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안재현 부부 사생활 생중계, 뭐가 문제일까

 

이제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까지 등장했다. 디스패치가 안재현과 구혜선 부부의 사적이고 내밀한 문자들을 공개한 것. 어째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이 사안은 ‘범죄’가 아니라 부부 사이에 생겨난 갈등상황이고, 이혼을 두고 벌어진 감정 대립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공적인 사안이라 보긴 어렵다.

 

대체로 휴대전화 포렌식 같은 방식까지 동원되어 사적인 내용까지 공개되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건 그것이 ‘범법’과 같은 중대한 공적인 문제를 내포할 경우였다. 하지만 이 사안이 그런 것일까.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위치를 떼놓고 생각해 보자. 부부가 이혼을 하는 상황은 두 사람만의 문제다. 물론 그것이 폭력이라든가 외도라든가 하는 범법 행위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봐도 이 사안에 그런 범죄적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

 

사안을 이렇게 공적인 문제로까지 키우게 된 건, 구혜선이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그들의 가정사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물론 SNS라는 공간은 사적일 수도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SNS가 이미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는 공적 공간이 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구혜선은 이 공간에 그들끼리 만들었던 ‘결혼 생활 수칙’까지 공개했다.

 

‘안재현 주의할 점’이라 적힌 수칙에는 ‘밖에서 술 마실 때 저녁 11시까지만 마시기’, ‘인사불성 되지 말기(절제)’, ‘고집부리지 않기’,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기’, ‘벗은 옷은 제 자리에 두기’, ‘먹은 음식은 제 때 치우기’, ‘술 취해서 기분이 좋아도 소리 지르거나 손찌검, 폭력 등 하지 않기’, ‘집에 12시 안에는 들어오기’, ‘고양이 화장실(7일에 한 번은) 치우기’ 등이 자잘하게 적혀있다. 반면 ‘구혜선 주의할 점’에는 ‘없음’이라 적혀있다.

 

지난 3일 SNS에 올라온 이 사진은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이미 구혜선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SNS에 글 한 줄 올리고 사진 한 장 올리는 것이 모두 기사화될 것이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결혼생활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는 걸. 바로 이전 SNS에는 이들이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 안주에 대한 사진과 글이 올랐고 어김없이 기사화됐다. ‘안주. 저랑 산 세월이 더 많은 제 반려동물입니다. 밥 한번 똥 한번 제대로 치워준 적 없던 이가 이혼통보하고 데려가 버려서 이혼할 수 없습니다.(결혼 전부터 제가 키웠습니다)’ 그 SNS에는 안재현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무수히 달렸다.

 

그간 구혜선이 SNS에 올린 글들이나 공개한 사진 등을 통해 안재현은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다. 진위를 떠나서 구혜선이 올린 글들만을 통해 보면 안재현은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구혜선의 이런 끝없는 공개와 폭로 속에 안재현은 맞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안이 점점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안재현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직접적인 피해도 이어졌다. 결국 휴대폰 포렌식이라는 방법이 동원 되었고 이후 감정싸움이 격해진 가운데 안재현은 구혜선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문자 메시지들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팽팽한 양자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안재현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또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생겼다. 하지만 구혜선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입장도 팽팽하다. 문자 메시지 공개는 진실을 통해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냈다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한 정도가 된 셈이다. 결국 이혼 소송에 따라 법원에서 진실이 가려지게 될 공산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자 메시지에 담긴 글들 또한 100%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 부부 간의 문자로 나누는 대화 같은 경우는 그 때 그 때 감정과 상황에 따라 앞뒤 정황이나 논리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또 과한 표현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이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범죄인들도 아닌 상황에 휴대폰 포렌식으로 그들의 내밀한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고, 또 나아가 그만한 효용성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중요한 건 이런 사적인 사안을 왜 공적인 사안처럼 키워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끝없이 SNS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나아가 남편의 사적인 부분들까지 폭로한 구혜선의 방식은 결코 옳다 말할 수 없고, 그것을 마치 실시간 중계하듯 퍼 나른 언론도 책임이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기방어였다고 해도 휴대폰 포렌식을 이용한 공개 또한 잘 했다 보긴 어렵다.

