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진지함과 ‘아마존 활명수’의 발랄함을 넘나드는 배우

아마존 활명수

“저는 이번에 통역을 맡은 장 프리크손 빵게라입니다.” 영화 ‘아마존 활명수’에서 진선규 배우가 맡은 역할은 아마존에 있는 볼레도르라는 작은 나라에 양궁 감독으로 초빙받아 가게 된 진봉(류승룡)의 통역사다. 한국계 볼레드로인으로서 잘하진 않지만 한국어를 하는 이 인물은 그렇다고 볼레도르 언어 또한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진봉과, 그가 감독을 맡아 함께 하게 된 신이 내린 활솜씨의 아마존 전사 3인방 사이에서 엉뚱한 통역을 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이 이색적인 인물이 구사하는 볼레도르 언어가 예사롭지 않다. 그저 흉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짜 볼레도르 언어란다. 물론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볼레도르 언어보다 한국어로 연기하는 모습으로 대부분 채워졌지만, 진선규는 실제로 이 언어를 배우려 노력했고 촬영 당시에는 원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을 모두 연기했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인들이라면 잘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진선규는 왜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을까. 이것은 웃음에 초점이 맞춰진 코미디라고 해도 이 배우가 얼마나 연기에 진심을 담으려 하는 인물인가를 보여준다. 

 

사실 ‘아마존 활명수’는 기발하지만 엉뚱한 발상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한때 양궁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로서 코리아 활명수(활을 잘 쏜다는 의미)로 불리던 진봉이, 이제는 구조조정 1순위의 회사원이 되어 그 위기를 벗어날 기회로 아마존에 있는 볼레도르의 양궁 감독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마존에 뚝 떨어진 진봉이 그 곳 원주민들과 벌이는 좌충우돌과 거기서 만난 아마존 전사 3인방을 양궁 선수들로 키워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는 과정이 담겼다. 너무나 엉뚱한 이야기지만 한국과 아마존이라는 그 거리감을 단번에 좁혀줌으로써 허공에 붕 뜰 수 있는 이야기에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얹어주는 인물이 통역사 빵식이다. 그러니 빵빵 터트리는 슬랩스틱류의 코미디 속에서도 양측 문화를 소통시키는 이 인물의 진정성이 필요해진다. 그가 굳이 볼레도르 언어까지 배워가며 연기를 준비한 이유다. 

 

진선규는 그 역할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혹은 지독한 비극이든 아니면 웃음 터지는 발랄한 코미디든 척척 제 몸에 맞는 옷처럼 입어버리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범죄도시’에서 빡빡 밀고 나와 위성락이라는 살벌한 악역으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그가, ‘극한직업’에서 형사지만 잠복근무 하다 치킨집 요리사가 된 모습으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전해줬을 때 대중들은 전선규가 다채로우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배우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단독 주역을 맡은 건 작년에 개봉됐던 ‘카운트’에서가 처음이었지만, 다른 인물들과 함께 주연으로 나설 때마다 그는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형 우주 배경의 SF 영화였던 ‘승리호’에서의 타이거 박이나, ‘공조2’에서 현빈과 대적하는 메인 악역 장명준, ‘외계+인2’에서의 능파 역할이나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전,란’에서 강동원의 스승으로 등장한 김자령 역할이 그 사례들이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남은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고, 범죄스릴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통스러워도 범죄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프로파일러 역할을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갑자기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안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생존게임을 다룬 ‘몸값’에서는 드라마 내내 팬티 한 장을 입고 하는 액션 코미디를 선보였으며, 오컬트 장르인 ‘악귀’에서는 민속학자 역할로 등장해 특별출연이었지만 마지막회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사실상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극과 현대극, 스릴러와 코미디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모습이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하는 작품과 역할에 진심을 담는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진정성이 점점 중요해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재작년 tvN에서 방영됐던 ‘텐트 밖은 유럽’은 사실상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유해진과 여행 예능에 첫 출연한 진선규의 공조로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영화 ‘공조2’에서 북한형사와 범죄조직 리더 장명주로 함께 출연해 치열한 대결을 벌인 바 있었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에서 진선규는 너무도 선하고 순수한 소년미를 드러내면서, 서글서글하고 아재미 가득한 매력을 가진 유해진과 기막힌 형동생 케미를 선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달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MC 유재석은 “어떤 게 진짜에요?”라고 물었는데, 그 때 진선규가 한 말이 걸작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며 ‘연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했던 것. 그래서인지 최근 쿠팡플레이 ‘SNL코리아’에 출연한 진선규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줬다. 특히 개그우먼 이수지가 보이스피싱을 하는 린쟈오밍 역할로, 진선규가 위씅락 역할로 분한 ‘범죄도시의 사랑법’은 유튜브에도 소개되어 큰 화제가 됐다. ‘개그콘서트’에서 이수지가 했던 보이스피싱 개그와 ‘범죄도시’의 세계관을 엮어 기막힌 ‘격정 멜로’로 풀어낸 이 코미디 영상은 조회수가 160만을 넘기고 댓글이 900여개가 달리는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카멜레온 같은 완벽한 변신은 그냥 생겨난 결과가 아니다. 그는 작품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오는 배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몸값’을 찍을 때 그와 함께 연기했던 전종서는 촬영 2개월 전 리허설 때부터 진선규가 대사를 모두 암기해 와 깜짝 놀랐다고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만큼 어떤 역할이든 사전에 캐릭터를 분석하고 준비함으로써 남다른 자기만의 아우라를 갖게 됐지만, 진선규는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상태라고 자신을 낮춘다. 이번 ‘아마존 활명수’에서도 그에 대해 류승룡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그런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것을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극찬했지만, 진선규는 오히려 “‘극한직업’ 이후로 다시 한 번 더 형 옆에서 코미디로 배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선악과 희비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아우라를 그가 어떻게 갖게 됐는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임하는 변함없는 진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글:국방일보, 사진:영화'아마존 활명수')

