭파로 인해 죽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홍원동 살인사건은 그 사건을 추적하던 차수현이 연쇄살인범에게 붙잡혔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던 사건. 그녀는 그 사건으로 인해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연쇄살인범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무작정 도망치던 젊은 시절의 차수현의 모습은 베테랑 형사라기보다는 한 명의 평범한 희생자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을 구한 이재한마저 손으로 밀쳐내다 그 품에 안기는 마치 겁에 질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팀장이 된 현재의 차수현은 자신의 그 트라우마와 맞서는 여형사로서의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팀장으로서의 경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자신이 트라우마로 덮어버린 그 사건 때문에 그 후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홍원동 살인사건의 에피소드에서 김혜수의 존재감은 단연 도드라진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심지어 이재한과의 선후배를 넘어선 어떤 멜로의 감정까지도 느끼게 만들어주고, 현재는 베테랑 형사로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강인한 인상을 남겨준다. 그 시간의 장벽을 넘나드는 연기 속에는 실제 젊었을 때의 풋풋했던 김혜수의 모습과 현재 멋진 카리스마를 가진 김혜수의 모습이 겹쳐진다. 청순에서부터 카리스마까지 그려낼 줄 아는 연기자 김혜수가 가진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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