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아이즈> 용두사미가 드러낸 구혜선의 한계

 

마치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다. <엔젤아이즈>의 구혜선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드라마 초반부에만 해도 <엔젤아이즈>에서 수완 역할을 하는 구혜선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그것은 지금껏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을 불러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동주(이상윤)가 다시 돌아와 만나는 장면에서 수완이 흘린 눈물은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와 닿았다.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러한 호평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서서히 꺾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종반으로 와서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구혜선의 연기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심지어 표정 연기가 마네킹 같다는 얘기에서부터, <엔젤아이즈>가 재밌었던 것은 초반 아역으로 나왔던 강하늘과 남지현 때뿐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엇이 같은 작품의 같은 캐릭터와 연기자에 대해 이런 극과 극의 반응을 만든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설득력이 없고 관성적으로 흘러간 <엔젤아이즈>의 스토리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초반에 <겨울연가>를 떠올리게 하는 절절한 멜로가 시선을 집중시킨 데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유발해냈다.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과 119 구조대원이라는 직업이 만나 이루는 긴박한 상황이 향후 이야기 전개에서 더 흥미진진한 사건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중반을 지나오면서 이야기는 수완과 동주의 지지부진한 사랑과 그것을 반대하는 수완의 아빠 재범(정진영)의 통상적인 멜로 구도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동주의 어머니를 누가 죽였는가 하는 미스테리도 상식적인 전개 속에 긴장감이 사라져버렸다. 재범이 죽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지운(김지석)의 모친인 병원 이사장 오영지(정애리)의 짓이었고 또 알고 보니 지운이 동주 어머니의 뺑소니범이라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지만 그것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결국 지운이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동주의 어머니를 죽였다 거짓 자백을 하고, 그 때 오영지가 나타나 사실은 자신이 그랬다는 걸 밝히는 과정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런 느낌이 강했고, 재범이 동주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수완이 다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또 그 오해가 풀린 후 다시 앞을 보게 되는 이야기도 그다지 극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야기가 너무 개연성 없는 인위적인 전개로 흘러가거나 혹은 누구나 쉽게 예상하는 상식적인 진행으로 흘러간 것에서 생겨난 결과다.

 

이렇게 되니 드라마가 미스테리와 멜로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미스테리가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고 멜로가 그 달달함과 절절함으로 연결될 때 두 장르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엔젤아이즈>는 미스테리든 멜로든 그 양자가 각각 따로 놀면서 지리멸렬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완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까. 수완은 시력을 잃고 수동적인 캐릭터에 머물더니 다시 시력을 되찾고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전락했다.

 

구혜선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혹평으로 이어진 것은 이러한 드라마 대본이 가진 부실과 그 캐릭터의 흔들림이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구혜선의 연기력이 출중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캐릭터에 따라 호평과 혹평을 오가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구혜선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한계다. 물론 캐릭터는 좋은 연기를 만들어내는 전제조건이지만 구혜선은 그 캐릭터의 힘에 여전히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엔젤아이즈>는 소재적으로 대단히 아까운 작품이다. 어느 순간 배경으로 전락되어버린 소방대원들의 이야기가 그렇고, 좀 더 절절하게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 수완과 동주의 사랑이야기도 아쉬움이 남는다. 각각으로 흩어져버린 소재들이 한데 얽혀들 수 있는 좀 더 치밀한 스토리가 구성되고 인물에 대한 좀 더 깊은 탐구가 있었다면 꽤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진범이 밝혀지고 수완이 눈을 뜬 상황으로 이미 드라마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다음 회는 이 드라마의 부실한 구성과 지지부진함을 잘 말해준다. 어쩌다 이런 용두사미에 이르렀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12>의 여행, 무엇이 달라진 걸까

 

과거 <12> 시즌2는 복불복 게임만을 반복하는 것 때문에 줄곧 비판을 받아왔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결국 여행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즌3는 복불복 게임이 아닌 여행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1박2일(사진출처:KBS)'

여행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2> 시즌3에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여전히 복불복 게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게임만 있다 비판받던 것들이 시즌3에서 반복되는 복불복 게임에서는 사뭇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커녕 오히려 호평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일단 복불복 게임의 양상 자체가 달라졌다. 유호진 PD가 전면에 나서면서 새롭게 투입된 멤버들로 재구성된 출연진들과 흥미로운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첫 복불복 게임으로 땅을 파고 물을 채우고 얼음 채운 물에 등목을 시키는 등 이른바 야생5덕 테스트로 유호진 PD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모가 드러나면서, 여기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김주혁이나 놀라운 임기웅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정준영, 특유의 현실 멘트로 큰 웃음을 주는 데프콘, 그리고 역시 개그의 달인답게 놀라운 리액션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준호가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

