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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송혜교·박보검 연애담 속 긴장감이 유지된다는 건

서점에서 저 멀리 자신의 남자친구 김진혁(박보검)을 바라보는 차수현(송혜교)은 그가 보내는 미소에 미소로 화답한다. 하지만 한참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조금씩 눈물이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 차수현은 헤어지려 마음먹는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의 이 한 장면은 그리 대단한 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차수현의 눈에 조금씩 차오르는 눈물이 먹먹하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말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이 비극적인 여인의 아픈 삶의 정체가 담겨져 있어서다. 

차수현에게 김진혁의 어머니가 찾아와 눈물로 “미안하다”며 “헤어져 주세요”라고 간곡히 요청할 때 차수현의 눈에 차오르던 눈물은 그 말에 대한 서운함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이 더 컸을 게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차수현에게는 도저히 그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다가온다.

차수현은 그런 삶을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정치인 아버지 차종현(문성근)의 딸로 살았고, 태경그룹 정우석(장승조) 대표와 정략적인 이유로 결혼했으며, 이혼 후에도 태경그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 남자친구 같은 소소한 일상은 허락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차수현이 포장마차에서 그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이자 비서인 장미진(곽선영)에게 “진혁씨는 모든 게 처음”이지만 자신은 결혼도 했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고 말했을 때, 장미진이 그에게 “너도 처음이잖아. 너도 첫사랑이잖아.”라고 말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은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는 결혼도 했었지만 누굴 사랑한 적은 없었다.

차수현은 “정말 헤어지기 싫다”고 장미진에게 말하지만, 혼란스럽다. 자신에게 한 번도 허락된 적 없던 일상의 행복. 그런 그에게 다가온 김진혁이라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 하지만 자신과 가까워지면 자신이 겪었던 그 일상이 없는 삶으로 김진혁과 그 가족들까지 끌어들일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차수현으로서는 고민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는 그래서 마치 차수현과 김진혁이라는 두 사람이 만나 어느 쪽 삶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드라마 같다. 차수현이 살아왔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지워진 삶인가 아니면 김진혁이 살아왔던 그 소소한 일상의 행복으로 채워진 삶인가. 차수현의 삶이 김진혁의 삶을 덮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김진혁의 삶이 차수현으로 하여금 그 일상 없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가.

그저 차수현과 김진혁의 연애담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자친구>가 어떤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바로 그 이면에 담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갈등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미 차수현의 아버지 차종현이 “내려 놓는 삶”을 살겠다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차수현은 과연 모든 걸 내려놓고 잃었던 자신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거나 연애가 이뤄지는 것만큼 중요한 이 드라마가 엔딩에 담아야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땐뽀걸즈’, 혹독한 현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최고 시청률은 고작 3.5%(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이 2%대지만 시청률 하나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올해 KBS 드라마들을 통틀어 봐도 이 작품만큼 예쁘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땐뽀걸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실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이 동아리를 이끈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점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실제 사실을 이기는 허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 이규호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가 보듬은 댄스스포츠 동아리의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드라마가 그대로 재연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 <땐뽀걸즈>는 그 소재를 드라마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왜 거제여상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 같은 별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히 빠져 들었는가를 질문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대학을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이 아이들은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당연한 삶처럼 받아들인다. 

