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짧아도 묵직한 여운으로 남은 까닭

우리가 희망하는 언론이 이런 것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아르곤>은 아쉽게도 8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끝을 맺었지만 여러모로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엔딩까지 바른 언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줬다. 

'아르곤(사진출처:tvN)'

미드타운 비리 보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이 됐던 건 그것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미드타운의 건물이 붕괴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현장소장을 희생양 삼아 넘기려는 이들. 그들은 정관계와 경제계, 검찰, 언론까지 뒤얽힌 게이트로 결국 부실공사로 인해 미드타운이 붕괴된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았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한다.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와 삼품백화점 붕괴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비리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참담한 결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사고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 데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던 언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다. 언론 또한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드타운 비리를 보도하려 하자 HBC 사장이 나서서 모든 방송들을 사전 검열하려 한다. 그리고 아르곤은 방송 자체가 중단됐고, 기자들은 아르곤 스튜디오 출입이 금지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드타운 건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백진(김주혁) 역시 자기감정에 휘둘려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 일에 일조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실을 보도하면 그가 지탄받을 일은 뻔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상 시상식장에서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과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언론이 잘못한 것은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제대로 고치고 가야 한다는 그 소신을 지킨 것. 결국 그의 자성으로부터 미드타운 비리는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한 적폐청산의 문제가 결국은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아르곤>은 보여줬다. 물론 그는 방송사를 떠나야 했지만. 

<아르곤>은 진실을 보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섬양식품의 신제품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런 거대기업과 맞서는 일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 보도를 주도했던 신철 기자(박원상)는 내부고발을 한 직원의 자살로 인해 오히려 강압적으로 취재를 한 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딛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래도 꿋꿋이 진실을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는 김백진의 소신이었다. 그는 섬양식품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것이 설혹 자신들의 과오를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언론을 소재로 했고 또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르곤>이 달랐던 건 보다 치열한 방송보도의 현장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은 바로 김백진이었다. 그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네 대중들이 원하는 언론인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론인상을 거부하지만 그래서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에게 마음속으로 상을 주었을 것이다. <아르곤>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부정을 그냥 넘길 순...”, ‘저수지게임’ 그 질깃함의 이유

다큐 영화 <저수지 게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무려 5년째 추적해온 주진우 기자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모든 정황들이 있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사진출처:영화<저수지게임>

그리고 이런 결과는 이미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들어온 관객들은 알고 있다. 만일 주진우 기자의 추적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화관이 아닌 뉴스를 통해 봤을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 대다수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속 시원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주진우 기자 말대로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저수지 게임>이 담고 있는 것은 속 시원한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담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좀체 시원해지지 않는다.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저 정도라면 포기했을 거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진우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5년을 추적했고 지금도 그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집념을 담는다.

<저수지 게임>의 주진우 기자는 MB의 비자금을 추적하며 하나의 패턴을 발견한다. 해외 투자라는 명목으로 망할 투자를 공기업들이 나서서 하고 그래서 적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투자금을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사라진 돈의 출처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상하게도 손실을 본 투자자인 공기업들은 이를 회수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소도 하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진우 기자가 스스로 “열이 받는다”고 말하고 그 말에 관객들도 공감하는 까닭은 그 많은 돈들이 사실은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 돈을 가져가 망할 투자를 하고 돈을 날려버린 뒤 찾으려는 노력도 또 책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바보로 전락한다. 정부는 혹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공범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주진우 기자가 끊임없이 관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통해 어려운 진술을 받아내고, 또 해외로 직접 날아가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 우리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제발 증거가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주진우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했던 김어준은 말했다. 자금 추적을 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그러니 5년여의 추적이 실패로 돌아올 이 일을 그들 또한 몰랐을 리 없다. 심지어 고소도 당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집착하냐고 감독이 묻는다. 기자정신 같은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눈앞의 “부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외면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뒤쫓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실패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수지 게임>을 들여다보려는 건 적어도 주진우 기자의 그 질깃질깃한 집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지지를 표하고 싶어서다. 어떤 안도감이라도 갖고 싶어서다. 보는 내내 화가 나고 허탈한 한숨이 터지지만 그래도 영화관을 나오며 어떤 뭉클함 같은 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그 의아함에 담겨지는 놀라운 집념에서 어떤 작은 희망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그의 실패담에는 단서가 붙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조작’, 남궁민이라는 기레기에 희망을 거는 이유

SBS 새 월화드라마 <조작>은 너무나 현실 같은 드라마다. 정관계와 손이 닿아 사건을 은폐하고 사실을 조작하는 거대 권력을 가진 언론사. 그 와중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하는 검사와 기자들. 하지만 정관계와 언론의 커넥션 속에서 희생되는 그들.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뻔히 보이는 그 비리를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그 단단한 적폐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껴왔던가. 

'조작(사진출처:SBS)'

<조작>의 한무영(남궁민)은 그 비리 앞에 희생된 형으로 인해 기레기를 자청하며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인물이다. 이석민(유준상)과 권소라(엄지원)는 진실을 밝히려다 권력의 힘 앞에서 속절없이 꺾여버린 기자와 검사다. <조작>이 다루려는 이야기의 그림은 그래서 첫 회에 이미 모두 포진되었다. 이렇게 밀려난 한무영과 이석민, 권소라가 거대권력의 손발이 되어 스스로도 권력이 되어버린 언론과 싸워나가는 이야기. 