 

이러니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캐릭터 하나하나의 리액션이 모두 쓸 만한 방송 분량으로 나오게 된 셈이다. 여기에 유호진 PD나 막내 작가인 슬기 작가까지 캐릭터가 생기다 보니 관계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더 풍부해졌다. 슬기 작가를 놓고 출연자들이 서로 그녀와 파트너가 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나,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그간 <12>에서 빠져 있었던 알콩달콩한 스토리라인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복불복 게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게임을 누가 어떤 심리 상태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이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각 혹은 두근두근한 관계를 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게임의 성패가 아니라 그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그것은 향후에도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스텝까지도 캐릭터로 만드는 열정적인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그 재미에 대한 제작진의 진정성을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복불복 게임의 이런 다른 접근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복불복 게임만 있다 비판받았을 때 그 여행이란 도대체 뭘까. 그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더 소개하는 것일까. 멋진 풍광을 찍어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을 체험해보는 것일까. 사실 이런 정보들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인터넷만 열면 누구나 쉽게 얻어갈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아닌가.

 

유호진 PD<12>의 새 메가폰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를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유호진 PD나영석 PD와 자신은 다르다며 자신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여행의 본질이란 뭘까. 그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그 때 그 때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감성이나 체험을 말한다.

 

즉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막연히 느끼는 설렘이나, 어느 비오는 날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섬 마을 외딴 집 처마 밑에서 느끼는 처연한 느낌, 화창한 봄날 어디든 떠나고 싶어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숨 막힐 듯 흐드러진 꽃들을 마주할 때의 그 정서, 혹은 여행 중 아주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게임을 하다가 하루를 꼴딱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여행지와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감흥은 이렇게 다르다.

 

현재 <12>이 복불복 게임만 하는 것 같아도 거기에는 이들의 여행이 만들어가는 독특한 감흥과 정서가 깔려 있다. 게임을 해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대립이 그 감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여행이 주는 수많은 감흥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캐릭터가 확고해지고 나면 더 많은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지금 복불복 게임만 해도 호평이 쏟아지는 <12>의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어>, 복수극과 멜로 사이에서 길 잃었나

 

박찬홍 감독에 김지우 작가. 드라마를 좀 봤다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름은 각별할 것이다. <부활>과 <마왕>이라는 이들의 전작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모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 보였던 꽉 짜인 스토리 전개를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상어(사진출처:KBS)'

<상어>는 이들의 아우라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 전부터 김남길과 손예진의 합류로 기대감을 한껏 모았던 것도 전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그것은 전작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마니아 드라마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안 나와도 호평은 받는.

 

하지만 <상어>가 과연 마니아 드라마일까. 아마도 1,2년 전만 해도 그런 호칭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추적자> 같은 작품이 복수극과 사회극의 접점으로써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싸인> 같은 작품 역시 형사물이나 스릴러는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뒤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이들 작품과 비교해 과연 웰 메이드라 말할 수 있을까.

 

<상어>의 이야기 구조는 <추적자>와 유사하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렇고,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다. <상어>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이 진실을 위해 과거를 파헤치려는 검사 며느리 해우(손예진)에게 “묻어둬. 과거란 들출 때만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즉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근대사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뿌리 깊은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야호텔그룹 회장인 조상득(이정길)은 그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수(김남길)와 가족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조상득의 손녀 딸인 해우는 조상득의 과거사와 연관된 오현식의 아들 준영(하석진)과 결혼함으로써 복잡한 가족 내의 숨겨진 갈등이 생겨난다. 기성세대들은 과거사를 덮으려하고 이수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의 친구(이자 여전히 연인)들은 그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한다.

 

그리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드라마의 대중적인 코드들에 더 충실해졌다. 이수가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복수극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몰라보는 이수와 해우 사이의 안타까운 멜로나, 이수와 준영 사이의 우정 또는 이수와 관계된 과거 인물들(동생, 친구 등)과의 만남 등에서 머뭇대고 있는 건 그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퀀스들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의 성공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어>의 연출력은 ‘웰 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 이를 연기하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호연 또한 볼만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어딘지 너무 지지부진하게 여겨진다. 이수의 말 한 마디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해우로 하여금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를 뒤흔드는 시퀀스들은 너무 반복되면서 지루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물론 과거의 불편한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어>는 멜로와 복수극이 얽혀있는 드라마다. 복수극이 드라마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면 멜로는 감정을 덧붙인다. 이 두 가지가 잘 엮어진다면 그 힘은 의외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어>는 멜로의 늪에 빠져 복수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파헤쳐야할 검사 해우의 혼돈과 방황에 드라마가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수의 복수극은 물론 여타의 복수극과는 다르다. 그것은 해우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에 얽혀 있는 불편한 과거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우를 사랑하는 이수 역시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진실을 그녀 앞에 내놓으면서도 “도망치라!”고 분열되는 것. 이것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비장미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드라마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좋은 설정마저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이것은 이수가 처한, 진실을 밝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해우는 상어 조각을 만들어 이수에게 주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레도 만들어 줬어. 언제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려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수에 대한 해우의 사랑을 담고 있다. <상어>가 더 속도감이 있어지려면 안타까워도 해우가 달려 하는 부레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상어처럼.