청춘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이 가려서 일견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스스로 접게 된 나름의 아픔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박세완)이 그렇고 모델이 꿈인 양나영(주해은), 한 때는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핑계로 꿈을 접은 이예지(신도현) 또 본래 춤에 관심이 있고 소질도 있지만 아버지 권동석(장현성)에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권승찬(장동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아내지만, 이규호 선생님(김갑수)은 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물론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유인책이지만 댄스스포츠 같은 전혀 현실에는 무익하다 싶은 일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그 순간 아픈 현실을 잠시 잊고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대회에 나가 노력을 인정받으면서 그것이 잠시 간의 판타지였을 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땐뽀걸즈>는 애초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이 대학 면접에서 왜 영화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어서요. 영화는 가짜잖아요. 현실은 진짜고. 전 사람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환상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뭐 그 환상이 가짜고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 그거를 보는 사람들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 영화만큼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순간 만큼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시은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현실에 치여 꿈꾸지 않던 자신들을 댄스스포츠라는 환상(?)을 통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규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익한 환상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행복들이 있어 그 어려운 현실들을 버텨내고 통과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작은 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낮은 시청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던 그 순간들만큼은 충분히 행복감을 주었던 드라마가 바로 <땐뽀걸즈>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현실에 꿈이 있어 비로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남자친구'가 담은 직진하는 사랑과 지켜주는 사랑

“저 돈 좀 있습니다”라며 당돌하게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차수현(송혜교)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낸 김진혁(박보검)은 현실을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 하나하나 현실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그것이 만만찮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그가 다소 엉뚱하게도 “돈 좀 있습니다”라고 말한 건, 스캔들로 포장된 관계 때문에 차수현이 처한 곤혹스런 상황에서 잠시 동안 두 사람만의 기억 속으로 그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그 말은 쿠바에서 차수현이 처음 김진혁에게 “돈 좀 있어요?”라고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니까. 맥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는 돈. 그거면 사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억. 그래서 그 순간 차수현은 만만찮은 현실 때문에 눈물이 차오르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날 수 있었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가 담아낸 이것은 김진혁의 사랑법이다. 그는 서툴고 현실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굳이 부정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차수현에게 솔직하게 자신은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차수현을 통해 그 책으로 배운 사랑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차수현 같은 존재에게 직진할 수 없었을 게다. 가진 것의 차이나 회사 내에서의 관계 같은 것들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져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 김진혁은 동화호텔의 연말 행사로 가면무도회 콘셉트의 파티를 기획하면서 거기에 차수현과 가졌던 추억을 더해 넣는다. 쿠바의 어느 뒷골목에 자리한 라틴 댄스를 추는 곳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었던 추억. 그러고 보면 가면무도회도 그 시간만큼은 공적인 얼굴을 숨기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으로 즐기라는 김진혁의 천진한 상상이 더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 곳은 동화호텔의 공적인 행사 자리지만 차수현과 김진혁은 두 사람만의 사적인 추억 속에서 만나 첫 키스를 나눈다.

김진혁의 사랑법은 그래서 흔히 말하는 현실(공적인 의미가 강한)을 살짝 벗어나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사랑이다. 무수히 많은 이름을 가진 관계들이 존재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으로 충분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김진혁은 믿는 것 같다. 그러면서 김진혁 또한 현실을 조금씩 알아간다. 속초로 발령이 난 사실이 그 현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걸 되돌리려는 차수현을 막으며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봐달라고 한다. 그는 현실을 모른 채 무모하게 이 사랑에 뛰어들었지만, 사랑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현실을 실감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간다.

김진혁이 현실을 몰라 그 순수함으로 직진하는 사랑이라면 정우석(장승조)의 사랑법은 정반대다.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정우석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차수현을 불행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고는 가짜 불륜까지 만들어 이혼을 함으로써 그를 놓아준다. 정우석의 마음을 알고 있는 그의 어머니 김화진(차화연)은 그래서 다시 아들과 차수현을 재결합시키려 하지만 정우석은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다시 차수현을 불행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우석은 이것을 ‘오빠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리는 두어야 상대방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관계 속에서 ‘지켜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며 차수현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김화진의 행동들을 정우석이 막고 있는 건 그래서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가 말했을 때 차수현은 그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만큼 정우석은 차수현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물론 차수현과 김진혁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지만, 정우석이라는 인물의 사랑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면면이 있다. 다소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사랑과 대비되는 현실의 무게가 드리워진 그의 사랑 또한 주목되는 면이 있어서다. 과연 차수현과 김진혁의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은 어떻게 될까. 이를 위해 정우석은 또 어떤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보여줄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멜로 틀 뒤집기, ‘남자친구’ 박보검과 송혜교 역할이 바뀌었다는 건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첫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진혁(박보검)을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다 보게 된 대표 차수현(송혜교)이 보고는 차를 돌린다. 그냥 지나치려다 멈춰서 경적을 울리자 깜짝 놀라 깨어난 진혁이 술에 취해 꼬인 혀로 대표를 반가워한다. 대표는 차에 진혁을 태워 데려다주는데, 술 취한 진혁은 혼자 가는데 졸릴 것 같다고 주머니에서 안주로 가져왔던 오징어를 꺼내 굳이 대표의 입에 물려주고 차에서 내린다. 혼자 차를 몰고 가던 대표는 입에 오징어를 문 채 미소를 짓는다.