한무영이 스스로를 기레기라 부르는 건 자조적이면서 동시에 진짜 기레기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협박을 하기도 하지만 한무영은 그런 행동의 목적이 분명하다. 진실을 위해 뭐든 실행에 옮기는 인물. 그래서 겉으로는 기자인 척 끝까지 파보라고 등을 두드려주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구태원(문성근) 같은 진짜 기레기와는 다르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는 건 그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상을 형의 죽음을 통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려는 인물의 주인공으로 남궁민이라는 배우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지난 작품이었던 <김과장>에서 김과장 역할을 연기한 남궁민은 역시 TQ그룹의 비리와 맞서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식을 동원하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도 해낸 바 있다. 물론 이번 <조작>에서의 한무영은 웃음기를 쪽 뺀 진지한 캐릭터지만 거대 권력과 엉뚱한 방식으로 맞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김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한무영이 스스로를 기레기라고 부르며, 그런 방식으로 해야 겨우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현실이 얼마나 뒤틀어져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즉 우리는 이미 언론이나 검찰을 잘 믿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검찰이 무슨 발표를 하면 액면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진 정치 역학적인 권력의 대결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언론 보도 역시 그 이면에 숨겨진 내막을 먼저 떠올리고 심지어 음모론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김과장>에서도 그랬지만 <조작>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상식을 깨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비로소 시청자들이 그 주인공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오히려 그 이야기의 리얼함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기레기라 내놓은 한무영에게 그나마 어떤 희망을 갖는 이유다. 

사실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MBC <스포트라이트>는 손예진이 주연으로 나왔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로 종영했고, 그나마 괜찮은 성적을 가져갔다고 하는 <피노키오> 역시 13%(닐슨 코리아)가 최고 시청률이었다. 이렇게 된 건 드라마 내적인 문제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자라는 직종 자체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작>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JTBC의 보도와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목도한 대중들이 새삼 언론의 올바른 힘이 얼마나 희망을 갖게 하는가를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조작>은 바로 그 현실의 힘과 그래서 생겨난 적폐청산에 대한 희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드라마다. 남궁민 특유의 돈키호테식 대결의식이 또 한 번 일을 내지 않을까 싶다.

현 시국을 예견한 <밀회>의 소름끼치는 폭로들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게 하고 또 돈 벌고 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먹이사슬. 계급 그런 말 들어봤어?” “꼭대기는 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아니구나. 진짜 꼭대기는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 JTBC에서 방영됐던 <밀회>의 대사들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니 최근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국을 이미 <밀회>는 예견하고 있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그것은 단지 등장인물의 이름과 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거론되는 이름이나 병원 이름이 소름끼치도록 똑같고, 그 상황도 딱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다. <밀회>라는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지금 현재 뉴스에서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회>는 상류층에 기생해 살아가며 스스로를 우아한 노비라 부르는 혜원(김희애)이 선재(유아인)라는 순수한 청춘을 만나 일종의 내부고발을 통해 그 더러운 실체를 까발리고 노비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시국에서 <밀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일찍이 이러한 내부고발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상류사회의 추악한 진면목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예술재단과 학원까지 운영하는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김용건)과 그의 아내 한성숙(심혜진), 딸 서영우(김혜은)가 살아가는 첫 번째 세계 상류층과, 서영우의 대학친구지만 지금은 그 밑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혜원이 사는 두 번째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선재라는 전형적인 빈곤층 청춘이 살아가는 세 번째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 개의 세계를 통해 드라마는 갑질하는 상류층의 삶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포획하고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것은 자본의 종속관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친구 사이지만 서영우가 혜원을 비서처럼 부리는 것처럼 첫 번째 세계는 두 번째 세계를 종속하고, 또 혜원이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천거하고 지원하려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세계는 세 번째 세계를 종속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나뉜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의 결정은 저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예술재단에서 이선재 같은 천재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사실상 돈거래로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켜주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이렇게 날카롭게 현재 우리가 직면하게 된 부조리한 우리네 종속 시스템을 그려냈을까. 물론 드라마는 세 번째 세계, 즉 선재에 의해 균열을 일으킨 두 번째 세계 혜원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던그 첫 번째 세계를 폭로하는 것으로 상황을 뒤집는다. 지금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광화문 광장에 집결한 종속 없는 순수한 세 번째 세계가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던 언론과 야권의 두 번째 세계와 함께 첫 번째 세계의 부조리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혜원이 빠져든 욕망을 부추기는 마귀의 속삭임을 이겨내고 선재가 말하는 순수한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요. 어느 날 갑자기 난 이제부터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쓸 거다. 그러다가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그러다 미치고 병들고.” 선재가 이렇게 말하자 혜원은 애써 부정한다. “부자들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얼마든지 제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선재의 그 한 마디에 마치 노예근성처럼 애써 저 견고한 상류사회의 시스템을 변호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이 예전 한 사이트에서 막귀형이란 이름으로 선재에게 던졌던 말과는 상반된다.

 

그래서 선재가 그 막귀형의 이야기를 혜원에게 들려주자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양분된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어떤 형이 그러더라구요. 스펙따위 필요 없고 그냥 막 즐기면서 살라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즐겨주는 거요. 저는 이 곡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비트 16, 32 막 쪼개갖고 그래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고 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 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고 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 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게 장땡이잖아요. 먹이사슬이고 먹이고 뭐.”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저들의 갑질 이야기와 거기에 복무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를 집단적은 우울증으로 몰아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사태의 끝에서 우리는 <밀회>가 보여줬던 결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혜원이 선재에게 남긴 그 허허로운 말에 담긴 희망. 이즈음 <밀회>라는 드라마가 다시 보고픈 까닭은,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마주하고 거기서 어떤 것이 희망의 길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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