 

잘잘못을 따지는 건 두 사람이 만나서 직접 해결하든 법적으로 해결하든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SNS를 통해 시시콜콜한 부부 간의 사적이고 내밀한 문제들까지 끄집어내 공개하는 방식이 결코 바람직하다 보긴 어렵다.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너무 성숙하지 못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제 대중들도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공개되고 있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구혜선은 연예계 잠정 은퇴 선언까지 했지만, 단 하루 만에 ‘결혼 생활 수칙’까지 공개하며 안재현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이후 디지털 포렌식까지 동원해 공개된 문자 메시지는 구혜선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커지게 만들었다. 대중들이 왜 이들의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실시간 중계하듯 봐야 할까. 이제 그만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SNS나 매체를 통한 사생활 공개, 폭로가 아니라.(사진:tvN)

‘국가부도의 날’, 너무 아팠던 이 재난을 굳이 다시 꺼내보는 이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던 그 때 상황을 이 영화는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일주일 전 이 재난이 닥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어떤 대처를 보여주는가를 담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가부도 사태라는 쓰나미 앞에 선 인간군상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 한시현(김혜수)은 이 심각한 재난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윗선에 보고하고 그 보고는 경제수석을 거쳐 청와대까지 올라가지만 어쩐지 대처방식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노골적으로 이 재난을 정부가 나선다고 막을 수 없다고 말하며, 국민들에게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 혼돈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참에 우리네 경제가 완전히 뒤집어져 이른바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국과 맞물리면서 결국 이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재난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피해자들은 속출한다. 이 영화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는 건, IMF 구제금융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사업 실패와 생계 문제로 비관한 이들의 자살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재난에 직격탄을 맞는 작은 사업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갑수(허준호)는 백화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수주를 약속어음 하나 달랑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함으로써 위기상황에 몰린다. 집까지 내놓고 버텨내려 하지만 결국 버티다 못해 어음을 돌려버리자 협력업체 사장은 자살을 해버린다. 

반면 이 재난 상황을 미리 읽어내고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종금에서 일하다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사표를 던진 윤정학(유아인)은 이후 투자자를 모아 달러를 매입하고 달러가가 치솟자 다시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역투자를 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똑같은 재난상황이지만 이 재난을 알려 국민의 피해를 줄이려는 자가 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업을 벌여 죽을 만큼 힘든 현실에 맞닥뜨리는 이들이 있다. 또 이 재난을 역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신분까지 상승시키려는 이가 등장한다. 물론 IMF라는 국제구제금융을 내세워 한국 시장을 열고 쓰러지는 기업들을 싼 가격에 먹어치우려는 미국과, 이 와중에도 정치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재벌기업들만 살리는 것으로 일종의 커넥션을 만들려는 우리네 상황도 그려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시원한 사이다를 보여주진 않는다. 시종일관 벌어지는 고구마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이를 대책 없이 감당해야 하는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영화는 깊은 몰입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그것도 굉장히 힘겨운 재난상황들을 보는 일이) 어째서 의외의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걸까. 

그건 이 영화가 재난영화의 틀을 가져오면서 동시에 ‘폭로’의 성격을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보라. IMF에 의존해야 하는 초유의 국가부도의 사태를 벌인 것이나, 그 사실을 은폐해 엄청난 피해자를 만든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저들이 한 일들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분수를 넘는 소비나 해외여행 때문이라 생각하며 ‘금 모으기’에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재난의 폭로는 ‘저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를 시원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재난 사태가 또 벌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적인 가치 또한 담고 있다. 재난을 마주했던 한시현이나 윤정학, 갑수는 당시에는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믿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런 재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사진:영화'국가부도의 날')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 지적만큼 중요한 솔루션 제시

밤 7시 딸의 취침준비시간. 남편 고창환은 딸 고하나의 방학생활 숙제를 도와준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시누이로부터의 전화. 고창환은 활짝 웃으며 통화하다 딸 고하나를 바꿔준다. 반갑게 고모를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 “집에 오면 저랑 같이 자요.”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시누이가 집에 온다는 그 말에 아내 시즈카는 화들짝 놀란다. 

