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임성한 월드의 농단

 

사실 <오로라공주>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를 비평하는 게 직업이지만 처음 몇 회를 보고는 또 다른 임성한 월드의 반복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임성한 월드에서는 끝없는 잡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임성한 월드에서 비상식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비상식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건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으레 임성한 월드는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눈치다. 눈에서 레이저가 안 나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자기 드라마에 자기 친조카를 연거푸 출연시켰다는 것은 임성한 월드의 뻔뻔한 권력적 구조를 잘 말해준다. 백옥담이라는 예명을 가진 임성한의 조카는 <아현동 마님>, <신기생뎐>에 이어 <오로라공주>까지 출연했다. 흔히들 작가와 배우의 사단을 얘기하면서 ‘패밀리’ 운운하지만 진짜 패밀리가 이렇게 계속 캐스팅 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오로라공주>에서는 중요한 배역도 아니면서 주연급 못지않은 분량을 할애 받았다고 한다.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다.

 

반대로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하차를 거듭했다고 한다. 오로라(전소민)의 오빠 역할을 연기한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를 비롯해 김정도, 송원근 등 무려 8명의 배우가 하차했다는 것. 무슨 전쟁드라마나 호러물도 아닌데 이렇게 주요배역들이 갑작스럽게 외국으로 떠나는 식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항간에는 ‘서바이벌 드라마’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드라마는 물론 작가가 구상해 내놓는 세계지만 일단 캐릭터와 관계가 주어져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나면 작가도 맘대로 해서는 안되는 세계다. 이것은 작가가 이미 캐릭터를 선보였을 때 대중들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즉 갑자기 캐릭터를 하차시키거나 심지어 죽이거나 하는 건 드라마를 통한 대중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이다. 무려 9명이나 하차시킨 임성한 작가는 그 행위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횡포를 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로라공주>에서 하차하게 된 손창민은 YTN라디오에서 “황당하다”고 하차의 소감을 전했다. 물론 임성한 작가를 콕 집어 비판한 건 아니지만 그의 진술은 하차 과정조차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어저께 밤까지 녹화를 하고 새벽에 끝났는데 그 다음날 12시쯤에 방송사의 간부가 전화를 해 '이번 회부터 안 나오게 됐다'고 하더라. '이유가 뭐냐, 명분이 뭐냐'고 물었지만 '없다, 모른다'고 하더라.”

 

출연료 문제가 아니었냐고 묻는 앵커의 질문에 손창민은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아마 모든 이번 일의 키포인트는 오로지 한 사람이다”라고 답한 후 “내가 지적을 안 해도 다 아실 거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드라마 대본 전개를 통한 하차이기 때문에 손창민 말대로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 모든 문제가 임성한 작가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한 보도매체에 의해 <오로라공주>의 미리보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임성한 작가의 요청 때문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도대체 왜 드라마의 홍보에도 도움이 되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굳이 제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관계자 측의 말로는 “미리보기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작가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미리보기는 오히려 논란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

 

사실 임성한 작가에게 중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수로 보면 분명 드라마계의 선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있는 작가가 이렇게 드라마를 제 맘대로 농단해도 과연 괜찮은 걸까. 임성한 작가의 비상식적인 일련의 행동들도 문제지만 이것을 아무런 제재나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는 방송사의 문제는 더 크다고 보인다.

 

결국 방송사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으로 그 신뢰를 유지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이토록 자신만의 세계에서 제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작가를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건 방송사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혹 이것은 임성한 월드의 권력이 방송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시청률도 결국은 시청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논란들만 쏟아져 나오는 임성한 월드에 그 누가 권력을 부여한단 말인가.


강호동 후폭풍, 예견된 결과인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강호동이 '1박2일'을 하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금 갑자기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강호동은 제작진에게 하차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이승기가 일본 진출을 앞두고 프로그램 하차설이 나오면서 유야무야되어버렸지만 강호동의 '1박2일' 하차 의지는 이미 뚜렷했다고 보여진다.

후폭풍은 너무나 크다. KBS 예능국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그럴만한 것이 KBS 예능의 핵심인 주말 예능에서 그것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해피선데이'의 맏형 프로그램인 '1박2일'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강호동이기 때문이다. 그가 빠져나간다면 이것은 '1박2일'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서 나아가 주말 예능, 아니 KBS 예능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강호동 하차의사가 가져온 후폭풍은 현재의 방송사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몇몇 스타급 MC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사실 한 명의 MC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방송사 전체가 비상이 걸리는 상황은, 과거 방송사가 소속 연예인들을 데리고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 예능계의 강호동이나 유재석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해도 이렇게 몇몇 유명 MC들에게 의존하는 형태는 방송은 물론이고 당사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강호동이 하차 이유로 밝힌 것은 '정상에 있을 때 떠나고 싶다'는 것이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무려 5년여 간을 계속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복불복에 미션 수행을 해온 그 역시 아무리 천하장사 출신이라도 체력적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은 '1박2일' 이외에도 '무릎팍도사', '스타킹', '강심장' 등 각 방송사의 대표급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좋은 방송을 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항간에는 종편행 이야기가 나온다.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이미 상당히 많은 예능 고수 PD들이 종편행을 결정했고, 초반 경쟁력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종편이나 CJ 같은 곳에서는 좀 더 획기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런칭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오래도록 고정된 포맷에 머물러 있는 것(게다가 지금 예능은 또 변화의 시기에 서 있지 않은가)은 늘 프론티어를 고집하는 강호동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상파 3사에만 계속 머무르는 것은 이미 종편으로 달라지고 있는 방송 생태계에서 강호동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

즉 강호동의 의견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갑자기 돌발적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 이미 누차 의사를 전달해왔기 때문에 절차적으로도 잘못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강호동의 하차 의사 하나가 방송사 전체를 비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이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그램 포맷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강호동, 유재석 같은 MC 의존도가 지나친 방송사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들 이외의 개그맨이나 예능인들의 발굴이 되지 않는 불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강호동, 유재석이 빠지면 앞으로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할 것인가. 이것은 강호동, 유재석 같은 유명 MC들 당사자들에게도 부담 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강호동의 하차의사 전달이 가져온 후폭풍은 이미 방송사들이 그들에게 집착할 때부터 예견됐던 것들이다. 몇몇 스타 MC들에 집중되는 현재와 같은 방송 환경은 어쩌면 승자독식구조가 가져오는 폐해를 그대로 방송계에 반복할 수 있다. 스타 MC들은 모든 걸 가져가지만 바로 그 과중함 때문에 오히려 제 가치를 떨어뜨리고, 그 그림자에 가려진 예능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기회를 잃게 되며, 방송 프로그램은 이들 몇몇 스타 MC들의 성향에 따라 비슷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상황.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강호동 후폭풍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고질적으로 스며있는 방송가의 시스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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