김원해에 이어 정상훈, ‘SNL’의 숨겨진 배우들

우리에게 그저 tvN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양꼬치 앤 칭타오’로 알려진 코미디 배우 정도로 여겨져 왔던 정상훈.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는 그의 배우로서의 새로운 면면이 있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줬다. 코미디 연기에도 어떤 수준 이상의 레벨이 있다는 걸.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이라는 역할은 사실상 국민비호감이 될 만한 캐릭터다. 딸의 미술선생과 바람이 나고 결국은 그 사실을 들켜버렸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은 그 내연녀와 헤어질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아내인 우아진과 이혼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인물. 그래서 우아진을 복장 터지게 하는 그런 인물이다. 

사실상 안재석 같은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신랄하게 비판해내려는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불감증 단계에 이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재석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안태동 회장(김용건)이 해왔던 ‘도덕적 해이’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안재석이라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품위 있는 그녀>는 이런 인물에 대한 비판을 심각한 사회극으로 담기보다는 냉소가 곁들여진 풍자극으로 담아내려 했다. 안재석은 그래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뒷골을 잡게 만드는 인물이지만, 어딘지 그 황당함과 코믹함이 웃음을 터지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안재석의 행태를 보며 그 황당함에 실소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부조리한 저들의 삶에 다가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정상훈이라는 배우가 이 안재석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냈다는 점이다. 미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밉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면면까지 있는 철부지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흔히들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코미디 연기로서 세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역할의 쉽고 어려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악역과 코미디 연기 중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언뜻 보기엔 악역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상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지목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정상훈이 <품위 있는 그녀>에서 해낸 안재석 연기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tvN [SNL코리아]의 고정 크루들 중에는 정상훈처럼 의외로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김원해 같은 배우가 그렇다.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 역할을 연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아수라>에서 작대기 역할로 놀라운 에너지를 보여준 배우. 코미디 연기로 먼저 대중들에게 다가왔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배우가 이제 김원해에 이어 장상훈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코미디 배우를 조금 낮게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편견이라는 걸 깨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김원해나 정상훈 같은 연기자들이 제대로 그 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품위 있는 그녀>는 물론 김희선과 김선아의 연기를 보는 맛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그 바탕을 깔아준 정상훈의 코미디 연기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니 ‘SNL 코리아’도 이렇게 바뀌네

“이렇게 정치가 이런 개그의 소재가 되고 하는 게 참 좋아요.” 자신을 찾은 문재수(김민교)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선거유세를 하는 도중에 있었던 일이다. tvN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9]에서는 대선을 소재로 한 코너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으로 각 대선후보들을 캐릭터화한 풍자코너를 방영중이다. 홍준표를 패러디한 레드준표, 유승민을 패러디한 유목민 그리고 안철수를 패러디한 안찰스도 모두 실제 후보들을 찾아가 당시 대선 주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선거 유세를 하던 당시라 이런 패러디 캐릭터들은 화제가 될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이 이들과 나란히 서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은 달라진 정치에 대한 의식을 보여준다. 국민들은 훨씬 더 친근한 정치인을 원하고 더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어 한다. 서민들의 웃음을 주는 존재로서 예능인들만큼 친숙한 이들이 있을까. 그래서 대선주자들도 모두 이들과 한 자리에 서는 것이 너무나 기꺼운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SNL 코리아9]에 의해 담겨진 그 모습에서 특히 문재인 당시 후보가 문재수 캐릭터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다. 정치가 개그의 소재가 되는 게 참 좋다는 그 말에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재수가 “영광이고요. 저는 5년 전부터 문재인 후보님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자 문재인 당시 후보는 “문재인 역할도 재수입니까?”라는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자신이 과거에도 재수를 했었고 대통령 도전도 재수라는 점을 문재수라는 캐릭터에 빗대 던진 농담. 얼마나 웃긴가를 떠나 그렇게 웃음을 주려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런 장면은 격세지감이다. 과거 몇 년 간 [SNL 코리아]가 겪었던 부침을 떠올려 보라. 지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CJ그룹이 박근혜 정권의 눈밖에 나게 된 원인으로 지목됐던 프로그램이 바로 [SNL 코리아]였다.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패러디했던 그 대목이 심기를 건드렸다고 했다. 결국 그 코너는 사라졌고, [SNL 코리아]에서도 시사 풍자 소재는 더 이상 다뤄지지 않았다. 

