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터 시청자와? <무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사실 MBC <무한도전> ‘특별기획전은 사실 제작진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의 방송 아이템으로 만든 것이다. 즉 본래 기획 작업은 방송에는 나올 이유가 없다. 사전 기획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질 뿐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것을 한 회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여줬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과정조차 프로그램화한다는 것. 이건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해야 하는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간 갖가지 도전들을 해왔기 때문에 방송을 스스로 기획하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 던진 듯한 기획들이 의외로 신선하다. 하하와 광희가 낸 바보전쟁은 또 바보 아이템이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른바 바보 어벤저스를 꾸린다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다.

 

지난 식스맨의 바보 캐릭터 버전 혹은 못친소의 바보 버전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바보라는 소재가 마음을 잡아끈다. 그건 단지 웃기기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속으론 울면서도 겉으론 웃고 있는 광대들의 초상이 겹쳐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큰 웃음 끝에 의외로 짠한 면까지를 발견해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전원일기>를 리메이크하자는 박명수와 정준하의 토요일 토요일은 드라마다<토토가>의 연장선 위에서 대박 아이템의 기미가 보인다. 물론 <무한도전> 멤버들만의 드라마 도전이라면 이미 예전에 한 적이 있고 그리 신선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원일기>의 출연자였던 최불암이나 김혜자, 김수미 같은 배우들이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만드는 리메이크라면 말이 달라진다.

 

무려 22년간 방영되었던 <전원일기>. 세대를 걸쳐 있는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라면 그 도전자체가 하나의 향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도전이 그저 향수나 추억거리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사라지고 있는 농촌드라마에 대한 의미 있는 가치부여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은 나아가 도시에 비해 소외되어 있는 농촌에 대한 재조명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무한도전> 특유의 몸 개그가 섞인다면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그 발상이 신선하다. 사실 몰래 카메라는 말 그대로 몰래찍는 것이다. 그러니 예고제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단어가 묘한 조합을 이루는 건 이렇게 예고함에도 불구하고 찍혀진 몰래 카메라에 의외의 진짜 모습들이 포착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게다가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사실상 지금 현재의 우리들이 매일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 몰래 카메라는 말 그대로 누가 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서든 누군가 우리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그걸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몰래 카메라의 현재화되고 진화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기획 단계부터 그것을 프로그램화하고 제작진이 기획하는 게 아니라 출연자들이 그걸 직접 기획하는 식으로 장기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내겠다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론 가장 큰 것은 오래도록 함께 해와 <무한도전>을 가장 잘 아는 멤버들이 사실상 제작진이나 다름없는 발상들을 가장 잘 낸다는 것이고, 또 이에 대한 판단도 오래도록 함께 해온 시청자들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성패에 대한 부담감 없이 툭툭 아이디어를 마구 던질 수 있는 그런 <무한도전>만의 공기가 아닐까. 성공과 실패에 대해 물은 필자의 질문에 김태호 PD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성공하면 그걸로 마무리된 것이고 실패하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죠.” 즉 모든 아이템들을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당장의 실패도 궁극의 성공을 향한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특별기획전의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큰 부담감 없이 툭툭 나온 것치고는 모두 대박의 느낌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독특한 <무한도전>만의 과정 지향적 제작방식이 만들어낸 것일 게다. 결과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직된 우리 사회를 떠올려본다면 이들이 하고 있는 이 유연한 작업의 방식들을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리텔' 김영만, 조용히 고개 드는 백종원 대항마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확실히 미래의 콘텐츠 지형도를 상당부분 앞당겨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로 순위를 매기지만 그렇다고 그 순위가 프로그램을 수직적인 체계로 만드는 건 아니다. 여러 개의 분할 화면들이 각각의 출연자들을 출연시켜 저마다의 방송 재미를 동시간대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콘텐츠들은 항상 수평적이다. 거기에는 쿡방도 있고 마술쇼도 있으며 노래방(?)도 있고 종이접기처럼 향수를 건드리는 취향저격의 방도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백종원은 물론 신드롬이다. 그러니 그를 다른 평민들과 비교대상에 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백종원의 분량을 다른 출연자들의 분량보다 월등하게 많이 채워 넣는 꼼수를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분량은 훨씬 줄어든 듯 하고, 대신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방송들에 더 무게중심이 이동한 느낌마저 준다.