성숙해진 언니 이효리는 왜 드센 언니가 됐나

 

5집을 들고 돌아온 이효리에 대한 호평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5집에는 지난 앨범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솔한 삶이 고스란히 손때처럼 묻어났기 때문이다. 트렌드 세터나 섹시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했지만 여기에 조금은 편안해진 스토리텔러 같은 모습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타이틀곡인 ‘Bad girls’도 좋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미스코리아’나 'Holly Jolly Bus', 'Special ' 같은 곡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갖고 나온 이효리에 대해 쏟아지던 호평은 단 몇 주만에 혹평으로 바뀌었다. 음악방송 출연을 2주만 하고 휴식기에 들어간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쏟아졌다. 이효리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여기에 이효리 측근이라는 사람의 쓸데없는 설명은 불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되었다.

 

한 매체는 이효리 측근의 얘기라며 음악방송 중단의 이유에 대해 “요즘 가요계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고, 음악 방송의 경우 아이돌 팬층이 대다수”라며 “이효리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부분과 다소 맞지 않고 고충이 있어 우선적으로 중단하게 됐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액면 그대로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의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 중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따라서 이효리 같은 아이돌을 벗어난(혹은 벗어나려는) 가수들에게는 어색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개념 있는 행보’라고도 볼 수 있는 이효리의 음악방송 중단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받았다. 이유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소비되면서 생긴 그녀의 왜곡된 이미지 때문이다. 똑같은 모습도 너무 많이 보이게 되면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이효리라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 것은 시청자들로서는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도 이효리, 저기도 이효리인 상황은 심지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효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자칭 타칭 예능 고수(?)인데다 실제로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니 그녀를 모시려는 프로그램이 줄을 서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이효리의 입장에서도 예전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있는 PD들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지만, 문제는 예능이 이효리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기 센 여자’로 캐릭터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해피투게더>는 제목에 걸맞게 여러 출연자가 함께 해피한 모습을 보여줘야 균형이 맞지만 이효리가 출연한 분량에서는 거의 그녀의 독무대처럼 그려졌다. “난 쿨한 여자니까.”라는 이효리의 전용멘트는 이런 상황에서는 쿨함을 넘어 ‘기 센 여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심지어 돌직구가 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순수하고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드센 느낌으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맨발의 친구들>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효리는 센 캐릭터를 잡는 더 센 캐릭터로 그려졌다. ‘강호동 잡는 이효리’는 ‘효리성 복통’을 앓는 강호동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센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또 <안녕하세요>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영자에게 독설을 날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이효리는 과거 이영자의 ‘안 좋은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예능이 일관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효리의 ‘기 센 여자’ 이미지는 과거처럼 쿨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는 음악 방송 중단 같은 소신 있는 행동조차 ‘너무 나대는 이미지’로 보이게 만든다. 측근의 설명은 그런 뜻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효리와 아이돌을 음악적으로도 비교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그녀에 대한 달라진 대중정서의 변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 센 여자’ 이미지는 이번 5집 앨범이 기대하게 만든 이효리의 보다 성숙한 이미지와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5집 앨범의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그저 ‘센 언니’가 아니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언니’를 기대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예전의 모습으로 반복 소비되고 있다.

 

새 음반을 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본격 활동을 나선 이효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순심이 같은 새로운 사회활동을 통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 그런 변화된 삶이 음악으로 뭉쳐져 결실을 맺은 5집은 그녀의 새로운 출사표지만 달라진 그녀를 받아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없었던 셈이다.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달라진 자신의 음악적 성향과는 잘 맞지도 않고 또한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의 자신 같은 가수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한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효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게다. 실로 우리네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아닌 싱어 송 라이터나 순위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음악인들이 음반을 냈을 때 그들에 맞게 노래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되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조금은 밀려난 시청 시간대에 남아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달라진 이효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이효리가 예능에서 효과를 봤던 ‘센 이미지’만을 불러와 소비시켰다. 물론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통해 화제도 얻고 시청률도 얻었지만 이효리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효리는 음원을 냈을 때의 호평이, 본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혹평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이미지 노출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효리처럼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에 이제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려는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 깔려 있기도 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