평범한 시퀀스지만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의 이 장면은 익숙한 듯 낯설다. 익숙한 건 우리가 그토록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캔디와 실장님, 대표님의 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낯설기도 한 건 그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어서다. 이 드라마에서는 진혁이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면서도 밝고 건강한 캔디이고, 수현은 호텔체인의 오너로서 모든 걸 가진 듯한 특별한 삶을 살지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대표님이다. 

<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 설정만 바꿔놓은 게 아니라, 그 클리셰들이 그려내던 풍경까지 모두 바꿔놓았다. 이를 테면 신입사원들에게 환영사를 하는 자리에서 진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수현이 비서에게 신입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달라고 하고, 이를 통해 진혁의 자기소개서를 읽은 후 거기 등장하는 오래된 놀이터에 갔다가 거기서 진혁을 만나는 장면 같은 것도 우리가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이야기의 남녀를 바꿔놓은 버전이다. 

인형 뽑기를 하는 장면도 그렇고, 술 취해 진혁이 실수한 대목을 계속 물고 늘어지며 장난을 치는 수현의 모습이나, 주말에 휴게소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고 제안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 주말 데이트에 멋진 차를 끌고 나와 진혁을 태우고 가는 장면도 그렇고. 이런 세세한 대목들까지 모두 기존의 여성 신데렐라 클리셰를 뒤집고 있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늘 힘 있고 능력 있으며 심지어 지위까지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남성이 리드하고 힘은 없어도 밝고 맑고 건강한 여성캐릭터가 따르곤 하던 연애방식을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담아낸다. 

그러고 보면 <남자친구>라는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과거의 흔한 멜로드라마의 틀이었다면 ‘여자친구’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게다. 연애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지목하는 우리네 성 고정관념이 그런 제목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게 했던 시대였으니.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남자친구’라는 제목을 달고 연애의 대상으로서 남성을 지목하고 있다. 주체는 당연히 여성이 된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이 드라마를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성 역할을 바꿔놓은 대목만을 통해 이 드라마가 남성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 흔한 신데렐라의 멜로를 통한 신분상승을 담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성공한 삶이 갖는 화려함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그래서 수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이 하는 일에서의 성취와 성공이 아니다. 데드 마스크처럼 공식적인 일정 속에서 살아가다 잠시라도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일상의 틈입 속에서 비로소 수현은 잊고 있었던 듯한 웃음과 표정이 살아난다. 그 일상의 틈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진혁이다. 

그래서 진혁에게 수현이 처음 제안한 데이트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소하게 보이는 휴게소에서 라면 먹기다. 그것 하나 하기가 쉽지 않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있는 그 삶에서 수현은 탈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라면을 먹는 장면을 누군가 사진에 담고, 그것이 대서특필되면서 그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수현은 알게 된다. 심지어 그건 진혁의 일상까지 파괴시킬 수 있는 일이다. 

