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가 떠올리게 하는 오디션의 순수한 본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아니 노래를 들으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눈물이 흐르던 적이 언제였던가. 사실 많은 것들은 경험되고 지나가면서 애초의 그 감동들을 덮어버린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슈퍼스타K>의 무대에서 느껴졌던 그 전율과 감동들은 너무 많은 오디션들이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지워져갔다. 그럴수록 오디션은 더 강한 자극으로 무장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했던가.

 


'위키드(사진출처:Mnet)'

Mnet<위키드>는 그 선입견만으로는 마치 무수히 많이 봐왔던 동요대전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고 동요를 부르고 순위가 결정되는 그런 동요대전.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선입견이자 편견이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이토록 마음을 휘어잡고 메말라 더 이상 뛰지 않을 것 같던 가슴을 뒤흔들 줄이야.

 

첫 무대에 오른 제주소년 오연준 군이 <포카혼타스>의 주제가인 바람의 빛깔을 부르기 전 잠시 한숨을 내쉴 때만 해도 거기 앉아 있는 작곡가와 선생님들은 그의 무대를 걱정하며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그에게 힘을 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이제 9살의 소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것이 모두 기우였다는 걸 알아챘다. 오히려 이 9살 소년의 목소리가 거기 앉은 어른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

 

사람들만이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는 어른들만이 제대로 노래할 수 있다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박보영은 알 수 없는 감동에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 광경을 본 모든 어른들이 느낀 그 감정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것은 순수함이 주는 감동이다.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아이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듣는 이들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을 주었다.

 

돈 많이 벌어 큰 집으로 이사가 엄마와 동생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리틀 효녀 최명빈이 부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도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작은 소녀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꾸미지 않고 에둘러 말하지도 않으며 그저 전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어떤 표현들보다 강력한 노래의 힘이 사랑해요라는 직접적인 가사를 통해 전해질 수 있었다.

 

그저 아이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 때문에 조금은 불편했던 선입견은 오롯이 아이의 순수함과 그 순수함에서 나오는 노래에 집중함으로써 반전의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위키드>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처음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그 초심의 자세를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힘겨워진 건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 출연자들 또한 노래와 감동이라는 그 핵심이 아니라 오디션에서의 생존을 준비하게 되면서부터다. 또 오디션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자극을 올리게 되면서부터다. <위키드>는 그런 삿된 목적들을 지워내고 대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노래로서 오디션 무대가 본래 보여줬던 그 초심을 다시 이끌어내고 있다.

 

어쩌면 능숙해지는 건 성장이 아니라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그렇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장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위키드>는 성장 이전으로 돌아가 그 음악의 순수함이 주는 감동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세상살이에 마음이 어지러운 분들이라면 한번쯤 이 아이들의 노래를 들어볼 일이다. 모든 현실의 복잡함을 무화시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거기에는 있다. 우리들 모두가 갖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송곳>, 오물을 뒤집어쓴 뒤의 역설적 자유

 

돌아올 웃음이 없다는 게 명확해졌으니 웃어줄 이유가 없어졌다.’ 왕따가 되어버린 푸르미 마트의 이수인(지현우) 과장은 더 이상 갸스통(다니엘) 점장으로부터 미소 띤 칭찬을 받지 못하게 됐다. 직원들을 해고하라는 명령에 불복하면서다. 하지만 점장은 물론이고 동료 과장들도 그를 왕따로 만들어버리자 그는 오히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자 노선을 가는 길을 선택했다.

 


'송곳(사진출처:tvN)'

보답 받을 호의가 없다는 걸 아니 애써 호의를 보일 필요도 없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민철(김희원) 부장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그를 괴롭혀도 그는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됐다. 애초에 호의를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아예 그런 호의 자체를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JTBC 드라마 <송곳>에서는 이 역전된 상황을 흙탕물 속에서 뒹굴며 훈련을 받던 군대 이야기로 설명한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편안해지는 역설. 철조망에 손이 조금 긁히던 흙바닥에서 뒹굴던 그리 신경을 쓰지 않게 되더라는 이야기. 드라마는 이 상황을 오물을 뒤집어쓴 뒤에 찾아오는 역설적 자유라고 표현했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노동운동이라는 소재를 가져와서도 어떻게 그토록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노동운동의 이야기는 고 전태열 열사의 그것처럼 사뭇 진지하고 심지어는 비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곳>은 그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만 노동운동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 안에 드라마틱한 반전과 소소한 성취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소재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게 해준다는 것.

