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 논란, 그 선정성과 연예언론의 현실

 

기사를 먼저 접했던 이들이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김민준이 버젓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사진이 들어가 있고, 기사 내용은 그 욕이 기자는 물론이고 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상식적이다. 제 아무리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도 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연예인이 있을까.

 

'나혼자 산다(사진출처:MBC)'

그것은 아마도 팬이 아니라 기자를 향해 날리는 불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표현이 나왔을 정도라면 그만한 촉발의 이유도 있었을 법하다. 기자들의 요구에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다거나 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상식적이니까.

 

하지만 기사 내용은 거의 일방적이다. 김민준이 욕을 했다면 왜 그런 반응까지를 보이게 됐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이 충분히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기사가 이유로 제시한 것은 김민준의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기사는 이전에 있었던 서브남주논란까지 덧붙여 이 모든 행동이 김민준이 본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몰아세웠다.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논리가 내세워졌다. 하지만 과연 연예인은 공인인가. 연예인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에게 마치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공인의 책임을 무는 것은 과도하다. 여기서 공인이라는 논리에 여지없이 등장하는 건, 이른바 대중들의 볼 권리’, ‘알 권리. 하지만 언제 대중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볼 권리를 주장했던가. 그것은 언론이 부추긴 욕망일 뿐이다. 대중들은 심지어 공해처럼 쏟아지는 사적인 사진들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연예인이 공인도 아니고, 그 자리가 공적인 자리도 아니었다면 김민준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것은 사적인 자리에서의 지극히 사적인 행동이라는 얘기다. 그것이 적절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사적인 행동에 대해 공적인 잣대를 드리워 매도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그리고 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거기에는 악의적인 뉘앙스마저 묻어난다.

 

기사가 처음 올라왔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대부분 김민준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 많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사 자체가 그것을 상당부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린 김민준의 사진은 마치 그 기사를 읽는 대중들에게 욕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민준이 욕을 날린 건 대중들이 아니라 기자일 것이다. 즉 기사는 기자에게 날아온 욕을 대중들에게 날린 욕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에 비난하던 대중들이 차츰 김민준보다 기자와 언론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결국 이 사안의 실체를 조금씩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사화된 김민준 사진이 주는 충격이 조금씩 가라앉는 순간에, 기자들의 과도한 연예인 사생활 취재경쟁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이다.

 

최근 들어 연예인의 사적인 생활을 찍어대는 이른바 파파라치성 기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그 책임이 해당 기자에게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번 김민준의 사진을 찍은 기자들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면 왜 자신이 그토록 경쟁적으로 셔터를 눌러대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기자들도 불편해 하는 상대방을 즐기듯이 사진을 찍는 이들은 없다. 그것은 연예인의 사생활 사진에 대한 언론사들의 과도한 경쟁구도가 부추겨 억지로 만들어진 일일 가능성이 크다.

 

기자를 기레기라고까지 표현하며 욕을 하지만 사실 기자들 역시 언론사의 방침에 의해 하기 싫어도 욕먹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생활인들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언론사들이다. 물론 연예 언론의 특성상 스캔들과 가십에 민감할 수 있다는 건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건 적어도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자제되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이번 김민준 논란에서는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연예 언론이 처한 현실이 묻어난다. 어떤 기자도 파파라치식의 사진과 글을 쓰고 싶어 기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적인 현실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김민준 논란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그 사진이 주는 선정성이 아니다. 그런 사진조차 찍혀 기사화되는 안타까운 우리네 언론의 현실이다.

<별바라기>, 별보다 바라기 토크에 주목하는 까닭

 

이상한 일이다. MBC에서 정규편성된 <별바라기>에는 별들(스타)과 바라기들()이 함께 나와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별들보다는 바라기들의 이야기에 더 시선이 집중된다. 윤민수, 오현경, 우지원이 게스트로 출연해 이른바 국가대표 특집이라고 이름을 붙여놨지만 사실 <별바라기>가 집중하는 건 그들이 아니다. 별들은 침묵하고 바라기들이 한바탕 수다를 풀어내는 곳. 그것이 <별바라기>라는 토크쇼의 독특한 지점이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바이브 때는 얼굴이 영 아니었다. 얼굴로 좋아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가수 윤민수의 바라기인 박서린씨는 팬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라는 식의 객관적인 토크로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자신이 상심을 당했을 때 바이브의 노래가 자신을 치유해줬다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할 때조차 출연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했다.