시사 풍자와 19금 코미디의 균형 있는 조화가 [SNL 코리아]가 가진 중요한 특성이었던 점을 떠올려보면 어째서 이 프로그램이 한동안 성적 농담으로만 가득 채워지면서 혹평을 받았는가 하는 점은 지금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시사 풍자라는 한쪽 날개를 읽어버린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반복하게 되자 또 다른 문제들까지 겹쳐지기 시작했으니까. 어떻게든 떠나는 시청자를 잡으려는 안간힘은 무리수를 만들었고 그것은 논란으로 이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표현에 있어서 자유가 보장되는 일은 그 사회가 가진 숨통을 틔워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표현의 자유는 가감 없는 비판을 가능하게 하고 그런 분위기는 권력의 독주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화의 순기능이다. 그것을 막으면 결국 소통은 단절되고 밀실이 부활하게 된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SNL 코리아]가 보여준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의 출연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다. 문재수를 패러디한 김민교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이렇게 물었다. “국민들이 웃을 수 있는 나라 만들어 주실 거죠?” 그리고 지금 새로운 정부를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 그럼요.”하고 선선히 답했다. [SNL 코리아]의 시사풍자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웃음으로서 정치인들 역시 즐길 수 있는 풍토가 되길 바란다.

<SNL코리아>, 진정성은 꾸준함에서 생겨나는 법

 

tvN <SNL코리아>는 간만에 시국을 담은 풍자를 내놨다. ‘예능청문회는 타이틀 그대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를 패러디했다. 물론 청문회에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김경진 의원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이완영 의원처럼 수준 이하의 질문으로 청문회를 맹탕이라 질타받게 만든 인물들도 많았다. ‘예능청문회는 그런 점들을 예능식으로 끄집어내 풍자했다.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에게 제가 미우시겠어요?”라고 질문했던 장면도 고스란히 패러디됐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이번 <SNL코리아>가 보여준 시국 풍자에서 주목받을 만한 코너는 겨울왕국이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 여왕이 되는 엘사를 박근혜 대통령에 그리고 그녀의 연설문 쓰는 걸 도와주는 동생 안나를 최순실로 그려냈다. 세상과의 소통을 닫고 얼음성에 들어가 머리를 다듬고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과, 비아그라를 배달하다 들키자 키가 작아서 책상에만 올라가도 고산병이 걸린다고 둘러대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피날레는 백성들이 들고 온 촛불에 얼음성이 녹아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마치 다음편이 계속 이어질 것처럼 끝난 이 코너는 과거 신랄한 정치풍자를 하다 사라진 여의도 텔레토비시리즈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간만에 시국 풍자로 돌아왔지만 <SNL코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 받지 못했다. 거기에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불거진 논란들이 남긴 불편함이 여전히 이 프로그램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B1A4의 성추행 논란에 이어 정이랑의 엄앵란 성대모사를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유방암 환우 비하 논란은 <SNL코리아>가 가진 적어도 웃음을 추구한다는 그 진정성을 무너뜨려버렸다.

 

다소 거칠고 다소 선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들도 <SNL코리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그나마 웃음이 코미디의 본분이라는 걸 수행해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논란은 그 웃음이 다름 아닌 웃기기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될 것까지 하는 무개념으로 드러나게 했다. 물론 그건 의도치 않게 벌어진 실수일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무의도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아예 성 의식이나 어떤 문제의식 같은 것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시국 풍자 코너들 역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 그건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때 패러디를 선보였던 <SNL코리아>가 그 후로는 아예 시국 관련 코너를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가 이런 논란에 휩싸이면서 다시 풍자 코너를 넣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침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 시국 풍자를 다시 넣은 것처럼 보이게 된 건 프로그램이 너무 기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낳았다.

 

<SNL코리아>는 오는 24일 가수 황치열을 마지막 호스트로 시즌8을 마무리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제작진측은 시청자분들의 날카로운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응원과 격려를 거름삼아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서는 시즌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돌아오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다만 시청자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모습에서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그 꾸준함은 다름 아닌 진정성에서 나온다. 일시적으로 시류에 맞춰 어떤 모습을 꾸미기보다는 웃음을 주더라도 진지한 자세를 계속 이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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