 

그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반전과 역설이다. 이수인이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노동운동하면 떠올리는 그런 인물과 사뭇 다르다. 그는 한 마디로 말하면 바른생활 사나이. 물론 성인군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도 역시 현실에 타협하고픈 욕망을 갖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못할 뿐이다. 보통의 그런 바른생활의 인물이라면 잘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학교, 군대, 사회 어디든 가는 곳마다 걸림돌같은 존재다.

 

이것은 캐릭터의 역설이다. 바른생활 사나이가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그런 인물을 송곳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결국은 현실이 비뚤어졌다는 역설이다. 그래서 마냥 당할 것만 같지만 웬걸? 의외로 이 바른생활 사나이가 승부욕을 보인다. 그것은 그래서 또다시 왕따의 역설로 나아간다. 왕따가 되니 오히려 저들의 요구나 기대를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부당함에 보다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인을 돕는 구고신(안내상)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도 우리가 노동운동하면 떠올리는 그런 투사의 이미지가 아니다. 거리에 노동자들이 나와 사측과 대치상황을 보여주지만 그 장소로 이수인을 데려온 구고신은 그것이 좋은 현장교육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노동쟁의나 노동운동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다. 어디든 노동은 있고 노동자와 사측이 있기 마련이라면 노동분쟁도 일어난다.

 

그래서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교육을 서구에서는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걸 역설한다. 그들에게는 일상이 우리에게는 마치 송곳같은 일이 되어있다는 것. 구고신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이 노동운동에 대해 지나치게 비장함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

 

사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즉 노동쟁의를 무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처럼 금기시하는 현실에서는 마치 사측의 호의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왕따가 되어버리지만, 거꾸로 분쟁이 있을 때 그러한 노동운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수인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왕따의 역설은 그 관점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면이 있다



불가사의, <삼시세끼>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이 프로그램 망했어!”로 시작한 이서진은 <삼시세끼>의 마지막에도 여전히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살아있다는 게 불가사의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삼시세끼>는 그저 살아남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이룬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려 12%의 시청률을 내면서 금요일 밤 tvN이 채널 헤게모니를 가져오게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도대체 이 망했다고 자평하던 프로그램은 어떻게 이런 정반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그 망했다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내려오는 불문율의 편견 속에 있다. 즉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응당 이러해야 하며, 또 이런 건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불문율. 이를테면 낚시나 등산 같은 소재는 예능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금기로 여겨져온 바 있고, 복불복 같은 게임을 보험처럼 가져가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얘기도 하나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니 <삼시세끼>처럼 복불복 게임도 없고, 마치 낚시나 등산처럼 너무나 잔잔하게 흘러감으로써 보여지는 장면이 단조로운 시골 살이의 예능에 대해 스스로 망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바로 이 망할 거라는 속단으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함으로써 성공을 일궜다.

 

세끼 집에 한정된 공간의 한계는 오히려 그 집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밀 묘사함으로써 뛰어넘었다. 즉 별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집 구석구석에 카메라들을 설치하고 오래도록 들여다보자 의외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주의깊게 살피지 않은 것일 뿐 옥수수가 자라고 채소들이 자라나고 동물 친구들이 성장해 자식을 낳고 하는 일들은 사실 하나하나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처럼 변해가는 광경들 속에서 적응 못하던 이서진과 옥택연이 조금씩 환경에 동화되어가고 성장해가는 모습은 그래서 어느 순간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사실 그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도시의 바쁜 삶이 그런 것들에 오래도록 시선을 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망작이라고 예측했던 것을 명작으로 만들어낸 것은 이 선입견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시골 살이의 예능을 시도했다는 것과, 그것을 그 어느 것보다 더 열심히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사실 시골에 카메라를 드리운다 해도 거기서 좀 더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내겠다는 제작진의 마음이 없었다면 <삼시세끼> 같은 시골의 발견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얹어진 중요한 포인트는 이서진이 말하는 것처럼 도시의 삶에서 잠시 떠나와 이 시골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는 게스트들이다. 게스트들의 마음은 말 그대로 우리네 도시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똑같이 시청자들에게도 공감대를 주었다. 그들의 즐거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박신혜나 최지우, 손호준 같은 이들이 더더욱 이 시골살이를 즐겁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일 년을 휘돌아 이제 <삼시세끼> 정선편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일 년 동안 벌어진 많은 사건들(?)은 영상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처럼 남았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추억이 된다는 것. 망하는 아이템이라며 피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예능 제작자들은 이제 오히려 망한다는 아이템들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저 피하지 말고 부딪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삼시세끼>의 성공은 일깨워주고 있다



