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중심으로유턴 '사임당', 제작진의 안간힘 통할까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는 그 시작이 뒤틀어졌다. 그건 이미 중국과의 동시방영을 목표로 해서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제 시기에 방영되지 못한 것이 그 첫 번째다. 이러는 사이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는 설정은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고, 신인 배우 박혜수는 <사임당>을 찍을 당시만 해도 참신한 신인이었지만, <내성적인 보스> 등에 먼저 출연하면서(그것도 주연급으로) 왜 역량과 달리 여기저기서 등장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만들었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게다가 <사임당>은 제작발표회에서 크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은 박은령 작가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블랙리스트’에 오를 이야기라는 발언과 ‘타임리프’에 대한 발언이 그것이다. 블랙리스트 발언은 <사임당>이 갖고 있는 편견, 즉 ‘현모양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생각에 대해 그게 아니고 보다 도발적인 행보를 보일 ‘워킹맘’이라는 걸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러나 이렇게 작가가 나서서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결코 좋게 비춰질 수가 없었다. 

또한 ‘타임리프’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것도 문제로 지목되었다. 그것은 <사임당>이 타임리프 드라마라는 시각을 덧씌웠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임당>은 타임리프 드라마가 아니다. 타임리프라면 과거에서 미래로 혹은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뛰어넘어 인물이 활약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하지만 <사임당>은 현재의 서지윤(이영애)이라는 인물이 사임당의 일기를 발견해 읽어나가는 ‘액자구조’에 더 가깝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는 평행우주 설정이 들어가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이라 거의 무시하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다. 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 굳이 타임리프가 거론된 데다 첫 회부터 현대극으로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사임당>은 사극이 아닌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타임리프 장르처럼 인식되었다. 이 부분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금 연령대가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사임당이라는 소재가 친숙한 나이든 시청자들은 사극을 기대했다가 현대극이 나오는 걸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제작사 측은 부랴부랴 100% 완성된 드라마지만 편집을 통해 이처럼 뒤틀어진 부분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현대극의 서지윤의 이야기가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본래 하려고 했던 사극을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극에서는 사임당의 어린 시절 이겸(양세종)과의 만남과 쓰라린 이별이 그려졌고, 이겸을 위해서 또 집안을 위해서 원치 않는 혼사를 치르는 사임당의 이야기가 보여졌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 셋을 둔 사임당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강릉 오죽헌에서 한양으로 거처를 옮긴 사임당은 무능한 남편 때문에 허름한 집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아이들을 챙기게 되었고 그 와중에 다시 성장한 이겸(송승헌)을 만나 그림으로 마음을 교류하는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사실 최근의 드라마들의 전개 속도나 이야기가 가진 극적 상황들과 비교해보면 <사임당>의 이야기는 굉장히 차분한 편이다. 예를 들어 현모양처는 아니고 워킹맘이라고 하더라도 사임당이 키워낸 율곡 이이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가는 양상을 보면 너무 느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임당이 키우는 율곡과 대결구도를 이룰 휘음당 최씨(오윤아)가 자식을 키우는 교육방식은 지금 봐도 흥미로울 수 있는 대목이다. 중부학당이라는 기득권들의 교육은 마치 지금의 강남 8학군의 치맛바람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또한 사임당과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 아픔에 세월을 낭비해온 이겸이 그녀의 일갈에 그 사랑의 아픔을 그림이라는 예술로 승화해가는 과정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과거 첫사랑의 증표처럼 되었던 비익조(눈과 날개가 하나뿐이라 암수가 만나야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 인장이 비익당이라는 예술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귀천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승화되는 설정이 그렇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은 박정희 시절 산업일꾼으로서 남성들이 개발에 뛰어들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성들을 ‘현모양처’라는 틀 안에 가둬두려는 의도로 상당부분 왜곡되어진 인물이다. 당시 고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를 사임당과 동일시하려는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현재의 여성들에게 ‘사임당’은 문제적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를 그저 그 ‘현모양처’라는 과거 가부장적 사회를 정당화하던 왜곡된 이미지로 가둬둘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다시금 본 모습이었던 여권을 당당히 드러내던 인물로 재해석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결국 <사임당>이라는 드라마는 그 이미지에 있어서도 상당부분 뒤틀어진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임당을 고 육영수 여사에 이어 현 박근혜 정부를 호도하기 위해 드라마로 소환해왔다는 시각이 만들어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사임당>은 그 정반대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까지 호도되어온 그 이미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것. 