시즈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자 남편이 일종의 해명을 한다. “친구 만나러 왔다가 늦을 거 같아서, 운전하기 좀 위험해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해서. 상관없지 않나?” 딸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 넘어가려는 그 말에 하나가 “괜찮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어”라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시즈카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시즈카에게 “늦으면 자고 있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고창환은 속편한 말을 한다.

시즈카가 불편해 하자 고창환은 마치 그게 정답이나 되는 듯, “가족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카는 “가족이라도 달라”라며 단호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 누구 집인데? 오빠만 살아?” 시즈카의 그 말에 남편 고창환은 “다음에는 내가 물어볼게”라며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려 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딸 하나가 그걸 풀기 위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빠는 고모가 와도 되니까 그런거지? 그런데 엄마한테 왜 안 물어봤어?” 그러자 아빠가 답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빠가 물어본다고 했어. 그럼 됐지?” 그런 하나가 예쁘게 느껴졌던 지 시즈카는 하나를 꼭 안아주며 웃는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준 이 장면은 굉장히 짧지만, 거기에 어쩌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큼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았던 일상인지도 모르지만, 관찰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투성이였다는 걸 드러내면서 나타난 반응들이다.

그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여기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그 불편한 심경을 SNS에 올렸다. 일정한 ‘콘셉트’가 있었고, 그래서 설정과 ‘연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폭로’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것이 제작진의 잘못도 존재하지만 또한 온전히 편집 때문인가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시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적인 반응들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제의 장면들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최현준-신소이 부부 이야기에서도 며느리에게 “야”라고 부르고 자기 아들인 현준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돌직구’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시어머니가 “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남편을 위주로 하고!”라고 말할 때는 자막에 붉은 색으로 ‘남편을 위주’를 강조하고 불꽃까지 더해 붙였다. 일종의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그런 이상한 나라를 조명해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과 분노 이상의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 해법을 시도해 보여준 적이 있을까. 

이러한 가족 내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찰카메라를 활용한 솔루션 프로그램에는 적어도 그 상황을 직접 당사자들이 보게 하고, 거기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해결방식을 제안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그런 해결 방식이나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즈카의 가족이 보여준 짤막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시즈카는 남편이 ‘가족’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대목에 단호하게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들만의 공간이고 그래서 남편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시댁 식구들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그 곳은 경계가 있다는 걸 시즈카는 확인시켜준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문화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이른바 ‘경계 존중 교육’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몸이 있고, 내 공간이 있고, 나만의 삶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올 때는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통한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경계는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서조차 친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경계를 훌쩍 넘어 마구 침범하는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댁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마구 선을 넘는 행동과 말이 그렇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건 딸 하나가 보이는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훅 들어오는 행위들은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는 그래서 딸 하나에 대한 살아있는 훈육처럼 보인다.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왜 안 물어봤어?”하고 묻는 대목은 그 역시 가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즈카가 스스로 보여준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잘못된 풍경을 끄집어내고 지적하는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거기서 어떤 해법들을 찾을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고 자극적인 상황의 나열로 인해 ‘분노’만을 일으키고,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현실만을 그려낼 위험성이 있다.(사진:MBC)