<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만 남자와 여자를 뒤집어 놓은 게 아니다. 그걸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도 바꿔 놓았다. 화려한 성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부유하고 힘 있는 공적 생활보다는 가난해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적인 삶을 가치로 세웠다. 이건 그래서 ‘신데렐라’ 이야기 자체도 뒤집는다. 수직상승하는 성공의 꿈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공유하려는 행복의 꿈을 담고 있어서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그래서 ‘남자친구’가 박보검과 송혜교의 멜로로 말하려는 건

캐스팅만으로 드라마가 이만한 화제가 됐다는 건 박보검과 송혜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준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는 첫 방송으로 8.7%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역대 tvN 수목극 첫 회 최고 기록을 만들었다. 

실제로 <남자친구>의 첫 회 방송은 온전히 쿠바의 이국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돋보이는 송혜교와 박보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잡아끌었다. 워낙 햇볕이 좋고 색감이 좋은 쿠바의 말레콘 비치에서 바라보는 석양 속에, 나란히 앉아 있는 송혜교와 박보검의 모습은 한 장의 화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비주얼 뒤에는 이들이 엮어갈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를 예감케 하는 포석들이 존재했다. 차수현(송혜교)이 재벌가 자제와 결혼했다 이혼한 이혼녀이고 그 후 동화호텔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대표라는 사실이 짧지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에 전제를 깔았다.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딸로 살았고, 재벌가에 입성한 며느리였다가, 이제는 이혼해 성공한 사업가로 살고 있는 차수현은 꽤 오랫동안 사적인 일상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가 쿠바에 호텔 사업을 하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김진혁(박보검)을 만나 보내게 된 1박2일 간의 일들이 굉장한 ‘모험’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엽서에 담겨진 말레콘 비치의 석양에 이끌려 무작정 홀로 길을 나섰다가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고 앞서 먹었던 수면제 기운에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진혁은 그의 어깨를 내어주었다. 

차수현이 나중에 다 돈으로 갚겠다며 김진혁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이고, 길거리에서 파는 샌들 하나를 사서 신는 것이며, 배고픔을 달래줄 한 끼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모이면 어디서든 춤을 춘다는 쿠바 사람들이 추는 살사 춤 속에 슬쩍 들어가 함께 춤을 추는 정도만 해도 그에게는 일상의 모험이 된다. 

차수현이 김진혁에게 이끌리는 건 자신이 살던 세계의 사람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김진혁은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청년이다. 차수현이 탄 차가 그가 앉아 있던 테이블을 들이받아 상처 입은 카메라를 굳이 새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하지만 거기 담겨진 추억까지 살 수는 없다며 그걸 거부하는 인물. 사람의 손때와 흔적들이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쿠바의 풍광은 그래서 김진혁이 소중히 여기는 일상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 그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도.

결국 <남자친구>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멜로를 그릴 게다. 그렇다면 그 멜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과거 신데렐라 이야기를 담던 멜로들은 왕자님에 천거되어 신분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를 담곤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오히려 거꾸로 된 상황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남자친구가 갖고 있는 일상과 소소함 속으로 화려해보이지만 실상은 황량한 성공으로 치장된 삶에 지친 차수현이 빠져드는 이야기. 

하지만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소소한 일상을 세상은 가만히 놔둘까. 이미 공적인 얼굴을 갖게 된 차수현에게 이런 일상이 허락될까. 심지어 그가 다가옴으로써 김진혁의 일상까지 파괴되어 가는 건 아닐까. 이 긴장감이 <남자친구>가 멜로를 통해 담아내려는 특별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골목식당’ 백종원, 식당 살리기 넘어 사람 살리기로