이처럼 <사임당>은 쉽지 않은 길을 걷는 드라마이면서(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초반에 문제를 더 뒤틀어지게 만드는 잘못된 선택들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사임당>의 이야기가 굳이 현대와 과거를 뒤섞지 않고 그저 사극으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뒤늦게라도 제 길을 찾아가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한번 엇나간 길을 되돌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타임리프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더 껴안아야 하는 까닭

이제 타임리프가 없으면 어딘지 심심하다? 아니 너무 타임리프가 많이 등장해 식상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보는 취향에 따라 최근 쏟아져 나오는 타임리프 설정에 대한 호불호는 나눠질 것이다. 종영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시대에서 이어진 인연이 현재로까지 이어졌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무장 김신(공유)이 도깨비로 부활해 무려 7백여 년을 산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또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들은 올해도 계속 나올 전망이다. 3일 첫 방송되는 <내일 그대와>는 지하철을 매개로 하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 되어 있다. 오는 3월 방송 예정인 <터널>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에서 현재로 온 아재 형사의 新문물 표류 수사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훨씬 이전부터 타임리프라는 판타지는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다뤄진 바 있고, <시그널> 같은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경우에는 죽지 않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타임리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폭넓은 시간대를 다루는 설정으로 인해 사극과 현대극은 이제 완전히 구별되는 장르가 아닌 게 되었다. 

이러한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의 혼재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이 설정이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의> 같은 고려시대의 최영 장군이 현재를 넘나들며 여의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하는 드라마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 조선시대와 현재의 전생과 이생을 뛰어넘는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스토리적으로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른바 순환우주의 세계관을 끌어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임당> 역시 아직까지 그 성공을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시그널>이나 고려시대의 전생과 현재의 이생을 도깨비와 도깨비신부, 저승사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대중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똑같은 타임리프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이런 성패를 가르게 된 것일까. 

흔히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설정은 그 자체의 흥미로움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설정은 그 허구를 이어주는 강력한 현실적인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전락할 위험을 지닌다. 현재에서 갑자기 과거로 소환됐다면 그런 판타지가 왜 필요한가를 그 작품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그널>의 판타지가 성공했던 건 무전기 설정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미제사건을 해결하고픈 강렬한 현실적 열망이 그 동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은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에 대한 현실적 근거를 자세히 넣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판타지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하려는 현실적인 정서나 갈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도깨비>가 성공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심지어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통해 실제 하려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사랑과 기억이 있다면 죽음은 그저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영생한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이야기해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의 힘겨운 현실상황에 처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설정이 건드리는 현실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 타임리프는 그저 그림을 멋지게 만들기 위함이거나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자유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그것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그 드라마의 타임리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박보검, 사극도 현대극도 심각함도 코믹도 멜로도 되네

 

확실히 박보검은 준비된 연기자다. 이것은 이미 tvN <응답하라1988>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가 연기했던 최택이라는 천재기사의 캐릭터는 청춘 특유의 밝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며 바둑이라는 승부의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물의 날카로움과 어두움도 갖고 있었다. 어눌한 듯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의 면면까지. 한 캐릭터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의 새로운 작품,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박보검의 연기는 확실히 출중하다. 물론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한 사극이지만, 사극 어투는 연기자들도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박보검이 연기한 왕세자 이영이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사극이 갖는 특유의 어투들을 잘 소화해냈고, 그러면서도 그걸 살짝 무너뜨림으로써 캐릭터의 코믹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줬다. 주상이 시찰하러 오자 술술 고전들을 외워보였지만 바람이 미리 적어둔 답변들을 날려버림으로써 그 진지한 척 했던 인물의 허당스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던 것.