품위녀’, 팽팽해진 김희선과 김선아의 대결이 말해주는 것

그저 잘 포장된 불륜극이다? 글쎄.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가 2회 동안 보여준 건 강남 부유층 집안사람들의 막장에 가까운 내밀한 삶의 이야기다. 남편이 딸의 미술선생과 바람나는 줄도 모르고 그 선생의 작품을 후원하는 우아진(김희선), 남편을 성형외과 원장으로 두어 남부러울 것 없는 유한마담으로 살아가지만 그 남편이 그녀 바로 옆에 있는 오경희(정다혜)와 내연관계라는 사실을 모르는 차기옥(유서진). 대담하게도 남편의 레지던스홀에서 바람을 피우다 직원에게 들킨 김효주(이희진)과 그녀의 불륜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듯한 그녀의 남편 서문탁(김법래).... 겉으로 보면 품위 있는 그녀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살은 불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이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래서 마치 <품위있는 그녀>는 그 부유층의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아진의 집으로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간병인으로 들어온 박복자(김선아)가 이들과 만들어내는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어딘지 어수룩한 모습으로 사투리를 쓰며 회장의 간병에 마음을 다하겠다며 이 집안으로 들어온 박복자는 이상한 낌새를 차린 첫째 며느리 박주미(서정연)가 그녀를 내보내려하자 발톱을 드러낸다. 온몸으로(?) 안회장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박복자가 오히려 집안에서 왕따인 박주미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보다 그녀가 “먼저 쫓겨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논다. 결국 박복자가 안회장과 한 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본 박주미와 우아진은 경악했다. 

<품위있는 그녀>가 쫄깃해진 건 바로 이 박복자와 우아진 사이에 만들어진 대결구도 때문이다. 이 안회장의 집안에서 실세로 자리해 오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우아진이다. 첫째 며느리가 남편의 잘못으로 안회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채 왕따 당하고 있는 사이, 우아진이 사실상 집안의 대소사를 선택해나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녀가 간병인으로 들인 박복자로 인해 이런 권력구도에 변화가 생기게 됐다. 박복자가 이 집안의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이틀은 작은 사모님의 집을 청소하라고 시킨 것에 대해 우아진이 그런 결정은 모두 자신과 첫째 며느리에게 묻고 해야 한다며 선을 긋는 장면은 그래서 향후 이 드라마의 전개에 대한 복선을 담고 있다. 안회장의 마음을 얻은 박복자가 이 집안의 실세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 

<품위있는 그녀>가 그저 불륜극에 머물지 않고 어떤 사회극의 느낌을 담게 된 건 바로 이 대결구도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안회장의 이 집안이 보여주는 권력구도나 계급체계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그대로 축소해 보여준다. 돈줄을 쥐고 있는 자가 왕처럼 군림하고 자본의 힘에 의해 주인과 하녀 같은 봉건적인 권력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집안. 드라마의 시작점에 박복자가 태생으로 결정되는 자신의 삶을 벗어나 그녀들 같은 ‘품위 있는 삶(?)’을 살고픈 욕망을 내레이션으로 말하는 대목은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빈부와 그로인해 결정되는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박복자의 목숨 따위도 중요치 않게 여기는 폭주와 투쟁(?)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빈부로 고착된 틀을 넘어서려는 안간힘처럼 그려진다. 안회장에게서 선물 받은 고가의 명품백을 받고 백화점 화장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에서는, 그래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탔지만 그렇게밖에 자신을 던져야 비로소 백 하나 정도를 얻을 수 있는 그녀의 처지가 온전히 느껴진다. 이름조차 ‘박복자’가 아닌가. 박복한 사람.

그녀의 폭주는 그래서 단지 개인적인 욕망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놓여진 거대한 장벽을 어떻게든 뛰어넘으려는 안간힘. 그리고 그녀의 시선으로 다가오는 장벽 저편의 품위를 가장한 위선적인 삶들에 대한 폭로. 물론 그 첫 장면에 그녀가 무참히 살해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 욕망의 끝이 비극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박복자의 대결구도가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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