골목 상권을 살리는 걸 넘어서서 이제 그 곳 사람들까지 살린다? 홍은동 포방터시장을 찾아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 보여줬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그간 이 프로그램이 해왔던 스토리텔링방식을 보면 백종원이 찾아와 식당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그걸 끄집어내 비판한 후, 미션을 부여하면서 조금씩 솔루션을 제공해 변화해가는 식당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포방터시장에서 집중한 건 식당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막창집은 사랑꾼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장사는 부진한 상황이었고, 백종원이 주력 메뉴가 뭐냐고 물었을 때도 “주력은 없다”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그 곳의 애교 많은 아주머니는 여러 식당일을 하며 어깨 너머로 배운 요리 실력이 있었다. 백종원은 자신이 시킨 막창을 먹으며 “잘 삶아졌다”고 칭찬했고, 단 한 가지 소스 개발만 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 말해 노부부를 환하게 웃게 만들었다. 너무 기분이 좋은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볼 뽀뽀를 했을 정도로.

하지만 두 번째 찾아간 돈가스집은 어딘지 부부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언가를 물어도 잘 대꾸하지 않는 남편은 요리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홀 서빙을 맡은 아내는 손님이 와도 사근사근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뚝뚝한 아내가 남편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가게 분위기마저 싸한 느낌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백종원이 찾아간 돈가스집은 역대급의 반전을 보여줬다. 등심카츠와 치즈카츠 그리고 카레를 시킨 백종원은 그 음식들을 먹어보더니 “진심으로 일본에서 먹은 돈가스보다 더 맛있다”고 극찬했고, 심지어 “솔루션 할 필요 없다”며 이런 퀄리티에 이런 가격이라면 “돈가스 끝판왕 해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알고 보니 돈가스집의 사장님은 무려 17년 동안이나 이런 저런 음식점에서 일하며 노하우를 가진 분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그 일들이 고생스럽고 힘들어 아내는 우울증까지 앓고 있었다. 무뚝뚝하고 어두운 표정 속에는 그런 내막이 있었던 것. 아내는 남편이 그 고생을 하면서 자신이 현실적인 타협을 하자고 했을 때 고집을 꺾지 않은 걸 잘했다고 얘기해주었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백종원의 극찬 한 마디는 이 부부가 그간 겪어왔던 어려움, 심지어 우울증까지 날려버릴 듯한 힘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이 날 마지막으로 찾아간 홍탁집은 보는 이들마저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쉴 새 없이 주방에서 몸을 놀리며 일을 하는데, 아들은 전혀 일을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들은 부엌에서 식재료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무려 4년을 같이 일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어머니가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들은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 

이를 한 눈에 알아차린 백종원은 먼저 어머니와 면담을 가졌다. 몇 마디 이야기 속에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원망 또한 느껴졌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하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머니에게 백종원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눈물 안 흘리게 해드릴게요.”라는 약속을 했다.

가게를 살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아들을 살려야 하는 게 이 가게의 더 큰 숙제였다. 아들과 면담을 가지며 백종원은 조목조목 그가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지적했다. “엄마가 무슨 죄를 지어서 고생하고 우셔야 하냐”며 “당신은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백종원 앞에 아들은 고개 숙이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한 때는 중국에서 큰돈을 만지는 모종의 ‘수출’ 관련 사업을 했다는 아들은 그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가게가 잘 되고 안 되고는 단지 음식 맛 때문만은 아니다. 또 가게가 잘되는 것 자체가 사업을 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결국은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 제아무리 손님이 많이 오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가족에 문제가 있다면 결코 그것이 행복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홍은동 포방터시장편은 그래서 가게를 살리는 솔루션이라기보다는 그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솔루션을 담아내고 있다. 백종원의 극찬과 분노어린 일갈은 과연 이들과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새로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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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매력’ 항상 애쓰는 서강준과 늘 미안한 이솜의 서투른 사랑

준영(서강준)은 뛰고 또 뛴다. 강력계 형사로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뛴다. 그 범인을 빨리 잡고 영재(이솜)를 만나러가기 위해 또 뛴다. 그게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의 준영이다.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래서 범인을 잡거나, 영재가 환하게 웃을 때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 그래서 잘 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준영이다. 

