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허수아비'는 그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살인의 추억' 때만 해도 이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다.

범인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수아비'가 방영되는 현재 우리는 이 사건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부른다. 

이 사건이 이춘재에 의해 벌어졌다는 사실은 2019년에서야 비로소 밝혀졌다. 

첨단 DNA 감식 기술을 통해서다. 

허수아비

그래서 '살인의 추억'이 당시 끝내 잡지 못했던 범인을 잡고 싶은

형사들의 지독한 열망(그래서 엇나가기도 하는)을 담았다면,

'허수아비'는 뒤늦게야 특정된 범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왜 그 때 그토록 많은 피해자들을 내면서도

범인을 잡지 못했던가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담았다. 

 

끝까지 범인을 추적하고 그 진실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형사 강태주(박해수)와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목적은 개인적인 욕망(인정욕구)에 있는 검사 차시영(이희준)의

때론 공조하고 때론 갈등하며 때론 대결하는 혐관 수사는 

바로 그런 어째서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에 대한 단서들을 담는다. 

허수아비

어떻게든 범인을 빨리 잡아 세상의 질타로부터 벗어나고

개인적인 인정을 받으려는 차시영은 

강태주와는 다른 타락한 형사들의 고문 수사를 방조하면서까지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둔갑시킨다. 

그 과정에서 강태주의 여동생과 사귀던 이기범(송건희)이 고문후유증으로

풀려난 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은 

당시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직접 살해당한 당사자들만이 아니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그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차시영과 타락한 형사들이 포상을 받기 위해

발견한 어린 아이의 시신을 다시 매장해버리는 상황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황을 숨어서 지켜본 진범의 시선까지. 

허수아비

드라마는 흥미로운 교차편집을 통해

타락한 형사들이 무고한 이들을 잡아 고문을 일삼는 장면들과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를 무참히 죽이는 장면들을

병치해서 보여준다. 

그건 그 야만의 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암시한다. 

타락한 형사들이나 연쇄살인범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무너뜨리는 일을 해왔던 시대가 그것이다. 

 

최고 시청률 7.4%(닐슨 코리아)에 이를 정도로 

ENA 채널 사상 높은 관심과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다만 과거사의 새로운 구성이 가진 재미적 차원 그 이상의 사회적 정서들을 건드린다.

그것은 제대로된 공권력이나 사회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할 때

직접적인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억울한 피해자들 또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허수아비

그많은 재난과 사건사고들이 터지고 

그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지만

그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허수아비'라는 제목은 그래서 여러 은유적인 느낌을 준다. 

허수아비 같은 시스템의 무력감이 느껴지는 제목이 아닌가. (사진:ENA)

2026.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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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 일 하는 거고 난 내 일 하는 거야.” 허진호 ‘보통의 가족’

보통의 가족

“형 진짜 돈 되는 건 다하는구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재규(장동건)는 살인자를 변호하게 된 재완(설경구)에게 그렇게 비아냥댄다. 재완은 도로 위 시비 끝에 차로 치어 사람을 죽게 만든 의뢰인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마침 그 차에 함께 타고 있다 크게 다친 피해자의 딸이 재규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완은 그녀를 꼭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생명의 소중함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의뢰인이 피해자와 해야할 합의에 유리할 것 같아서다. 그런 자신에 대해 재규가 비아냥대자 재완은 말한다. “넌 네 일 하는 거고 난 내 일 하는 거야.” 

 

네 일과 내 일. 각자 자기가 맡은 대로 그 역할을 하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형은 돈 벌려고 하는 거고 나는 사람 살리려고 하는 일”이라는 재규의 말처럼, 이들의 일은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거라는 점에서 달라보인다.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측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이제는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사건이 터진다.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노숙자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퍼진 것이다. 처벌을 받게 할 것인가, 그대로 묻을 것인가. 더 이상 남 일 아닌 자식 문제 앞에서 엇갈린 형제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보통의 가족’이 충격적인 건 재완과 재규가 극단적인 선도 악도 아닌 보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직업에 충실하고 자식 사랑이 지극한 보통의 아빠이자 남편들이다. 그런데 자식이 연루된 사건 앞에서 그 보통은 비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자 직업’으로 대변되는 성공지상주의나,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가 당연한 보통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그 비정상적인 보통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글:동아일보, 사진: 영화 '보통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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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피해자 아니에요.” 김세휘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서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은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들어가 그 내밀한 삶을 훔쳐보는 취미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열쇠를 위임받고 집을 소개해 주는 일을 하고 있어 집주인이 없을 때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일의 목적을 벗어난 사적인 취미(?)는 ‘나쁜 짓’이다. 그건 가택침입에 해당하는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정태는 이것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주인을 해코지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띠지 않는 작은 물건 하나를 가져와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을 뿐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한 짓이 범법행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인물은, 어느 날 문을 따고 들어간 자리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피를 철철 흘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후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은 거짓된 관종의 삶을 살아가는 인플루언서 한소라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내가 제일 불쌍해”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신을 피해자라 착각하며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에 무지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피해자라 착각하는 이들의 삶은 현재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보여준다. 잘못을 자각해야 변화가 생길텐데, 그 자체에 무지하니 자신 또한 피해자라는 착각 속에 사회는 변화의 기회를 잃는다. 형을 살고 나와서도 자신의 나쁜 짓을 자각하지 못하는 구정태에게, “당신, 피해자 아니에요”라 일갈하는 형사의 말은 그래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그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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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월드