<슈스케7>, 더 다양해진 인물들의 이야기

 

인기가 점점 떨어진 것에 대한 것은 인정한다.” <슈퍼스타K7>의 김기웅 국장은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슈퍼스타K>의 물이 빠져서라기보다는 오디션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즌7으로 돌아온 <슈퍼스타K>는 전혀 물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가자 하나하나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목소리와 스타일 그리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전하고 있었다.

 


'슈퍼스타K7(사진출처:Mnet)'

이제 18세의 싱어 송 라이터 유용민은 나이답게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모습이었지만 막상 노래를 부르자 그 누구보다 애절하게 마음을 담은 노래를 들려줬다. 노래가 끝나고 나자 모두가 숙연해질 정도. 이 첫 무대로 편집해 보여준 반전의 모습은 <슈퍼스타K7>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 것이었다. 그저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어서 나온 18살 박수진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교복이 촌스럽다며 부끄러워했고, 본인이 잘한다는 엽사(엽기사진)를 보여주는 딱 그 나이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노래를 부르자 의외의 원숙한 감성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녀가 불러준 James moody‘Moody’s mood for love’는 마치 재즈 싱어 같은 놀라운 감성이 묻어나는 노래였다. 에일리의 표현 그대로 외국 그루브가 있는 노래.

 

애틀란타에서 온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클라라 홍 역시 그 무대는 반전이었다. 밝고 경쾌한 음악을 들려줄 거라 생각됐지만 그녀는 이문세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짙은 감성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윤종신이 말했듯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클라라 홍에 의해 재발견된 곡처럼 느껴졌다.

 

뉴욕에서 온 케빈 오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마음을 노래에 담아 전한다는 그의 표현대로 조근 조근 말을 건네듯 노래를 불러주었고, 미국에서 온 스티비 워너는 끼를 주체 못하는 밝은 모습으로 나와 특유의 댄스와 노래가 어우러진 그만의 무대를 선사했다. 자밀킴 같은 우리 가요계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색깔과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준 참가자는 <슈퍼스타K7>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19살 김민서의 노래는 그녀의 밝고 쾌활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아픈 가정사가 담겨져 있어서 뭉클할 수밖에 없었던 무대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하나도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 청춘은 밝은 미소 속에 숨겨져 있는 그 그림자를 마치 노래를 통해 뽑아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노래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아낌없는 칭찬은 결국 그 쾌활한 얼굴에 기쁨의 눈물이 맺게 만들었다.

 

홍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밴드 중식이는 촌스러움을 추구하는 괴짜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노래만큼은 자신들의 진정성이 살아있었다. 이 밴드가 불러준 아기를 낳고 싶다니라는 곡은 그저 웃긴 것이 아니라 삼포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웃픈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냈다.

 

<슈퍼스타K>는 매 시즌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가수들을 배출할 때마다 다음 시즌에 도대체 더 이상 나올 사람들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롭게 시즌이 시작되면 어디서 이런 인물들이 또 나왔는가 싶을 정도로 새롭다. 이게 가능한 건 <슈퍼스타K>가 그저 노래만을 들려주는 오디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노래하는 이들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던 그 속내와 마음이 담긴 그들만의 이야기들이 있다.

 

어린 것처럼 보여도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듯한 목소리의 18세 소년이나, 교복이 불만인 고등학생처럼 보여도 의외로 깊은 감성을 가진 소녀, 밝은 에너지와 쾌활함 속에 감춰져 있는 아프고 깊은 감성들을 노래에 담아 불러주는 참가자들. <슈퍼스타K>가 시즌7까지 왔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이고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다. <슈퍼스타K7>이 물이 빠졌다고? 천만에. 첫 방송부터 그런 편견을 깨주는 참가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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