 

웃음만이 아니었다. “보통 발라드를 들으면 더 슬프지 않을까 생각하잖냐. 그게 아니다. 발라드를 들으면 , 이 사람이 나와 같구나라는 느낌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 박서린씨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결국 공감이 주는 깊은 위로가 팬들로 하여금 스타를 바라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

 

별들이 아니라 바라기들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은 최근의 방송 경향이 왜 일반인 트렌드로 바뀌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사실 토크쇼의 첫 게스트로서 윤민수, 오현경, 우지원은 그리 강력한 존재감을 기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프로그램이 어떤 매력을 전해주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웬걸? <별바라기>의 진짜 게스트는 별들이 아니라 더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바라기들이었다.

 

오현경과 바라기인 채민경씨의 이야기는 별과 바라기의 입장이 역전된 느낌마저 주었다. 살뜰하게 오현경을 챙겨주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채민경씨에 감복한 오현경은 오히려 자신이 삶의 큰 힘을 얻었다고 증언했다. 생일에 친구들에게 축하 편지를 쓰게 하고 영상편지까지 담아 오현경씨에게 전해주었다는 채민경씨의 이야기는 팬과 스타의 관계 그 이상을 보여주며 가슴 한 구석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별바라기>가 최근 토크쇼의 경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스타들의 공간처럼만 여겨져 온 토크쇼가 이제는 일반인들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 게스트들이 어떤 토크에 대한 예측된 기대를 하게 만든다면 일반인 게스트들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그 예측 불허의 지점으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뻔한 스타들의 이야기에 대한 식상함보다는 일반인 팬들의 이야기가 훨씬 참신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와 팬의 공존을 보여주는 <별바라기>는 그 독특한 관계에서 나오는 이 프로그램만의 특별한 공감대를 선사하면서 지금껏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게 스타들이 그들만의 무대를 선사하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재미나 화제성을 떠나 일단 대중들을 잡아끌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만큼은 확실히 확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제공하는 의미와 감동은 충분하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이 좀 더 화제를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스타가 아닌 팬에 집중한 만큼 소박하고 진솔한 색깔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화제성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을 보이는 것. 만일 <별바라기>가 이 화제성까지 끌고 갈 수 있다면 이 독특한 토크쇼는 스타와 팬이, 연예인과 일반인이 공존하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프로답지 못한 카라, 언제까지 사과만 할건가

 

걸 그룹 카라의 니콜은 소속사인 DSP미디어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카라 활동은 계속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소속은 아니지만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것. 이것을 니콜은 “카라로서의 재계약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소속계약”이라고 표현했다. 즉 니콜은 소속사 계약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카라 활동도 하겠다는 얘기다.

 

'카라(사진출처:DSP미디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니콜의 이 이야기는 현실성은 그다지 없다고 여겨진다. 즉 1년 내내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있는 카라에서 니콜 혼자 자유로운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즉 이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카라 탈퇴 발표로 난감해진 니콜의 입장을 심정적으로 토로한 것에 불과하다. 즉 마음은 ‘카라와 영원히’지만 자신은 자신의 길과 카라 활동을 동시에 하고 싶다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면 혼자 활동하겠다는 것. 즉 자신이 들고 있는 뜨거운 공을 카라 소속사에게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니콜의 탈퇴가 팬들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니콜이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 그다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한번 소속이라고 영원히 그 틀에만 묶여 살라는 법이 어디 있나. 그러니 니콜이 절실하게 독자노선을 원한다면 정확하게 선을 긋는 자세가 오히려 프로다운 선택이다. 물론 후에 카라의 공연에 니콜이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함께 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맺고 끊는 것에 있어서는 좀 더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카라는 이전에도 거의 해체 수준의 분열을 겪은 적이 있다. 그 때도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은 카라 멤버 그 누구도 분열을 원치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류하는 두 사람과 나가려는 세 사람으로 나뉘어 무수한 뒷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결국 멤버로서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니지먼트와 소속사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일이라는 점. 크게 보면 카라의 문제는 역시 소속사와의 관계나 수익배분 등의 문제와 얽혀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카라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과 일본의 시선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카라의 이런 연거푸 벌어지는 해체 이야기에 냉랭한 반응이다. 이전 <라디오스타>에서 애교를 보여 달라는 말에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그 사안 자체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카라에 대한 국내의 시선이 그만큼 차가운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은 독도 발언 문제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 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심지어 니콜의 카라 잔류를 희망하는 릴레이 서명운동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공연에서 구하라가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한 것을 갖고도 국내에서는 “일본만 팬이냐”는 식의 비난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듯하다. 국내에서도 사실상 니콜이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비난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카라에 대한 반감이 정서적으로 깔려 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국내와 일본의 반응이 사뭇 다르게 된 것은 카라의 활동이 사실상 일본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 활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익의 거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압도적으로 거둬들이고 있다. 그만큼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카라의 해체설이 나올 때마다 국내 팬들은 차라리 일본에서나 활동하라는 식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이것은 카라가 한일 정서의 프레임 속에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저 한 아티스트의 해외 활동으로 여겨져야 할 일이 마치 일본에 맞춰진 그룹처럼 비춰지게 된 것은 이처럼 거대해진 팬덤을 가진 카라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정서 속에서 니콜의 탈퇴는 카라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니콜이 탈퇴하든 아니면 따로 또 같이 카라 활동을 병행하든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보아온 대중들에게 카라는 어딘지 프로답지 못한 인상을 만들었다. 늘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만 반복되고 있는 건 대중들에게도 어떤 피로감을 남긴다. 게다가 이 정서에 한일 정서의 프레임까지 덧붙여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좀 더 쿨해질 필요가 있고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갈라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팬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팬들을 더 깊은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 게 진정한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싸이, 국민가수가 될 필요 있을까