하지만 영재는 준영과는 다르다. 그는 ‘잘 못하겠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되게 잘 못하겠더라. 오빠가 속상해할까 봐도 그렇고. 그게 습관이 됐나봐.”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오빠 앞에서 그는 뭔가를 잘 하려 노력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준영과 만나며 느끼게 되는 사소한 감정들을 그에게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때 드는 사소한 감정들을 준영이한테 바로 다 얘기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아마 그래도 준영이는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겠지? 아마 그러면 난 계속 더 미안했겠지.” 그래서 준영은 늘 애쓰게 되었고, 영재는 늘 미안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랑하면 할수록 더더욱 힘들게 되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투른 스물일곱 살, 사랑이 익숙하지 못한 이들의 엇나감이다. 함께 섬으로 의료봉사를 갔던 날, 두 사람은 어느 노부부의 집을 찾아가 머리를 해주고 돌아온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노부부의 따뜻한 눈길들을 보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영재와 함께 지내지 않고, 그 집에서 고쳐주겠다고 가져온 라디오에 준영은 집착한다. 뭐든 자기 앞에 있는 것들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건 그의 습관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상처받을 일이 없었을 게다. 그것이 준영이 경찰이 되고 또 강력계에서도 표창을 받는 힘이 되었을 테니. 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영재처럼 노력하지 않으려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상대방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영재가 미안해하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고스란히 준영에게도 힘겨운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제3의 매력>이 담고 있는 준영과 영재의 이별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하지만 서투르고 모자라서 생긴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 ‘노력한다는 건’ 그래서 어쩌면 양자를 모두 힘겹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재(양동근)가 사고로 장애를 가진 후 병수발을 들던 연인을 애써 “보기 싫다”며 밀어낸 건 그 ‘노력’이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힘겹게 만드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오면 헤어짐은 상대방을 위한 마지막 사랑의 행동이 된다. 

“서툴러서 아팠고 모자라서 미안했던 시간들. 고마웠고 설레었고 사랑했던 순간들. 찬바람이 불 때 바람 앞에 곧게 서 있는 나무가 되었으면. 추운 겨울엔 햇빛이 되고 더운 여름엔 그늘이 되었으면.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스물일곱이여. 안녕.”

범인을 검거한 공으로 경찰서장의 표창을 받는 날, 준영은 상을 받지 않고 대신 사직서를 낸다. 그리고 차를 몰아 영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 곳 먼발치에서 영재를 바라보다 돌아선다. 준영은 드디어 알게 됐다. 마치 상을 받기 위해 종종대며 노력해왔던 그것들이 얼마나 서투른 사랑이었는가를. 

그는 과연 더 이상 뛰고 또 뛰지 않으며 사랑할 수 있을까. 스물일곱의 서투름을 넘어서 좀더 성숙해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느 섬에서 만난 노부부의 그 편안하지만 한없이 느껴지던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잔잔하고 소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을 겪었을 스물일곱 준영의 사랑이야기가 가슴 아픈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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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외면하는데, 지상파에 쏟아지는 멜로물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는 지상파 3사 드라마 대결에서 기선을 잡았다. 첫 방 시청률 7.1%(닐슨 코리아). MBC에서 새로 시작한 <사생결단 로맨스>의 4.1%보다 앞섰고 이미 방영되고 있던 KBS <너도 인간이니?>의 5.6%도 앞질렀다. 

그런데 어쩐지 기선을 잡았다 해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는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지상파 드라마들이 이렇게 소소해졌나 싶어서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들이 모두 평범한 멜로물인데다, 그 이야기 구조도 새롭다 보기에는 너무 뻔해 보인다. 

