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복면은 가수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백청강에 대한 편견은 꽤 깊다. MBC <위대한 탄생>의 우승자지만 노래 실력보다는 당시 그를 천거한 멘토 김태원의 아우라가 작용했다는 시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연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절하도 백청강에 대한 편견을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이 실패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잘못된 멘토-멘티 시스템으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참가자의 멘토가 동시에 심사를 한다는 건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백청강이 과거 지인의 미니홈피에 한국비하 글을 작성했다는 루머는 그에 대한 편견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조선족을 바라보는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심지어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압도적인 문자 투표를 받는 것이 조선족들의 몰표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가창력에 있어서도 백청강은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들에게 늘 비음과 모창을 지적받았다. 비음이 과하고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원 멘토만큼은 달랐다. 그는 당시 영화 <왕의 남자>의 주제곡인 인연을 부르는 백청강에게 이제 비음을 살려도 된다너무 억누르는 모습은 듣는 이에게도 불편함을 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그에 대한 편견들 때문일까. 직장암으로 2년여 간의 투병생활을 거친 그가 <복면가왕>을 통해 무대에 선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어 보인다. 복면 하나로 이 모든 편견들을 가려버리고 무대에 서자 그의 비음은 마치 카스트라토 같은 섬세한 여성성까지를 표현해내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래서 아무도 남자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그가 복면을 벗었을 때 우리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별의 편견까지 깨버리는 무대라니!

 

백청강의 무대는 여러모로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독특한 지점들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얼굴을 가리니 사라져버리는 편견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를 상상하며 자유롭게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패널로 앉아 있던 이윤석은 백청강의 무대에 대해 이해인 수녀님을 운운할 정도로 여성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웃음을 주지만, 그런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며 듣는 일이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닐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만큼 듣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 얼굴이 주는 편견, 이름이 주는 편견, 성별이 주는 편견, 출신이 주는 편견 그리고 그 가수의 정체성이 주는 편견... 노래 한 곡을 들어도 우리는 너무 많은 편견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얼굴을 가려주는 건 가수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듣는 청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복면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복면가왕>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가수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노래를 듣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보다 자유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여장으로 자신을 가린 채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장기인 비음을 마음껏 써가며 카스트라토처럼 노래 부른 백청강의 무대는 그 진가를 잘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경연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노래 듣는 것이 식상해졌다면 그건 어쩌면 그 오디션들이 만들어낸 많은 선입견과 편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걸 가릴 복면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복면가왕>, 복면을 쓰니 이들이 자유로워진 까닭

 

노래 부르는 데 굳이 괴상한 복면까지 써야 할까. MBC <복면가왕>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편견이라는 걸 확인했을 것이다. 복면은 제작진의 특이한 취향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오락을 위한 장치만도 아니다. 그것은 그가 누군가 하는 그 정체가 주는 선입견과 편견을 차단해주는 놀라운 마법 장치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니 그들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처음에는 누굴까 고민하다가 나중엔 (노래 때문에) 그냥 그걸 잊어먹었어요.” 패널로 자리한 신봉선의 이 말은 <복면가왕>이 어떻게 노래에 집중시키는 지 그 작동방식을 잘 말해준다. <복면가왕>은 먼저 그 복면 안의 인물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증폭시켜 목소리에 집중시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은 그러나 차츰 목소리와 노래 자체에 빠져들면서 잊혀져간다. 복면 하나 썼을 뿐인데 노래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진 건 그래서다.

 

복면이 그저 하나의 오락적인 장치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건 이 복면을 쓰고 나온 이들의 정체가 밝혀질 때다. 아이비, 권인하, 산들. 이미 톱 가수들인 이들은 왜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기를 자청했던 걸까. 이것은 그들에게 덧씌워진 어떤 편견을 벗어나 오로지 노래로서 다시 자신을 세우려는 의도다.