 

1967년 루이 암스트롱이 발표한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는 작곡가 조지 와이스와 프로듀서 밥 티엘이 흑백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만든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 팝차트 1위까지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은 곡이지만, 우리에게는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굿모닝 베트남(1987)’으로 더 기억된다. 살벌한 베트남 전쟁의 처참한 풍경들과 더불어 흐르던 ‘왓 어 원더풀 월드’. 그건 강렬한 풍자를 담은 일종의 반어법처럼 다가왔다. 무엇이 ‘원더풀 월드’란 말인가. 이토록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바로 이런 뉘앙스를 담은 드라마다. 어느 날 수현(김남주)의 아이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다. 그런데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분노한 수현은 사죄를 요구했지만 뻔뻔하게 이를 거부하는 가해자를 충동적으로 차로 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처벌로 감옥에 들어갔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원더풀 월드’는 이 사적 보복이 불러온 연쇄적인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을 그려낸다. 수현에 의해 사망한 가해자의 아들 선율(차은우)은 이제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로서 수현과 그 가족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하려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 이 상황은 저 ‘굿모닝 베트남’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흐르며 보여지던 베트남 전쟁의 살풍경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서로를 찌르고 찔리며 흘리는 피와 눈물로 살아간다. 과연 이 전혀 ‘원더풀’하지 않은 악순환에 빠진 세상의 고리를 이들은 끊어낼 수 있을까. 

 

수현과 선율이 특히 분노한 건, 각각 아들과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아들이 사망했는데 아들을 죽게 만든 자는 버젓이 잘 살아가는 모습이 수현을 분노하게 했고,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그렇게 만든 수현은 감옥에서 출소한 후 남편과 방송에 나와 “행복해지려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결코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상처와 아픔. 그래서 가해자가 ‘원더풀 월드’에 살아가고 있어도 결코 피해자는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그 괴리가 끝없이 분노를 야기한다.

 

‘원더풀 월드’는 그래서 선악 구분이 확실하고 선이 악을 응징함으로서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주는 그런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수현도 선율도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이를 보복했거나 하려는 가해자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사적 보복이 이뤄지는 걸 그저 시원하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대신 그래서 안타까움이 커진다. 수현과 선율이 가진 상처를 너무나 이해하고 그래서 복수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 또한 공감되지만, 그것이 서로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안타까운 두 사람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둘이 서로에게 겨누는 칼날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깨닫게 된다. 이미 사적 보복을 했고 거기에 대한 후회 또한 없다고 단언했지만 수현은 그 선택으로 선율이 겪는 아픔 또한 너무나 잘 이해한다. 선율 또한 복수를 하려 하지만 수현이 아들을 잃었던 그 상처의 깊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공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더풀 월드’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 부조리한 시스템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건 바로 죄를 짓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게 만드는 부패한 권력과 사법정의다. 김준(박혁권)이라는 정치인은 바로 그 표상처럼 그려진다. 

 

결국 수현과 선율의 분노가 향해할 할 곳은 서로가 아니라 저 부패한 권력과 사법정의라는 시스템일 수 있다. 죄를 지었다면 그만한 처벌을 받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만이 피해자에게는 더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저들만의 ‘원더풀 월드’를 만들지 않는 길이다. 특히 끊임없어 터진 사건사고들의 상처 속에서 여전히 아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들 앞에 이렇다할 진상규명이나 사죄, 처벌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만 돌아가는 세상이 줄 절망감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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