 

이은결은 그 첫 출연에 놀라운 밀도의 마술쇼를 보여줬다. 마술쇼가 갖는 그 신기한 스펙터클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이어지고 그 위에 이은결 특유의 유머까지 곁들여지면서 단박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가 기다란 젓가락을 코에 집어넣는 마술을 가르쳐준다며 마술의 기술보다는 연기를 선보인 사실은 우습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술의 기본이 바로 그 연기에서 나온다는 걸 알려주는 정보이기도 했다.

 

기미작가와 대적할만한 이은결과 함께 하는 초딩작가의 등장은 이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 공식 중 하나로 굳어지고 있는 중이다. 초딩작가는 머리만 뚝 떼낸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머리 돌리기 기술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끌었다. 초딩작가에 이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제작진은 모르모트 PD. 예정화와 커플 스트레칭을 하며 주목됐던 이 PD는 솔지와의 노래방 레슨을 통해 확실한 캐릭터를 세웠다.

 

고음 불가인 모르모트 PD의 배를 솔지가 척척 만지고 또 그녀 또한 자기 배를 허용(?)하며 발성연습을 시키는 모습이나 고음을 지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자세가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르모트 PD의 존재감은 물론이고 솔지가 하는 개인방송의 가능성도 엿보게 만들었다. 그간 걸 그룹 아이돌들이 주로 춤을 선보이거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였다면 솔지는 확실한 콘텐츠를 들고 온 것. 그녀가 모르모트 PD와 펌핑 대결하는 장면 역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시청자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이 그 백종원 대항마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1988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강탈했던 그 인물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추억과 향수어린 취향을 저격했다. “친구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하나만으로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 그는 종이접기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콘텐츠와 특유의 소통력에 추억까지 장착한 강력한 인물로 자리했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에 대한 주목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지상파라는 틀이 바로 그 보편적이고 넓은 시청층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군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성격이 짙다. 도대체 아이들 프로그램을 빼놓고 어디서 종이접기 아저씨가 이토록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리틀에 걸맞는 작은 취향들을 슬쩍 끄집어내 보편적 틀로 소구할 수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향후 우리네 예능계에 파급할 변화의 징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백종원이라는 예능의 기대주를 끄집어낸 것처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그래서 더 많은 새로운 기대주들이 등장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세상은 넓고 숨은 고수들은 넘쳐난다. 다만 지상파가 그 거대한 틀에만 집착하면서 그 고수들을 잘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그 틀을 작게(리틀)하는 대신 더 다양하게 꾸려 보여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하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확실히 갖춰진 셈이다



아이유로 선 공개된 서태지 소격동’, 그 반응은?

 

서태지의 소격동프로젝트가 아이유의 목소리로 선 공개됐다.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계속 이슈가 됐던 서태지인지라,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디 노래는 얼마나 괜찮은지 들어보자는 조금은 뒤틀린 심사에, 그래도 서태지니 기대된다는 기대감이 얹어져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뉜다.

 

'소격동 프로젝트(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그렇다면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어떨까. 먼저 늘 새로운 장르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줘 왔던 서태지라는 존재감만큼의 특별한 새로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조용히 읊조리듯 부르는 발라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팝에서는 이미 여러 가수들에 의해 시도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인 것을 떠나서 음악 자체로만 들어보면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담고 있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서태지가 예전에 불렀던 발라드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향수와 추억이 만져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묻혀진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트렌디하고 세련된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유가 먼저 소격동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7,80년대의 음악을 불러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기 식으로 잘 풀어내는 아이유가 아닌가. 아이유가 부르는 소격동은 그래서 마치 이미 예전에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이유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는 심지어 일렉트로닉이 가진 차가움마저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부조화는 그래서 소격동이라는 곡이 가진 이중적인 특징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그 이중적인 특징이란 가벼운 발라드 감성처럼 느껴지면서도 소격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대적 정조가 주는 무거운 비감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온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이 곡의 가사를 거꾸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즉 앞에서부터 들으면 마치 연인이 옛 추억을 되밟는 듯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지만, 뒤에서부터 가사를 되짚어보면 과거 소격동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대적 정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음악적 감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되돌아보는 과거란 심지어 시대적 아픔마저도 하나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영화 <써니>에서 시위대가 광장에서 전경들과 부딪치는 80년대의 최루탄 뽀얀 풍경 위에 조이(Joy)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가 흐를 수 있는 것처럼.