 

아이비는 스스로도 밝혔듯이 발라드 가수로 준비하다 박진영을 만나 댄스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퍼포먼스 속에 상대적으로 아이비가 가진 감성 짙은 가창력이 드러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복면을 쓰고 나온 아이비가 이런 자신에게 덧씌워진 댄스가수라는 편견을 벗어나 얼마나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을지 생각해보라. 그것은 또한 대중들이 갖고 있던 아이비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권인하는 이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로 대중들에게 남아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1집 타이틀곡인 오래전에같은 곡은 그가 아니면 그 맛을 낼 수 없는 곡이었다. 그런 권인하가 왜 복면을 쓰고 무대에 섰을까. 그건 아마도 지나간 전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가수로서 자신을 세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인하는 <복면가왕>을 통해 그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지금도 대중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태연의 만약에를 부름으로써 증명해냈다.

 

B1A4의 보컬 산들은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깨주었다. 아이돌이라고 하면 막연히 노래는 뒷전이고 대신 그룹의 퍼포먼스가 우선일 것이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산들은 자신을 숨기기 위해 사투리도 조심하고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제스처까지 일부러 준비를 해왔다. 그렇게 자신이 아이돌이라는 걸 애써 숨겼던 건 결국 노래로서만 대중들에게 다가가고픈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복면이 벗겨지고 모두가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아이돌에 대한 막연한 편견 또한 깨져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복면가왕>은 가수들에게 그 괴상한 복면을 굳이 씌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한 셈이다. 아이비도 권인하도 산들도 복면 하나를 쓰고 자신에게 덧씌워진 편견의 굴레를 벗어났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모두 우승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승자는 자신이 질 때까지는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것. 이것은 향후 진행될 프로그램에 남기는 기대감이면서도 탈락자라고 해도 이 무대가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가수로서의 존재증명)을 해준다는 걸 말해준다.

 

<복면가왕>은 기묘한 오디션이다. 우승자를 가리는 팽팽한 대결이 있지만 동시에 그 대결의 과도한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오락적인 장치로서 복면이 존재한다. 또한 그 복면은 가수들이 온전히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락적 기능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해낸다. 어떻게 이런 긴장과 이완, 재미와 의미 사이에 균형을 잡아내는 오디션을 기획할 수 있었을까.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깨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보는 시선은 편견 그 자체다. 그래서 심지어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어도 정신과를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괜찮아 사랑이야>가 보여주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각별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거기에는 편견마저 감싸 안는 드라마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괜찮아 사라이야(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투렛증후군 연기를 위해 각별히 노력한 이유 중에는 자칫 잘못하면 그 연기가 해당 질환자를 희화화시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괜찮아 사랑이야>가 정신질환자들을 소재로 다루는 방식은 극히 조심스럽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특정한 정신질환자들을 다룬다기보다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의 정신적 상처를 갖는다는 얘기를 건네고 있다.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한강우(디오)라는 환상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는 상황이 그렇다. 그는 모든 여성들이 보기만 하면 하트를 날리는 연예인에 가까운 추리소설작가다. 그런 그가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네 편견을 깨준다.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어딘지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긴 무서운 존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장재열 같은 멋진 남자는 그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는 멋진 남자다. 특히 이 드라마에는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어 지해수(공효진)가 찾아간 윤철의 부인은 정신분열 환자지만 외모는 평범 이상으로 출중하다. 해수가 재열에게 그녀를 가리키며 예쁘지 않냐?”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정신질환자들의 배역으로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이상의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한 건 그래서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정신질환자의 이미지? 혹여나 싸이코라고 부르는 그런 섬뜩함이나 불편함을 떠올렸다면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뒤집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지해수라는 정신과의사 역시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설정일 것이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정신과의사. 그러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건 작건 자기만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다소 간의 부딪침과 소란이 있을지 몰라도 모두 문제없이 잘 살아간다는 게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장재열과 지해수는 어찌 보면 둘 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다. 하지만 지해수는 장재열이 무언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안고 살아가겠다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그래도 필요하면 약도 먹고 상당도 받으라는 것이 고작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륜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을 거부하는 지해수에게 장재열은 그냥 확 해버리라고 말하며 그녀를 계곡 물 속에 빠뜨려 버린다. 지해수는 그에게 그냥은 그냥이네.”라고 답하며 자신의 트라우마가 별게 아니라는 걸 점점 확인해간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치 <다모>의 한 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멀쩡해 보여도 우리는 모두 다소 아프게 저마다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괜찮다는 것. 그것은 감기 같은 병일뿐이라는 것. <괜찮아 사랑이야>는 재열과 해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빙자해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결국 한 똑같이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인간애를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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