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과 소속사의 아마추어리즘

 

크레용팝의 핵심은 ‘아마추어리즘’이다. 흔히들 B급 정서로 표현하는 것. 하지만 B급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 콘텐츠 자체가 B급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경쾌한 록 장르에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고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춤을 얹은 괜찮은 콘텐츠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기존 걸 그룹 시장에서 우리가 늘상 보았던 콘셉트들을 모두 뒤집었다는 데서 그 가치가 새로워진다. 완전체 걸 그룹과는 정반대 놓여있는 크레용팝은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보면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걸 알 수 있다. 노래는 좋지만 이들의 가창력은 미지수고, 춤은 중독성이 있지만 그다지 테크닉이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외모나 스타일은? 헬멧에 트레이닝복을 입혔으니 이 부분은 아예 소속사가 안티인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아마추어적인 면들이 크레용팝의 인기요인이 되었다. 때때로 유명 아이돌 그룹에서도 종종 나오고 있는 ‘패션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대해 팬들이 ‘소속사가 안티’라며 발끈해 오히려 더 팬심을 높이곤 했던 것처럼, 크레용팝의 헬멧과 트레이닝복, 잘 드러나지 않는 가창력과 멋지기보다는 망가지는 춤은 팬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어딘지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보살펴줘야 할 것 같은 이 ‘빈 구석’은 팝저씨들이 탄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게다. 하지만 크레용팝의 아마추어리즘이 허용되고 때로는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는 건 딱 여기까지다. 콘셉트가 B급이라고 매니지먼트도 B급일 수는 없다. 크레용팝에게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 여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단 알리고 봐야 한다는 갈급함에 커뮤니티의 성격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홍보마케팅을 밀어붙인 것에는 영세 기획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후부터의 좀 더 세심한 관리였다. 막상 크레용팝이 알려지고 나서 비상하는 단계에 발목을 잡은 건 달라진 위상에 걸맞는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베 논란이 계속 되고 있을 때,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점은 기획사의 매니지먼트로서는 아마추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다 광고까지 끊기고 나서(아니 하필 그 시점에) 일베와 선긋기를 시도하면서 공식입장을 발표한 것도 또 그 공식입장에 담긴 공감하기 어려운 해명들도 적절했다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난데없는 ‘선물 계좌 개설’ 발언이 또다시 논란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팬들로부터 선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를 받지 않겠다며 대신 계좌를 개설해 현금으로 받아 그것을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실용적인 판단으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발언이다. 게다가 좋은 곳에 쓰겠다는 취지 아닌가.

 

하지만 좋은 취지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순수한 의도가 곡해될 수 있다. 특히 ‘현금’이나 ‘입금’ 같은 단어는 자칫 엉뚱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이 발언은 ‘주겠다’는 내용보다 ‘받겠다’는 전제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결국 받아야 기부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런 발언에 대해 대중들이 찜찜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순수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발언 자체를 철회하고 사과했지만 왜 계속 이런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는 지 소속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크레용팝의 현재 발목을 쥐고 있는 것은 이들 신개념 아이돌과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콘텐츠가 아니라 오히려 소속사의 아마추어적인 관리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B급 정서를 갖고 있다고 매니지먼트까지 B급이어서야 되겠는가.

맨발로 생고생 하는 <맨친>, 왜 안볼까

 

<맨발의 친구들>은 생고생 버라이어티를 자처하며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일단 해외라는 공간이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그다지 정서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런닝맨>이 아주 가끔씩 이벤트 성격으로 해외에 나가 한류 팬들을 확인하고 올 때만 해도 뿌듯했던 그 느낌은 <맨발의 친구들>에서 느끼기가 어려웠다. 마치 한류를 의도한 듯한 출연진과 연출이 의외성과 반전의 효과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사진출처:SBS)'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간 <맨발의 친구들>이 숨고르기를 하며, 이효리와 함께하는 엠티 특집을 한 것 역시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고정 멤버가 아닌 이효리 혼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멤버들과 좌충우돌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강호동이 하는 <패밀리가 떴다>를 다시 보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아침에 갑자기 산행을 하면서 폭포의 물을 맞고 입수하는 장면들은 영락없는 <1박2일>이었다. 그리고 또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다이빙 대회 참가라는 전혀 새로운 소재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출발 드림팀>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맨발의 친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콘셉트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외 체험에서 엠티를 가고 다시 다이빙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붙여져 있다. 즉 엠티는 <맨발의 친구들>이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하는 일종의 단합대회인 셈이고, 다이빙도 애초에 ‘단점 극복 프로젝트’라고 제목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의 이유가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맨발의 친구들>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한 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문화 소통인지, 멤버들 간의 여행인지, 아니면 스포츠 버라이어티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아이템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이 프로그램의 이득으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이번 다이빙 프로젝트가 성공한다고 해도 다이빙을 주제로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다른 스포츠에 도전을 한다면 그것은 너무 기존 프로그램과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일요일이 좋다>의 다른 짝인 <런닝맨>이 초창기 부진을 딛고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한 가지 콘셉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특히 주말 예능은 그 걸어온 길이 하나의 자산이 되는 셈이다. <런닝맨>은 단순한 게임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스파이가 투입되고 제작진과의 심리게임이 부가되면서 흥미로워졌다. 이제는 박지성이나 에브라 같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차근 차근 하나의 콘셉트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덕이다.

 

<맨발의 친구들>의 멤버들이나 제작진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맨발로 땀만 열심히 흘린다고 프로그램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맨발의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관되고 줄기차게 밀어붙일 수 있는 한 가지 콘셉트를 정하는 일이다. <무한도전>도 <1박2일>도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도전과 여행이라는 분명한 색깔이 있었다. <맨발의 친구들>의 색깔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먼저 고민되어야 맨발의 노력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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