 

소격동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것이 과거 서태지가 해왔던 파격적인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듣기 좋으면서도 정서를 건드리는 꽤 괜찮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잘못된 홍보 마케팅으로 신곡에 대한 괜한 호들갑이 만들어낸 논란 같은 것이 없었다면, 노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역시 서태지라는 소리를 들을 법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괜한 예능 단독 출연 사실로 만들어진 서태지에 대한 논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아직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과연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명량>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처럼, 서태지는 과연 시끄러운 논란마저 긍정적인 화제로 바꿔낼 수 있을까. 시선은 이제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에 집중되고 있다.

 

막장의 시대를 그린 '김탁구'와 '자이언트', 막장이 아닌 이유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가난과 비뚤어진 욕망들이 꿈틀대던 막장의 시대는 오히려 극적인 상황을 요하는 드라마로서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빵 한 조각을 놓고 가족을 생각하는 눈물겨운 가족애가 있고, 살기 위해 길바닥에서 뭐든 해야 했던 그 처절함이 있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여전한 신분의 차이가 주는 강력한 계급의식이 있다. '자이언트'와 '제빵왕 김탁구'는 그 막장의 시대를 추억하는 드라마다.

막장의 시대를 추억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막장인 것은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초반 '하녀' 컨셉트의 치정극처럼 시작했다. 거성가의 회장인 구일중(전광렬)이 보모이자 간호사인 김미순(전미선)과 하룻밤의 인연으로 김탁구(윤시윤)를 낳고, 반발하듯 구일중의 아내인 서인숙(전인화)이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 마준(주원)을 구일중의 아이처럼 숨기며 키운다. 거기에 한승재가 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김탁구와 김미순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파에 치정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막장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은 그 속도감 때문이다. 이런 신파적인 요소나 치정극적인 요소들을 이 드라마는 하나의 자극적인 요소로 끄집어냈다가 재빠르게 정리해버린다. 김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면 출생의 비밀 코드로 넘어갈 텐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이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야기는 김탁구와 마준을 전면에 세운 대결구도의 드라마로 흘러간다. 선악구도는 아니지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행복을 묻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실로 건전하다. 막장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의 시대의 이야기를 가족사적인 틀에서 풀어냈다면, '자이언트'는 좀 더 시대적인 틀에서 이 시대를 다루고 있다. 7,80년대라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그 군사정권 시절의 무법천지는, 이 드라마를 시대의 모험극으로 만들어낸다. 뭐 하나 상식적이지 않은 막장의 시대 위에서 가족애와 인간애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드라마는 묻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조필연(정보석)이 당대 군부시절의 사생아를 대변한다면, 맨 주먹으로 성공의 길을 열어내는 황태섭(이덕화)은 당대 사업가의 비뚤어진 초상을 대변한다.

그 시대 속에서 이강모(여진구)의 가족은 풍지박산이 난다.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의 붕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형과 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 불행한 강모의 가족사는 이 막장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을 표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뿔뿔이 흩어놓은 가족이 다시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 가족으로 뭉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태는 시대극이고 그 속에 강력한 가족극이 숨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이언트'는 시대극이면서도 지극히 사극이 갖는 극적 재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를 그저 국책성 드라마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대결구도의 양상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강모의 성장담에 집중하는 만큼,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조필연의 성장담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가 모두 '눈물 젖은 빵'의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아마도 그 막장의 시대가 가진 극적인 요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하게 되는 그 시대의 공기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로 들어가면 상황은 막장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행복을 말해주는가 이 드라마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막장의 시대를 다루는 '제빵왕 김탁구'와 '자이언트'가 막장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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