고교시절 이제 막 좋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 버스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져 13년이나 누워 있던 우서리(신혜선). 그 버스에서 자신이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 자책하며 그 13년을 우서리를 바라보며 살아왔던 공우진(양세종). 우서리가 깨어나면서 시작되는 멜로다.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내는 큰 변화를 말하는 이 드라마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불행과 행복을 담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이유도 다소 사소한 일들로 비롯된다. 우서리가 외삼촌(이승준)의 집인 줄 알고 찾아간 집에, 공우진이 조카인 유찬(안효섭)을 돌보러 찾아왔다 만나게 되는 것. 어찌 된 일인지 외삼촌은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우서리는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건 아마도 불행한 사고 이후 모든 걸 잃어버렸던 우서리와 공우진이 다시 만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게다. 그 멜로적 구도나 ‘불행 끝에도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지만, 그것이 그다지 새롭거나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우서리와 공우진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의 멜로구도만이 있을 뿐.

이런 사정은 새로 시작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아예 제목에 달아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는 본격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추구한다. 여기도 빠지지 않는 건 독특한 캐릭터다. 호르몬에 미친 내분비내과 의사 주인아(이시영)와 승부욕의 화신 한승주(지현우)와 만나 만들어내는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

대작이 아니라도 기대작은 되어야 채널이 집중될 것인데,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너무 소소해졌다. 월화수목을 통틀어 10%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종영한 SBS <훈남정음>은 2% 대의 수목극 사상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소한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물들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지상파 멜로물에 대해 외면하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상파들은 계속 멜로물들만 세워두고 있다. 좋은 작가, 작품들이 비지상파로 빠져나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상파의 기획이 예전만 하지 못해서일까.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지상파 주중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봐야 할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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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뜯소’ 16살 농부 한태웅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건

농촌은 꽤 오래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였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됐던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는 시골에 내려가 그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벌이는 즐거운 한 때를 보여준 바 있고, MBC <무한도전>은 농사를 도전미션으로 삼아 1년 간의 장기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다. 또 KBS <청춘불패>는 예능 사상 처음으로 농촌 정착형 예능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tvN <삼시세끼>가 농촌생활의 일부를 소재로 삼은 바 있다. 

그래서 tvN이 새로 선보인 <풀 뜯어먹는 소리>가 농촌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 그리 특별하게 다가올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어딘가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한태웅이라는 이제 16살 농부가 그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미 농사경력 8년차인 한태웅은 경기도 안성에서 실제로 농사를 짓는 ‘마음대농’으로 이 프로그램이 그저 일회적인 농촌체험이나 농촌을 소재로 하는 웃음 정도에 머물지 않게 만든다. 한태웅이 매일 겪는 농촌생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니 말이다.

농부의 길이라는 남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한태웅은 그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이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느릿느릿 툭툭 던지는 말에서는 심지어 ‘연륜’마저 느껴진다. 행복에 대해 묻는 송하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는 한태웅의 말은 그것이 진심이고 또 그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듣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제 겨우 16살이지만 그 적어보이는 나이 속에 꽉 채워 넣은 농촌살이의 진정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앙기가 있어 천 평 넘는 논에 모를 심는 일도 하루에 뚝딱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농사일은 사람 손이 닿아야 하는 일이다. 이앙기가 닿지 않는 곳에 직접 손으로 모를 심어본 출연자들은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었을까를 생각한다. 태웅이네 가족이 정성껏 준비해온 새참을 먹으며 친척 할아버지는 힘든 농사일에 막걸리 한 잔이 진통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높은 게 농사일이라는 것.

하지만 진짜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 예쁘게도 심어져 있는 모를 보며 한태웅은 농사의 진짜 어려움을 말한다. 그가 짓는 논의 크기는 여섯 마지기. 약 1천2백평인데, 인건비, 비료값, 모판값 등을 따지면 1년 동안 천 평이 넘어도 5,60만원 밖에 안 남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쌀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래서 한태웅은 농사를 짓는단다. 

“그러면 점점 우리나라 쌀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농민들이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 돈을 떠나서 농사를 안지어서 풀밭도 되고 공장 같은 것도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저는 그게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것 때문에 저는 땅 한 평이라도 더 짓고 가축 한 마리라도 더 키우려는 거예요.”