 

물론 이영의 이런 허당기는 그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정의 실세로서 권력을 틀어 쥔 영의정 김헌(천호진)은 향후 이영과 대결구도를 이룰 인물이다. 학문을 게을리 하며 어딘지 왕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영이 사실은 허허실실하고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점은 <응답하라1988>에서의 최택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최택이 진지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뒤에 덕선(혜리)에 대한 사랑을 숨기고 있었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허허실실 유쾌하고 웃는 얼굴 뒤에 조정을 걱정하는 진지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하지만 역시 박보검의 연기가 빛나는 건 뭇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멜로 연기다. 이미 첫 회부터 남자여자로 등장한 홍라온(김유정)과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이영은 이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사극의 주요 색채를 멜로로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궁에까지 들어온 홍라온은 향후 이영과 다시 만나 조정을 농단하는 자들과 대립하며 사랑을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 자칭 연애 상담사인 홍라온이 정작 자신이 이영에게 빠져드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응팔>의 저주라고 불리는 건 이 드라마에서 배출된 연기자들이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쩐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데서 나온 이야기다. <딴따라>에 출연했던 혜리가 그렇고, <운빨로맨스>에 출연했던 류준열이 그랬다. 그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고아라, 손호준, 유연석이 모두 새로운 드라마에 투입되었지만 별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박보검만은 이 <응팔>의 저주에서 예외가 될 듯싶다. 그것은 박보검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온전히 준비된 연기자로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갈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대극은 물론이고 사극도 되고, 심각함과 코믹 나아가 멜로도 되는 연기의 면면을 박보검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몬스터> 시청률 급상승, 이기광이 만들어낸 기대감

 

MBC 월화드라마 <몬스터>에서 이기광은 단 2회만 출연했다. 그리고 그의 성인역할로서 강지환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단 2회 출연이고 이미 성인 역할로 교체되었다고 해도 이기광이 이 드라마에 만들어낸 기대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3회에 <몬스터>가 시청률 9.5%(닐슨 코리아)로 급상승하며 SBS <대박>(11.6%)KBS <동네변호사 조들호>(10.9%)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던 건 이기광의 공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몬스터(사진출처:MBC)'

장영철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몬스터> 역시 사극 같은 스토리 구조들을 그 바탕으로 깔고 있다. 현대극이지만 어찌 보면 사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도도그룹이 일종의 궁궐이라면 그 총수인 도충(박영규)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역할이고 그의 아들인 안하무인 도광우(진태현)와 첩실 소생인 도건우(박기웅)가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극 속 궁중 권력투쟁의 구도다. 여기에 가신들로 들어가 있는 야심가 변일재(정보석)나 문태광(정웅인) 같은 인물들의 대결구도도 사극의 그것처럼 흥미롭다.

 

여기에 화평단이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무협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MK2 변종바이러스라는 요소는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지만 그로 인해 힘을 얻게 되는 기보 같은 역할을 갖고 있다. 국철(이기광)이 변종바이러스의 유일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바닥에 떨어져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후에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화평단의 옥채령(이엘)이 그의 면역혈청을 사는 대가로 그를 부활시키는 것. 물론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청력이 좋아지는 이야기 역시 무협적인 요소다.

 

<몬스터>는 현대극이지만 조금은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다. 시력을 잃은 채 청력만으로 교도소에서 자신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인물에게 복수하고 탈출하는 이야기나,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복수를 꿈꾸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전형적인 무협지 이야기다. 3회에 강기탄(강지환)으로 이름을 바꿔 돌아온 국철이 도도그룹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연수를 받는 모습 또한 그렇다. 그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만화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인데다가 그 결말도 대체로 정해져 있는 뻔한 복수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낸 건 바로 이제 몇 차례 연기 도전을 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기광의 연기 몰입이 좋았기 때문이다. 번듯이 잘 살아가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과정을 이기광은 절절하게 연기해냈다.

 

특히 결코 쉽지 않은 시력을 잃은 국철이라는 캐릭터를 이기광은 잘 소화해냈다. 시력을 잃고 절망하면서도 차정은(이열음)에게 살짝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는 그 연기에 섬세함마저 느껴졌다. 이기광이 만들어낸 이런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지환으로 그 힘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힘을 강지환이 얼마나 더 살려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이기광이 그 밑바탕이 되는 판만은 확실하게 깔아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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