 

“공항에 들어왔을 때, 이건 말도 안된다. 메달 딴 것도 아닌데. 나는 온라인을 믿어본 적 없다. 현장반응이 내겐 더 크게 와 닿는다. 빌보드보다 더한 감격은 여러분이다. 감사드린다.” 싸이가 한 이 진술 속에는 꽤 많은 그의 소회가 들어있다. 그것은 메달 딴 것 마냥 국민적인 성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감격과 동시에 느껴지는 부담감이다. 그는 단 몇 달 만에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그를 국민가수가 되게 했다.

 

'강남스타일'(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정상에 다가가면서도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해외 거주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세워주고 있다는 점이 국민적인 성원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빌보드 차트 2위라는 놀라운 소식은 전 국민적인 응원 분위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곧 1위를 탈환할 것이라는 소식, 그것도 마룬 파이브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팝 본고장의 스타들과 1위를 겨루고 있다는 것. 이런 사실들은 평소 팝을 잘 모르던 대중들까지 그를 국민가수로 세우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 귀국행을 결정했다. 국내 대학 축제 스케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미국에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유명 프로그램 출연이 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스케줄을 조정하려 했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귀국한 그는 스케줄을 소화해내면서 불평보다는 국내 팬과 활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시민들을 위한 무료 콘서트도 펼쳤고, 춘천, 부산, 대구 등지에서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진정 국민가수라 불리는 이다운 선택을 한 것이지만 월드스타를 기대하는 한편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사실 국민가수든 월드스타든 국내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하다. 마치 국가대표나 된 듯 국가와 국민을 호명하며 그를 세워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구시대적인 시각은 자칫 한 가수의 음악 활동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의 직업에 걸맞게 노래를 한 것뿐이다. 그는 심지어 미국에서 뜨기 전에는 그렇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국민가수로 인정받은 후 월드스타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이 그를 월드스타로 만들었고(이것은 국가대표식이 아니라 철저히 상업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여기에 힘입어 뒤늦게 그를 국민가수로 추대했다.

 

물론 이것은 싸이로서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건 그에겐 의외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하면 거기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도 따르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세계적인 행보에 비해 사소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대학축제라도 일정조정을 하는 것이 구설수를 만들 수도 있고, 국민적 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구 역시 거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 독도 홍보로 ‘강남스타일’을 활용하자는 안이 나왔을 때 그것이 오히려 싸이에게 숟가락 얹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었지 않은가.

 

우리는 유난히 순위에 민감하다. 세계 몇 위라는 발표는 그 자체로 그 대상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만든다. 그것이 국민적인 일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던 7,80년대 개발시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월드스타는 국민이라는 수식어의 또 다른 버전이다. 해외에서 어떤 수확을 해왔을 때, 우리는 부끄럽게도 국내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에 심지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문화에 순위를 붙이거나 국민이라는 수식어로 치장하고 상찬하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제2의 싸이가 나올 수 있게 자유로운 문화적 풍토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싸이가 국민가수나 월드스타 같은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그 직분에 맞는 가장 즐겁고도 효과적인 행보를 보이기를 원한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그를 거기에 걸맞는 틀에 규정하기보다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하지 않은 뾰족한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바로 그 지점에 싸이 같은 세계적인 성공도 가능할 것이니. 그리고 대중들도 그런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싸이를 국민보다는 팬으로서 응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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