한태웅의 이 진심은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특별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물론 한낮 뜨거운 땡볕을 피해 정자에서 아이스크림 내기 게임을 하는 출연자들의 한가로운 모습은 도시인들에게는 부러워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전면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푸른 산이 주는 편안함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들이다. 

하지만 그런 풍경들보다 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 한태웅이라는 한 젊은 농부의 남다른 삶의 방식이다. 심지어 007빵 게임도 모르고 한 때는 친구들과 친해지려 PC방에 가서 게임을 해보기도 했지만 어지러워서 포기했다는 이 농부가 느끼게 만드는 농촌살이의 각별함. 도시생활의 각박함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이 <풀 뜯어먹는 소리>의 농촌을 너무나 다르게 다가오게 만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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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캔 나눠 마시는 짜릿함, '거기가'가 발견한 소확행

KBS 예능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에는 자막에도 그림자를 만들어 넣는다. 사실 처음 이 그림자가 들어간 자막을 봤을 때는 그저 디자인적인 표현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사막 횡단이 본격화되면서 그것이 그저 디자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제작진도 똑같이 경험했던 그 사막의 땡볕 속에서 한 자락의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시청자들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해 보이는 ‘탐험’이고,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도 특별한 재미요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가 어딘데??>는 그 단순함 속에 담겨진 의외의 관전 포인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낮이면 심지어 5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의 기후 때문이다. 사실상 그 온도에 사막을 걷는다는 건 생존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햇볕을 최대한 피해서 걸어야 하고,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야만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건 단순해 보이는 사막 탐험의 명제지만, 그것을 실행해가는 탐험대에게는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장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진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를 해가 떠오르기 전에 주파해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강행군을 펼치지만, 언덕을 넘으면 나타날 거라 기대했던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멘붕에 빠진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은 자칫 의지 자체를 꺾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그걸 버티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진희 옆에는 계속해서 웃을 수 있게 농담을 던지는 조세호와, 어딘지 힘에 부쳐 보이지만 그래도 끝없이 허세를 부리는 배정남과 묵묵히 동생들을 챙기는 차태현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을 찍는 제작진도 어찌 보면 대장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 책임감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힘든 길을 앞장서 나가 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지진희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지진희가 이렇게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거기가 어딘데??>가 가진 독특한 재미 포인트이기도 했다. 사막 탐험의 어려운 조건들을 하나씩 뛰어넘어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흥미로움이다.

특히 사막은 작은 것들도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오는 특유한 환경일 수 있었다. 도시에서라면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나무 한 그루, 그늘 한 자락이 사막에서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왔다. 일종의 거점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그 나무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편집에서조차 자막에 그늘을 넣어준 건 그런 의미였다.

또 1등으로 들어온 멤버에게 특혜를 주겠다고 선언한 제작진에게 지진희와 차태현이 각각 요구한 시원한 맥주와 콜라는 사막에서 마시니 그 시원함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한 모금씩을 나눠 마시면서도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이 느껴졌던 것. 이른바 ‘소확행’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 있는 큰 행복이 아니라 작아도 가까이 있는 확실한 행복.

이것은 웃음에 있어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결코 웃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고, 심지어 ‘죽는다’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게 되는 그런 환경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그 곳에서 조세호와 배정남이 나누는 작은 농담들도 더 큰 웃음으로 돌아왔다. 

왜 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됐냐는 지진희의 질문에 조세호는 자신이 가진 고민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사막은 어쩌면 그 답을 전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당장 생존하기 위해 그늘을 찾는 일에 열중하면서 도시에서 가졌던 그 많은 고민들은 조금씩 지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게 따로 있을까. <거기가 어딘데??>가 사막에서 찾아낸 행복은 이런 자막으로 정리된다. ‘행복은 결핍을 통해 선명해진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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